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소가노대(蕭家老大)
하왕조는 중국사서에 기록된 최초의 세습제 왕조이다. 건국자는 요순우(堯舜禹)시대의 우(禹)이다. 하왕조는 전후로 약 471년간(기원전2070년-기원전1600년) 존속했고 후인들은 스스로를 '화하(華夏)'로 자칭하여, 중국의 대명사가 된다.
3,600년전에 상(商)이 하(夏)를 멸망시키고 상탕(商湯)이 상왕조를 건립한다. 당시 하왕조의 수도는 현재의 정주(鄭州)와 낙양(洛陽)의 사이에 있는 언사현(偃師縣) 일대에 위치하고 있었다. 상탕이 건립하기 시작한 초기 상왕조의 수도는 당시 하왕조의 수도 부근에 있었다. 즉 현재의 정주(鄭州) 상성(商城) 유지이다.
하왕조의 마지막 왕은 하걸(夏桀)이다. 상탕이 하걸을 이길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역사적인 설명은 이러하다: 하걸은 포악하고, 생활이 음란하며, 나쁜 짓을 많이 벌였다. 상탕이 하를 멸망시킬 수 있었던 것은 하걸의 잘못 때문이다.
역사는 모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견해는 역사적으로 정설이 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의 역사시기에 하와 상은 서로 다른 부락이다. 그들 간는 확실한 종속관계는 없었다. 그들은 서로 이웃하고 각자 독립적으로 발전했다. 상왕조말기의 서부 기산(岐山)에 위치하고 있었던 종속국인 주(周)와는 전혀 달랐다. 주무왕은 군대를 모아 반란을 일으켰고, 종주국인 상왕조의 주왕(紂王)을 멸망시켰다. 즉 그들간에는 종속관계가 있었다.
사회생산력발전과 문화발전의 각도에서 보자면, 선진문화와 선진생산력이 항상 낙후문화와 낙후생산력을 대체하는 법이다. 낙후된 곳은 가벼우면 얻어터지고, 무거우면 멸망한다. 당시 상부락은 사회생산력발전과 문화발전의 면에서 하왕조와는 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러므로, 하걸이 무도했던 아니건, 상탕이 하를 멸망시키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왜 상부락은 사회생산력과 문화발전에서 하왕조보다 질적으로 뛰어났다고 말하는가?
하남 낙양분지에 위치한 이리두(二里頭) 유적지의 연대는 약 지금으로부터 3,800년에서 3,500년전이다. 고대의 하, 상왕조에 상당한다. 고고학과 역사문헌학의 고증에 따른 최초의 도성유적지는 동시기 최대 규모의 도성유적지이다. 사학계에는 '최초의 중국'이라고 칭해진다. 그러므로, 2019년부터, '이리두유지박물관(二里頭遺址博物館)'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이리두유적지는 4개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고증에 따르면, 이리두유적지의 제1, 제2시기는 하문화에 속한다. 이 시기에 출토된 기물은 거의 모두 도기(陶器)이다. 그럴 듯하게 발전한 청동기는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고증에 따르면, 이리두유적지의 제3, 제4시기는 상문화에 속한다. 이 시기에 돌연 장기간의 기술축적이 필요한 상당히 정교한 청동기가 출토된다. 도기에서 청동기까지, 점토질에서 금속질까지의 거대한 비약이 일어난 것이다. 이는 시대를 구분하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상부락이 청동의 제련방법을 장악할 수 있었다는 것은 상부락의 농업생산도 하왕조를 훨씬 앞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시대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생산력발전의 방면에서 상부락은 이미 하부락을 전면적으로 추월했다.
그외에 고증에 따르면, 이리두유적지의 제1, 제2시기에는 문자가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이리두유적지의 제3, 제4시기에는 돌연 비교적 성숙된 갑골문이 나타난다. 문자의 발전은 극히 완만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제3, 제4시기에 출현한 비교적 성숙된 문자는 분명 상부락이 자신의 발원지에서 하나라수도로 가져온 것일 것이다.
생산력의 발전과 문화의 성숙도에서 보자면, 상부락은 하부락을 전면적으로 앞서 있었다. 상부락은 선진적인 생산력과 선진적인 문화를 대표한다. 사회발전의 각도에서 보자면, 선진은 반드시 낙후를 대체한다. 그러므로, 상탕이 하를 멸한 것은 필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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