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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언어

인민폐(人民幣)의 문자

by 중은우시 2019. 1. 5.

글: 소배성(蘇培成)





인민폐에는 5종문자가 적혀 있다. 바로 한자(漢字), 몽문(蒙文, 몽골문자), 장문(藏文, 티벳문자), 유문(維文, 위구르문자)과 장문(壯文, 장족문자)이다. 아래에서는 100위안 인민폐를 예로 들어 설명해보기로 한다:


한자는 중국의 국가통용문자이다. 국내 각민족간이 교류에 쓰인다. 한자는 한민족의 조상이 창제한 문자이며 은상갑골문에서 기산하면 3,400여년의 역사가 있고, 지금까지도 연속되고 중단된 적이 없다. 한자기록은 한어의 어소(語素)이고,그래서 어소문자이다. 한자를 구성하는 자부(字符)는 주로 의부(意符)와 음부(音符)이다. 그래서 그것을 의음문자(意音文字)라고도 부른다. 예를 들어, "목(沐)"은 한어 '목(沐)"의 어소이다. 그 의미는 목욕한다는 것이다. '수(水)'와 '목(木)' 두 자부로 구성되었다. '수'는 표의이고, 의부이며, '목'은 표음이고 음부이다. 한자숫자는 대사(大寫)와 소사(小寫)의 두 가지가 있는데, 소사는 "一二三四五六七八九十百千萬"이고, 대사는 "壹貳參肆伍陸柒捌玖什佰仟萬'이다 인민폐에서는 대사숫자를 썼다. 인민폐에는 또한 한자를 보조하는 한어병음이 있다. 뒷면의 두 곳에 있는데, "中國人民銀行100"을 "ZHONGGUO RENMIN YINHANG 100"으로 썼고, 또 다른 한 곳은 "원(圓)"을 YUAN으로 쓴 것이다.


인민폐의 뒷면에는 4종의 소수민족문자가 쓰여 있다. 그 뜻은 "중국인민은행100"이라는 것이다. 이 4종의 소수민족문자는 좌상이 몽문, 우상이 장문, 좌하가 유문, 우하가 장문이다. 형체로 보면, 이 4종의 문자는 비교적 쉽게 구분된다. 몽문은 위에서 아래로 세로로 쓴다. 행관은 좌에서 우로 쓴다. 장문인쇄체 보음은 상부에 모두 일횡(一橫)이 있고, 기본적으로 줄을 맞추어 쓴다. 유문은 유선체(流線體)이다. 우에서 좌로 쓴다. 장문에서 쓴 것은 라틴자모이다. 한어병음의 자모와 같다.


몽문은 몽골문(蒙古文)이라고도 하며, 몽골어를 기록하는데 쓴다. 몽문은 13세기에 만들어졌고, 자모독음, 필사규칙, 행관은 모두 회흘문과 유사하다. 그래서 회흘식몽문이라고 부른다. 몽문은 계속 개선되어, 자모의 수가 계속 늘어났다. 필사규칙도 날로 엄밀해진다. 17세기에는 현행몽문으로 발전한다. 현행몽문은 29개자모가 있고, 그중 5개는 원음(元音)이며, 24개는 보음(輔音)이다. 몽문자모를 쓰는 법은 사수(詞首), 사중(詞中), 사말(詞末)에 각각 일정한 변화를 준다. 연달아 쓰기에 편하다. 몽문은 기본적으로 '사'를 단위로 필사한다. 청나라때, 몽문과 만문은 거의 동등한 숭고한 지위를 인정받았다. 많은 황실건축물의 편액에는 모두 한, 만, 몽, 장의 4종문자가 같이 쓰여 있었다. 이 시기에 우리를 위하여 두터운 <몽문대장경(蒙文大藏經)>을 남겨주었다.


장문은 장어를 기록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7세기, 송찬간포가 토번왕조를 건립한 후, 그의 대신 도미상포찰(圖米桑布札)을 천축(고인도)에 보내어 범문과 불법을 공부하게 한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후 인도의 범문의 천성체(天成體)를 본떠 장문을 만든다. 장문은 표음문자이다. 34개의 자모가 있다. 그중 4개의 원음과 30개의 보음이 있다. 장문은 좌에서 우로 횡으로 배열한다. 사(詞)를 나누지 않고 쓴다.음절의 뒤에 점을 표시하여 음절의 한계를 표시한다. 장문의 정자법은 3번의 대개혁을 거친다. 그리하여 장문은 더욱 간명해졌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장문이 되었다. 장문자모의 수량과 단어필사법은 모두 장어의 특징에 적합하다. 지금까지 1400여년간 사용되었다. 역사상 장문으로 써서 편역된 문헌은 아주 풍부하다. 장족문화의 발전에 큰 작용을 했다. 저명한 "장경회맹비(長慶會盟碑)"는 당나라 장경3년(823년)에 세워졌고, 원나라때는 이미 <감주이(甘珠爾)>와 <단주이(丹珠爾)>의 두 불학총서가 완성된다.


유문, 위구르문은 위구르어를 기록하는데 쓴다. 7세기, 위구르족은 돌궐문자를 문자로 썼다. 10세기에 이르러, 불교가 전래되면서, 회흘문이 돌궐문은 대체한다. 11세기, 이슬람교가 신강에 유입되면서, 아랍문자가 회흘문을 대체한다. 그리하여 현대의 위구르문이 되었다. 우에서 좌로 횡으로 쓴다. 위구르족은 1965년부터 1982년까지 라틴자모를 기초로 하는 신문자를 보급했는데, 주로 학교에서 사용했다. 1982년 9월부터 옛문자로 돌아갔다. 현재의 위구르문자는 32개 자모인데 그중 8개의 원음과 24개의 보음이 있다. 연달아 쓰기에 편하게 하기 위하여, 자모는 혼자 쓸 때와 자수, 자중, 자말에 쓸 때 서로 쓰는 법이 달라진다.


장문은 장어를 기록하기 위하여 쓴다. 장족은 원래 네모난 모양의 장자(壯字)가 있는데, 한자를 빌어쓰거나 한자를 모방하여 자체적으로 만든 한자유형의 문자였다. 많은 이체자(異體字)가 있고 각 지방마다 쓰는 법이 통일되지 못했다. 알고있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정식으로 통행하는 문자가 되지 못했다. 1955년 라틴자모를 기초로 하는 병음장문이 창제되고, 1957년부터 사용하여 문맹을 없앴다. '문혁'때는 추진이 중단되기도 했는데, 1980년 5월에 광서장족자치구당위와 정부는 적극적으로 장문교육, 출판과 보급등을 시작하고 장문방안을 약간 수정하여, 26개의 라틴자모 이외의 자모를 없앤다. 수정후의 장문방안은 1982년 3월 20일부터 공포시행된다. 장문은 학교교욱, 과학교육, 신문출판, 문예창작, 장족연구, 대외교류등 방면에서 모두 큰 작용을 발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