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심주(沈舟)
아프리카의 수단에서 4월 15일 내부군사충돌이 발생했고, 각국은 속속 교민을 철수시키고 있다. 4월 29일, 신화사는 보도를 통해, 중국군대는 중국공민의 수단철수임무를 마쳤다고 했다. 당매체는 다시 한번 찬가를 부르며 시진핑이 명령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각국군대가 교민철수행동에 참여한 것과 비교하면, 중국군대가 채택한 것은 가장 곡절많은 철수노선이었다. 이는 중국군대의 능력차이를 보여준다. 미국이나 서방국가에 필적할 수 없고, 심지어 일반적인 국가들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수의 중국공민은 가장 곡절많은 노선으로 철수했다.
수단은 중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철수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중국공군이 운송기를 출동시켜, 신속하게 수단의 수도 카르툼공항에 착륙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대사관영사관인원들과 함께 철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일 각국의 군용기가 차례로 본국국민을 소개시키고 있는데, 중국공군은 시종 출동하지 않았다.
중국외교부의 중국교민에 대한 조치는 여러 박자 늦었을 뿐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은 가장 곡절많은 노선을 가야만 했다. 먼저 수단의 수도 카르툼에서 육로로 홍해의 수단항으로 가고, 다시 바다를 건너 홍해 건너편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항으로 가야 했다. 그후에 다시 임시항공편을 타고 귀국했다. 소수의 사람들은 육로로 수단을 떠나 이웃국가로 들어간 다음 다시 돌고돌아 귀국했다.
4월 29일, 신화사는 보도를 통해, 중국해군 난닝함(南寧艦), 웨이샨후함(微山湖艦)이 4월 26일부터 29일까지, 수단항에서 940명의 중국교민을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항으로 철수시킴으로써 철수임무를 완성했다고 했다. 중국군대가 한 일이라고는 그저 2척의 군함으로 중국공민을 수단항에서 홍해 건너편의 사우디 아라비아 제다항으로 보내준 것뿐이다. 이는 철수노선중 아주 짧은 구간을 맡은 것이고, 그것마저도 시진핑의 명령을 받고서야 출동한 것이다.
4월 27일의 외교부기자회견에서, 대변인 마오닝(毛寧)은 이렇게 말했다: 이미 1,300여명의 중국교민이 안전하게 이동했고, 어떤 사람은 이미 중국군함, 선박에 탑승하고 수단을 떠났다. 아직 300여명은 육로를 통해 수단주변국가로 가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3/4의 중국교민은 중국군함을 타고 수단을 떠났으며, 나머지 1/4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단의 수도 카르툼은 수단의 중부에 위치하고 있다. 육로로 수단항까지 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대체로 같은 거리를 가야 사람들은 육로로 수단을 빠져나와 다른 이웃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수단항에서 비교적 가깝다면, 수단항에서 배를 타고 떠나는 것을 선택하고, 만일 수단항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 실제로 반드시 수단항으로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중국은 스스로 자랑하는 동시에 다른 나라의 교민들이 어떻게 수단에서 철수했는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 않았으면 중국의 교민철수행동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어떻게 교민을 철수시켰는가?
교민철수행동에서, 미군은 자연히 가장 먼저 움직였다. 4월 15일, 수단에서 내부충돌이 발생한 후, 미국 국무장관 블링컨은 즉시 동맹국 및 해당지역의 파트너국가들과 협의하고, 주선하여 각측이 전투를 중단하도록 노력했다. 동시에 미국은 신속히 현지국면을 평가한 후, 4월 20일, 미국저우는 1명의 미국공민이 수단에서 사망했다는 것을 확인한다. 충돌쌍방이 쟁탈하고자 하는 촛점인 수도 카르툼에서 미국대사관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4월 22일, 미국대통령 바이든은 대사관철수를 명령한다. 약 100명의 특수작전부대원이 신속히 출동하여, 약 70여명의 미국대사관 근무자들을 소개시켰다. 3대의 MH-47헬리콥터가 대사관부지에 착륙하고, 1시간도 되지 않아 소개를 마친다. 대사관인원은 즉시 수단에서 멀지 않은 지부티로 보내어졌다. 여기에는 미군기지가 있다. 헬리콥터로 이디오피아를 경유하면서 기름도 넣었다.
당시의 정보로는 수단의 수도 카르툼에서의 격전으로 이미 450여명이 사망했고, 4천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미국은 수단을 테러지원국가로 지정했다. 미국공민은 테러조직의 목표물이 될 가능성이 가장 컸으며, 대사관의 인원들은 더욱 위험했다. 미국대사관이 충돌의 중심에 남아 있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미국공민이 수단의 수도 카르툼에 있는 대사관으로 찾아가서 도움을 구하는 것도 실제로는 위험하다. 추정에 따르면, 수단에는 약 16,000명의 미국공민이 살고 있다.
미국대사관이 철수한 후, 미국의 아프리카사령부는 실제로 더 많은 교민철수임무를 책임진다. 미국 국방부에 따르면, 미군 무인기는 계속 행동에 참여하고, 실시간정보를 제공했다. 어떤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선박을 배치하여 미국공민을 수단항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항으로 운송할 계획이 있는지. 미국국방부는 그 철수노선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국 구축함과 원정해상기지함이 수단항의 외해에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그러나 가장 안전한 방식을 취하길 희망하며, 정력을 육로노선을 지원하는데 집중하고 있으며, 반복가능하고 지속적인 방법을 만들어 대량의 미국공민을 철수시키고자 하며, 소수의 인원은 여전히 항공편에 탑승하여 수단을 빠져나갈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은 주로 육로통로를 건립하여 대량의 미국공민을 철수하는 방법을 선택했고, 해로철수노선은 단지 예비용이었다. 미국은 이에 대하여 당연히 최대한 기밀을 유지했다. 다른 나라의 교민들은 미국만큼 많지 않았지만, 긴급교민철수는 각자 나름대로의 실력을 발휘한다.
각국의 군용기가 대거 모여들다.
미국외에 영국의 동작이 가장 컸고, 가장 요란했다. 알려진 바로는 약 4천명의 영국공민이 수단에 살고 있는데, 최소 2천명이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영국군대는 대거 출동하였고, 영국군용기가 직접 수단의 수도 카르툼공항에 착륙한다. 실탄을 장전한 영국병사가 공항에 나타났고, 영국 국방부는 이 행동은 제16공군충돌여단, 해군육전대와 공군의 1,200여명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독일의 군용기도 빠르게 출동한다. 알려진 바로는 독일무장부대가 수단에서 40여개국가의 700여명을 소개시키는 것을 도왔다고 한다. 캐나다공군의 CC-130 운송기도 캐나다공민의 철수행동을 집행했다.
프랑스는 비교적 조용하게 진행했다. 먼저 프랑스공민을 지부티로 철수시키고, 다시 전용기를 파견하여 프랑스로 데려갔다. 미군의 도움을 받았는지 여부는 알 수가 없다.
일본국민도 같은 철수노선을 선택했다. 일본 항공자위대의 군용기도 지부티에서 본국국민을 태웠다. 이탈리아도 마찬가지로 군용기를 지부티로 보내어 수단의 이탈리아국민들을 철수시켰다.
네덜란드, 그리스도 군용기를 보내어 본국국민을 철수시킨다. 수단에서 멀지 않은 튀니지, 요르단등의 국가에서도 군용기를 출동시켰고, 심지어 멀리 아시아에 있는 태국공군도 출동했다.
이와 비교하면, 중국은 자주 군용기를 보내어 대만해협을 교란시키고, 최근에는 H-6폭격기를 미야코해협을 지나 태평양까지 진입시켰지만, 이번 교민철수행동에서는 중국군용기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중국의 Y-20은 전략운송기이며, 항속거리가 7.800킬로미터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수단이나 주변국가에까지 갈 수 있는데, 이번에 나타나지 않았다. 중국군대의 실제능력은 설마 태국보다 못하단 말인가?
중국군함출동은 시진핑의 명령이 필요했다.
4월 27일, 중국군망(軍網)은 이렇게 보도한다. 시진핑과 중앙군사위의 비준을 받아, 4월 26일, 중국해군 구축함 난닝함, 종합보급선 웨이샨후함이 수단으로 가서 수단의 중국공민철수를 담당했다. 중국군함이 담당한 것은 단지 수단항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항까지의 짧은 거리를 운송하는 것이었다.
중국은 지부티에 군사기지를 설치해놓았다. 중국군함이 지부티에서 수단항까지 가는 것은 멀지도 않다. 그러나 4월 26일이 되어서야 비준을 받아 출동한 것이다.
4월 29일, 신화사는 이렇게 보도한다. 수단에서 철수하는 중국공민의 첫 임시항공편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에서 출발한 후, 베이징공항에 도착했다고. 중국군용기는 역시 사우디아라비아로 가지 않았다. 시진핑이 명령을 내리지 않아서인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영공진입을 허용하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다. 중국공군은 구원활동으로 원거리 병력운송훈련을 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중국군함은 비록 부근에 있었지만, 그저 시진핑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고, 명령이 내려지고나서야 출동한다. 중국외교부는 교민철수행동을 한다고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저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받으면, 부득이하게 약간의 정보를 알려줄 뿐이었다.
4월 15일, 수단에서 충돌이 발생한 후, 중국 주수단대사관은 긴급안전통보를 내보낸다: 중국공민과 중국계기관은 고도의 경계를 유지하고, 외출은 엄격히 삼가하라. 만일 돌발긴급상황이 발생하면, 적시에 경찰에 통보하고 대사관에 보고하라.
4월 16일, 중국대사관은 같은 유형의 경고를 계속 내보낸다. 4월 18일, 중국대사관은 중국공민에게 빠른 시간내에 개인정보를 정확하게 기입하라고 요구한다. 다만 철수한다는 말은 꺼내지 않는다. 그날 중국의 외교부 기자회견에서 어떤 기자가 공자학원의 원장과 선생이 총을 든 수단병사에게 붙잡혀 있었는데, 지금은 이미 구조되었다고 말하면서, 중국측은 교민철수방안이 있는지 물어본다. 중국 외교부대변인 왕원빈(汪文斌)은 교민철수문제는 언급을 회피한다.
4월 21일, 중국대사관은 계속하여 공지를 내보낸다: 수단의 중국공민은 방법을 강구하여 물과 식량, 연료등 필수생활물자를 비축하라....우리는 이미 여러번 명확하게 수단측에 수단주재 중국공민과 중국계기구를 보호해줄 것을 요청했다.....반드시 현재의 일시적인 곤란은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4월 22일, 중국대사관은 마침내 중국공민의 철수의사를 통계낸다. 그러나 철수방안을 공표하지는 않는다. 그날, 미국대사관은 철수했다. 4월 26일, 시진핑은 중국군함에 출동을 명령한다. 중국의 교민철수행동은 그제서야 비로소 개시된 것이다. 중국공민이 수단항까지 가는데에는 안전문제가 있었다. 수단항의 길거리에는 충돌하는 한 측의 군용차량이 출현했다. 미군이 주로 육로철수를 선택한 것은 확실히 더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4월 15일, 수단에서 충돌이 발생한 후, 중국외교부는 단지 성명을 발표하여, 양측에 교전을 중단할 것을 호소했을 뿐이다. 그러나 외교알선노력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중국의 외교부장, 부부장은 평소와 같이 공개활동을 했으며, 유독 수단과 관련한 소식은 없었다.
미국, 서방각국과 주변국가에서 긴급히 주선하고, 수단충돌측에게 24시간 교전중단, 72시간 교전중단, 그후 다시 72시간 연장을 얻어내고 있었지만, 중국외교부는 그저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진핑의 군함출동명령만을 기다렸다. 명령이 내려온 후에야 뒤늦게 교민철수행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고 가장 곡절이 많고 복잡한 철수노선을 선택해서.
사우디아라비아는 군함을 파견하여 수단항에서 도망치는 사람들을 실어주었다. 그리고 민간선박도 참여한다. 중국군함은 그저 같은 노선을 갔을 뿐이다. 모두 똑같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항으로 간 것이다.
결론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중국의 외교능력은 취약하고, 교민철수행동은 느리다. 군용기는 시종 출동하지 않는다. 다수의 사람은 그저 육로를 걸어간 후, 다시 해로를 건넜다. 중국은 원래 이에 대해 조용하게 처리했으나, 당매체가 크게 선전하면서 오히려 진상이 드러나고 말았다.
중국군대는 지부티에 기지가 있다. 군함이 출동하여 교민을 철수시키는데 시진핑의 명령만을 기다렸다. 만일 이런 상황이 전시에 발생한다면, 군대가 도대체 어떻게 싸운단 말인가.
각국군대는 평화시기에 인도주의구조업무를 담당한다. 이것도 군대의 전투대비능력을 평가하는 하나의 지표이다. 중국군대의 능력은 이번 교민철수활동에서 본모습을 드러냈다. 만일 정말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발생한다면, 아마도 중국군대의 배치가 끝나기도 전에 미군과 동맹군은 배치를 완료할 것이다. 중국이 선제공격을 할 수 있을까? 만일 미군과 동맹군이 선제공격을 한다면 중국군대는 참패하고 말 것이다.
'중국의 정치 > 중국의 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대 중국의 "군기(軍旗)" (0) | 2023.06.27 |
---|---|
장즈강(姜志剛): "J20전투기의 아버지", 부패혐의로 체포되다 (1) | 2023.05.18 |
중국해군의 약점 (0) | 2023.04.29 |
중국의 환도(環島)군사훈련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0) | 2023.04.11 |
중국의 군사력이 세계2위로 올라섰을까? (하) (3) | 2022.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