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원)

대흑천(大黑天): 쿠빌라이군대의 수호신

중은우시 2020. 11. 4. 00:23

글: 홍희(洪熙)

 

쿠빌라이가 중원을 차지하고, 중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그의 군대는 아주 용맹하게 전진했으며, 파죽지세였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몽골군에는 수호신이 있다고 한다. 바로 '대흑천'이다. 이런 주장은 용맹한 제국군단에 더욱 신비한 색채를 더해준다.

 

진무대제(眞武大帝), 신강예경(神降預警)

 

몽골의 원태종4년(1232년), 즉 남송 소정5년, 이 해에 진무대제가 무당산에 현령(顯靈)하여, 사람들에게 미래의 겁난을 미리 경고한다. 무당산은 균주(均州)에 있다. 몽골대군이 아직 균주를 점령하기 전에, 진무대제가 현령하여, 한 줄을 글자를 써서 미리 경고한다. 그 글은 이렇게 쓰여있었다: "북방흑살래(北方黑煞來), 오당피지(吾當避之)"(북방에서 검은 살인자가 온다. 나는 피해야 겠다). 이어서 진무대제는 대송정(大松亭)에 삼일간 모습을 나타낸다. 현지의 백성들은 모두 이 기적을 보았다.

 

예전에, 진무대제는 무당산에서 수도를 하였으며, 적지 않은 신적(神迹)을 남겼다. 역대왕조때, 민간에서 적지 않은 백성들이 진무대제를 숭봉(崇奉)했다. 진무대제가 모습을 나타내자, 적지 않은 도사들과 백성들을 깨달았다. 이는 진무대제가 모두에게 잠시 피하라고 일깨워주는 것이다. 추길피흉(趨吉避凶)해야 한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행장을 꾸려 속속 무당산을 떠났다.

 

범용길반란(范用吉叛亂), 세겁무당산(洗劫武當山)

 

진무대제가 모습을 드러낸 후, 다음 해인 1233년 삼월, 균주에는 범용길의 반란이 일어난다. 범용길은 원래 금나라의 여진인이다. 여진이름은 보수루 구주(孛術魯 久住)이다. 그는 금나라의 기운이 다한 것을 보자, 1234년 금나라가 멸망하기 직전에, 남송조정에 투항한다. 남송의 황족 민충군왕(閩冲郡王) 조범(趙范)의 휘하에 들어간다. 그후 한자이름인'범용길'을 쓰게 된다.

 

남송조정은 범용길을 신뢰했고, 그를 태위(太尉)에 봉한다. 그리고 균주로 보내어 지키게 한다. 그는 일처리가 오락가락했고, 자주 바뀌었다. 그는 몽골군이 강대한 것을 보자 남송을 배신하고 몽골에 투항할 생각을 한다.

 

단평3년(1236년), 그는 균주에서 심복과 군대를 이끌고 남송관리를 살해하고, 대거 약탈을 한다. 그의 부하는 무당산을 약탈한다. 각 도관(道觀), 신전(神殿)의 귀중한 물품을 모조리 가져간다. 다행히 진무대제가 먼저 나타나서 알려주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미리 무당산을 떠나서, 평안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떠나지 않았고, 겁난을 당한다. 당시 무당산에는 105세된 노도사 조관묘(曹觀妙)가 있었는데, 그도 병사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몽골군이 송을 정벌할 때, 양양성에는 진무대제를 신봉하는 많은 주민이 있었다. 이들이 기도할 때도 유사한 경보를 듣는다: "대흑신이 있다. 병사를 이끌고 서북에서 온다. 나는 피해야 겠다." 아마도 하늘에서 신이 내려와 알려주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몽골군의 위세가 무서워서인지, 남송의 적지 않은 수성장수들은 몽골군이 밀려오자 투항을 한다. 몽골군은 칼에 피를 묻히지 않고, 적지 않은 성을 취할 수 있었다.

 

진무순천(眞武順天), 피대흑신(避大黑神)

 

균주의 진무대제가 대흑신을 피한 이야기는 당시에 널리 퍼졌다. 남송 함순원년(1265년), 유극장(劉克莊, 1187-1269)이 현지명산에 대한 시 <석축산이십영(石竺山二十詠)>을 썼는데, 그 중의 한 시는 다음과 같다:

 

문설균주경(聞說均州景) 균주의 경치가 아름답다는 말을 들어왔는데

이금완전진(而今涴戰塵) 지금은 전쟁의 먼지바람으로 더럽혀 졌구나

응수흑살제(應隨黑殺帝) 흑살제를 피해서 (진무)를 따라야할 것이고,

피지긍래민(避地肯來閩) 도망간다면 복건땅으로 와야할 것이다.

 

이 시를 보면, 유극장은 복건의 선귀사산(仙龜蛇山)에서 균주의 무당산을 연상하고, 귀사(龜蛇, 거북과 뱀)가 진무를 따라 전쟁을 피해 복건으로 왔다고 적었다.

 

중국은 고대에 황실에서부터 민간까지 모두 진무대제를 탕마천존(蕩魔天尊)으로 모셨다. 그는 북극사성(北極四聖)중 한명으로, 삼계(三界)내의 군마(郡魔)를 휘어잡는다. 그리하여 삼계내의 군마가 생령을 함부로 해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흑신이 병사를 거느리고 오자, 진무대제는 왜 그를 피해야 했을까?

 

하늘의 뜻이 송, 금을 멸망시키고, 몽골을 흥하게 하는 것이었다. 여러 신들도 모두 천의를 따라야 했다. 위의 기록을 보면, 진무대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송과 금나라의 기수(氣數)는 다했고, 몽골이 중원의 주인이 되어 중원을 통일할 것이었다. 이는 왕조교체의 겁수이다. 이 겁수에서 '범용길의 반란'은 그저 큰 겁난 중의 한 과정일 뿐이다. 신명은 하늘의 뜻을 따라 일을 행한다. 하늘의 안배를 쉽게 바꿀 수는 없다. 동시에 호생지적이 있어, 사전에 세상사람들에게 겁난이 일어난다고 알려준 것이다.

 

상사(上師)가 신전(神殿)을 만들어 호법(護法)을 청하여 군대를 보우하게 한다.

 

이 대흑신은 마가갈랄신(摩訶葛剌神)의 한역이다. 티벳불교의 호법신중 한명이다. 쿠빌라이가 병력을 이끌고 남송을 통일할 준비를 할 때, 일찌기 상사(上師) 파스파(八思巴)에게 물어본 바 있다: "지금 나는 이미 바얀(伯顔)을 보내 강남을 공격하게 했는데, 결과는 어떻겠는가?" 파스파는 말했다: "그는 대임을 담당할 만합니다. 제가 그를 위해 설법을 하여, 하늘에 길조를 내려달라고 청하겠습니다."

 

상사 파스파는 네팔사람 아니가(阿尼哥)를 청한다. 그는 뛰어난 건축가이며 조각가이다. 그가 만든 신상(神像)은 아름답고 뛰어났다. 파스파는 그에게 탁주(涿州)에 신전을 지어 그 안에 호법신인 대흑천(마가갈랄신)의 신상을 모시라고 한다. 얼굴은 남쪽 남송을 향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상사는 직접 신상의 개광(開光, 눈을 그리는 것)을 한다. 동시에 제자인 담파라마(膽巴喇嘛)로 하여금 여기에서 제사를 지내고 수련하도록 명하여, 쿠빌라이의 군대를 보호하게 한다.

 

지원13년(1276년), 대장 바얀이 군대를 이끌고 출정하여, 남송을 정복한다. 남송의 유주(幼主)와 황실성원들을 데리고 북경으로 돌아왔다. 도중에 탁주의 대흑천호법전을 지날 때, 송나라사람들은 호법신상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전에 병력을 이끌고 온 대흑거인이 원래 이곳에 있었구나!"

 

통재의 기록에 따르면, 몽골군이 상주(常州)를 공격할 때, 사람들은 대흑천신을 보았다고 한다. 대흑신은 천병을 이끌고 서북방향에서 왔고, 몽골군을 도와준다. 전신이자 몽골군의 수호신으로 보였다.

 

연우5년(1318년), 원나라의 공주 완택(完澤, 즉 노국대장공주)은 전녕로(全寧路)에 호국사(護國寺)를 건립하는데, 대흑천(마하갈랄신)을 모시는 절이었다. 문신 유관(柳貫)이 명을 받아 비명을 썼는데, 호국사비명이다. 명문은 개략 이러하다: "마하갈랄신은 한어로는 대흑신이다. 처음에 태조황제가 기틀을 세울 때부터 세조황제가 중원에서 싸워서 마침내 중원을 모두 정벌할 때까지, 항상 마하갈랄신을 융숭히 모셨고, 그가 나라를 지켜준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를 대호법신이라 하고, 큰 절을 세워 모셨다. 기도를 하면 들어주었다." 

 

비문에 따르면, 원세조 쿠빌라이가 송나라를 정벌한 것은 대흑신에게 호국의 공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를 대호법신이라고 부르면서, 큰 절을 지어 신상을 모셨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