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사회/우한폐렴

런즈창사건이 불러온 시진핑의 집권위기

중은우시 2020. 4. 1. 21:39

글: 왕우군(王友群)


'우한폐렴'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때, 중국의 국가부주석 왕치산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태자당이자 부동산기업가이며, 사람들이 '런대포(任大砲)'라고 부르는 런즈창이 시진핑을 폭격한 글로 인하여 '실종되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시진핑에게 어떤 영향을 불러올 것인가?


시진핑과 기업가의 관계


런즈창은 1993년 베이징화위안(華遠)부동산주식유한공사를 설립했고, 동사장 겸 총경리를 맡아, '화위안'브랜드를 만들어, 부동산업계에서는 아주 높은 지명도를 지니고 있고, 대륙, 홍콩, 해외의 여러 억만장자 기업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3월 22일, 홍콩 양광(陽光)위성TV 동사장 천핑(陳平)이 중공전국인대위원장 리잔슈(栗戰書)에게 보내는 공개서신을 포워딩했다. 그 서신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현재의 신종코로나상황, 국내경제와 국제관계의 엄중한 국면에 비추어, 강렬하게 긴급 정치국확대회의를 소집개최하여, 시진핑이 계속 국가주석, 중공총서기 및 군위주석을 맡는 것이 적합한지 여부를 토론할 것을 호소한다. 리커창, 왕양과 왕치산 3명이 영도소조를 만들어, 회의의 소집개최를 책임져야 한다. 건의서에는 시진핑의 집정이래의 평가에 대하여 그 중요성이 '사인방'타도에 비추어 낮지 않다고 말한다.


천핑은 미국의 소리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것이 많은 사람, 특히 체제내의 사람들의 생각이라고 본다. 이 특수한 점은 현재 항상 하나의 (해결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항상 이런 상태로 둘 수는 없다. 이렇게 계속되면 중국은 분명히 좋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아마도 하나의 길일 것이다."


3월 26일, 인터넷에는 마윈등 50여명의 '최고수준의 기업가'들이 연명으로 리커창을 통하여 시진핑에게 서신을 보냈고, '런즈창석방'등 9개의 건의사항을 담았다고 한다. 이 서신을 마윈등이 연명으로 서명하였는지는 의문이 있다. 다만, 런즈창의 배후와 수중에는 거액의 자산을 가진 일련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절대로 일반사람들은 아니다.


예젠잉(葉劍英)의 양녀이자 자유파작가인 다이칭(戴晴)은 1980년대 활약했던 체제내의 개혁파인사들은 중국의 당금상황과 미래발전에 대하여 우려라는 마음이 절실하다. 어떤 사람은 이런 때 요구사항을 표시하여 고쳐지기를 바라는 것은 대세의 흐름이고, 인심의 방향이다라고 말한다.


현재의 특수한 역사시기에 시진핑이 만일 런즈창을 엄벌한다면, 아마도 이들 기업가들은 반대진영으로 돌리는 것이 될 것이다.


시진핑과 태자당의 관계

런즈창의 부친인 런췐셩(任泉生)은 일찌기 중국상업부부부장을 지냈다. 런즈창은 그러므로 태자당의 구성원중 하나이다. 시진핑이 취임한 초기에, 일찌기 여러 태자당들에게 지지를 받았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적지 않은 태자당들과 시진핑의 관계는 중대한 변화를 겪는다. 태자당인 보시라이가 체포되고, 보씨집안과 시진핑은 반목한다. 덩샤오핑의 손녀사위인 우샤오후이가 체포되어, 덩씨집안과 시진핑는 점점 멀어졌다. 왕쩐의 아들 왕쥔은 보시라이를 구해주려고 손을 뻗은 바 있어, 시진핑과 왕쥔의 관계도 냉담해진다. 천이의 아들인 천샤오루는 우샤오후이사건에 연루되어 죽었을 때 중국공산당 당기를 덮지 못했고, 중국공산당과 결렬되었다; <염황춘추>는 봉쇄되어, 시진핑은 이 잡지사의 부사장이자, 후야오방의 아들인 후더화와의 관계가 나빠졌다. 작년 10월 전 중공총서기 자오즈양의 딸이 글을 올려, 현재 중국은 '백년이래 보지 못했던 정신적 곤경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금년의 중국공산당은 "강정경개(剛正耿介)한 사람이 몇되지 않고, 과렴선치(寡廉鮮恥)한 자들은 넘쳐흐른다."


시진핑과 지식인의 관계


런즈창은 말년에 이르러 갈수록 공공사무와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자유파지식인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 본인과 자유파학자들은 갈수록 가까워졌다. 런즈창이 '실종된' 후, 가장 먼저 들고 일어나서 그의 행방을 수소문한 사람은 바로 작년 연초 '중국은 역사무대에서 퇴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북경대학 교수 정예푸(鄭也夫)였다.


2월 4일, 청화대학 교수인 쉬장룬은 <분노한 인민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글을 발표하여, 창끝을 시진핑에 향한다. 쉬장룬은 이미 가택연금상태이다. 같은 날, 인권인사인 쉬즈용은 <권퇴서>를 발표하여, 공개적으로 시진핑에게 '양위(讓位)'할 것을 요구했다. 쉬즈용은 이미 체포되었다. 이어서, 2500여명의 자유파인사와 반대파는 '내부고발자(吹哨人)'인 우한중심의원이 의사 리원량의 죽음을 빌어, 중국정부가 언론자유를 말살한 것을 비난했다. 2월 23일, 중앙민족대학 교수 자오스린(趙士林)이 시진핑에 보내는 <경자상서(庚子上書)>를 써서, 중국정부의 바이러스대응에 0점을 주었다. '가장 큰 책임은 시진핑 총서기에 있다"고 주장한다. 자오스린은 "솔직하게 말하고, 권력귀족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고, 양심을 가지고, 사회책임을 담당하고, 비판정신을 높이 드는 것은 지식인의 천직이다."


시진핑이 런즈창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대륙의 자유파지식인들은 주목하고 있다. 심하게 탄압할 수록 반발도 더욱 클 것이다.


시진핑과 왕치산의 관계


RFI의 보도에 따르면, 한 소식통이 런즈창사건의 배후에 아마도 '왕치산이 이미 쫓겨난 것같다'고 말한다. 런즈창은 시진핑에게 "손가락으로 코를 찍으며 욕했다" 이는 '고위층투쟁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왕치산과 시진핑의 관계는 철저히 결렬되었다."


런즈창과 왕치산의 관계는 확실히 보통이 아니다. 그들은 북경35중의 동창이다. 고등학생인 왕치산이 일찌기 중학생인 런즈창의 '보도원'을 맡은 바 있다. 그후 그들은 함께 섬북농촌으로 가서 노동했다. 그 이후에는 왕치산이 베이징시장, 시위서기가 되었고, 런즈창은 베이징에서 부동산을 한다. 두 사람은 밀접했다. 런즈창은 자신의 자서전 <야심우아>에서 이렇게 토로한 바 있다. 두 사람이 한밤중에 통화하면 장시간 얘기한다고.


시진핑이 취임한 후, '런대포'는 여러번 포를 쏘았다. 2016년, 런대포는 공공연히 '당매성당(黨媒姓黨, 당매체의 성은 당씨)'에 반대한다. 이로 인하여 매체의 대비판을 불러왔다. 당시 중앙기율검사위서기를 맡고 있던 왕치산이 이끄는 <중국기검관찰보>에 <천인지낙낙(千人之諾諾) 불여일사지악악(不如一士之諤諤)"(천 사람의 지당한 말씀이라는 말보다, 한 선비의 곧은 말것만 못하다." 이렇게 런즈창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만일 왕치산이 극력 보호해주지 않았더라면, 런즈창은 일찌감치 당적을 박탈당하고 감옥에 들어갔을 것이다.


이번 런즈창사건이 발생한 후, 즉시 누군가 시진핑-왕치산의 관계에 대하여 글을 섰다. 시진핑의 첫 임기때 왕치산은 그를 도와 부정부패관리를 척결하고, 최고권력을 탈취하는데 큰 공로를 세운다. 시진핑과 왕치산은 440여명의 차관(부성장)급이상의 고위관료를 처벌한다. 많은 사람은 장쩌민, 쩡칭홍이 발탁하여 중용한 사람들이다. 장쩌민, 쩡칭홍은 시진핑 왕치산을 미워하면서도 두려워했다. 중공19대이전에 장쩌민, 쩡칭홍은 어쩔 수 없이 시진핑과 타협한다. 그후, 시진핑과 왕치산을 이간시키고, 각개격파를 하여, 이들의 직위를 빼앗는 것이 장쩌민, 쩡칭홍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이간계'는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고 있다. 19대이래, 왕치산은 점점 주변으로 밀려난다. 런즈창의 시진핑에 반대하는 글이 나오자, 이들은 즉시 기회를 잡아 왕치산과 런즈창의 관계를 떠들고 있다. 그들은 시진핑과 왕치산이 철저히 결렬되기를 바라고 있다.


다만, 중요한 내용은 아직 상연중이다. 아직는 클라이막스에 이르지 않았다. 현재 시진핑과 왕치산이 결렬하면, 너무 빠르다. 엄격하게 말해서, 시진핑과 왕치산은 불가분이다. 그들은 공동으로 그들을 숙청했다. 그들은 하나로 묶여 있다. 시진핑이 물러나면, 왕치산도 물러나야 한다. 왕치산이 쫓겨나면 시진핑도 위험이 높아진다. 시진핑반대진영이 계속 확대되면서, 아후 흉험한 국면인데, 시진핑은 아마도 결국 왕치산과 서로 도울 것이다.


런즈창 '실종'의 핵심은 무엇인가?


런즈창 '실종'의 핵심은 다음에 있다: 최근 들어 런즈창은 중국공산당에 대한 인식이 점점 심화되었다. 2013년, 그는 북경대학 강연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제도는 이미 썩었다. 반드시 이 벽을 무너뜨려야 한다. 2015년 9월 21일 그는 웨이보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공산주의후계자'라는 이 구호는 십수년간 사람들을 속여왔다." 2016년, '당매성당'의 주장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쓴다: "모든 매체가 성을 가지게 되고,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지 않을 때, 인민은 잊혀진 구석으로 버려지게 된다."


금년 3월 6일, 런즈창이 시진핑을 '포격'하는 글에서 이렇게 쓴다: "이번 중국의 우한폐렴의 폭발은 바로 '당매체는 모두 성이 당씨'일 때, '인민은 버려진다'는 현상을 확인해 주었다. 매체가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여 사실의 진상을 공표하지 않으면, 남는 것은 바로 인민의 생명이 바이러스와 체제의 이중병독에 의해 공동으로 상해당하는 결과에 이른다." "17년전의 교훈(2003년의 사스를 가리킴)은 이 체제에 철저한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의 바이러스 재차 폭발이 나타난 것이다. 이번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다음에도 반드시 더욱 큰 재난이 출현할 것이다."


중남해는 대변국(大變局)을 맞이하고 있다.


현재, 런즈창사건을 둘러싸고, 각종 소식이 난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런즈창은 국안위대형사건'이다" "시진핑이 친히 엄히 처벌하라고 지시했다" "런즈창은 15년의 중형을 받는다." "런즈창은 단식하고, 생명이 위험하다. 현재 의원에서 치료중이다." "중공5원로가 글을 올렸다." "왕치산이 압박하고 있다"등등


여러 반시진핑세력이 모이고 있다. 런즈창의 글은 '타도사인방'을 얘기했다. 천핑이 포워딩한 서신도 '타도사인방'을 얘기했다. 시진핑이 만일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아마도 누군가 그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결론


2019년 청화대학 교수 쉬장룬은 시진핑이 민선 초대 대통령이 될 것을 기대했다. 1년후의 오늘 그는 완전히 시진핑의 반대진영에 섰다. 2016년의 런즈창은 유당관찰1년의 처분을 받은 후, 계속 조용히 지냈다. 금년에 '내 한몸이 칼에 짓이겨지더라도 황제를 반드시 끌어내리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시진핑과 한판 붙겠다는 것이다.


2020년은 대변국의 해이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모두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시진핑은 천리와 인심에 순응하여 변하여야먄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계속 보당(保黨)을 하려고 하면, 자신의 생명도 지키지 못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