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역사감상자(歷史鑒賞者)
소련은 세계에서 유이(唯二)의 초강대국으로 전성기에는 실력이 심지어 미국을 추월하기까지 했었다. 이는 러시아역사상 가장 강성했던 시기이며, 중국의 한,당시대와 비견할 만하다.
1960년대부터, 중소관계는 악화되고, 11년의 밀월기는 이렇게 끝난다. 그후 소련은 국제적으로 중국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폄훼하고, 인도, 베트남을 지지하여 중국을 견제했다. 심지어 백만의 병력을 배치하여 중국을 위협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의 문제로 결국 1991년 소련이 해체된다. 이 거대했던 국가는 15조각으로 나뉘게 된다. 이 일은 세계에 큰 놀라움을 가져다 주었다. 그렇다면 중국에는 어떤 영향이 있었을까? 기실 솔직히 말하면, 이익만 있었고, 손해는 없었다.
북방의 군사압력이 크게 감소하여, 경제문제에 정력을 집중할 수 있었다.
소련은 초강대국으로 군사력이 상당했다. 비록 그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10년간 고생하면서도 아무런 성과를 얻어내지 못했찌만, 종합국력은 분명했고, 첨단무기도 연이어 제조했으며, 기초가 튼튼하고, 연구개발능력도 강력했다. 또한 자원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소련의 군사력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였다.
주변에 이런 큰형님급의 인물을 두고 있으면 밤에 잠을 편히 잘 수가 없다. 조금만 잘못하면 큰형님이 너의 집문을 박차고 들어와 주먹질 멏번을 할 지도 모르고, 너를 바닥에 쓰러뜨릴 수도 있다.
1969년 중소분쟁이 가장 심각했을 때, 이미 한번 싸워본 바 있다. 진보도(珍寶島)와 테레크티(Terekty)의 마찰은 하마터면 나라를 멸망시킬 전쟁에 휘말릴 뻔했다.
소련은 백만병력을 중소국경, 중몽국경에 집중시켰을 뿐아니라, 수천대의 탱크가 대기하고 있었다. 브레즈네프가 명령만 내리면 백만소련군과 수천탱크는 남하하게 될 것이다. 소련은 심지어 핵폭탄의 사용까지 고려했다. 이를 통해 중국에 대한 전방위적인 외과수술을 진행하고자 했다.
그 당시 심지어 집을 바꿀 생각까지 했었다. 즉 소련이 중국의 토지에 핵폭탄을 사용하면, 6억여 중국인을 모조리 소련으로 이주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너희 소련이 어떻게 할 것이냐?
그래서 북방의 군사위협은 실제로 아주 심했다. 특히 외몽골변경은 중국의 핵심지구에서 거리가 멀지 않다. 소련군이 중국의 북경으로 쳐들어오기 아주 편리하다. 방법이 없었다. 당시 소련은 외몽골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었다.
1991년 소련해체이후, 러시아연방은 비록 소련의 대부분 군사유산을 물려받았지만, 군사력이 크게 약화된다. 이렇게 되니 무형중에 북방의 군사압력이 경감된 것이다.
그리고, 소련해체이후, 러시아연방의 군대는 모두 외몽골에서 철수한다. 10만 러시아군이 철수하자, 중국-몽골국경의 군사압력도 자연히 크게 감경된다. 이는 중국에 있어서 엄청난 이익이다.
선진적인 군사기술을 돈만 주면 살 수 있게 된다.
소련은 중국건국초기, 중국에 원조를 해주었고, 이는 역사에서 말살될 수 없는 일이다. 그 11년간의 원조는 확실히 중국의 공업화발전에 핵심역할을 했다.
그러나 11년이 지난 후, 중소분쟁이 발생하면서, 소련은 모든 원조전문가를 중도에 철수시킨다. 그리하여 중국의 많은 공업화프로젝트는 중도에 중단되어 손실이 매우 컸다.
이것이 가장 심한 것은 아니다. 중국은 처음에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소련을 선택했다. 그리하여 미국과는 일도양단했었다. 그 결과 1960년에 이르러 소련의 압박으로 소련과도 일도양단하게 된다.
동시에 두 개의 세계초강대국과 모든 연결이 끊겨버린다. 이는 중국의 각 방면에서 봉쇄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과학기술, 군사등 분야에서.
국가안전의 각도에서 보자면, 군사기술의 봉쇄는 극히 치명적이다. 조선은 왜 배를 주리면서 원자탄을 만들려고 할까? 바로 이런 이치이다. 현재 누가 감히 김정은 서기의 체면을 봐주지 않겠는가?
원래 소련은 여하한 군사기술도 중국에 팔지 않았다. 다만 소련해체이후, 중국은 소련의 각 연맹국에서 각각 일부 군사물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자신의 군사력을 강화시킬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1990년대 빈번하게 Su-27전투기를 구매한다. 비록 문제가 아주 많았찌만, 당시에 있어서는 이미 매우 선진적이었다. 중국전투기의 발전에 관건적인 역할을 한다. 밀레니멍이후에 다시 Su-30전투기를 구매한다. 종합전투력이 다시 한 단계 오르게 된다.
당시 중국은 항공모함도 구매하고 싶었다. 그러나 과정이 너무 복잡했다. 그래서 먼저 러시아연방에서 2척의 965형 현대급 미사일구축함 및 잠수함을 구매한다.
나중에 군대에서 발견하게 된다. 러시아는 우리를 속여서 돈을 받아갔다. 이들 무기장비는 비록 비교적 선진적이었지만, 문제가 아주 많았다. 아마도 그들은 빨리 돈을 받고 싶었던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당시 러시아는 가난했고, 급히 주문을 완성해서 현금을 받아야 했다. 그렇기는 해도, 일부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중국의 군사공업발전에 크게 보탬이 되었다.
우크라이나에서 구매한 장비는 오리지날이었다. 기본적으로 소련의 유산을 거기에 얼마간 나눠주었고, 우크라이나는 다시 중국에 팔았다. 이렇게 한 것은 주로 우크라이나가 당시 군사방면을 계속 발전시킬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경제발전을 갈망했다 이는 스스로 핵무기를 포기한데서도 알 수 있다.
1990년대부터 우크라이나는 중국에 군사공업기술을 이전하는데 1,500개항목에 이른다. 특히 조선기술이 있었다. 어쨌든 소련시기,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주요 항공모함생산기지였고, 항공모함을 제조하는 인재를 대거 갖추고 있었다.
소련해체이우, 이들은 실업자가 된다. 마침 중국이 이 분야에 필요했다. 마침 잠이 오는데 배게를 만난 셈이 아닌가. 그래서 중국은 항공모함을 얻을 수 있었는데 기실 우크라이나와의 협력때문이다. 이건 소련시기라면 돈을 아무리 많이 주더라도 불가능한 일이었고, 미국은 더더구나 너에게 항공모함을 팔지 않았을 것이다.
국제지위가 직선으로 상승하다.
소련이 있을 때는 미소가 양대패권국으로 거의 절대다수의 세계를 나눠가지고 있었다. 도처가 그들의 세력범위였따. 미국의 영향력은 미주, 서구, 중구, 일부 동아시아지구 및 일부 중동지구에 미쳤따. 소련의 세력범위는 동구, 일부 아프리카지구, 일부 중동지구와 일부 동아시아국가에 미쳤다.
어쨌든 양대 패권국이 있으므로 제3국가가 다시 파이를 나눠먹는 것이 불가능했다. 국제적인 지위에서 자연스럽게 미소가 독보적이고 제3국은 거기에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러나 1991년 소련해체이후, 상황은 크게 바뀐다.
먼저, 모두 목격한 것은 중국이 중앙아시아지역에서의 영향력을 날로 키워갔다는 것이다. 특히 유라시아횡단열차를 개통한 후, 중앙아시아지역과 중국의 합작은 날로 빈번해진다.
다음으로,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많은 친구를 사귄다. 비록 적지 않은 돈을 들였지만, 중국의 아프리카에서의 영향력은 확실히 적잖이 올라갔다. 그리고 돈을 쓰기는 했지만, 경제적인 댓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광산자원이 바로 댓가중 하나이다.
그외에, 중국은 중동지역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지녔다. 이란, 시리아등의 국가는 모두 중국과 관계가 좋다. 최소한 중동에서 한 나라가 독보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소련해체와 더불어, 중국의 국제적인 지위는 직선으로 상승한다. 점점 미국을 제외한 또 다른 초강대국으로 성장했다. 비록 옛날 소련의 지위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몇단계 올라선 것은 분명하다.
당연히 미국의 이점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과거 소련과 놀던 동구각국이 속속 NATO와 EU에 가입하여, 미국의 세력범위에 들어다.
일부영토수복
제정러시아, 소련은 중국에서 누적적으로 수백만평방킬로미터의 토지를 빼앗아갔다. 그중에는 제정러시아가 직접 항량해간 151평방킬로미터의 외동북, 외서북이 있고, 소련이 가져간 17만평방킬로미터의 탕누우량하이(唐努烏梁海)가 있고, 또한 소련이 분리시켜 가져간 156평방킬로미터의 몽골국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수치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지만, 이들 영토를 모두 합치면 강소성 30개정도되는 크기가 된다. 그래서 역사상 러시아가 중국에 끼친 피해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이다.
소련해체이후,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타지크스탄등 국가에게서 누적적으로 4,000평방킬로미터의 토지를 회수했다. 비록 300여만평방킬로미터와 비교하면 참깨 한 알 수준이지만, 회수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이에 중국은 러시아연방의 수중에서도 200평방킬로미터의 토지를 회수한다. 이 토지는 300만 킬로미터와 비교하면 더더구나 보잘 것이 없다. 다만 러시아의 손에서 영토를 회수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고 명확히 기록할 만하다. 만일 소련해체가 없었더라면 이런 일은 아예 발생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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