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진실의 기효람(紀曉嵐)

요즘의 중국역사연속극에는 청나라 건륭황제때의 신하들 중 간신인 만주족 허션과 한족인 기효람에 대한 이야기를 묘사한 것이 적지 않다. 여기서 기효람은 인물이 출중하고, 지식이 뛰어나며, 임기응변이 능수능란한 사람으로 나온다. 그러나, 역사에 기록된 진실한 기효람은 이런 연속극에서의 기효람과는 거리가 있다.

 

기효람은 이름이 윤(昀)이고, 효람은 그의 자(字)이다. 1724년 6월 15일에 태어났으며, 부친인 기객서(紀客舒)는 북경에서 관리를 지내다가, 요안지부로 내려갔다. 기효람은 4살때부터 글을 읽기 시작해서 12세때 부친을 따라 북경으로 들어온다.

 

기효람은 24세에 순천부의 향시에 응시하여 해원(解元, 향시의 1등)을 한다. 31세에는 진사가 되어, 한림원에서 근무한다. 건륭33년에는 귀주도균지부를 받는다. 그러나, 황제는 기효람이 학문은 뛰어나나, 바깥에 나가 관리직을 맡을 재주는 없다고 보고, 그를 신변에 남게 한다. 같은 해 4월 시학사로 승진된다. 그러나, 기효람은 평생 대학사를 하루도 해보지 못한다. 죽기 직전에 억지로 1개월간 협판대학사를 맡기기는 하지만, 이것은 위로하는 정도의 의미밖에 없었다.

 

기효람은 평생 저술을 많이 했다. 관리의 신분에서 편찬한 <<사고전서>> <<사고전서총목제요>>, <<열하지>>등이 있고, 개인적인 신분에서 저술한 <<열미초당필기>>가 있다. 기효람은 사고관을 맡아서 13년간 힘들여 일을 해서 <<사고전서>>를 만드는데, 이는 건륭이전의 중국역사상의 주요한 전적을 거의 모아놓은 것이다. 이처럼 방대한 편찬작업을 하는 것은 당연히 황상의 신임이 있고, 중용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 기효람이 친한 친구를 위해서 황상에게 한마디 건의를 했으나, 건륭황제는 대노하여, 즉석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짐은 네가 문학이 뛰어난 것을 보고 사고서를 맡긴 것이다. 이건 노래나 부르고, 연기를 하는 자를 옆에 둔 것과 같은 것이다. 네가 어찌 감히 국사에 대하여 헛되이 말한단 말이냐" 황제는 그를 중신으로 보아준 것도 아니고 단지 그의 글재주가 뛰어나니 황제의 머리를 식혀주는 배우정도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사서의 기재에 의하면 기효람은 "모침단시(貌寢短視)"했다고 한다. 이것은 용모가 추했으며, 근시안이었다는 뜻이다. 기효람은 또한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었다. 기효람이 건륭52년에 예부상서를 맡았고, 이후 병부, 도찰원등에서 직위를 맡았다. 모두 높은 관직이었고, 이런 관직을 맡았다면 그 다음에는 순서대로 군기대신이나 대학사를 맡은 것은 아무런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건륭황제가 가경황제에게 황위를 물려줄 때까지, 기효람의 직위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가경황제의 즉위후에 기효람은 높이 평가받았고, 죽은 후에는 많은 영예를 더 받는다. 그러나, 가경황제때에도 그는 권력의 핵심인 군기처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대학사에 오르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이때까지도 아직 건륭제가 태상황으로 있었고, 건륭은 기효람을 하나의 유생으로 생각했고, "어용문인"정도로 생각했다. 황제가 그를 도찰원으로 보낸 바 있는데, 그가 사건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원래는 처벌을 받아야 하나 건륭제는 "이번에 파견나간 기효람은 본래 숫자를 채우는 정도일 뿐이었다. 하물며 그는 형벌등의 사무에 밝지도 못하다. 더구나 근시안이니, 그가 범한 잘못은 용서할 수 있을 정도이다"라고 한다.

 

기효람은 하나의 괴벽이 있었는데, 담배를 너무 좋아하였다. 그가 피우는 담배대는 모두 주문하여 구한 것들이고, 매우 컸다. 어떤 사람은 한번에 3,4냥의 담배를 넣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는 큰담뱃대(紀大烟袋)라는 별명을 가진다.

 

하루는 건륭황제가 원명원에서 사고전서의 편찬상황을 보러 순시를 왔다. 기효람은 커다란 담배를 막 절반정도 빨고 있을 때였는데, 돌연 "황상이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는 놀라서 얼른 담뱃불을 끄려고 했으나, 미처 다 끄지도 못한 담뱃대를 신발속으로 우겨넣고, 황제에게 무릎을 꿇고 문안을 여쭈었다. 몸을 일으키니 복숭아뼈부근이 뜨겁고 아파왔다. 그러나, 황상께서 말하고 있는 중이므로 말을 끊을 수가 없어서, 이를 악물고 참고 있었다.

 

건륭제가 그의 얼굴을 보니 고통을 참고있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놀라서 "왠일이냐"고 물어보니, 기효람이 "신발에 불이 났습니다"라고 답한다. 건륭이 손짓을 하여 나가라고 하자, 기효람은 전각밖으로 뛰어나와 체면을 돌볼 틈도 없이 돌계단에 앉아 한번에 신발과 양말을 벗어버린다. 신발 속에서는 즉시 검은 연기가 새어나왔고, 발의 살은 이미 시커멓게 탔다. 건륭이 나와서 보니, 담뱃대는 아직도 신발속에서 연기를 내고 있었다.

 

기효람의 여인관계는 전형적인 귀족들의 방식이었다. 17살 때, 그는 동광현의 명문집안출신 여자를 처로 삼는다. 성무현령을 지내고 있던 마영도의 딸이다. 이 혼사를 준비한 것은 그의 동부이모(同父異母) 형인 기탁이었다. 기탁은 기효람보다 18세나 많았고, 어려서 부터 그를 도왔으며, 기효람을 결혼시키기 위하여 많은 돈을 들인다. 기효람도 이 혼사에는 만족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여자를 좋아하여, 모두 6명의 첩을 둔다. 이 일도 모두 그의 형의 동의를 받아서 한 것이다. 특히 그는 첩중에 심명(沈明)을 매우 좋아하여, 그녀가 일찍 죽자 매우 슬퍼한다.

 

텔레비전연속극으로 인하여, 기효람은 말도 잘하고, 강직하며, 우아하고, 시원시원한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깊이 박혀버렸다. 그러나, 역사에서의 진실한 기효람은 반대로 모습이 추악했고, 근시안이며, 말을 더듬고 하루도 대학사 노릇을 해보지 못했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