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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지리

초모랑마봉의 역사

by 중은우시 2005. 10. 10.

1714년 (강희 54년)에 중국정부는 당시로서는 세계 최선진의 측량기술을 지닌 3명의 중국인으로 하여금 티벳지구에 대한 측량작업을 진행하여, <<황여전람도(皇輿全覽圖)>>의 티벳부분을 완성하였다. 당시에 파견된 3명의 전문가는 청나라 이번원(理藩院)의 주사(主事)인 성주(勝住), 라마인 추얼친장부(楚爾沁藏布)와 란무잔바(蘭木占巴) 였다. 그들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면서 갖은 역경을 헤치고 초모랑마봉(에베레스트)의 아래까지 갔다. 경위도법과 제형투영법을 사용하여 위치와 고도에 대한 초보적인 측량을 마친 후에 <<황여전람도>>에 초모랑마봉의 위치와 명칭을 기재하였다. 이것은 인류가 처음으로 세계최고봉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다, 다만 초모랑마봉의 높이에 대하여는 명확하게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하였다.

 

4년후인 1718년(강희 58년), 만년의 강희황제는 드디어 완성된 <<황여전람도>>를 자금성의 태화전에서 받아본다.

 

100여년이 지난 1852년의 어느날, 일단의 영국인이 인도평원상에서 곧게 하늘로 솟아오른 희말라야의 산들을 올려다보며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들 산은 도대체 높이가 얼마일까? 영령인도의 측량국국장이던 에베레스트(Everest)의 지휘하에 측량사들은 거대하고 무거운 경위기기를 들고 멀리 200킬로미터 떨어진 에베레스트를 측량하였다. 8840미터. 이렇게 개략적으로 나온 결과는 세상 사람들이 에베레스트의 높이에 대하여 개략적으로 알게 된 첫번째의 수치였다.

 

당시 에베레스트는 산봉근처에 가지도 않았고, 그의 측량은 어느 정도 기교섞인 것이었으며, 측량결과도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이후의 서양의 문헌에서는 여전히 이 세계최고봉을 에베레스트라고 부르고 있다.

 

이후 100년간은 인류가 에베레스트의 높이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20세기초에는 외국에서 기압측정의 방식을 사용하여 8882미터라는 에베레스트의 표고를 계산해낸 바 있다.

 

1954년에는 인도측량국이 1852년의 기초위에서, 다시 측량하여 8847.6미터로 발표하였다.

 

1975년에는 중국이 대규모의 초모랑마등반, 측량, 과학고찰을 통하여 처음으로 초모랑마의 정상에 표지를 설치하고 표고를 8848.13미터로 발표하였다.

 

1987년에는 이탈리아의 과학자인 조지 푸루이디가 이끄는 등반대가 높이를 8846.50미터로 발표하였다.

 

1999년에는 미국의 밀레니엄에베레스트측량 플랜을 실시하였으며 그해 11월 미국국가지리학회의 정기연도총회에서 측량결과를 8850미터로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