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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선진)

제(齊): 춘추전국시대의 상업패주(商業覇主)

by 중은우시 2015. 2. 10.

글: 양반(梁盼)

 

한 국가의 인민이 부유한지 아닌지를 알아보려면 경제왕래가 활발한지 여부가 하나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왜냐하면 수요와 공급이 모두 만족되면, 보편적으로 백성과 상인은 모두 각자가 원하는 것을 얻고 서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경제왕래가 활발한지 여부는 주로 민영경제를 보아야 한다. 일찌기 서한시기에 사마천의 자신의 거작 <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정부는 민영경제에 대하여 가장 좋기로는 인세이도(因勢利導)하고 여민쟁리(與民爭利)하지 앟는 것이다. 기껏해야 세금을 거두고, 도덕과 법률로 규범화하는 것이면 된다; 가장 나쁜 경우는 정부가 직접 상업활동에 종사하여 여민쟁리하는 것이다. 제나라는 주나라때 가장 먼저 분봉한 나라중 하나이다. 제나라야말로 사마천이 생각하기에 가장 우수한 민영경제를 실현한 나라이다.

 

1. 강자아(姜子牙)가 제나라를 개발하다


진,한 이전에, 비록 제후국의 병합전쟁은 아주 빈번하고 잔혹하였지만, 중국은 중상주의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특히 춘추전국시대에 제후국의 집정자는 민영경제를 기본적으로 방임하고, 극력 민간의 상업활동을 장려하고 인도한다. 제나라는 특히 그 중의 대표적인 나라이다.


일찌기 주(周)의 초기, 제나라의 개국국왕인 강자아, 즉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강태공은 고대정부가 적극 민간생산, 무역을 장려하는 첫 선례를 만든다. 고대 제나라는 오늘날의 산동반도에 위치하고 있고, 원래 득천독후(得天獨厚)의 지역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다만, 민간에서 아무도 주의하지 않고 이런 우세를 이용하지 않았다. 반대로 바다를 연하고 있어, 경작할 수 있는 농지가 비교적 귀하여, 이 지구의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중원의 다른 지구보다 훨씬 낙후되어 있었다.


기원전1000년경, 강자아가 주왕에 의하여 제국을 분봉받은 후, 자세히 고찰을 거쳐, 그는 제나라의 경작지가 비교적 적어서, 농업사회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지만, 물극필반(物極必反), 화복상의(禍福相依)라고, 제나라는 바다에 연하고 있어서 전통적인 농업이 우세는 없지만, 연해에는 물고기가 있고, 바다에는 소금이 있다. 내륙과는 다른 해양경제를 발굴,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강자아는 제나라 인민들에게 어업과 제염업을 하도록 인도한다.


강자아가 상업을 특별히 중시한 것의 한 중요한 원인은 그 본인이 일찌기 상나라의 대상인이었다는 것이다. 주문왕에 의하여 재상에 오르기 전에, 그는 오랫동안 상나라이 수도인 조가(朝歌)에서 장사를 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강자아는 상업의 개창정신을 지니고 있었고, 각각 죽편기구, 면분과 우육등을 판 후에, 조가성의 최대 소고기공급상이 된다. 뛰어난 민영기업가로서, 강자아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중앙에서 하급관직을 얻는다. 다만 상주왕의 행위에 그는 실망을 금치 못한다. 그는 위수의 남안(지금의 섬서성 보계시)로 가서 은거하고 주문왕을 만나서 다시 관직에 나선다.


바로 민간상업무역이 국가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어서, 강자아는 제나라를 분봉받은 후, 민경경제를 대거 발전시킨다. 그래서, 제나라는 상하모두 해양의 우세산업을 발굴하는 주력군이 되고,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 각종 사업주와 상인이 된다. 바꾸어 말하면, 제나라의 특색산업은 정부가 인도하고, 민간자본이 주도하는 것이다. 이 결과는 제나라가 부유하게 되는 것이다.


제나라는 가난한 나라에서 일약 제후국중 제일부국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재정이 풍부해진 동시에, 민중들도 아주 풍족해졌다는 것이다. 제나라는 민간이 부유한 모범국가가 된다. 나머지 제후국들이 크게 부러워할 정도였다. "제나라사람"은 기본적으로 부자의 대명사였다. 사료기재에 따르면, 당시 제나라의 부유한 상인이 전국에 퍼져 있었고, 그들의 상품은 전국에서 인기리에 팔렸다. 다른 제후국의 정부관리들과 상인들이 제나라로 벌떼처럼 몰려온다. 제나라로 가서 우세사업을 어떻게 발전시키는지와 선진적인 상업이념을 배운다. 제나라는 이미 수퍼강국이 되었다. 최소한 경제와 상업에서는 그러했다.


2. 상인 관중이 승상을 맡다.


제나라에서 민간이 생산과 무역에 마음대로 종사하게 하여, 민영기업가가 당시의 인기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돈을 벌었을 뿐아니라, 자신의 상업두뇌를 제나라의 국가발전을 위한 계책을 바친다. 부를 쌓아서 부국강병하게 된다. 그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관중이다.


제나라가 건국한지 근 4백년이 지난 후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한다. 왕위계승투쟁으로 내부소모가 많아 쇠락하기 시작한다. 그 역사상 유명한 춘추오패의 하나인 제환공(기원전685-기원전643년 재위)은 정권을 잡은 초기에 제나라는 일찌감치 더 이상 수퍼대국이 아니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관중의 출현은 이 모든 것을 역전시킨다.


관중은 당시 제환공의 승상이고, 현재로 말하면 국무총리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다. 다만 그가 유명한 '춘추제일상'이 되기 전에, 관중은 강자아와 마찬가지로 그저 한 명의 상인이었다. 원래, 관중의 조상은 제나라의 귀족이었다. 집안이 일찌감치 몰락하여, 그는 전형적인 몰락귀족이 된다. 그러나 그는 아무 일없이 세월을 보내는 몰락귀족으로 남지 않고 상업을 통하여 가업을 새로 일으킨다. 이는 또 하나의측면에서 당시의 상업은 나중에서처럼 천한 직업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상인은 중국 진한,이후의 정부에서 정한 것과 같은 '하등국민'이 아니었다.


관중은 제나라 사람이고, 제나라는 유구한 상업문화의 정수가 그들의 혈액속에 깊이 흐르고 있다. 돈을 벌어 부자가 되기 위하여 그는 친구 포숙아와 동업을 하여, 맨손에서 시작하여 집안을 일으킨다. 제후국간의 장거리 '국제무역'에 종사한다. 그는 귀족공자의 우월감은 다 버리고, 장삿꾼으로 시작하여 한푼 한리의 이익을 위해서 온갖 고생을 다하며 그는 부유한 상인이 된다.


다만, 제환공이 권력을 잡기 전에 관중은 일찌기 제환공의 정적을 도운 적이 있었고, 제환공을 암살한 바도 있었다. 제환공이 왕위를 차지한 후에 그이 심복대신인 포숙아는 이렇게 건의한다. 자신의 좋은 친구이자 이전의 사업 동업자인 관중이 제나라의 승상을 맡을 만하다고. 제환공은 당연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포숙아는 관중이 뛰어난 상인이고 그가 상인으로 돈을 번 기교를 나라를 다스리는데 쓰게 되면 부민강국을 이룰 수 있고, 제나라는 역사적인 위대한 부흥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제환공은 결국 포숙아의 건의를 받아들인다.


관중은 상인이라는 신분에서 '최고공무원'이 된다. 그러나 그의 상업적 두뇌와 치부이념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집정기간,  그는 먼저 토지등급에 따라 과세하는 단계별 세수제도를 제정한다. 이를 통해 수입이 적은 농민은 비교적 합리적인 세금부담만을 질 수 있게 된다. 다음으로 귀족호족에 타격을 가한다. 그들이 평민의 각종 산업을 침탈하는 것을 막고 사유재산이 보호를 받도록 해준다.


3. 제나라 부흥


그외에, 관중이 제나라 승상이 된 후,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제나라의 개국군주 강자아의 상업전략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민간이 각종 산업을 경영하게 하고, 원래 우세하던 산업인 어업과 제염업의 기초 위에서, 계속항 다른 산업을 개발한다. 예를 들어, 야철산업이 그것이다. 제나라의 상품은 제후국에서 인기리에 팔렸고, '무역흑자'가 상당히 많이 나게 된다.


관중의 구체적인 방법은 전문적으로 염업과 제철업을 관리감독하는 관리를 두고, 국가의 통일적인 기획하에, 상인들이 이 두 가지 중요한 전략물자를 국외로 판매하여 큰 이익을 얻었다. 그리고 상인들의 수출을 장려하기 위하여 제나라이 식염과 각종 해산물에는 세금을 거두지 않았다. 그리하여 비교적 싼 가격으로 다른 제후국에 팔 수 있었다.


춘추시대에 중국은 철기시대로 접어든다. 농업에 철기가 필요했을 뿐아니라, 전쟁도 빈번하여 전쟁에도 대량이 철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철로 만든 제품은 당시 제후국간의 중요한 교역품이었다. 전체 춘추시대를 살펴보면, 심지어 전국시대까지도, 제나라의 철기제조업은 제후국들 중 앞서 있었다. 당시, 제나라의 철제품은 개혁개방초기의 미국제품과 일본제품처럼 아주 인기있었다. 그리하여 제후각국이 가장 신뢰하는 철기가 된다. 이는 모두 관중이 집권하던 시대에 기초를 잘 닦아놓은 덕분이었다.


더욱 뛰어난 수단으로 관중은 인위적으로 본국의 양식가격을 끌어올린다. 그후에 다른 국가의 양식을 대량으로 사들여, 다른 나라의 양식이 부족해 졌을 때, 더 높은 가격으로 그들에게 판매하여 금,은등 경성통화를 회수한다.


일국의 군주인 제환공은 이전의 대상인 관중을 기용함으로써, 큰 성과를 거둔다. 춘추시기 첫번째 패주는 바로 이전의 원한을 따지지 않고 상인을 중용한 제환공이 된다. 제환공이 패주가 될 수있었던 것은 그의 배후에 가장 부유한 강국인 제나라가 있었다. 그리고 제나라의 부강은 대상인 관중이 만들어 낸 것이다.


제나라정부는 민간무역을 대거 개방하는 전략을 취한다. 이는 사마천이 이 시기를 자유주의경제로 규정한 것이 맞다는 것을 인증한다. 제나라정부의 경제정책과 사고는 완전히 사마천 심중의 좋은 정부의 기준과 들어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