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염련과(閻連科)
1958년에 태어나서, 65세가 된 나는 많은 일들을 생각한다. 그중 가장 많이 생각하고, 가장 깊숙한 곳에서 자주 떠오르는 것은 바로 중국작가중 가장 삶을 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내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내가 삶을 가장 탐하게 된 것은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사망에 대한 두려움은 내가 일생동안 직면하고 있는 고통이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겠고, 무슨 연유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아주 어려서부터 죽음의 앞에는 소실, 부재이고 한 방울의 물이 사막에 떨어지는 것이라는 오묘한 이치를 알았다. 일찌기 어렸을 때, 모친을 따라 한 절로 가서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모친이 그때 무엇을 빌고 무엇을 바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바램은 이러했다: 부처님, 신이시여, 나를 영원히 살 수 있게 해주실 수 있습니까. 나를 죽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나를 인간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게 해주십시오. 나중에 나는 절을 떠나면서, 사람이 적은 틈을 타 몰래 부처님의 손을 잡아보았다. 그 손은 차가운 진흙으로 되어 있었고, 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나는 부처가 나의 경건한 바램을 이뤄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내가 부처에게 바라는 그 어떤 갈망도 허락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나에게 절망이라는 나무가 싹을 틔우고 자라기 시작했다. 골수에 뿌리박히지 않았던 고독과 추위는 그때부터 조금씩 닥쳐오기 시작했고, 오늘날까지도 내 몸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아주 일찌감치, 내가 문학청년이었을 때, 나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모친에게 잉태되었을 때부터 가진 3가지 두려움은 기아, 권력과 사망이라고. 어려서부터 기아에 대한 공포는 나로 하여금 일생동안 물질, 금전에 대한 동경과 추구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권력에 대한 숭배로, 현재까지도 밤을 새워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내가 만일 황제같은 진장(鎭長)이라면 내가 이 진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 만일 내가 황제같은 현장(縣長)이라면 내가 이 현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
권력에 대한 공포로 권력을 사랑하게 되었다. 권력을 숭배함으로 인하여 망상가가 되었다. 이번 학기에 나는 홍콩에서 강의를 하는데, 밤바다는 내 창문 아래에서 달빛을 받아 유백색을 띄고 있다. 나는 창문을 사이에 두고 바다를 멍하고 허망하게 쳐다본다. 수면제를 먹어 우유빛이 끝없는 어둠과 암흑이 될깨까지. 그러면 무의식에서 사망으로 빠져드는 공포와 침묵을 느낀다. 나는 이미 65세이다. 65세를 넘어가면 바로 66세이다. 설사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66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저 60이 넘었다고만 말하더라도, 65가 넘으면 66이다. 60여년을 되돌아보면 나는 한번도 스스로 죽음 앞으로 발을 내딛은 적이 없다. 현재 뒤돌아서 추측해보면, 나는 출생하여 첫 울음을 운 때부터, 사망이 스스로 나에게 다가왔기 때문에 나는 울었던 것일 것이다. 3살 혹은 4살이 되었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나에게 사망이 다가온 것이었다. 아마도 내가 겁이나서 엉엉 우는 것을 보고서 사망은 나에게 다가오지 않고 다른 사람을 향해서 걸어간 것일 것이다. 이는 나에게 어느 정도 위안과 평형감을 가져다 주었다. 사망은 진정한 소멸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모두 소멸하더라도 나는 손안에 '다른 사람이 갖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나중에 할머니도 돌아가셨고, 그때 나는 아마도 5살이나 6살이었을 것이다. 그 해부터, 나는 나를 향해 다가오는 죽음을 분명하게 보았다. 해가 뜨고 달이지는 것처럼 분명하게 보았다. 그것은 검은 비단옷을 입고, 얼굴은 '존(尊)'자형이며, 어떤 때는 "제(祭)"자형이었다. 그림자도 없고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저 눈을 감고 호흡을 해야, 비로소 그의 그림자와 소리가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죽임이 나를 향해 걸어오면 나는 황급히 도로곁으로 물러나서 나무 뒤나 꿈속이나 이불 속으로 숨는다. 그러면 나는 그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그것은 잠시 소홀하여 나를 보지 못하고 지나간다. 그 이후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성장하면서, 나는 자주 멍하게 먼 곳을 바라보곤 한다. 그리고 그 때, 나는 사망 외에 기쁨이나 아침햇살이나 찬란한 빛을 본 적이 없다. 그 이후 나는 그저 혼자서 고독하게, 적막의 깊은 곳에서 눈 하나를 찾아내고, 사망이 적막 속에서 나를 향해 웃고 있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을 본다. 나는 그를 반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소홀히 대할 수도 없다. 나는 내가 반기면 나를 향해 다가오는 발걸음을 빠르게 할까봐 겁이나고, 내가 소홀히 대하면 또 기분이 나빠져서 빨리 다가올까봐 겁이 난다. 우리는 자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서로 쳐다본다. 그때 죽음은 나를 향해 웃고, 나는 담담한 척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나에게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 지금은 그와 얘기할 수 없고,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그와 차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겠다는 것처럼. 그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그러면 나도 예의바르게 그를 향해 손을 흔든다. 그리고, 입술을 약간 움직여 그에게 안부인사를 한다. 나의 인생의 앞에도 사람이 있다. 해야할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처리를 다 한후에 바로 돌아와서 여름에는 너와 그늘 아래에 어깨를 나란이 하고 있고, 겨울에는 따스한 햇살 아래에 어깨를 나란이 하고 있겠다고.
나는 항상 이렇게 그를 속인다.
항상 이렇게 자석의 N극이 S극을 피하는 것처럼 피해다닌다. 한 남자가 자신이 망친 여자가 쫓아오는 것을 피배다니는 것처럼. 나는 긴 것같으면서도 길지 않은 인생 속에서, 가장 조용하고 편안했던 나날은 마땅히 많지도 적지도 않은 돈을 벌었을 때이다. 그 돈이 가져다주는 행복은 나로 하여금 잠시 죽음의 존재를 잊게 만들었다. 돈과 물질이 욕망을 만족시켜주면 마치 나와 죽음 사이에 잠시 서로 보이지 않는 담을 세워두는 것같다. 나는 지극히 용속(庸俗)한 사람이다. 가장 생기있을 때는 명예와 이익을 추구할 때이다. 나의 허영이 어느 정도 만족되면, 생명의 텅 빈 속이 밝은 기운으로 채워지고, 죽음은 나의 마음 속에서 명리의 즐거움에 밀려나서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만다. 나는 자주 명리를 무기삼아, 죽음을 베어버린다. 그것은 마치 경찰이 째려보아 좀도둑이 쫓아버리는 것처럼 내 곁에서 쫓아버린다. 그러나 생명, 시간과 일출과 일몰, 가을과 봄, 눈이 녹는 것과 새로운 싹이 마르는 것을 거치면서, 명리와 금전이 세워놓은 담장은 아무런 이유없이 무너져버린다. 허영으로 채웠던 구덩이가 다시 나타난다. 죽음은 다시 내 앞에 서서 나와 마주하며 응시하고 있다. 그제서야 나는 점차 의식하게 된다. 금전, 명리, 욕망, 권력 이 모든 것들도 죽음이 너를 평생 따라다니고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을 철저히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죽음은 너에게 지금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이치, 철학과 진리는 모두 진실하게 너에게 말해주고 있다.
사망은 너의 앞에서 차갑게 웃거나 소리치지 않는다. 그러나 네가 그 존재를 언젠가 잊어버리게 되면, 그것은 다시 한번 너의 앞에 나타나고, 너는 생명의 깊은 곳에서 아름다운지 추한지를 형용할 수 없는 모습으로 너의 눈앞과 곁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듣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사망이라는 건 급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너는 급하지 않지만, 죽음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너와 모든 사람을 찾아온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채찍질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조금이라도 빠르면 상이라도 받는 것처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그것은 마치 불편부당한 공정성을 잃고, 가용한 시간으로 모든 생명을 거두어 가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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