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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의학

오행설(五行說)은 버려야 한다

by 중은우시 2025. 3. 18.

글: 참사오대(饞師五代)

음양오행(陰陽五行)은 전해져 내려온지 오래되었다. 오늘날에도 시장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중의(中醫)의 이론기초중 하나는 바로 오행이다. 오행으로 오장(五臟)의 상호관계를 해석한다.

필자의 생각에; 음양은 쓸 수 있지만, 오행은 버려야 한다.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네가 그것을 믿지 않는 것은 괜찮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행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겠다. 잘못된 것인데도 계속하여 남겨둬서 멀하겠는가? 중국전통문화박물관에 들어가야 한다는데 필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다시 오행설로 무언가를 해석하는 이론모형으로 삼는 것은 황당무계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오행설은 중국 고인의 사상의 결정(結晶)이다. 기실, 도불고(道不孤, 진리는 외롭지 않다)이다. 고대그리스, 인도, 바빌로니아에도 유사한 생각이 있었다. 고대그리스에서는 사원소(四元素, 흙, 불, 물, 바람)라고 불렀다. 세계의 모든 물질은 사원소로 구성되었다고 보았다. 바꾸어 말하면, 4원소는 모든 물질세계의 기본성분이다.

그러나, 과학의 고향 그리스에서 사원소이론은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하고, 사라진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첫째, 사원소모델이 너무 복잡하여, 데모크리토스의 간단한 원자설보다 못했기 때문이고, 둘째, 원수주기표의 출현으로 사원소설은 철저히 매장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4원소는 검증을 거치지 않은 소박한 세계관으로 고대에 유행했다. 그건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리고 나중에 버려진 것도 당연한 일이다.

중국의 오행은 그리스의 사원소설과 극히 유사하다. 그리스인, 서방인이 사원소설을 버렸다면, 우리도 마땅히 오행설을 버려야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호고자(好古者)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오행설은 3가지 핵심이론을 포함한다. 첫째,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의 다섯까지 요소가 물질세계를 구성하는 기본원소라는 것이다; 둘째, 오행간에 상생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셋째, 오행간에 상극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고대에, 이처럼 아름다운 모델을 만들어 세간만물을 해석한 것은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는 그때이고 지금은 지금이다.

당연히 오행을 부정하는 것은 그것이 '고물(古物)'이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그 자체에 극복하기 어려운 취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유클리드의 기하학,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도 오래된 것이지만, 유클리드기하학이나, 아르키메데스원리는 영원하다.

오행학설의 잘못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세계는 5개의 원소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5개의 원소로는 세계를 해석하기 어렵다.

오행설의 교묘한 점이라면 바로 5라는 '일부세계'를 오행설로 해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장(五臟)과 오행이다. 하나하나 대응시켜서 오행이론을 검증하는 증거가 되었다. 그러나, 웃기는 점이라면, 서방의학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장기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췌장. 그래서 오장설은 성립되지 않는다; 오장이 아니라 육장이다. 그렇다고 중의들이 굴복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췌장은 서양인들이 발견한 것이므로 차별적인 명칭을 부여한다: "이(胰)" 이(胰) = 이(夷) + 월(月, 肉). 마치 서방인이 중국으로 오지 않았더라면, 중국인에게는 췌장이 없는 것처럼.

이를 보면, 오장설은 성립되지 않는다. 오장이 성립되지 않고 육장이 된다면, 오행과의 사이에 대응관계가 있을까? 당연히 없게 된다.

육장이 되면 오행설이 곤란해진다. 다만 이것만이 아니다. 사계절은 어떠한가? 오행설이 사계절을 만나면 어찌할 방법이 없어진다. 봄은 목(木), 여름은 화(火), 가을은 금(金), 겨울은 수(水). 그럼 토(土)는 어떡할 것인가? 그리하여 고대인들이 하나의 계절을 창조해냈다. 그것은 장하(長夏)이다. 장하는 여름과 가을 사이에 위치시켰다. 그렇게 하여, 목생화,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의 순환을 완성시킨다.

그러나, 장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공적으로 만들어 넣은 것이다. 과학적인 눈으로 보자면, 이건 데이타조작이다. 마음대로 자연현상을 바꾸어서 이론모형에 뜯어맞추어야 한다면 그 이론이 어떻게 정확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사계절에 대하여 '장하'를 날조해낼 수 있다. 그러나, 열대지방에 가면 어떻게 할 것인가? 거기는 오직 두 계절밖에 없다. 우기와 건기. 오행학설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설마 계절 3개를 다시 만들어낼 것인가?

그리고 오색(五色)도 있다. 그게 맞는가? 아니다 틀렸다. 빛에는 칠색(七色)이 있다. 오음(五音)이 맞는가? 역시 틀렸다. 태양계에는 5개의 행성이 있는가?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오행설은 여기저기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세계의 구성은 오행학설이 예정하는 것처럼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오(五)는 이론모형의 관건숫자인데, 지나치게 이론화하면 조물주를 어렵게 만든다. 이론이 간단할수록 보편성은 더욱 커진다. 그것이 바로 음양설의 장점이다. 오행설은 너무 복잡하고 너무 완벽한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적용하기는 아주 나쁘다.

둘째, 오행의 상생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목생화,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 이것이 상생관계이다. 그중, 금생수는 성립되지 않는다. 어떤 금속이 물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치명상이다. 또한 상생은 폐쇄순환이므로, 그중 고리 하나가 끊기면 모조리 무너져버린다. 그래서 금생수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상생관계는 끝장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중국의 학자들을 포기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들은 다시 한 가지 이야기를 만들어 내서, 이 난제를 해결했다. 고인들은 금속소반을 달 아래 놓아두었다. 그랬더니 아래에 물방울이 맺혔다. 이것이 금생수라고 한 것이다. 이 소반이 승로반(承露盤)이다. 건륭황제는 차를 마실 때, 승로포(承露泡)를 썼다. 그는 40명의 궁녀들에게 매일 금속소반을 이용하여 야밤삼경에 달 아래에서 이슬을 받게 했다. 가을밤은 춥다. 바람도 세게 분다. 궁녀들은 입술이 보라색이 될 정도로 추위에 떨면서 건륭제의 "옥액경장(玉液瓊漿)"을 모았다. 건륭제는 역시 '오행이론'의 대가라 아니할 수 없다.

소반 속의 물은 공기중의 수분이 금속을 만나 응결된 후, 모인 것이다. 그건 '금생수'가 아니다. 금성수(金盛水, 금에 물이 모이다)이다. 이슬은 들풀에도 있다. 그렇다고 초생수(草生水)라고 말하는가? 돌맹이도 젖어 있고, 산위에는 항상 만년설이 있다. 그럼 토생수인가? 만일 금생수가 성립한다면, 초생수, 토생수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를 보면 오행설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셋째, 화(火)는 다른 4행과 같은 유형이 아니다.

금목수토(金木水土)는 일종의 물질형태이다. 그러나 화(火)는 아니다. 화는 하나의 과정이다. 여하한 가연물질도 태워서 불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수목, 풀, 심지어 금속까지도. 이렇게 따지면 옛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같다. 옛사람들이 어찌 현대인같은 지식수준을 가지고 있었겠는가?

이는 전통을 어떻게 대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도대체 고대인의 시각으로 봐야할 것인가, 아니면 현대인의 시각으로 봐야할 것인가. 고대인의 방법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현대인의 방법으로 볼 것인가. 고대인의 기준으로 볼 것인가, 현대인의 기준으로 볼 것인가. 고대인의 방법을 따라야 할 것같지만, 그렇게 하면 크게 잘못된다. 왜냐하면 고대인은 이미 그들의 시각, 방법, 기준으로 평가했고, 그런 평가를 거친 후에 비로소 오행같은 이론과 모형이 탄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오늘날의 "자(尺子)"를 가지고 현재의 기준으로 평가하여, 적합한 것은 계속 쓴다. 부적합한 것은 박물관에 보존한다. 반대로 당신이 고대인의 "자"를 가지고 고대인의 업무를 반복한다면 도대체 무슨 의의가 있을 것인가? 당신이 평가결과를 고대인들에게 얘기해줄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고대인들에게 너무 가혹하게 대하지 말라는 것은 순수한 헛소리이다. 왜냐하면 고대인들은 근본적으로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고대인들을 가혹하게 대한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오늘날의 자로 고대인을 평가해야 한다. 그래야 감왕지래(鑒往知來)할 수 있고, 지우후용(知愚後勇)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말하겠다. 필자가 부정하는 것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오행으로 사고하는 것이지, 고대인들이 오행으로 사고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고대인들에게 오행을 쓰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고대인들은 다른 게 없었고, 더 좋은 것이 없었다. 지금은 음양을 쓸 수도 있고, 서방과학을 쓸 수도 있다. 그러나 오행설은 절대로 써서는 안된다.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하자면, 오행설을 버리게 되면, 오행이론에 기초한 중의도 최소 절반의 가치는 상실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