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의 과거제도에도 여러가지 폐단이 있었고, 그러한 폐단이 드러난 것이 과거부정사건이었다. 청나라때 큰 과거부정사건은 세번이 있었다.
첫째사건은 정유과장안(丁酉科場案)이다.
순치 14년에 이 사건은 강남에서 발생하였다. 강남향시의 주시험관은 방유(方猶)였고, 부시험관은 전개종(錢開宗)이었다. 시험결과가 발표된 후에, 선비들이 소란을 일으켰는데, 집단으로 문묘로 몰려가 곡을 하고, 관리와 순라를 구타하였다. 어떤 사람은 <<만금기전기(万金記傳奇)>>라는 글도 썼는데, 만은 방유의 성인 방씨에서 머리점을 떼어낸 것이고, 금은 전개종의 성인 전에서 오른쪽을 떼어버린 것이었고, 그 내용은 시험관이 부정을 저질렀다는 내용이었다.
시험관들이 급히 배를 타고 북쪽으로 도망쳤는데, 선비들이 운하를 따라가며 욕을 하고, 배에 돌을 던졌다고 하니, 선비들이 얼마나 흥분했었는지를 알만하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순치황제는 대노하여 다음해 1월에 시험에 합격한 자들을 북경으로 오게 하여 재시험을 치렀다. 그런데, 남쪽의 선비들이 추운 북경으로 와서 한겨울에 시험을 치게 되고 옆에는 무기를 든 병사들이 노려보고 있으니, 어떤 사람은 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긴장하기도 하여 제대로 글을 써내지 못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 중에 오조건(吳兆騫)이라는 선비가 있었는데, 글도 잘하고 비교적 이름있는 자였으며, 부정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날 너무 춥고 긴장하는 바람에 글을 제대로 써내지 못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시험에 합격한 것으로 취급되어 영고탑(동북지방)으로 귀양을 보내버렸다. 그는 20년간 변방에 있으면서 시를 써서 후에 시를 모아 <<추가집>>을 발간하였고, 청나라의 유명한 변방시인으로 인정받았다. 후에 대학사 명주의 아들인 나란싱더를 만나 그의 억울함을 알고는 유배에서 풀려나게 된다.
나중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부시험관인 전개종이 부정을 저지를 것으로 밝혀젔고, 순치는 명을 내려 관련자들을 참형에 처하게 된다.
둘째사건은 신묘과장안(辛卯科場案)이다.
강희 15년에 일어났는데, 역시 강남의 향시였다. 이번 사건에서의 주시험관은 좌자번(左子蕃)이고, 부시험관은 조진(趙晋)이었다.
시험결과발표후 역시 선비들이 소란을 일으켰는데, 재산상을 들고 부학까지 시위행진을 벌였다. 강희는 명을 내려 조사를 해보니, 강소순무였던 장백행과 총독 거리가 연루된 상황이 나타나고, 장백행과 거리는 서로 상대방을 탄핵하는 상황이 되었다. 조사끝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주모자는 부시험관 조진이었고, 장백행은 무관한 것으로 인정된다.
조진은 시험에 참가한 자들중 뇌물을 바친 자들에게는 시험답안지에 '기실유(其實有)"라는 세글자를 써서 표시하게 하고, 이 세 글자를 쓴 자들은 모두 합격시켜주었던 것이었다.
셋째사건은 무오과장안(戊午科場案)이다.
이 사건은 함품8년에 일어난다. 사건내용은 간단한데, 배경은 그렇지가 않다. 사건내용은 평령이라는 자가 시험에 합격했는데, 그는 원래 극을 하는 배우였다. 청나라의 규정에 극을 하는 배우는 시험에 참가할 수가 없었는데, 그는 참가하였을 뿐아니라 합격까지 하였던 것이다.
글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가 합격까지 한 사건이 되다보니, 배후의 조종자가 누구이냐가 관건이었다. 조사를 하면서 책임이 당시의 대학사인 백준에게까지 미치게 된다. 그런데, 백준의 집안 사람을 붙잡아 고문을 하다가 그만 죽어버리고 만다. 이에 따라 대질등을 할 방법이 없어진다.
이 사건을 조사한 사람들은 당시의 단화와 숙순이었는데, 그들은 백준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므로, 조사결과에 의심스러운 바는 있었다. 그러나, 특별한 방법이 없던 함풍제는 백준을 죽여버린다. 그는 중국역사상 과거부정사건으로 죽임을 당한 가장 고위직 관료이다.
함품제가 죽은 후 자희태후가 신유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다. 그 후 여러 사람들이 백준이 죽임을 당한 것은 억울하게 모함을 당한 것이라고 신원을 요청하나, 자희태후는 함풍제가 정한 사건을 뒤집을 수 없다며 거절한다. 대신 백준의 아들에게 작은 관직을 주어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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