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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사회

중국인은 왜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가?

by 중은우시 2024. 10. 16.

글: 궁장패점랑(弓長貝占郞)

많은 사람들은 느낄 것이다. 90년대이전에는 국내의 경제수준이 비교적 낮았지만, 그때 사람들은 비교적 편안하게 살았다. 그러나 90년대이후, 중국의 경제는 발전하였으나, 보통민중의 생활은 점차 힘들어지고, 압력은 갈수록 커진다고 느끼게 되었다. 마치 이전에 가졌던 행복감을 서서히 모두 소진해버린 것같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이치대로라면 경제가 발전하면 할수록 사람의 행복지수도 원래 높아져야 맞지 않는가? 백성들의 생활은 왜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일까?

기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생각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 원인은 한 가지이다: "권(卷, 원래의 의미는 '말다'라는 것인데, 현재 중국에서는 '무의미하며 해롭고 치열한 내부의 소모적인 경쟁'을 가리키는 말로 쓰임)" 세심한 사람이라면 발견했을 것이다. 현재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은 "권"이다. 그리고 바로 이 "권"자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행복마저 말아버렸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현재 사람들이 겪는 모든 것은 스스로 만든 것이고,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이전에, 그다지 오래도 아니다. 200년경을 예로 들어보더라도, 그때 사람들의 경제여건은 비교적 낮았지만, 신부를 맞이하면서 결혼식을 하더라도 비용이 1만위안을 넘지 않았다. 조금 호화롭게 하더라도 1만5천위안을 넘지 않았다. 그때 사람들은 출근하여 일하면서 받은 급여가 겨우 1,800위안가량이었다. 다만 만일 집안에 결혼이라는 경사가 있다면, 이 정도 비용은 일반가정에서 부담할 만했다. 설사 조금 돈을 빌리더라도 1,2년 일을 하면 다 갚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현재, 만일 어떤 집에서 결혼식을 한다면, 아주 사치스럽다. 자가용, 아파트는 말할 것도 없고, 채례(彩禮, 신부값), 삼금(三金, 반지, 목걸이, 귀걸이 혹은 팔찌등 3가지 신부에게 주는 악세사리를 가리킴), 주연(酒宴)에만 3,40만위안이 없이는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왜 현대인들이 결혼 한번 하는데 대가가 이렇게 높아진 것일까? 어떤 사람은 남자가 많고 여자가 적어서라고 한다. 기실 그건 부수적인 요인이고, 전국각지에서 독신가정비율이 그렇게 높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진정한 원인은 사람들이 서로 "권"하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그것은 바로 현재의 어떤 가정에서 스스로 조건이 좋다고 여기면 체면치레를 위해서, 혹은 자신의 아들이 결혼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신부를 빼앗길까봐 걱정하여, 잔꾀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목적달성을 위하여 모든 돈을 쓴다. 쓰는 돈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여성이 돈때문에 마음이 동하게 되고, 그들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다.

다만 이런 좋지 않은 방식은 일단 누군가 시작하고 나면 되돌릴 수가 없게 된다. 사람들이 속속 따라하게 되고, 돈은 갈수록 많이 들게 된다. 여자측에서도 당연하게 받아야한다고 여기게 되고, 결혼비용은 계속 올라가고 모든 사람이 힘들어진다. 그리하여 현재의 국면이 조성된 것이다. 신부를 데려올 수 없고, 자가용과 아파트를 살 수가 없으면, 모든 것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들이 바로 화근이고, 문제를 일으킨 자들이며 규칙의 파괴자이다. 그래서 책임은 여자측에 있지 않다. 당신에 먼저 시작하지 않았다면 상대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이들은 근본적으로 조화의 마음은 없고, 공동의 마음도 없고, 대국을 생각하는 마음도 없다. 그저 이기적으로 자신만 알 뿐이다.

다시 현재의 백사회(白事會, 紅事는 경사, 백사는 상사를 가리킴)를 보자. 계속 서로를 비교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역시 "권"이다. 오늘 조씨집안에서 장례를 하는데 4만위안을 썼으면, 내일 이씨집안의 장례에는 6만위안을 쓴다. 어쨌든 네가 하는 건 내가 모두 하고, 네가 하지 않은 것도 나는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갈수록 일을 크게 하다보니, 돈은 더욱 많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홍백사(경조사)에는 축의금,부의금을 낸다. 그것도 갈수록 커진다. 이전의 홍백사에는 사람들이 5위안, 10위안을 내면 그만이었고, 뜻만 표시하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걸핏하면 100, 200위안이다. 당사자와 관계가 좀 좋으면 천,팔백위안이다. 심지어 수천위안까지 낸다. 이런 상황은 사람의 마음이 불러온 화이다. 체면을 위해, 비교를 위해그렇게 한 것이다. 누가 모르겠는가. 이렇게 하게 되면 소비금액은 수입금액을 훨씬 넘어서게 된다는 것을.

홍백사의 연회도 갈수록 호화스럽게 된다. 이전에는 테이블당 수십위안이었는데, 지금은 1,2천위안, 만위안으로 올라버렸다. 여기에서 한번 묻고 싶다. 이렇게 크게 소비하는 것이 당신의 수입과 정비례하는가? 아마도 차이가 아주 클 것이다. 경사에서라면 개인조건에 따라 연회를 베푸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상사라면 크게 연회를 여는 것이 체통을 잃는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엄숙하고 비통한 상황에 크게 연회를 열어 술과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 않은가. 이들은 장례를 마치 경축하는 것처럼 그리고 자신의 가족이 죽기를 원했던 것처럼, 비통은 모르고 즐기는 것만 있는 것이다.

의료를 보면 병이 나면 병원에 가야 한다. 역시 적지 않은 돈이 든다. 그렇다라도 특히 환자가 수술을 해야할 때면 환자의 가족은 잔머리를 굴리게 된다. 먼저 나서서 몰래 주치의사의 주머니에 봉투를 넣어준다. 그리고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했다고 여긴다. 봉투를 한번 주어서 가족의 목숨을 구할 수 있으면 총명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모르는 것이 있다. 이건 그저 스스로 총명하다고 여기는 것일 뿐, 실제로는 우둔하기 그지없는 짓이라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렇게 한 결과는 다른 사람도 해치고 자신도 해친다는 것을. 이런 행위를 다른 사람이 알게 되면 다른 사람도 걱정할 것이다. 만일 의사에게 뇌물을 주지 않으면 그의 가족인 환자가 상응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리하여 오늘 네가 500을 주었으면, 내일 나는 1천을 주겠다. 다음 날 네가 5천을 주었으면, 그 다음날 나는 1만을 주겠다. 이렇게 하여 악순환이 형성된다. 그리고 결국 병원이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어버린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상처입은 사람을 고쳐준다는 정신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준 봉투에 든 돈이 너보다 많으면, 네가 의사에게 돈을 주었더라도, 다른 사람의 가족이 너의 가족보다 더욱 좋은 대우를 받게 될 것이다.

병원에서 부정부패의 기풍이 일어난 것은 여러 매체에서 보도한 바 있다. 보도에 따르면, 어떤 환자는 주치의사에게 봉투를 주지 않아서 수술을 할 때, 효과없는 마취약을 주사했거나, 효과가 제대로 나지 않는 마취약을 주사한다. 목적은 수술을 할 때 환자가 격렬한 고통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이다. 환자가 고통을 느끼는 것이 그가 마땅히 받아야하는 징벌인 것이다.

병원은 원래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병든 사람을 고쳐주는 정신으로 환자를 대해야 한다. 이건 그들의 책임이자 의무이다. 하물며 그들은 급여를 받고 있다. 너도 진료를 받을 때 비용을 낸다. 그런데 왜 하필 이렇게 악착같은 일을 벌이는가. 뇌물까지 주는가. 이건 정말 남을 해치고 스스로도 해치는 짓이다.

당연히, 현재 병원도 많이 조치를 취하여 의사가 환자로부터 사적으로 뇌물을 받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민중들은 다른 방법으로 의사에게 뇌물을 준다. 예를 들어, 의사에게 상품권을 준다든지, 쇼핑카드를 준다든지등등.

일본의 가정에서 사용하는 자가용은 보통 소형차나 미니밴이다. 그것이 경제적이고 실용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에서, 자동차의 용도는 외출할 때 편리하기 위함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간의 비교를 위한 물건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신분의 상징으로 여긴다.

이렇게 되다보니 외국에서 자신들은 배기량이 적은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자동차를 타면서, 중국에는 고가브랜드의 승용차를 수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네가 20만위안짜리 차를 샀으면, 나는 50만짜리를 사겠다. 설사 할부로 사더라도 어쨌든 내가 너보다 좋은 차를 사겠다. 그래야 너보다 체면이 서고, 사람들이 내가 너보다 낫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의 민중들이 선진국의 사람들보다 몇배나 비싼 차를 몰고 있는데, 우습지 않은가? 그게 논리에 부합하는가? 이렇게 미래에 벌 돈까지 앞당겨 쓰면 어떻게 압력이 없을 수 있겠는가.

주택은 능력이 있으면 사고, 능력이 없으면 절대로 다른 사람을 따라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결과가 아주 심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안정적인 수입이 없다면 절대로 아파트를 사서는 안된다. 왜 그런가, 여러가지 불안정요소가 있고, 각종 리스크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떤 사고를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네가 샐러리맨이라면 자신의 건강을 미리 앞당겨 해치지 말라. 일찌기 부부 한 쌍이 공장에서 일했다. 열심히 일해서 두 사람은 10년후, 도시에 할부로 아파트를 구매했다. 아파트가 있으니 부부는 더욱 열심히 일했다. 매일 13시간 일하던 것을 18시간으로 늘였다. 아침 6시부터 시작해서 밤 12시까지 일했다. 이렇게 하다보니 개략 2년이 지나서, 어느날 퇴근 한 후 부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자가 격심한 두통을 호소한다. 그리하여 급히 진통제 두 알을 먹었다. 시간이 지나도 두통이 사라지지 않자, 병원으로 가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남자는 이미 호흡이 끊어졌던 것이다.

이런 일 때문에, 공장은 업무시간을 단축하려고 한다. 원래의 18시간을 15시간으로 줄였다. 이렇게 하더라도 업무시간은 이전보다 2시간이 늘었다. 이렇게 한 결과 죽은 사람과 그의 처가 '권'하면서, 스스로를 해쳤을 뿐아니라, 다른 사람도 해치게 된 것이다.

다시 아파트구매하는 사람을 보자. 일정한 경제력이 있어야 하고, 일시불로 낼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후환이 없다.

인생은 수십년으로 짧다. 주택은 자신의 경제적 여건에 밪추어 돈이 있으면 비싼 집에 살고, 돈이 없으면 싼 집에 살면 된다. 집은 사람이 휴식하고 비바람을 피하는 곳이다. 새것이든 오래된 것이든 깨끗한 위생을 유지하고, 자신이 편안히 살 수 있으면 그만이다. 절대로 '내권'하거나 비교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능력을 초과하는 일을 벌여 스스로에게 불안전으로 인한 리스크요소를 증가시켜서는 안된다.

가전제품, 가구, 집안용품도 자신의 경제여건에 맞추어 사야 한다. 일반적으로 경제적이고 실용적이며 가성비가 높으면 된다. 모든 물건을 명품으로 살 필요는 없다. 왜 그런가? 현재의 상품가격에는 상한이 없다. 비싼 것은 너무 비싸다. 영원히 가장 좋은 것을 살 수는 없는 일이다.

티비는 인치가 좀 적은 것을 사면 된다. 수백위안짜리라도 보는데 문제없다. 굳이 수천, 수만, 심지어 수십만위안짜리를 사야한단 말인가. 냉장고는 2천위안정도짜리를 사서 쓸 수 없단 말인가. 굳이 1만여위안짜리를 산단 말인가, 쇼파나 테이블도 수천위안정도면 쓸 수 있지 않ㅇ느가. 굳이 수만, 수십만위안짜리 세트로 사야한단 말인가.

그래서 현재 중국인들의 생활이 왜 이렇게 힘든지를 보면, 실제상황에서 출발하지 않고, 모든 것을 "권"하고, 모든 것을 보여주기식으로 산다. 그렇게 하여 자유를 말아먹고, 행복을 말아먹었다. 심지어 생존공간까지 말아먹었다. 이 모든 것은 무지, 몽매함에서 온 것이다. 모든 것은 스스로 초래한 것이고, 자초위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