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문학/무협소설

화섭자(火攝子): 어떻게 입으로 불면 불이 붙을까?

중은우시 2020. 8. 10. 23:45

글: 역사전쟁(歷史戰爭)

 

고대에 자연계의 번개현상으로 지구에는 불이 나타났다. 고대인들은 불의 작용을 알아차린 후, 맹수를 쫓을 수 있을 뿐아니라, 어둠을 밝힐 수도 있고, 온기도 얻을 수 있으며, 음식을 익힐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불을 만들고 통제하는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이 기술도 간단하지는 않았다.

 

수천년전, 인류는 오목거울을 이용하여 불을 얻을 줄 알았고, 타화석(打火石), 화섭자(火攝子)등이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신기한 화섭자는 라이터처럼 입으로 불기만 하면 불이 붙었다. 이건 어떻게 한 것일까? 고대인들의 지혜에는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화섭자의 발명자는 남북조시기의 이름모를 한 궁녀였다. 사서 기록에 따르면 화섭자가 최초로 나타난 해는 577년이다. 당시는 전란시기였고, 그로 인하여 자원이 부족했다. 불씨를 보존하기가 쉽지 않았다. 북제(北齊)의 한 궁녀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다. 두꺼운 종이를 단단히 만 다음에 그 후에 불을 붙이고 다시 불을 끄면 아주 쉽게 불씨를 보존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궁녀의 아이디어는 성공했다. 이것이 바로 화섭자의 안에는 인(磷)과 산소를 발생시키는 물질을 바른다. 기온이 높을 때, 돌연 힘있게 화섭자를 불면, 화섭자와 산소가 충분히 접촉한 후 극렬한 반응을 일으키며, 불이 붙는 것이다.

 

불을 사용하고 나면 다시 끄면 된다. 이렇게 하면 화섭자는 불이 붙이지 않았을 때는 붉은 색의 밝은 점이 은은히 연소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렇게 하여 오랫동안 꺼지지 않고 불씨를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화섭자도 한 종류는 아니다. 나중에 화섭자는 휴대하기 편하게 바귄다. 엄지손가락 굵기의 죽통안에 지권을 넣는다. 화섭자에 쓰는 종이는 보통의 구멍을 내지 않은 지전(紙錢)이나 초지(草紙)이다. 이것을 말았을 때 단단한 정도가 적절한 것이다. 말아서 죽통안의 크기만큼으로 만들어서 죽통에 넣는 것이다. 그후에 불을 붙이고, 다시 쓸 때는 두껑으로 닫아둔다.

 

죽통두껑도 신경을 써야 한다. 불에 타서 탄화된 후의 두껑이어야 한다. 불이 필요하면 두껑을 열고 화섭자를 향헤 가볍게 불면 된다. 부는 것도 요령이 필요하다. 그러면 불이 붙는다. 쓰지 않을 때는 다시 죽통두껑으로 닫아두면 된다.

 

명나라 만력연간에 진진룡(陳振龍)은 여송도(呂宋島, 지금의 필리핀)에서 장사를 할 때 ,현지에 심는 주서(朱薯, 고구마)를 발견한다. 가뭄을 잘 견뎠다. 익혀서도 먹을 수 있고, 생으로도 먹을 수 있다. 그래서 그는 고구마줄기를 물먹인 밧줄 속에 넣어서 중국으로 가져간다. 그때부터 중국에도 고구마가 있게 되었다.

 

비교적 좋은 화섭자의 종이제조방법은 고구마덩굴을 물 속에 담그고, 다시 꺼내서 찧는다. 그후 면화, 갈대술을 넣고 다시 찧는다. 그후에 말린다. 다시 초석(硝), 유황(硫黃), 송향(松香), 장뇌(樟腦)등 불이 잘 붙는 물질과 여러 향로를 추가한다. 마지막에는 밧줄모양으로 만들어 불을 붙인 후 죽통 안에 넣고는 죽통두껑을 닫아둔다.

 

사용할 때는 죽통두껑을 열고, 한번 불면 불이 붙는다. 그러나 이런 류의 화섭자는 아주 비싸다. 보통 사람은 사용할 수 없다. 대부분은 봉건시대의 부자나 귀족들이 사용했다.

 

그외에 화겸자(火鎌子), 화석(火石), 화지(火紙)의 화섭자도 있다. 화겸자는 약 4센티미터 정도의 한쪽은 얇고 한쪽은 두꺼운 쇳조각이고, 화석으로 비교적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석영석(石英石)이다. 두 개를 부딛치면 불꽃이 튄다. 화지를 가져다대서 불을 붙인다.

 

비록 고대는 현대처럼 편리하지 않지만, 고대인들도 지혜가 있었다. 여러 방법으로 불을 만들 줄 알았다. 가장 원시적인 것은 부싯돌이다. 1823년 독일의 화학자 되베라이너는 수소가 백금을 만나면 불이 붙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의 이름을 따서 '되베라이너의 램프'라고 불리는 최초의 라이터를 만들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