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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군사

중국고대에 "비합전서(飛鴿傳書)"는 정말 전쟁에 쓰였을까?

by 중은우시 2019. 10. 30.

글: 천추원(千秋遠)


금년 8월, 상해이동은 포동신구(浦東新區)와 홍구구(虹口區)의 일부 도로에 5G시험포인트를 설치했고, 이 지역에서 살고 있는 어린친구들은 이미 5G서비스를 체험해볼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만물이 서로 연결되는 시대는 이미 손을 내밀었다고 한다. 그러나 만물이 서로 연결되는 것이 일단 실현되면 인류생활은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기실 고대인들에 있어서도 새로운 차원의 통신채널이 있었다 - 비합전서


<소오강호>를 보면, 정정사태(定靜師太)가 기습을 당하자 쓴 것이 바로 비합전서를 항산(恒山)으로 보내는 것인데, 심지어 4마리의 비둘기가 서로 릴레이식으로 소식을 항산에 전달한다.


2005년, 미국인들은 비합전서를 내용으로 하는 영화를 만든다. <발리언트(Valiant)>


그리고 실제로 비합전서의 이야기는 역사상 정말 존재했었다.


1. 기원


왕인유(王仁裕)의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에 이런 기록이 있다: "장구령(張九齡)이 어렸을 때, 집에 여러 마리의 비둘기를 기르고 있었다. 비둘기를 통해서 매번 친지들과 서신을 주고 받았다. 글을 비둘기의 발에 묶기만 하면, 가르친 방향으로 날아가서 떨어뜨린다. 장구령은 그것을 보고는 '비노(飛奴)'라고 하였다."


그후 문인들은 비합전서의 이야기를 묘사하면서 적지 않은 공을 들이게 된다.


구양수(歐陽脩)의 "황합가기서(黃鴿可寄書), 유차쌍시단(惟嗟雙翅短)(노란 비둘기는 편지를 보낼 수 있다. 오로지 아쉬운 점이라면 날개가 짧다는 것이다)" 전기(錢起)의 "순합불시준(馴鴿不猜隼), 자운능호상(慈雲能護霜)"(잘 길들인 비둘기가 있으면 매를 시기할 필요가 없고, 저녁의 부드러운 구름은 서리를 내리게 한다), 서인(徐夤)의 "거익능공벽(擧翼凌空碧), 의인도대방(依人到大邦)"이 있다.


사실상 비합전서는 중국 조상들의 창작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발명이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3000년, 작은 동물을 길들이기 좋아하던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 비둘기를 데리고 얼마나 멀리 가든지간에 그들은 항상 옛집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고대 이집트인들은 비둘기를 이용하여 서신을 보내기 시작한다. 이것이 아마도 비합전서의 최초 기원일 것이다.


2. 원리


이 비둘기는 왜 서신을 전달할 수 있을까? 원인은 기실 복잡하지 않다. 바로 '귀소본능'이고, 죽어라 해대는 그런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장소를 찾아가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장으로 방향을 찾아간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시각기억으로 찾아간다고 한다.


당연히, 비둘기를 데리고 다니다가. 그것이 원래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비둘기를 다시 날아온 곳으로 되돌아가게 할 수는 없다.


그 곳은 비둘기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나오는 비합전서가 날려보낸 곳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비합전서는 일방통행식이다.


3. 군사응용


비합전서가 정말이라면, 그것이 전쟁터에서 여러 장애를 뚫고 서신을 전달할 수 있을까?


이 일은 그다지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군사정보는 모두 아주 시급을 다투는 것이고, 실패해서는 안된다. 비둘기에게 맡겨버리면, 그것이 화살을 피해갈 수 있을까? 그리고 여러 천적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이런 실험을 해봤다. 100마리의 오래 훈련한 비둘기들을 가지고, 우한에서 지난으로 되돌아가게 풀어줬다. 그 결과 겨우 50마리만 제대로 돌아왔고, 나머지는 모두 행방불명이 된다.


다만, 전쟁터에서도 비합전서의 응용기록은 있다.


예를 들어, 송인종 경력원년(1041년) 이월, 송나라가 서하를 정벌하러 떠난다.


한기(韓琦)는 임복(任福), 상역(桑懌)을 이끌고 출격한다. 군대가 양목륭성 부근에 이르렀다.


송나라장수 상역은 여러 개의 은니합(銀泥盒)을 발견한다. 합에는 무엇인가가 뛰어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임복이 뒤에 도착하는데, 그는 합을 열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집에서 기르던 비둘기 백여마리가 합에서 나와 군대의 위로 날아가서 돌고 있었다. 서하군은 송군이 함정에 걸린 것을 알고 사방에서 포위공격하여 송군이 궤멸한다.


1128년, 남송의 대장 장릉(張淩)이 한번은 부하 곡단(曲端)의 영지를 시찰한다. 군영에 도착하니 텅 비어 있고, 사병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크게 화가나서 곡단에게 군대를 검열하겠다고 말한다.


곡단은 즉시 그가 이끄는 5개 군의 명부를 내놓는다. 장릉은 명부를 보고 나는 제1군을 검열하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곡단은 당황하지 않고 새장을 열어서 비둘기 한 마리를 날려 보냈다. 바로 제1군의 사병들이 완전무장을 하고 신속히 도착한다.


장릉은 크게 놀라서, 말한다: "나는 너의 군대 전부를 보고 싶다." 곡단은 다시 4마리의 비둘기를 날려보내고, 나머지 4개군이 모두 명을 받아 도착한다.


이 두 가지 일에서 비둘기는 확실히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다만 이 신호는 그저 '대포소리'나 '봉화'와 마찬가지의 효과를 낼 뿐이었다. 일대일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