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지방/중국의 명소 (남부)

천년고교(千年古橋) 조주광제교(潮州廣濟橋)

중은우시 2024. 7. 5. 12:33

글: 증가권(曾柯權)

시중에 이런 말이 있다: "조주에 가서 광제교를 가지 않으면, 헛걸음한 것이다(到潮不到橋, 枉費走一遭)" 조주에는 아주 오래된 다리가 강을 가로질러 놓여 있다. 천년간 그 자리에 놓여있으면서 여러차레의 중건을 거친 광제교(廣濟橋)는 낙양교(洛陽橋), 노구교(盧溝橋), 조주교(趙州橋)와 더불어 중국사대고교(中國四大古橋)로 불리며, "세계 최초의 개폐식 교량"이라는 영예도 가지고 있다.

천년이나 된 오래된 다리는 그 풍채가 더욱 돋보인다. 지금의 광제교는 개방된 모습으로 사방에서 오는 손님을 즐겁게 맞이하면서, 세계를 향해 조주의 독특한 역사문화이야기를 얘기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계속하여 새로워지고, 새로운 활력과 매력을 발산한다. 역사와 시대가 교차하면서 새로운 생기를 내뿜고 있는 것이다.

"십팔사선입사주(十八梭船廿四洲)"

광제교는 남송 건도7년(1171년)에 건설되기 시작했다. 조주태수(趙州太守) 증왕(曾汪)의 명으로 강의 가운데 석돈(石墩)을 건설하고, 86척의 사선(梭船)을 쇠줄로 연결하여, 풍격이 남다른 부교(浮橋)를 만든다. 당시 이름은 강제교(康濟橋)였다. 그것이 광제교의 최초의 모양이다. 그후, 고대 조조의 역대관리들은 모두 이 다리를 계속 건설하는 직책을 맡아왔고, 강 양안에서 강중심을 향해 계속하여 교돈(橋墩)을 지어 양교(梁橋)를 만들고, 부선(浮船)은 감소시켜나갔다.

명나라 선덕10년(1435년), 조주지부(趙州知府) 왕원(王源)이 대규모의 중수에 나선다. 교돈을 전면적으로 보강하고, 다리 위에는 정대누각(亭臺樓閣)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휴식하고 경치구경하기 편리하게 하였다. 중간의 강중심에는 여전히 24척의 부선을 연결시켜 부교로 만들어, 선박의 통행이 편리하게 하였다. 또한 홍수때 물이 빠지기 좋게 하였고, 강물의 교량에 대한 충격도 감소시켰다. 동시에 다리의 명칭도 "광제교"로 바꾼다. "백월(百粤)의 주민을 널리 구제한다"는 의미이다. 가정9년(1530년) 조주지부 구기인(丘其仁)은 강중심의 24척의 사선을 18척으로 감소시킨다. 이에 광제교는 "십팔사건입사주"의 독특한 모양을 갖추게 된다.

조주에는 널리 알려진 민요가 있는데, "조주상교호풍류(潮州湘橋好風流), 십팔사선입사주(十八梭船廿四洲), 입사루대입사양(廿四樓臺廿四樣), 양지생우일지류(兩只鉎牛一只溜)"이다. 조주시 고성문화보호관리센터의 해설자인 류위위(劉堉楡)에 따르면, 이 민요는 광제교의 특색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광제교는 양교(梁橋), 공교(拱橋), 부교(浮橋)라는 세 가지 다리형식이 결합되었다. "십팔사선"으로 구성된 부교구간은 아침에는 닫고, 저녁에는 연다. 움직이는 방식의 설계로 저명한 교량전문가인 모이승(茅以升)은 '세계최초의 개폐식교량'이라고 하였다. '주(洲)'가 가리키는 것은 광제교의 교돈이다. 체적이 방대하여 마치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육지같다고 하여 '주(강가운데의 섬이라는 의미임'라는 명칭이 붙었다. 명날때부터 광제교의 모든 누각건축과 양면의 영련(楹聯)은 모두 달랐다. 동서 양쪽에서 보면 서로 다른 "12가지 모양"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십사루의 모습이 이십사개의 모양이다"라고 찬탄한 것이다.

2003년, 조주시정부는 광제교의 중수를 시작했고, 명나라때의 모습대로 복구하기로 했다. 그리고 2007년에 준공한다. 옛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문화재를 보호한다는 원칙을 지켜 옛 교돈과 교면을 유지하는 기초 위에서 새로운 교면을 강화했고, 누각 12개, 정옥 18개를 수리하여, "십팔사선입사주"의 전통적인 모습을 재현한다. 그리고 보행관광교로 제공하여 국내외관광객들이 참관유람할 수 있게 한다.

"일리장교일리시(一里長橋一里市)"

천년동안, 광제교는 조주의 역사변천을 목격했고, 국내외 조주사람들의 정신적 좌표역할을 해왔다. 더더구나 사방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고성의 매력을 느끼는 중요한 창구가 되었다. 소개에 따르면, 원래의 광제교에 있넌 정대누각에는 점포가 있었다고 한다. 옛날에 유일하게 조주부성범위내에서 한강(韓江)의 양안을 가로지르는 교량이었기 때문에, 이 다리는 교통요도였을 뿐아니라, 민중들이 상품을 매매하는 번화한 장소였다. 그리하여, '일리장교일리시'라는 말을 듣는다.

최근 들어, 조주는 수선하고 보호하는 과정에 현지의 비물질문화유산과 옛다리를 결합시켜 적극적으로 "문화여행 + 비물질문화유산"을 융합발전시키는 신모델을 취하여, 광제교에 '일리장교일리시'의 번화한 모습을 재현하는 것을 탐색했었다.

조주시고성문물보호관리센터의 부주임인 황즈민(黃智敏)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다리 위에 도자기, 맥간화(麥杆畵), 조수(潮繡), 수랍호(手拉壺)등 6개의 비물질문화유산 정품전시구역을 두었다. 그리고 항상 비물질문화유산전승자들이 다리 위에서 기예공연을 하고, 임시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게 한다. 지식의 보급과 학습체험, 문화교류등 여러가지 형식을 결합하여 광제교의 비물질문화유산활력을 보여주고자 한다."

필자가 다리 위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다리 위의 각각의 비물질문화유산전람구역에는 정교한 전시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전지(剪紙), 수랍호, 목조(木雕), 조수등을 비물질문화유산전승인들이 전시하고, 많은 관광객들이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고 있었다.

조주전지의 대표적인 전승자인 황조양(黃朝陽)은 자신이 관련기관의 협력하에 다리 위에서 조주요소가 충만한 전지문화창작작품을 전시하고, 관광객들에게 조주의 전지 및 전지 배후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조주의 문화를 더욱 잘 소개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금년 설날에 2024년조주등광쇼, 드론공연이 한문공사(韓文公祠) 앞의 광장과 광제교의 위에서 거행되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드론들이 하늘위에 그림을 그렸다. 광제교를 배경으로 하여 한폭 또 한폭의 아름다운 조주의 모습을 그려냈다. 옛달이 위에서 과학기술이 광채를 발하며 역사문물과 현대과학기술의 조화로운 발전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