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현야(玄野)
근 사십년동안, 제조업분야에서 서방과 경쟁하면서, 중국은 강력한 우세를 드러냈다. 이 현상은 놀라울 정도였다. 더욱 놀라운 점은 서방경제와 정치고위층이 이 현상에 대해 태연자약했다는 것이다. 친후이 선생은 최근 몇년간 그 원인을 저인권우세로 결론지었다. 이건 상당히 맞는 말이다. 기실 이 문제는 서방의 비지니스계에서는 이미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30년전의 주5일근무제(双休日)개혁도 서방에서 압박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확실히 이런 개혁은 구우일모일 뿐이고, 저인권우세는 여전히 거대했다. 전문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중국노동자의 산출과 자본이 그들에게 제공하는 복지의 비율은 대체로 미국노동자의 10배이다. 이 현실에서 보자면, 미국의 자본가는 제조업을 중국으로 이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다만, 이는 소비지체, 무역불균형, 경제구조취약등 해결하기 어려운 경제난제를 발생시킨다. 그러므로, 30여년전의 서방고위층은 근본적으로 우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저인권우세는 단지 중국경쟁우세중 상대적으로 비교적 말단의 요소이다. 중국에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뿌리박은 법가사상과 대국가주의정서는 중국의 국제경쟁력에서 가장 믿을만한 바탕이 된다. 당시 등소평등이 개혁개방을 시작할 때 정책적으로 자본에 치중하는 입장을 견지했다. 즉 경제적 수익을 자본에 더욱 많이 분배하고, 노동자에게는 비교적 적은 부분을 배분해주었다. 먼저, 이는 중국시장이 자본에 대하여 거대한 흡인력을 지니게 해주었다. 구미등 선진국보다 훨씬 강력했을 뿐아니라, 동시에 인도, 동남아등 국가들도 비견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른 한편으로, 그리고 더욱 관건적인 것은 이것이 국가가 미래에 사회의 부를 통제하는데 극히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제구조는 정부가 손쉽게 부를 긁어모을 수 있도록 해준다. 이를 통해 큰 그림을 완성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는 바로 시장사람들이 말하는 "역량을 집중하여 큰 일을 해낸다"라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의 큰 전제는 민중의 복지가 강대한 국가를 먼저 건설한 후에 비로소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이 사고방식은 경제학의 범위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대세계각국의 좌익정부가 어느 정도 취하고 있는 입장이기도 하다. 다만, 상대적으로 중국정부와 비교하면 유치원수준의 대국가주의라 할 수 있다.
중국의 경쟁방면에서의 우세는 국가가 얼마나 많은 돈을 축적했느냐에 있지 않고, 민중들이 내심으로 모두 부국강병이 민중이 복리를 취득할 선결조건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데 있다. 기실 이는 경제학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즉 경제장론(经济场论)이다. 물리학에서의 장론(场论, Theory of semantic fields)과 마찬가지로 경제장에서의 장력선을 완전히 찾아낼 수 있다. 제도(梯度), 산도(散度), 선도(旋度), 그리고 원(源), 루(漏)같은 류의 것들이다. 여기에서 비교적 현실적인 이해는 바로 우리가 돈 혹은 부를 경제라는 자연물에서 자연력을 전파하는 매개로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같은 호수에 흐르는 물, 동물 체내의 혈액, 심지어 전기회로에서 전류를 만드는 전자와 같다. 그 축적된 역량이 만들어내는 힘과 비교하면, 아마도 전자회로중의 전자와 더욱 비슷할 것이다. 지구상의 물이 아니라. 왜냐하면 이것은 만일 어떤 단계에서 너무 많이 축적되면 전체 시스템의 유동성부족이 일어나게 되고, 거대한 부가 석방되는 과정에서 쉽게 벼락같은 재난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규율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집권자라면 절대로 부의 축적을 중시하지 않는다. 욓려 완전히 경제유기체에서 부가 흐르는 모든 통로를 잘 흐르게 만드는 것이다. 전기수용, 전기감지적 성격이 있는 기능부분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이들 삼극진공관 통제효과를 지닌 부품이 진정 효과를 발휘할 것인지, 전기를 소모하는 부품과 전기를 공급하는 부품의 기능이 양호한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이 사고방식으로 중국을 보면, 민중이 국가가 강대해지는 것에 대해 인정하는 태도는 국가가 안심하고 그런 민중의 심리를 이용하여 국가의 부를 흐르게 할 수 있다. 당연히 중국의 경제우세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전 독일, 일본도 그런 상태였기 때문이다. 중국은 독일, 일본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 아래에서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중국인민의 의식중에는 국가에 대한 개념이 서방과 다르다. 이는 주로 역사적인 원인때문이다. 중국은 보편적인 법집단주의사고 혹은 대국가주의사고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하나의 민주사회는 하나의 국가의지가 이처럼 강렬한 사회와 싸우기 힘들다. 하나의 기업이 하나의 국가와 상대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선진국의 기업은 국가와 같은 편이 아니다. 오히려 모두 고양이가 쥐를 잡는 게임을 벌이고 있다. 중국에 대한 무역에서, 미국의 하이테크기업은 계속 중국과 협조하여 미국정부의 무역제한을 회피했다. 지금의 엔비디아, 이전의 인텔, 애플에서 가장 먼저 중국에 진입한 중국의 전자측량최대기업인 HP까지 모두 그러하다. 중국정부와 기업간의 또 다른 모습은 정부측에서 전국적인 통일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국영기업은 당연히 지시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사영기업은 어느 정도 규모가 커지게 되거나 혹은 과학기술분야에서 선두주자가 되면, 정부에 협조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 점은 단순히 정부층면의 의지만이 아니라, 동시에 중국의 민중도 마찬가지로 그런 경제모델을 수용하고 있다. 만일 어떤 기업이 국가와 민족의 이익이라는 각도에서 문제를 보지 않는다면, 거의 모든 사람은 그 기업이 아주 이상하다고 여길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나라를 구해야한다는 시대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더욱 근본적인 것은 중국문화가 한비자이래의 법가사상과 대국가주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의 기업이 하나의 국가와 경쟁하는데서 균형이 무너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확실히 이런 경쟁에서, 단독의 기업은 완패할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이렇게 진행되다보니, 하나의 기업, 하나의 기업이 모두 화웨이방식을 복제하게 되면 중국이 세계의 패자가 되는 것이 조만간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독점은 과학기술발전과 사회발전에 미치는 위해가 크다. 당금 글로벌정치경제문화계는 명확하게 컨센서스를 이루고 있다. 독점이 부패의 발생과 혁신을 억제하는 악영향이 심각하다는 것을. 그리고 하나의 국가로서 모든 과학기술의 발전을 조종한다면, 그 모습은 마치 달리의 '시간의 기억'이라는 그림처럼, 화려하고 다양하지만, 죽음처럼 적막이 흐를 것이다. 당연히 세계의 패자가 되겠다는 꿈도 그저 일장춘몽에 그칠 것이고, 실제로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세계를 어지럽히고 괴롭게 만드는데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미시적인 각도에서 보자면, 중국의 정치경제모델은 서방기업에 차원축소식의 우세를 가진다. 왜 지금의 구미등 서방국가는 중국에 대하여 포위공격하는 태세를 취하는 것일까? 그리고 소리높여 진군하는 추세를 나타내는 것일까? 먼저 말해야 할 것은 뜻은 크지만 재능은 없는 대국의 지도자는 정치적통일의 필연적 숙명이다. 이건 단순히 인재선발에서 역도태되는 고질 때문이 아니라, 용상에 앉은 후에 개인적인 각종 능력과 자질에서 역도태의 규율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진나라가 육국을 멸망시킨 역사와 당금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우주를 품겠다는 꿈은 그저 시정잡배의 혀끝에 머물 것이라는 것이 최종적인 결말이다. 당금세계각국은 확실히 여러 무역분쟁이 있다. 다만 이런 상황은 옛날 산동6국의 상태와 완전히 다르다. 현재 세계의 주요경제체가 인정하고 따르는 정치경제모델은 성숙되고 효과적이다. 그리고 가장 관건적인 것은 이것을 각 주요선진국들이 보호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업간의 경쟁에 국가가 참여할 수 없다. 여하한 국가도 본국과 외국기업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 차별대우헤서는 안된다. 이런 원칙은 과학기술발전과 사회의 선순환 심지어 생태환경의 보호에 모두 관건적인 촉진작용을 하게 된다.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미중쟁패의 결과는 확연하다. 당대 중국의 법가사상과 대국가주의 정서로 보자면, 중국이 현대세계에 융합해 들어가는 것은 아직도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중국의 진정한 정치경제사상의 계몽은 아직 시작되지도 못했다.
국가주의 혹은 범민족주의를 얘기하자면, 중국, 일본, 한국이 똑같다. 단지 일본은 최근 70년간 이미 탈태환골하였고, 한국은 힘이 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려할 수준이 아닐 뿐이다. 오직 중국의 경제성장만이 정치이념에서 옛날과 같다. 이는 당금세계에서 소화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변화이다. 역대이래로 사람들은 일본과 한국을 유가문화권으로 분류했다. 다만 정치문제에서, 특히 대국가주의라는 고질측면은 절대로 유가의 전통이 아니다. 오히려 법가의 유물이다. 그들은 모두 한비자의 의발을 이었다. 기실 2차대전이라는 지금도 선명한 역사기억 속에서, 일본국민의 민족주의, 대국가주의는 중국이나 한국보다 심각했다. 많은 일본의 2차대전 노병의 자술에서 아주 심각하게 그들 내심의 그런 정서를 느낄 수 있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보통병사들의 행동을 보면, 마찬가지로 그런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다. 한국전쟁에서 어떤 중국의 부상병이 미국병사를 불공대천의 원수로 여기는 것도 마찬가지의 사고때문이다. 이런 행위는 인도주의로 포로가 된 상대방을 대해야 한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만든다. 상대적으로 말해서, 2차대전에서 일본군의 행동은 더욱 극단적이었다. 그래서 부득이 일본은 중국의 문화를 배우면서 심지어 중국민중들보다 더 철저했다는 것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민족주의와 법가사상을 벗어나는 방면에서 일본보다 훨씬 낙후되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 아마도 중국민중들보다도 약간 못한 것같다. 다만, 한국의 우세는 규모가 적어서 큰 충격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삼성 자체는 한국정부의 강력한 지원으로 성장한 민족기업이다. 다만 미국은 화웨이를 때리는 것처럼 삼성을 때리지 않는다. 오히려 삼성을 이용하여 애플의 독점지위를 깨고 있다. 한국은 민족성으로 말하자면,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 아마도 미국일 것이다. 중국과 일본일 수는 없다. 이 점은 미국이 가장 안심하는 부분이다. 대만은 다르다. 중국대륙과 정치적으로 합칠 가능성이 아주 크다. 반도체의 관건적인 부분이 대만에 있다는 것은 미국으로 하여금 편안히 잠들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대만인들은 한국인들과 비교할 때 더욱 개방적이다. 소위 피는 물보자 진하다는 것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다. 미국이 충분한 여러 단계의 예비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는 깊이 따져보아야할 문제이다.
중국이 언제나 사고방식에서 현대의 글로벌 정치경제체제에 편입될 수 있을까? 아마도 일본인들이 그들의 역사를 반성한 것을 참조해볼 수 있을 것이다. 태평양전쟁에서 히로시마의 재난까지, 일본민중은 맥아더의 압박하에 민주체제를 받아들이는데 엄청난 거부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항복후에 공포심리가 충만했다. 그리고 현실의 일본경제는 수년내에 고속성장의 궤도에 들어선다. 신속히 가장 위대한 전후경제기적을 이룬다. 현재 일본인들이 점령당하고 강제로 민주화의 길로 들어선 것에 대하여 어떻게 반성하고 있을까? 민중심리상으로 보편적인 조정없이는 이런 사회의 전환을 이루어낼 수가 없다. 옛날 일을 잊기는 어렵고, 옛날 일은 미래의 거울이다. 이 말을 누구든지 실천한다면 그에게는 복이 될 것이다. 이전에 는 항상 어떤 주의가 좋고, 중국의 전통문화는 문제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파리도 틈이 없는 계란은 깰 수가 없다. 그리고 현재 분석해보면, 이는 상호선택과정이다. 역사의 규율을 피할 수 없고, 내야할 학비는 안낼 수가 없다.
법가사상통치하의 사회와 현대민주정치체제의 사회간의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차이점이라면 민중들이 당금정부의 행위에 대해 액세스권을 가지고 논의할 권리를 가지느냐 아니냐이다. 성숙한 민주사회에서는 민중의 정부에 대한 비판은 통상적이고 아주 정의로운 것이다. 국가의 형성과정에서의 차이는 국민들이 정부의 정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권리를 가지느냐 여부에 있다. 성방정치(城邦政治)는 각자 하고싶은 말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계약의 기초하에서 각자 자신의 일을 하면 된다. 발전하다보면 점진적으로 성방정치의 한계를 하나하나 해결하고, 민주정체를 광범위한 지역을 지닌 국가로 확장시키게 된다. 민주정체의 장점은 민중들의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 결점도 이 권리이다. 즉 분쟁으로 인한 자원낭비가 생기는 것이다. 통일정치는 처음에 방대한 국토위에서 이루어지면, 민중은 원래 각자 자신의 말을 할 권리가 있다. 다만 지리적인 원인으로 집권자들이 그 말을 다 들을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지역에서는 타당성과 집행효율에서 출발하여 통일모델이 최선의 선택이 된다. 이런 체제하에서, 군주의 지혜와 도덕은 국가흥망의 관건이 된다. 개국군주는 전쟁에서 승리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비교적 지혜롭다. 고난을 겪으면서 단련되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도 괜찮은 편이다. 후대의 군주들은 그렇다고 하기 힘들다. 지혜는 타고나는 것이고, 그저 하늘에서 정해주는 것이다. 도덕은 또한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교육에 의지할 것인가 그저 천성에 의존할 것인가? 편안하게 자란 황자, 황손들은 모두 온실 속에서 성장한 것이다. 그들이 보통사람의 생활에 관심이나 있을 것인가? 중국의 각 왕조는 많은 경우 아픠 2,3대의 황제는 괜찮은 편이지만, 뒤로 갈수록 계속 나빠진다. 이것이 바로 관건원인중 하나이다.
사회의식현상의 존재로 인하여 통일정권의 민중은 이전의 도구적인 한계로 인해 아래의 의견이 위로 전달될 수 없다. 그렇게 진행되다보면 결국 제도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든다. 지금 통신기술은 이미 정보소통의 자연적인 한계를 완전히 해결했다. 어떤 형식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더라도 그건 그 국가가 자승자박하는 꼴이 될 것이다. 당대 선진국에도 이런 문제의 사각이 있다. 또 다른 일부국가에서는 사각이 없는 자승자박(作茧自缚)을 실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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