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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대외관계

린쥔량(林俊良): 헌터 바이든을 중공과 연결시켜준 신비의 대만상인

by 중은우시 2020. 10. 18.

글: 임교안(林巧雁), 임기위(林麒瑋), 하철흔(何哲欣), 한정연(韓政燕), 정원술(程遠述)

 

1

 

미굳 대통령선거가 막바지에 들어섰다. 민주당 대통령후보 Joe Biden의 여론조사결과는 크게 앞서 있다. 현임 트럼프 대통령이 4년전에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대역전을 이루지 못하면, 바이든이 백악관 주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선거전말미에 바이든가족의 문제는 계속 폭로되고 있다. 그의 아들 Hunter Biden은 부통령인 부친의 관계를 이용하여 우크라이나에 압력을 가한 것이 발견되고, 미중관계가 긴장된 분위기하에서, 바이든 부자는 과거 40년간 중국의 정계, 상계와 밀접한 왕래를 가졌다고 크게 얻어맞고 있다. '중국의 치어리더'라는 조롱까지 받고 있다.

 

바이든의 외국관련 문제들 중에서 헌터 바이든은 계속 도화선이 되었다. <빈과신문망>이 독점취득한 바이든가족의 중국관계에 대한 근 40페이지의 영문으로 된 기밀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10년간 헌터 바이든을 도와 중국의 정,상계와 연결시켜준 인물은 한 신비한 대만상인이었다.

 

바이든 부자를 중국과 연결시켜준 사람은 현재 나이 57세의 린쥔량(Michael Lin)이다. <빈과신문망>의 조사에 따르면, 린쥔량은 정치대학 국제무역과를 졸업하고, 미국의 명문대학 예일에서 경영학 석사를 졸업했으며, 대만의 수위공성증권, 금정증권등에서 일한 바있다. 다만 그의 과거 10여년간의 일은 대부분 미국과 중국의 정상계 고위층간을 연결시키는 일을 해왔다.

 

미국 USSS의 기록에 따르면, 헌터는 부친이 부통령으로 있는 동안 최소한 중국을 6차례 방문했고, 그중에는 린쥔량이 중간에서 연결시키는 역할을 맡았었다.

 

사실상, 린쥔량이 중국과 미국의 정,상계에서 특수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일찌기 타이완의 국가안전기관으로부터 그가 민감한 신분을 지닌 것이 아닌지 의심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미국, 중국, 대만의 정치사정을 잘 아는 인사의 분석에 따르면, 바이든은 '친중국적이고 대만에는 냉담했다' 만일 바이든이 당선되면, 린쥔량과 같은 사람을 발탁하여 미국,중국,대만관계에서 호풍환우하게 될 것인데, 결국 대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가 주목하는 점이다.

 

사실상 린쥔량은 헌터를 중국과 연결시켜주었을 뿐아니라, 그를 대만으로 끌고와 자금을 확보하는 것을 돕기도 했다.

 

2011년 4월 16일부터 20일까지, 헌터는 Rosemont Real Estate Acquisitions Fund의 고문신분으로, 타이완을 5일간 조용히 방문한 바 있다. 그중 둘째날인 17일에는 국민당의 색채가 농후한 공상건연회(工商建硏會)가 세무연의사(世貿聯誼社)에서 만찬을 개최하고, 이들 신분이 특수한 미국인들을 초대했다. 

 

이번 저녁식사자리에 참석한 미국측 사람은 모두 8명이다. 그중 3명은 오바바집권시기에 미국정치권의 실력자들 2세들이다. 부통령 바이든의 아들 헌터 이외에 린쥔량과 Thornton그룹을 함께 만든 James Bulgar(Thonton 그룹 회장)이 있는데, 그는 매사추세츠주의회의장의 아들이다. 

 

또 한명 Devon Archer는 오바바대통령때의 국무장관 케리와 관계가 밀접하다. 그는 케리의 아들과 예일대학의 룸메이트이고, 캐리가 2004년 대통령선거에 참여하고자 했을 때, 그의 참모를 지낸다. 그리고 그는 케리의 아들과 Rosemont Capital이라는 회사를 공동으로 창업하였다.

 

식사자리를 마련한 인물은 린쥔량이다. 그는 미국 입법지도자기금회(SLLF)의 아시아분회 회장의 신분으로 참석한다. SLLF는 미국의 정상계에 영향력이 큰 조직이고, 린쥔량이 헌터등 정치계의 2세들을 데리고 중국으로 오갈 수 있는 뒷배경이기도 하다.

 

식사자리에서 정계 2세의 신분을 맞추기 위해, 건연회는 머리를 굴려 당시의 행정원장이며 정게에서 마잉주가 부총통 런닝메이트로 삼을 것이라고 알려진 우돈이(吳敦義)이 장남 우쯔롄(吳子廉)을 초청했다. 그러나, 우쯔롄은 시간을 낼 수 없어서, 우돈이이 딸 우쯔안(吳子安)이 참석한다. 이것도 이번 식사의 또 하나의 촛점이다.

 

우쯔안을 제외하고 타이완에서 참석한 사람은 모두 건연회에서 영어를 비교적 유창하게 하는 회원들이다. 당시의 이사장 우자린(吳嘉璘), 부이사장 레이주강(雷祖綱), 천연고무협회 이사장 쉬정관(徐正冠), 푸셔우실업 동사장 홍야오쿤(洪堯昆), 진위기업 동사장 캉밍위안(康明淵), 자휘이집단 총제 챠오페이웨이(喬培偉), 타이완진 총경리 황셔우줘(黃壽佐), 바오라이완씨선물 부동사장 저우샤오링(周筱玲), 중신은행 집행부총재 장웨이핑(江偉平)...등 12명이다.

 

교류내용은 글로벌정치경제형세, 미국부동산시장, Rosemont Fund의 아시아에서의 자금모집등 문제였다. <빈과신문망>은 참석자 몇몇을 접촉하였는데, 대부분 "여러해 전의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 "20여명이 한 탁자에 둘어앉아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얘기를 나누기 어려웠다"는 식으로 내용에 대하여는 얘기하기를 꺼렸다.

 

그중 한 참석자는 이렇게 말한다. 헌터는 식사때 상당히 조용했다. 단체사진을 찍을 때도 제일 뒷줄에 섰고, 얼굴도 가렸다. "그는 아시아를 낯설어 하는 것같았고, 아마도 타이완에 처음 온 것같았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보기에 정파로 보였다. 탐관오리같지 않았고, 사업하는 사람같지도 않았다."

 

식사때 누군가가 헌터에게 Rosemont에서 경영하는 업무에 대하여 물었는데, 헌터는 부동산기금은 통상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지분을 가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익분배만 받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헌터의 기금은 이 두 가지와 다르다고 했다. 그의 방식은 먼저 투자자들에게 투자에 흥취가 있는지 묻고, 만일 그에게 세번 보내도 투자에 흥미가 없다면 그후에는 더 이상 관련자료를 보내지 않는다고 했다.

 

헌터는 당시에 타이완을 hub(투자센터)로 만들 생각도 있는 것같았다. 단지 나중에 타이완에 와서 판도를 확장하지 않았다. 어떤 참석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바이든이 당선되면, 헌터는 아마 다시 올 수있을 것이다."

 

린쥔량에 대하여 접촉해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에게 무슨 호감은 없다. 그는 고자세였다. 그와 교류하면 여러가지 좋은 점이 있을 것이라고 나타내면서. "그래서 사람을 편하게 여겨지지 않게 했다."

 

다만, 사실상 미국과 중국 사이를 오가는 정치브로커는 수도 없이 많다. 린쥔량은 그러나 절대 보통인물은 아니다. 미국에서 그는 자신의 힘으로 미국명문 예일대학의 경영학 석사를 땄다. 그리고 교묘하게 헌터, 불거등 미국정계의 2세들과 연결했고, 또한 SLLF를 배경으로 삼아, 중국고위층을 뚫고 들어가는 자산으로 삼았다. 

 

비록 과거 십여년간 잘 나갔지만, 트럼프가 당선된 후 미중관계가 긴장되고, 타이완에서도 국민당이 세력을 잃어, 린쥔량과 같은 사람은 최근 몇년간 타이완에서 활동이 거의 없었다. 관련인사가 토로한 바에 따르면, 린쥔량은 중국에서 금전문제로 소송이 있어 중국정부로부터 출국금지를 당해 타이완으로 돌아올 수 없으며, 현재 사람은 베이징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빈과신문망>은 기사를 쓰기 전에 린쥔량이 가진 여러 대의 중국과 대만 핸드폰번호로 연락했으나, 이미 사용정지되었거나 닫혀 있었다. 린쥔량의 매형인 돤(段)선생과는 연락이 닿았으나, 그는 이미 린쥔량과 1년정도 연락이 없다고 말했고, 연락처도 모르며, 린쥔량이 중국에 있는지 아닌지도 모른다고 했다. 린쥔량의 이메일에 회신을 부탁한다고 적어놓았지만 여전히 회신이 없다.

 

2

 

미국 민주당 대통령후보 조 바이든의 아들 헌터 바이든은 중국에서 근 10년간 사업을 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헌터 바이든은 부잣집도련님에서 중국자본을 유치하는 초재묘(招財猫)로 변신한 것은 부친의 배경이 대단한 것을 제외하고, 대만상인 린쥔량이 관건이었다고 한다.

 

USSS의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4년까지, 개략 4.5년동안 헌터는 부친이 부통령이므로, 그의 출국일정에는 수행원이 따라다니며 보호했다. 그중 그는 중국에 6차례 갔으며, 그가 여러 곳을 방문한 사진에는 린쥔량이 그와 함께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린쥔량은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린쥔량의 현재 나이는 약 57세이고, 1982년부터 1986년까지 대만정치대학 국제무역과에서 공부했다. 그러나 그와 비슷한 시기에 같은 과에서 공부한 동창에 따르면 그에 대하여 그다지 기억나는 것이 없다고 한다.

 

정치대학 국제무역과를 졸업한 후, 그가 전문가들의 SNS인 Linkedin에 올린 자기소개는 다음과 같다:

 

린쥔량(57세)

학력: 정치대학 국제무역과(1982-1986)

       미국 예일대학 경영대학원 공공및사인경영학 석사(1991-1993)

경력: 

   미국: JP Morgan 외환거래및자금관리원

          손톤그룹 공동창업자

          미국입법영수기금회(SLLF) 아시아중국대표

   중국/홍콩: 미국아메리칸익스프레스, 베어링스등 은행투자재무부문

                 북대방정 국제투자부문책임자

                 건풍균성집단 동사국 집행주석

                 해승의료집단 공동창업자

  대만: 도이체방크 대만지구수석대표

         수위공성증권 총경리

         금정증권 대중화구 집행장

         걸출기업지도자 <금봉장>

 저서: WTO이후의 중국투자: 투자은행의 눈으로 본 기회와 리스크

 

여기에 따르면, 1980년대말 미국의 J P Morgan과 American Express 에 근무했다고 한다. 그러나 은행국의 자료에 따르면, 이 두 은행은 1990년대 후반에 타이완에 진출했다. 그래서 린쥔량이 최초에 외국계은행에서 일한 것은 분명 타이완이외의 지역에서 근무한 것일 것이다. 가능성이 큰 곳은 홍콩이나 뉴욕이다.

 

잠시 일을 하다가 린쥔량은 1991년 미국의 명문대학 예일대학 경영대학원에 들어간다. 예일대학 1993년 졸업기념책에는 린쥔량이 MPPM학위를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대체로 나중의 MBA기업경영석사학위에 상당한다고 할 수 있다.

 

린쥔량이 예일대학 경영대학원을 다닐 때, 거기는 와호장룡의 장소였다. 저명인사로는 중국에서 유명한 롱텅자본(龍騰資本)의 창업자 양샤오원(楊小雯)이 있다. 양샤오원은 중국에서 최초로 창업투자에 종사한 전문가이다. 인터넷의 거두 텐센트에 최초로 투자한 투자자일 뿐아니라, 소후, 시나닷컴, 포커스미디어등 중국의 저명한 회사에도 투자한 바 있다.

 

그외에, 홍콩의 저명한 투자전문가이자 중환자산투자의 COO인 에디 탐(譚新强)도 린쥔량이 예일대학 경영대학원의 동기동창이다.

 

린쥔량은 예일을 졸업한 후, 금융업에 투신한다. 그는 홍콩의 Bearings Bank에 재직한 바 있고, 도이체방크의 대만지구 수석대표도 지낸다.

 

주식시장, 금융권의 유명한 타이완선생으로 불리는 Peter Kruz(중문이름 谷月涵)은 린쥔량이 쓴 책에 추천사를 쓴 바 있는데, 그는 린쥔량과 홍콩에서 함께 근무한 적이 있다고 했다: "중국주식시장이 여전히 국제금융시장화 밖에 있을 때" 그들은 함께 중국주식시장을 연구했었다고 했다.

 

2000년대초기, 린쥔량은 외국기업에서 일하던 것을 그만두고, 타이완으로 돌아온다. 당시 겨우 24살이다. 미국에서 금방 돌아온 지룽얼신(基隆二信, 기륭시제2신용합작사)의 셰(謝)씨집안의 제3대 셰궈량(謝國樑)과 함께 사씨집안 산하의 '공성증권'을 디지털화한다. 주로 당시 막 시작된 인터넷에서의 주문을 시작한 것이다. 세궈량은 당시 수위공성증권의 부동사장이고, 린쥔량이 CFO, COO 겸 CEO를 맡는다.

 

셰궈량은 이렇게 회고한다. 당시 린쥔량은 막 타이완으로 돌아왔고, 그는 린쥔량이 젊으면서 고학력이고 전문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관련업무를 하도록 초빙했다고 한다. 그러나 린쥔량은 겨우 2,3년간 일하고 공성증권이 화남영창증권과 합병되면서 이직한다.

 

셰궈량은 이렇게 말한다. 린쥔량은 일을 잘했다. 그러나 일처리는 비교적 조용히 겸손하게 했다. 특히 최근 몇년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미감하다보니, 린쥔량의 행동은 더욱 신비스러워졌다. 그는 비록 린쥔량과 개인적인 교분이 있지만, 최근 몇년동안은 그다지 만나보지 못했다고 한다.

 

셰궈량은 또한 린쥔량은 헌터처럼 대단한 부친을 둔 것도 아니고, 그가 아는 바로는 아무런 특수한 배경이 없다. 모든 것은 스스로 공부하고 스스로 쌓은 지식으로 지금까지 온 것이라고 한다.

 

린쥔량이 수위공성증권을 떠날 때가 개략 중국과 타이완이 차례로 WTO에 가입하던 시기이다. 글로벌 '중국붐'이 일어날 때였다. 린쥔량은 나중에 타이완 금정증권 고급부총재의 명의로 중국 재경권에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중국의 재경잡지가 그와 인터뷰할 때, 그는 자랑스럽고 유머스럽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타이완의 주식시장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지의 주식시장은 잘 알고 있다."

 

2002년초, 린쥔량은 <WTO이후의 중국투자>책을 출간한다. 적지 않은 내용은 중국시장에 대한 열정적인 상상으로 가득했다.

 

예를 들어, 제1편 <중국을 보려면 문도(門道, 요령, 연줄)를 봐야 하고, 붐을 봐서는 안된다>는 부분에 이렇게 쓴다: "붐을 보는 사람이 보는 중국은 하나의 경찰국가, 일당독재, 자원독점, 인권무시이다. 문도를 보는 사람이 보는 대륙은 개혁경제체, 빠른 속도, 방대한 동력, 죽어라 일하는 힘 그리고 국제사회와의 정합이다." 

 

이 책에 린쥔량은 당시 대륙위원회 부주임을 맡고 있던 덩전중(鄧振中)에게서 추천서문을 받는다. 당시 대륙위원회 주임은 바로 지금의 차이잉원 총통이다. 그러나, 현재 정무위원을 맡고 있는 덩전중은 이렇게 말한다. 서문을 써준 것은 이미 여러 해 전의 일이고, 그후에는 더 이상 린쥔량과 연락하지 않았다.

 

린쥔량은 이 책의 자서(自序)에서, 자신이 공직에 들어가 '경세제민'하고 싶은 바램도 토로했다. 그러나 이런 바램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타이완에서 관직을 얻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2005년 베이징으로 옮겨간 후, 그의 신통광대한 정치로비스트로서의 생애가 전개도기 시작한다. 미국과 중국의 정계,상계의 엘리트들 사이를 오간다. 헌터 바이든도 그 중의 한 명이다.

 

린쥔량은 최근 들어 미국과 중국에서 활동하고, 타이완에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오랫동안 일한 금융투자분야의 전문지식을 가지고, 헌터를 도와 중국에서의 투자대상을 찾았다. 그러나 몇년전에 그는 돌연 무대를 바꾼다. 문화인터넷드라마분야로 뛰어들어, 중국, 미국의 적지 않은 기관들과 합작을 협의했다. 그러나 시간은 겨우 1년정도이다.

 

작년말, 그는 다시 홍콩에 해승의료집단을 설립한다. 중국의 저명한 투자회사, 대학 및 의료단체와협력하고 있다고 하며, 페이스북과 웹사이트에는 여러 우한폐렴에 관한 뉴스와 정보를 싣고 있다. 마치 신종코로나사태가 전세계로 만연할 때, 그는 다시 새로운 돈버는 출로를 발견한 듯하다. 

 

3

 

바이든가족은 중국에서 근 10년간 활동했다. 주로 조 바이든의 아들 헌터 바이든이 '부친을 대신하여 운영'한 것이다. USSS의 기록에 따르면, 헌터는 부친이 부통령을 맡은 기간동안 모두 6회(2013년 6월 13일, 14일 상해, 북경을 방문한 것은 2회로 계산해서)이다.

 

<빈과신문망>이 헌터의 방중일정을 조사해보고 그후에 이루어진 거래를 보면 항상 린쥔량이 선을 연결시켜준 흔적이 있다.

 

타이완출신으로 조용하게 다니는 린쥔량이 도대체 무슨 수단으로, 바이든가족을 위하여 이 공산국가의 대문을 열어준 것일까?

 

<빈과신문망> 단독취득한 바이든가족과 중국관계에 대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린쥔량은 2007년 미국의 한 정치인2세와 Thornton Group을 설립한다. 목적은 "서방시장의 비지니스경험을 아시아본토시장에 대한 통찰과 관계망과 결합시키는 것"이다. 

 

이 말은 겉으로 보기에는 고심막측하지만, 실제는 중국에서 장사할 때 통상적으로 말하는 이것이다: "관계가 있으면 관계없다; 관계가 없으면 관계를 찾아야 한다" 린쥔량은 손톤그룹을 설립하기 전에, 이미 중국시장에 10년간 공을 들였고, 이런 이치를 잘 알고 있었다.

 

린쥔량의 파트너인 정치인2세는 James Bulger(스스로 붙인 중문명은 薄杰雙이다)이다. 그의 부친은 매국 매사추세츠주의 상원의원이고, 백부는 매사추세츠주의 유명한 마피아두목이다. 흑백양도를 종횡하는 집안이다.

 

또 다른 두 명의 주주도 미국 동부지구의 유명한 정계의 자금줄이다. 손톤그룹은 농후한 정치적 색채를 띄고 있다. 워싱턴의 정계를 잘 아는 인사에 따르면, 린쥔량은 당시 이미 조 바이든의 아들 헌터를 알았다고 한다.

 

손톤그룹을 설립한 초기에 미국정계에 실력이 있는 미국입법영수기금회(State Legislative Leaders Foundation, SLLF)와 관계가 밀접했다.

 

SLLF는 표면적으로는 비영리, 다당파, 독립의 비정부조직이나, 그 이사와 구성원은 거의 모든 미국 주의 입법, 정당지도자들이다. 고문단은 다수가 미국의 각 다국적기업, 협회와 기구의 지도자들이다. 그러므로 미국각계에 실질적인 영향력이 있다.

 

이런 강력한 배경이 있으므로, 2007년 손톤그룹이 미국에 등장할 때 직접 중앙으로 연결된다. SLLF의 대표를 중공고관 및 부호들과 만나게 해주는 것이다. 접견한 인사는 전인대부위원장 쉬자루(許嘉璐), 그리고 북대방정집단 전 동사장 웨이신(魏新)등이 있다.

 

북대방정은 북경대학이 설립한 유명한 중국의 국유기업집단이다. 주식은 홍콩증시에 상장되어 있다. 전년말에 약 3.8만명의 직원이 있고, 총자산은 3,606억위안에 이른다. 집단 자체가 중공중앙내의 북대정상계 인맥권이다. 또한 밀접한 연계가 있다.

 

미국의 명문대학 예일을 졸업하고,다시 여러 외상투자부서에서 일한 적이 있는 린쥔량은 중국에서 발전할 때 북대방정에서 국제투자부문의 책임자를 맡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가 손톤그룹과 SLLF아시아분회 책임자의 명의로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 관계망도 북대방정, 북경대학, 전인대의 선을 따라 발전시킨다. 그리하여 직접 중공중앙에 이른다. 일반적인 타이완상인들이 사무적인 대만판공실계통을 통해 인맥을 발전시킨 것과는 아주 크게 달랐다.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손톤그룹은 중국에 진입한 후 3년동안 린쥔량이 중간에 선을 놓아 여러 미국, 중국관리의 교류활동을 진행한다. 중공외교기관과의 왕래가 특히 빈번했다. 외사위원회와 중공중앙통전공작부등의 단위를 포함하여.

 

린쥔량이 도대체 어떤 재주를 가지고, 일반인은 들어갈 수도 없는 중국외교의 고위층과 연결될 수 있었을까? 소식통에 따르면 기실 이치는 간단하다고 한다. 린쥔량이 헌터 바이든을 꽉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식통의 분석에 따르면, 바이든이 부통령이되기 전에 미국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이었다. 이미 전세계 각국의 대미외교계는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끌어들이려는 인물중 한 명이었다. 나중에 그가 부통령이 되었으니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린쥔량이 헌터라는 바이든의 아들을 쥐고 있으니 이런 관계를 이용하면 중공고위층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바이든 가족에 있어서. 린쥔량은 타이완출신이지만, 그는 국민당과 가깝고, 중국에 가까우며, 또한 미국의 엘리트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다. 중국의 외교인원과 교섭할 때 추가로 우려할 사항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도와 중국에 진출할 때의 최선의 가이드가 될 수 있었다.

 

2010년, 린쥔량은 성공적으로 헌터와 선을 연결시켜, 헌터는 미국 부통령의 아들이자 Rosemont Seneca 그룹의 부총재의 신분으로 중국을 최초로 방문한다. 

 

손톤그룹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헌터의 제1차 일정에 린쥔량은 여러 중공의 핵심금융기구 고위층과의 만남을 어레인지한다. 3일간의 일정은 스케줄이 꽉 차있었고, 많은 사람들은 모두 헌터의 미래 중국에서의 사업파트너가 되고 싶어했다.

 

2012년, 헌터는 중국국영기업과의 합작을 시작한다. 첫번째 거래는 규모가 컸다. 헌터의 고문회사인 Seneca Global Advisors는 미국,중국간의 12.5억달러 및 4,200만달러의 지분투자를 완성시키는데, 그해 미국에서 한 최대의 창업투자건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서명할 때 중국대표는 바로 당시의 중국국가부주석 시진핑이었다.

 

2013년, 린쥔량은 헌터를 도와 중국에 진입하는 대표작을 설립한다.

 

이는 미국, 중국정부가 합작하고 전문적으로 다국적인수합병투자를 하는 프라이빗펀드회사인 "BHR Partners(渤海華美)"이다. 상해에 설립되었고, 서명식에 린쥔량, 헌터, Bulger가 모두 참석한다. 헌터는 이사직을 맡고, 2015년이 되어서 이사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2017년 헌터는 BHR의 10%지분을 환매한다.

 

린쥔량이 SNS매체 Linkedin에 소개한 바에 따르면, BHR Partners는 중국 국무원의 비준을 받았고, 자산은 25억달러에이른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헌터(그의 투자회사인 Skaneateles LLC를 통하여), 손톤그룹도 여전히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Thornton의 공동창업자 Bulger는 여전히 이사로 남아 있다.

 

2017년, 린쥔량은 바이든이 미국에서 한 공개활동인 American Promise Tour에 얼굴을 나타낸다. 소식통에 따르면 린쥔량은 지금도 바이든가족과 연락을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