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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태평천국)

태평천국은 왜 2,700여명이나 왕으로 봉했을까?

by 중은우시 2024. 12. 4.

글: 갈하저구역사적계탕(喝下這口歷史的鷄湯)

태평천국은 모두 2,800여명의 왕이 봉해진다.

그렇게 많은 왕을 봉하다니, 홍수전은 정말 할 일이 따로 없었던 것일까?

그건 아니다.

홍수전이 그렇게 많은 왕을 봉한 것은 그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수의오왕(首義五王): 특수배경하의 산물

태평천국에서 제1차로 왕을 봉한 것은 영안(永安)에서 건립했을 때이다.

당시, 홍수전(洪秀全)은 스스로 천왕(天王)이라 칭하고, 양수청(楊秀淸)을 동왕(東王)에, 소조귀(蕭朝貴)를 서왕(西王)에, 풍운산(馮雲山)을 남왕(南王)에, 위창휘(韋昌輝)를 북왕(北王)에, 석달개(石達開)를 익왕(翼王)에 봉한다.

모두 6명의 왕이지만, 홍수전의 천왕은 '군(君)'이므로 같은 반열에서 논할 수 없다. 그래서 나머지 5명의 왕을 '수의오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들 몇명이 '시니어파트너'가 된 것은 정상적이다. 반란을 함께 일으켰고, 이들이 핵심구성원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왕으로 봉하는 것은 실로 역사에서 유래가 없었다.

유방이 반란을 일으킬 때, 곁에는 소하, 조참, 번쾌, 하후영이 있었다. 그러나 유방이 나중에 황제에 올랐지만, 이들을 왕에 봉해주지는 않았다.

태평천국의 발전역정은 실로 너무나 독특했기 때문이다.

유방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비록 모두 평민출신이지만, 유방은 유일한 신이다. 백사를 참살한 '적제의 아들(赤帝子)"이다. 나머지 소하, 번쾌등은 그저 직원이다. 유방이 누구를 기용하고 싶으면 기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한신이 낙하산으로 내려와 번쾌, 하후영의 위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홍수전은 유방이 아니다.

비록 그는 배상제교의 창시자이다. 다만, 조직능력과 영도능력은 부족했기 때문에, 배상제회의 복잡하고 기나긴 발전과정에서, 양수청, 소조귀, 풍운산, 위창휘, 석달개는 모두 종교적 신분을 가지게 되어, 홍수전이 유일한 '신'은 아니었다.

홍수전은 천부(天父)의 둘째아들이고, 양수청, 소조귀, 풍운산, 위창휘, 석달개는 각각 셋째아들, 넷째아들, 다섯째아들, 여섯째아들, 일곱째아들이다. 그리고 양수청, 소조귀는 '천부하범', '천형하범'의 신분으로 홍수전보다 위에 위치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때 태평천국의 영도권은 혼란스러웠다. '천부하범', '천형하범'때 누가 군이고 누가 신인지 이런 기본적인 문제조차 모호해진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다른 정치체제에서는 오직 군왕 한 사람만이 천자이고, 지위는 흔들리지 않는 것이며, 나머지 사람은 신하로서 지위는 천자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태평천국에서는, '천부'가 이렇게 많은 아들을 두었고, '신격화'된 신분이 홍수전 한 사람만이 아니다. 오히려 천부의 여러 아들로 '대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홍수전의 지위를 흔들 수 없는 것처럼, 양수청, 소조귀, 풍운산, 위창휘, 석달개의 지위도 마찬가지로 흔들 수 없게 된 것이다.

왕으로 봉하는 것은 실제로 이런 고착된 종교신분에 대한 세속신분을 부여한 것일 뿐이다.

천부의 차남이 천왕이고, 천부의 삼난, 사남등 몇몇 아들은 천왕의 형제들이다. 그러니, 그들도 당연히 왕에 봉해져야 한다.

장래 한신같은 인물이 나타나더라도, 양수청, 석달개보다 위에 설 수는 없다....

신분의 집단적이 '고착화'를 통해, 홍수전, 양수청등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이익공동체를 결성하여, 원래 미묘하고 파탄에 직면했던 영도집단은 잠시 힘을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수의오왕: 적극적인 의미가 아주 크다.

최초로 수의오왕을 봉한 것은 긍정적인 의미가 아주 컸다.

첫째, 집중영도. 양수청의 영도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다.

반란을 일으켰으면, 지휘와 영도를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홍수전이 비록 '군'이지만, 그는 군사재능과 조직재능이 부족했다.

수의오왕체계중에서, 양수청의 다른 왕들을 지휘하며 홍수전의 능력상의 부족한 부분을 메웠고, 지휘효율을 확보했다.

둘째, 상하 견제와 균형.

그러나, 양수청이 대권을 장악했지만, 소조귀, 위창휘, 풍운산, 석달개도 모두 왕의 신분이다.

즉, 양수청이 소조귀, 위창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더라도 절대 바꿀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왕위는 고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양수청이 여러 왕을 지휘할 수 있고, 대권을 장악했지만, 흔들 수 없는 여러 왕들에게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여, 태평천국초기, 양수청의 통일영도하에 효율을 유지하면서, 양수청이 홍수전의 지위를 위협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통일적이고 효율적이면서 상호 견제균형을 이루는데, 초기의 '수의오왕'은 크게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만일 당시에 '영안봉왕(永安封王)'으로 위창휘, 석달개등의 '세속신분(즉 왕)'을 고착화시키지 않았더라면, 양수청은 아마도 전쟁중 아래 사람을 모조리 자기 사람으로 교체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태평군은 일찌감치 내란으로 실패했을 것이다.

당연히, 삼인자 소조귀, 사인자 풍운산이 전사하면서 권력을 양수청으로 더욱 집중된다. 그리하여 나중에 천경사변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2. 가봉이왕(加封二王): 동왕견제

태평천국이 천경에 도읍을 정한 후, 홍수전은 두 사람의 왕을 추가로 봉한다: 연왕(燕王) 진일강(秦日綱), 예왕(豫王) 호이황(胡以晃).

이번 봉왕은 홍수전이 양수청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금전기의때 양수청, 소조귀에게 배제당한 홍수전, 풍운산은 호이황의 집에 머문 바 있다.

그리고 나중에 양수청이 진일강을 탄압하고 진일강이 천경사변때 한 행위를 보면, 진일강도 역시 천왕 홍수전의 사람이다.

확실히 홍수전이 이때 두 사람을 추가로 왕에 봉한 목적은 새로운 왕을 키움으로써, 소조귀, 풍운산의 사망으로 인한 빈틈을 메우고, 이를 통해 양수청과의 사이에 견제균형을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양수청은 가볍게 홍수전의 그런 기도를 무력화시킨다.

수의오왕과는 달리, 진일강, 호이황은 비록 왕에 봉해졌지만, 그들은 종교적 신분이 없다. 그래서 그들의 지위는 흔들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양수청은 단양전투에서의 패배를 기화로 진일강의 왕위를 박탈하고, 다시 환북전투에서의 패배를 기화로 호이황의 왕위를 박탈한다.

비록 홍수전의 이번 기도는 실패로 끝났지만, 이것이 보여주는 것은 홍수전의 봉왕은 권력투쟁의 중요수단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이왕을 봉한다: 익왕을 견제한다.

홍수전이 다음에 두 명의 왕을 추가로 봉하는데, 역시 권력투쟁을 위해서이다.

이번에는 석달개를 견제하는 것이다.

천경사변후 수의오왕중 석달개 한 명만 남는다.

홍수전은 당연히 석달개가 제2의 양수청이 되는 걸 원치 않았고, 석달개의 권한을 나누기로 한다.

홍수전은 자신의 두 형인 홍인달(洪仁達), 홍인발(洪仁發)을 안왕(安王), 복왕(福王)으로 봉하여, 석달개를 견제한다.

나중에 석달개가 분노하여 천경을 떠나고, 많은 사람이 석달개를 따라 떠난다. 그리고 남은 이수성(李秀成)은 여러번 상소를 올려 안왕과 복왕을 파면하여, 석달개를 다시 모셔오자고 주장한다.

어쩔 수 없이, 홍수전은 두 형의 왕작위를 박탈한다.

이번 봉왕은 홍수전이 스스로 시정하면서 끝났다. 그러나 이것이 보여주는 것은, 홍수전이 왕위를 권력투쟁용도로 쓰는 습관외에 이미 홍씨성의 본가사람으로 다른 성씨의 사람들을 견제하려는 생각을 품었다는 것이다.

약속을 어기고 간왕(干王)을 봉하다.

석달개가 떠난 후 홍수전은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는 더 이상 왕을 봉하지 않겠다.

그후 한동안 태평천국의 영도체계는 잠시 "무왕(無王)"시대로 접어든다.

당시 진옥성(陳玉成), 이수성(李秀成)이 대외적으로 여러 장수들과 연락하여 작전방안을 정한 후 천왕부에 보고하고, 천왕의 동의를 얻어 실시했다.

이런 방식하에서, 태평군은 지휘의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양수청같은 인물이 나타나지 않도록 했다. 한동안은 상황이 괜찮았고, 일부 전투에서 승리도 거둔다. 그렇게 국면을 약간 호전시킨다.

그러나, 홍수전은 여전히 불만이었다.

왜냐하면, 이 방식하에서 지방장수의 권력이 지나치게 커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앙은 그저 비준프로세스나 진행했고, 권위가 없어졌다.

홍수전은 몽득은(蒙得恩)등 자신의 심복을 통해 중앙의 권위를 강화하고자 생각한다. 그러나, 몽득은 등은 재능이 부족해서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바로 이때 홍인간(洪仁玕)이 돌아온다.

홍인간은 배상제회의 창시원로이고, 당시 풍운산과 함께 홍수전의 오른팔 왼팔격이었다. 능력은 몽득은이나 천왕의 몇몇 형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리고, 그는 홍콩등지를 둘러보고, 안목을 넓혔으며, 여러가지 '선진'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홍인간이 홍씨집안사람이고 절대적으로 신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홍수전은 홍인간을 새로운 의지처로 삼는다.

이를 위해, 홍수전은 더 이상 봉왕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깨고, 그를 간왕으로 봉한다. 그리고 홍인간으로 하여금 국정을 총괄하도록 한다.

칠왕체계(七王體係)

홍수전은 홍인간을 왕으로 봉하면서, 그의 지위를 높여주었고, 그의 권위를 강화시켜주었다.

그러나, 홍인간은 군대내에서의 명망이 부족했다.

그러므로, 그가 내린 명령에 대하여 각지방의 장수들은 반응이 덤덤했다.

오직 진옥성만이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진옥성은 더더욱 법과 기율을 세우고, 상벌제도를 강화할 것을 건의한다.

확실히 진옥성은 인식하고 있었다: 비록 군사적으로 약간의 승리를 거두고 있지만, 양수청이후, 중앙의 권위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지금 홍인간이 돌아왔으므로, 법과 기율, 상벌로 중앙을 재건해야한다고 여긴 것이다.

진옥성의 태도는 확실히 중앙의 권위를 강화하는 것을 지지하는 것이고, 홍인간의 업무를 지지하는 것이다.

홍인간도 진옥성으로 자신의 명망이 부족한 약점을 보완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진옥성을 왕으로 봉하자고 건의한다.

이렇게 하여 진옥성이 영왕(英王)에 봉해진다.

진옥성이 왕에 봉해지자, 연쇄반응이 일어난다.

<이수성자술>에 따르면, 당시 천경내외에 소문이 돌았다. 이수성과 이미 배반한 이소수(李昭壽)는 관계가 밀접했다: "왕에 봉해지지 않는다면 반드시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홍수전은 처음에 강을 봉쇄하고 이수성을 감시했다. 나중에 이수성에게는 반란을 일으킬 뜻이 없음을 발견하고 그를 충왕(忠王)에 봉한다. 이를 통해 이수성의 '만고충의(萬古忠義)'를 표창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홍인간을 중심으로, 진옥성이 병력을 이끌고, 이수성이 기획을 하여, 태평군은 강남대영을 두번 격파하는 승리를 거둔다.

두차례 강남대영을 격파한 후, 홍수전은 양보청(楊輔淸), 이세현(李世賢)을 왕으로 봉한다.

그후, 중앙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몽득은과 임소장(林紹璋)을 왕으로 봉한다.

이렇게 하여 태평천국은 "칠왕체계"를 갖추게 된다.

바깥에서 군대를 이끄는 네 명의 왕은 진옥성, 이수성, 양보청, 이세현이고, 조정내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세 명의 왕은 홍인간, 몽득은, 임소장이다.

이때까지는 태평천국의 봉왕이 그래도 정상적이었다.

봉왕되는 자는 조정에서 정무를 담당하거나, 혹은 '오군주장'같은 총사령관급의 고위장수였다.

남봉(濫封)의 시작

남봉은 안경(安慶)전투이후에 시작된다.

안경전투이후, 홍수전은 한편으로 진옥성의 패전책임을 질책하면서, 진옥성의 왕작위를 박탈하고, 다른 한편으로 진옥성의 수하 몇명의 장수를 왕으로 봉한다.

그 몇명의 왕은 부왕(扶王) 진득재(陳得才), 계왕(啓王) 양성부(梁成富), 준왕(遵王) 뇌문광(賴文光), 호왕(祜王) 남성춘(藍成春)이다.

홍수전은 왜 진옥성의 부하장수들을 왕으로 봉했을까?

후세의 해석은 홍수전이 진옥성의 권한을 나누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기실 이 주장은 근거가 없다.

안경전투에서 진옥성의 정예부대는 소멸했고,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이때의 진옥성은 실력이 하락하여, 그의 권력을 나눌 필요가 전혀 없었다.

실제로, 홍수전이 이들 부하장수들을 왕으로 봉하려고 생각한 것은 아주 간단하다: 병력모집

이들 몇명을 왕으로 봉한 후, 홍수전은 즉시 이들 몇 왕으로 하여금 하남(河南), 섬서(陝西)를 원정하며 병력을 모집하도록 명한다.

당시 병력을 모집하는 것은 주로 각지방의 반청무장세력을 흡수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가서 병력을 흡수하려면, 당연히 지위가 높아야 한다. 영관급 장교가 가서는 장군급의 부대를 흡수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흡수하러 간 사람이 총사령관이면, 상대방은 자신이 흡수되면 적어도 군단장, 사단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래서 흡수되기를 원할 것이다.

그래서 홍수전이 이들 몇몇을 최고직위인 왕에 봉한 것은 그들을 통해 군대를 확충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태평천국의 내부를 말하자면, 이로 인하여 완전히 체계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

안경에서의 패배에 진옥성이 책임을 져야 하지만, 이들 장수들도 그다지 뛰어난 활약은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옥성의 왕의 작위는 박탈하면서, 이들 몇몇 부하장수들은 왕으로 봉한다고.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

그리고, 이 몇몇은 왕으로 봉해진 후로도 실권이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4

이렇게 하여, 이때부터, 태평천국의 봉왕은 무슨 전투의 공로도 필요없고, 무슨 특별히 중요한 직무을 맡을 필요도 없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남봉이고, 혼란의 시작이다.

남봉확대화, 제후들이 힘을 나누어 가지다.

남봉의 선례가 생기자, 이후로는 멈출 수 없게 된다.

원래, 태평천국후기의 양대지주격인 장수는 진옥성, 이수성이다.

진옥성이 복멸된 후에 지주는 오직 이수성 한 사람뿐이었다.

그리고, 안경등 상류지역에서 연이어 패배를 하는 동시에, 이수성은 강소, 절강에서 큰 지역을 장악했고, 병력도 강하고 실력이 두터웠다.

이렇게 하여 홍수전은 이수성의 권한을 깎기로 결정한다.

그는 이수성 수하의 장수들을 하나하나 왕으로 봉한다.

이렇게 되니, 이수성의 부하는 하나하나 왕이 된다. 비록 명목상으로는 이수성의 지휘를 받고 있지만, 실제로 상벌은 충왕이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이들은 실제로 '제후'가 되어버린다.

이수성이 천경을 구하려고 할 때, 그는 사람들과 맹세한다: "만심(萬心)을 묶어 일심(一心)으로 만들자."

원래 뭐든지 부족한 부분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보여주는 것은 이수성의 부하들이 이미 이수성과 한 마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이수성의 권위도 많이 약화된다.

그리고, 그 댓가는 이수성의 대군이 모래알처럼 마음이 흩어지게 되는 것이다.

철저히 혼란에 빠지다: 무더기로 왕을 봉하다.

더욱 심각한 일은 왕이 이렇게 많다보니, 다른 사람에게도 왕을 봉해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석달개측에서 천경으로 돌아온 장수들을 왕으로 봉하지 않으면 그건 적절하지 않은 일일 것이다.

외부의 자그마한 부대를 이끄는 장군도 왕에 봉해지다보니, 조정의 관리들중에서도 왕의 작위가 없으면, 지방과 군대에 호령할 수 없게 되지 않는가.

그리고 홍씨집안의 천척, 고향사람도 왕에 봉해지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다.

아무런 공로도 없는 사람이라도 돈을 내면, 왕의 작위를 주었다.

이렇게 하여 봉왕은 사람들 끌어들이는 '견면례'가 되었고,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보너스가 된다.

그렇게 하여 한번 시작하자 멈출 수가 없게 되어 결국 2,700여명의 왕을 봉하게 된 것이다.

태평천국의 봉왕은 확실히 실패의 중요원인이다.

초기의 봉왕은 비록 적극적인 의미가 많았지만, 실제로 일찌감치 태평천국의 상한을 정해놓은 것이다. 일찌감치 지도자층을 고정시켜버렸다. 비록 일시적으로 응집력을 갖게 하는데는 유리했지만, 능력있는 사람들을 끓어들이는데는 불리했다. 그렇게 하여 더 이상 한신, 이정(李靖)같은 인물이 나타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야 어떻게 천하를 쟁패할 수 있겠는가?

중기의 봉왕은 비록 '남발'이라고 할 수는 없고, 어느 정도 이치에 맞지만, 그래도 실제로 고위장수들을 회유하여 단결을 유지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를 통해 여러 왕들의 권한은 확대되고, 꼬리가 길어져서 잘라버리기 힘든 국면이 가속화된다.

후기의 봉왕은 비록 이수성같은 인물의 권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 댓가는 태평군을 모래알로 만들었고,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그들의 멸망을 가속화시켰을 뿐이다.

태평천국에 이렇게 많은 왕이 봉해진 것은, 핵심원인이 홍수전의 선천적으로 부족하고 결점이 많은 균형술에 있었다.

홍수전은 실질적인 군사, 정치적 재능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는 보좌하는 사람들에게 크게 의존했다.

보좌하는 사람이 충분한 권위를 갖게 하려면 그를 왕에 봉해야 한다.

다만, 홍수전은 보좌하는 자가 자신의 지위를 위협할 것을 우려하여, 항상 각종 균형술을 생각해낸다. 그래서 왕왕 왕을 추가로 봉함으로써 보조자를 견제하기도 했다.

여러번 반복된 후에는 이쪽을 왕에 봉해주다보니 저쪽도 안해줄 수가 없게 된다. 인심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시 왕에 봉해주어야 했던 것이다.

마지막에는 원래 숭고해야할 왕의 지위가 모든 사람에게 나눠주는 보너스같이 되어버린다. 한번 시작하자 멍추질 못하고, 철저히 통제불능에 빠져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