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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과 일본

일본이 근대에 최초로 만든 6개 사단은...?

by 중은우시 2019. 6. 6.

글: 수향산인(壽鄕散人)


근대에, 일본은 세습 무사제도를 폐지하고,근대화된 징병체제를 건립한다. 부대의 번호를 보면, 최초에 6개 사단을 설립한다. 이 6개사단은 6곳의 지방에서 징병하였다. 그리하여, 일본군의 1개사단은 모두 같은 고향사람들이다. 서로간에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제1사단


징병지역은 도쿄(東京)를 핵심으로 하는 지역이다. 비록 '제일'이라는 명칭을 달고 있지만, 이 사단이 혁혁한 전공을 세운 적은 없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도쿄에 주둔하며 수비하였기 때문이다. 1936년에는 이 사단의 관병들이 2.26쿠데타를 일으키기도 했다.


제2사단


징병지역은 센다이(仙臺)를 핵심으로 하는 지역이다. 일본의 동북지역이다. 이 사단은 전투력이 비교적 강했다. 9.18사변은 바로 제2사단이 주도하여 일으킨 것이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후, 이 사단은 태평양으로 이동하고, 과달카날섬전투에서 미군에 패배당한다.


제3사단


징병지역은 나고야(名古屋)를 핵심으로 하는 지역이다. 이 사단은 계속 중국에서 전투를 벌였다. 이것도 하나의 특색이라면 특색이다. 처음에 설립된 6개사단중에서 오직 제3사단만이 계속하여 중국에서 주둔했다.


제4사단


징병지역은 오사카(大阪)를 핵심으로 하는 지역이다. 오사카는 상업적인 분위기가 강하기 때문에, 이 사단에도 장삿꾼이 비교적 많았다. 그리하여 일본 제4사단은 엉터리 사단이라는 인식이 있다. 특시 살소(薩蘇) 선생의 소개로 중국인들에게는 이 사단이 엉터리라는 이미지가 더욱 강하게 굳어져 버렸다. 그러나 그런 주장에 반대하는 견해도 있다.


제5사단 


징병지역은 히로시마(廣島)를 핵심으로 하는 지역이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다. 1937년 이타가키 세이시로(板垣征四郎)가 사단장으로 있을 때, 이 사단은 화북에서 20여개의 중국사단과 전투를 벌인다. 남구, 평형관, 흔구, 태원, 상해에 모두 이 사단의 족적이 있다. 이타가키사단은 모두 잘 알다시피 일본군의 최정예부대라고 할 수 있다. 나중에 임기, 곤륜관에서도 이 사단은 국군의 주력과 전투를 벌인다. 그러나, 이 때는 이미 이타가키가 더 이상 사단장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타가키사단이 아니었다.


제6사단


징병지역은 쿠마모토(熊本)를 핵심으로 하는 지역이다. 1937년 남경점령후, 일본군은 제6사단을 위주로 참혹한 남경대학살을 벌인다. 당시 사단장은 다니 히사오(谷壽夫)이다. 그의 이름은 중국인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다니 히사오는 전쟁이 끝난 후 일본에 있었지만, 중국으로 인도되어 남경에서 총살된다. 이 사단의 전투력은 제5사단보다도 강하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