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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대외관계

중국의 차기 외교부장 인선에 변수가 발생하다.

by 중은우시 2022. 5. 28.

글: 악산(岳山)

 

중국이 세계에서 욕을 먹는 하나의 증상은 "전랑외교(戰狼外交)" 혹은 "홍위병외교(紅衛兵外交)"이다. 중국의 외교관들은 강경한 입장을 드러내며, 언행이 거칠고 비루하며 심지어 흉악하다. 최근 들어 원래 차기 외교부장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던 외교부 부부장 러위청(樂玉成)이 돌연 외교계통에서 전보되었다. 그 배후에는 아마도 중국 외교의 문혁회귀라는 범상치않은 내부사정이 있는 것같다.

 

웨위청이 조기에 실세하여 외교계통에서 나가게 되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5월 26일 58세의 러위청이 중국 국가광전총국의 국장을 맡아, 정부급(正部級, 장관급) 관리로 승진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성도일보>는 러위청이 광전총국의 부국장을 맡아, 여전히 부부급(副部級, 차관급)이라고 하였다. 현임 광전총국 국장 녜천시(聶辰席)는 7월에 만65세인 은퇴연령이 된다. 그러나 러위청이 반드시 그의 후임자가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성도일보>는 또한 이번 전보는 러위청이 외교부장 후보에서 밀려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다만 그가 외교계통에서 나가게 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소식은 두개의 친베이징 홍콩매체에 올라왔으니, 분명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공개된 자료를 보면, 러위청은 난징사범대학 러시아어문학과를 졸업했고, 외교생애는 1980년대에 시작했다. 외교부 소련동구사에 근무했으며, 2번에 걸쳐 주러시아중국대사관에 파견근무한 바 있다. 그리고 2013년 주카자흐스탄대사를 맡고, 2014년에는 주인도대사를 맡았다. 2016년 중공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 판공실부주임이 되고, 2018년 외교부 부부장에 오른다. 이런 경력은 중국외교계통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이다.

 

현임 외교부장 왕이(王毅)는 이미 근 10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나이가 68세를 넘었다. 그 자신은 이미 부국급(副國級, 부총리급) 국무위원이다. 그리고 양제츠(楊潔篪)처럼 정치국에 진입할 가능성은 기본적으로 없다.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은 은퇴하는 것이다.

 

러위청은 중국외교부의 서열1위 부부장이다. 또한 부부장중에서 유일한 중공중앙 후보위원이다. 원래 차기 외교부장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던 인물이다.

 

현재 중국외교부의 사이트에는 여전히 러위청의 개인소개가 나와 있다. 그러나, "일상외교업무공작을 나누어 관장함"이라는 표찰은 없어졌다. 러위청은 2018년 3월 외교부 부부장이 될 때, 외교부의 공식사이트에는 "일상외교업무공작을 나누어 관장함"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필자가 2021년 8월 관련글을 쓰기 위해 외교부 사이트를 살펴보았을 때도 여전히 그 문구는 남아 있었는데, 그후 언제인지는 몰라도 이 표찰이 사라져버렸다.

 

이게 러위청이 이미 실세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전랑외교"는 대내적으로 역도태를 낳았다. 러위청이 충분히 '좌경'적이지 않아서 밀려났을까?

 

이런 추측도 있다. 친러배경의 러위청은 아마도 외부에서 중국의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에서의 실책으로 인하여 책임추궁을 당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금년 2월 4일, 시진핑은 베이징에서 푸틴과 회담한 후, 웨위청이 회담상황을 소개했다. 그때 이렇게 말한다: "중러관계는 상한도 없고(不封頂), 종점도 없으며, 주유소만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중국이 전체적으로 친러입장을 취한 상황하에서, 러위청의 언행은 정상적인 범주내이며, 그의 실세는 분명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외교계통은 역대이래로 중국내부에서 가장 "좌"적인 부서중 하나이다. 특히 최근 들어 당국이 "감히 투쟁하라"고 고취시키면서 소위 "전랑외교"를 외치는 분위기하에서, 어떤 관리들은 충분히 좌경적이지 못하여 역도태당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중국의 외교계에는 이런 숨은규칙이 존재한다: 승진하려면 반드시 '전랑'이 되어야 한다. 중공고위층에 충성을 표시하기 위하여, 관리는 국제적인 이미지는 돌보지 않고, 국내에서 훈련된 야만적이고 거친 모습을 그대로 국제무대에서 드러낸다. 그리고 사후에 상사로부터 칭찬을 듣는다. 지금 가장 유명한 "전랑"대변인 화춘잉(華春瑩), 자오리젠(趙立堅), 루샤야(盧沙野)등은 모두 최근 들어 논쟁에 휩싸이지만 계속 승진하거나 요직을 맡는다.

 

2021년 3월 중국 주프랑스대사관은 공개적으로 한 프랑스학자를 "소깡패"와 "분자(噴子, 마구잡이로 욕하고 공격하는 사람을 가리킴)"라고 공개저격했다. 그 학자가 중국의 대만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중국의 주프랑스대사 루샤야는 같은 해 6월 인터뷰때 "전랑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대표한다"고 발언한다. 루샤야는 이전에 주캐나다대사로 있었는데, 역시 화웨이와 멍완저우문제에 대하여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다가 캐나다에서 더이상 있을 수가 없게 되었고, 그러자 중국정부는 그를 프랑스로 옮겨준 것이었다.

 

중국 주파키스탄대사관의 문화참찬 장허칭(張和淸)은 2021년 6월 "우리는 바로 전랑이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한다. 그는 동시에 트위터에 아주 저속하고 모욕적인 색채의 "가운데손가락" 사진을 올린다. 여론이 시끄럽자 그는 글을 삭제한다.

 

중국 외교부대변인 화춘잉은 2020년 12월 10일 정례기자회견에서 외부의 비판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전랑이 되는게 어때서" 2021년 10월, 화춘잉은 외교부 부장조리로 승진한다.

 

러위청은 이 문혁회귀붐의 극좌분위기에서 명확하게 줄을 잘못 섰다. 2020년 12월 5일, 러위청은 일찌기 국제적인 강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에게 '전랑외교'라는 레테르를 붙이는 것은 최소한 중국외교에 대한 오해이다. 알아야 할 것은 중국은 예의지국이고, 이화위귀(以和爲貴, 조화, 화합을 귀하게 여긴다)의 나라이다...."

 

러위청은 당시 이런 재미있는 말을 하기도 했다: "반드시 욕먹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결심을 내려야 한다"

 

확실히 중국은 일찌기 예의지국이었다. 다만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근본으로 삼는 중공이 통치한 후, 일종의 당문화를 강제하는데, 그중의 하나가 투쟁학설이다. 투쟁은 반드시 격렬하고, 잔혹하고 피비린내나고 비인간적이다. 근년의 중국외교를 보면, 바로 거칠고 폭력적이며 야만적이고 공격적인 언행을 취한다. 이는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욕먹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러위청은 윗사람의 뜻을 잘 헤아리지 못했던 것같다. 기실 중국외교부의 그 중국인의 "이화위귀"의 조훈을 잊은 언행은 바로 중공최고위층이 독려한 것이다. "전랑"은 중공당문화에서 이미 폄하하는 말이 아니다. 화춘잉, 루샤야, 장허칭등 외교 '전랑'들이 앞다투어 전랑임을 드러낼 때, 러위청은 아마도 충분히 좌경적이지 못하다고 평가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외교계통에 더 이상 남을 수 없게 된 것이 아닐까?

 

전랑외교는 홍위병외교이다.

 

중공역사상 많은 '운동'이 있었고, 그것은 모두 사람의 낭성(狼性)을 훈련하는 것이었다. 중국 외교관은 현재 흉맹하고 싸움을 좋아하는 전랑의 자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문혁때 양성된 습관이다. 그래서 '전랑외교'는 '홍위병외교'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작고한 중국의 전 외교부장 황화(黃華)는 일찌기 <문혁시기의 황당외교>라는 글에서 이렇게 폭로한 바 있다. 문화대혁명이 개시된 후, 중국의 주외국대사, 참찬은 거의 모두 귀국을 명령받고 돌아와서 정치운동에 참가한다. 많은 사람들이 비투를 받았고, 주외국대사관은 정상적으로 업무를 진행할 수 없었다. 중국은 당시 이미 수교하거나 반수교한 40여개 국가들중에서 근 30개 국가와 외교분쟁을 벌였다. 그중 적지 않은 것은 중국측이 외교적으로 잘못처리해서 발생한 것이다. 중국은 일부 국가와의 외교관계는 악화되어 격하되거나 단교될 지경에까지 이른다.

 

글에 따르면, '극좌선전의 영향하에' 중국은 대외선전방면에서 '모택동사상을 선전하는 것'을 대외활동의 주요임무로 삼았다. "계속하여 내가 옳다는 태도로 상대방에게 잘못된 것을 강요하는 일이 벌어졌고" "대외교류에서 여러번 국제교류의 통상적인 규칙을 지키지 않고 행동을 거칠게 하거나 폭력적으로 하거나 지나치게 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외교관을 배양하는 각 외국어대학은 바로 '홍위병외교'의 발원지이다. 황화의 글에 따르면, 1967년 8월 20일 발생한 "영국대표처방화사건"은 북경외국어대학의 홍위병들이 앞장섰다.

 

주미대사로 있을 때 '홍위병'으로 조롱받던 전 외교부장 리자오싱(李肇星)은 바로 1967년 북경외국어대학 영어과를 졸업했다. 그는 아마도 영국대표처방화사건에 가담했을 것이다.

 

일찌기 가운데손가락을 치켜든 사진을 올렸던 중국주파키스탄대사관 문화참찬 장허칭은 자주 트위터에 모택동을 숭배하는 글을 올리고, 모택동어록을 인용한다.

 

중국에서 지금 재직하고 있는 1950년대생인 고관들은 젊었을 때 중국의 싸우기 좋아하는 투쟁적인 당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다만 현재의 젊은 외교관들은 왜 홍위병같은 작태를 보이는 것일까? 모두 중국이 배양한 젊은 외교관들이 쓰는 교재와 전체 외교이념이 홍위병식이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변하지 않았다.

 

문혁이후, 정권이 생존하기 위하여, 등소평은 일찌기 잠시 중국이 국제적으로 '도광양회'상태를 취하도록 한 바 있다. 최근 들어 중국은 득세했다고 여기며, 소위 "동승서강(東昇西降, 동양이 뜨고 서양이 진다)", "평시세계(平視世界)"등의 큰소리가 나타나고 있다. 모택동의 죽은 영혼이 부활하고, 문혁으로 되돌아간 양상이다.

 

지금 중국의 전랑은 국제외교계에서 돌진하면서 화를 불러일으킨다. 그 모습은 문혁때의 홍위병과 아주 비슷하다. 국제적으로 갈수록 고립되는 부정적인 효과도 역시 모택동의 당시 모습과 상당히 비슷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널리 알려진 '전랑외교'의 실체를 알고 있다. 중국 자신도 '전랑'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깡패외교' '홍위병외교'라거나 직접 '낭외교(狼外交)'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