2001년 부시대통령은 미국의 노동부장관에 조소란을 임명하였는데, 이것은 미국역사상 최초로 중국계가 장관에 오른 사례가 되었다.
조소란은 상해 가정(嘉定)의 마육진(馬陸鎭)이 조상의 고향이다. 그녀는 1953년 대만에서 태어나고, 8살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한다. 1975년 Mount Holyoke 여자대학을 졸업하고, 2년간 부친을 따라 회사에서 실습을 한다. 이 기간동안 해상운송, 보험, 관리등의 지식을 쌓고 미국조선공업에 대한 글도 쓴다. 이후 1977년 4월 15일 하버드대학 MBA과정에 입학한다.
조소란의 부친인 조석성(趙錫成)은 딸만 여섯을 두었고, "조씨 여섯송이 꽃"으로 불리운다. 조소란은 그 중 장녀이다. 그녀가 하버드에 입학한 이후, 그녀의 여동생들도 모두 명문대학에 입학한다. 둘재딸 조소금(趙小琴)은 윌리엄앤마리대학의 석사이고, 셋째딸 소미(小美)는 하버드대학 MBA, 넷째딸 소보(小甫)는 컬럼비아대학 법학박사, 다섯재딸 소정(小亭)도 하버드대학 MBA, 여섯째딸 안길(安吉)은 매우 총명하여 3년만에 하버드에서 학사과정을 마치고, 하버드에서 기업관리로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2002년 1월 17일에는 셋째딸 조소미가 뉴욕주 소비자보호청의 청장에 임명되었는데, 이는 중국계 최초의 뉴욕주의 고위관리였다.
조소란은 1979년 여름 하버드를 졸업한 후, 미국 시티뱅크에 입사한다. 이후, "백악관연구원"을 뽑는데 참가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반드시 28세에서 36세 사이이고,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특수한 지도자적 자질을 가지고, 명망있는 인사들의 추천을 받는 외에 9개월간의 필기시험, 구술시험과 여러 자료를 보고 선발하였다. 조소란은 1983년 씨티뱅크의 행장, 하버드 경영대학원원장, 뉴욕세인트존스대학 학장, 진향매(陳香梅) 여사 및 미국 모빌석유회사총재등 다섯 명의 공동추천을 받았다.
백악관의 통계에 의하면, 1983년에 백악관연구원을 신청한 사람은 모두 5.5만명이었고, 1차시험에서 3000명을 뽑고, 다시 그 중에서 1,120명을 뽑았으며, 여러번의 필기시험, 면접시험을 거쳐 다시 32명을 뽑고, 최종적으로 13명만이 합격했다. 당시 조소란은 백악관연구원 13명중 가장 나이가 어렸고, 유일한 중국계 여성이었다.
백악관에 들어간 후 교통운수와 무역쪽의 업무를 맡았다. 1986년에는 미국교통부 해운총국의 부국장이 되었다. 그 후 1988년 4월에는 레이건 대통령에 의하여 연방해사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당시 그녀는 35세의 중국계 여성이었는데, 나머지 위원들은 1명은 퇴역해군중장, 1명은 상원의원으로 모두 60세가 넘은 사람들이었다. 1989년 1월 20일 부시대통령이 집권하며 그녀는 교퉁부차관에 임명된다.
그녀는 1993년 51세인 미국 켄터키주 공화당적 상원의원인 맥아너와 결혼한다. 이 때 그녀의 나이 40세였다.
2000년 7월 공화당 37회 전당대회때 조소란은 파월장군, 로라 부시와 함께 황금시간대에 연설을 하게 되어,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고, 그녀가 차기 교통부장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교통부장관에 임명된 사람은 일본계의 후예인 Norman Minata(峰田)였다.
그후 2001년 1월 9일 미국노동부장관이 불법이민자를 집안에서 일을 시킨 건으로 인하여 물러나면서, 그녀가 노동부장관에 임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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