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증국번)

암살과 고두: 증국번은 서태후가 심어놓은 인물을 제거했다

중은우시 2013. 8. 5. 00:52

글: 유강(劉剛) 이동군(李冬君) 

 

1870년(동치9년), 새로 부임한지 2년도 되지 않은 양강총독(兩江總督) 마신이(馬新貽)가 암살당해 죽었다. 자객이 손을 쓴 곳은 양강총독의 열병장이었다. 그런데 마치 무인지경처럼 양강총독에게 걸어갔고, 아무도 말리지 않았고, 아무도 묻지 않았으며, 자객이 손을 쓰도록 방치했다.

 

이것은 "천군만마속에서 장군의 수급을 베는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주머니 속의 물건을 꺼내듯 손쉽게 했다. 그렇게 많은 사병은 모두 뭘했는가? 이런 자객이 어찌 그리 쉽게 양강총독대인에게 다가가도록 놔두었단 말인가? 그러고도 병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냥 보내주어, 자객을 총독대인의 곁으로 보낸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더구나 난감한 일은 자객이 황급히 도망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마치 암살하러 온 것이 아니라 무슨 형을 집행하러 온 것같았다. 그는 열병장을 무슨 형장으로 삼았다. 그는 자신을 잡으러오는 사병들에게 총독의 죄행을 선포하였다. 그것도 하나하나 말을 했다.

 

조야가 깜짝 놀라고, 의론이 분분했다. 어떤 사람은 말했다. 조정이 증국번을 직예총독으로 옮기게 한 것은 겉으로는 승진이지만 속으로는 좌천이다. 이는 조호이산(調虎離山, 호랑이른 산에서 떠나게 하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인 마신이로 하여금 그의 양강총독직을 넘겨받게 하여 그와 대등한 지위에 앉게 한 것은 조정이 상군(湘軍)의 본거지에 바둑돌을 하나 투입하여 상군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기 위함이었다. 과연 상군은 최강수로 대응했다.

 

서태후의 곤란한 처지는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암살은 그저 "소하재로첨첨각(小荷才露尖尖角, 작은 연잎이 이제 겨우 뾰족한 끝자락을 드러내다)에 불과하다. 처리를 잘하지 못하면, 상군의 쿠데타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증국번을 돌려보내야 했다.

 

증국번이 양심전(養心殿)으로 가서, 서태후를 배알한다. 서태후는 먼저 그의 병세를 묻는다. 그는 오른쪽 눈이 이미 실명되었다고 답한다.

 

서태후가 반문한다: "내가 보기에 너는 걷는 것과 절하는 것을 보니 아직 정신이 괜찮은 것같다". 그러자 증국번이 대답한다: "정신은 아직도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이 여인은 다른 것은 묻지 않고 굳이 "절하는 것"을 물었다. 이 하늘 아래, 다른 사람에게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는 사람은 그녀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황제마저도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절을 해야 한다. 누가 감히 그녀에게 절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녀에 있어서, 절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녀가 인물을 평가하는 것은 부지불식간에 한가지로 귀결되었다. 그것은 바로 절하는 것이다. 마신이는 젊었고, 역시 이곳으로 와서 그녀에게 절을 했다. 아마도 절을 잘했나보다 그래서 양강총독이 되었다. 그녀가 사람을 쓰는데는 한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절하는 것이다. 절을 잘한다는 것은 관료로서의 기본자질이다. 절을 잘하지 못한다면, 관료가 되더라도, 난신적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그녀는 증국번이 아직도 절을 잘하는 것을 보고는 안심하게 된다.

 

그녀는 다시 묻는다: "마신이의 이 사건은 기이하지 않은가?"

증국번이 대답한다: "이 일은 아주 기이합니다."

이어서 다시 묻는다: "마신이는 일을 잘 했는가?"

증국번이 대답한다: "그는 일처리가 온화하고 자세했습니다."

 

전해지는 바로는 마신이가 서태후에게 절을 할 때, 밀지를 내렸다고 한다. 그녀는 마신이가 상군을 해체하고 상군을 흩어지게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 태평천국 천경성 함락시의 보물이 어디로 갔는지를 알아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감히 이 벌집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상군의 뒤를 캐고 싶었다. 약점을 잡고 있으면 부리기가 쉬운 법이다.

 

서태후는 생각을 마치고서 칼을 써볼 사람을 구했다. 누구를 보낼까? 관직에 있으면서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자를 구해야 했다. 마신이는 성공하려는 마음이 강했다. 그러나 조정에 그런 사람이 없었다. 지방에서는 능력있는 관리이고, 청운지세였으며, 증국번의 수하로 일을 한 바 있다. 상군에 대하여도 잘 알고 있었다. 조정에서 마신이라는 바둑돌을 하나 던져서 상군을 다잡으려 했다. 효과가 있으면 좋고, 효과가 없으면 바둑돌 하나는 버리면 된다. 대국에는 지장이 없다. 증국번은 이 정치바둑판의 이치를 잘 알았다.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조정에서는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상군이 이렇게 석파천경(石破天驚)의 한수를 둘 줄이야.

 

이 수는 박혁(博奕)이 아니라 도전이었다. 벌건 대낮에 그것도 열병장에서, 자객이 손을 쓰자 총독이 죽었다. 총을 쓰지도 않았고, 비수로 찔렀다. 사람들 틈에 숨어서 원거리 사격을 한 거이 아니라, 총독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찔러버린 것이다.

 

자객은 감옥속에 있고, 그를 심문하기는 했지만 그를 고문하지는 못했다. 이유는 그가 조정의 중요범죄인이기때문에 누군가 고문을 하면서 살인멸구할까 겁이났기 때문이다. 전혀 고문을 하지 않고 심문을 하자, 자객이 오히려 고소인이 되었다. 하루는 자객이 돌연 인정한다. 그가 마적(馬賊)을 죽였으며, 복수 이외에 나라를 위하여 간신을 제거하려는 사명도 있었다고. 왜냐하면 "마적통회(馬賊通回, 마신이가 회족과 내통했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자는 정치를 알았다. 그가 이렇게 말하자, 더 이상 그에게 이유를 추궁할 수가 없었다. 왜 그런가? 태평천국을 평정한 후, 좌종당이 서정(西征)에 나섰다. 서정은 회족의 반란을 진압하는 것이다. 그런데 회족과 내통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말이다. 마신이는 원래 회족이다. 그러니 회족과 내왕이 없을 수 없다 사건이 서정까지 연루시키게 되자, 이 사건은 심리하기가 어렵게 된다. 좌종당이 서정에 나서면서 데려간 것은 상군이다. 서북에서 전투를 벌이는데, 전량등 물자는 동남에서 공급했다. 동남의 반벽강산은 마신이라는 회족의 손에 넘겨주었다. 그러다보니 상군장병들은 안심할 수가 없었다. 이런 배경하에서 누구도 감히 심문을 하지 못했다. 조정에서 심문하려면 오로지 증국번을 모셔오는 수밖에 없었다.

 

증국번은 명을 받았지만, 서둘러 떠나지는 않았다. 그는 병치료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홍장이 직예로 와서 인수인계하는 것을 기다렸다. 이 이유도 말이 된다. 그러나 그의 진실한 의도는 조정의 풍향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서태후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만일 수사를 확대하라는 것이라면 그는 계속해서 핑계를 대어 미룰 것이다. 만일 마무리지으라는 것이라면 그는 갈 것이다. 그는 이미 이 사건의 종결은 배후를 조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대국을 유지하는데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정에서 마신이라는 바둑돌을 양강으로 보낸 것은 스스로 대국을 어지럽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신이가 죽자 마치 한방 얻어맞은 것같았다. 조정의 가슴에 주먹을 한 대 내지른 셈이다. 조정에서 반격을 하지 않으면 조정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마신이는 공친왕이 추천한 것이고, 서태후가 은준한 것이다. 속담에 "개를 때리려면 그 주인을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어떤 때는 개를 죽여서 주인에게 보라고 할 때도 있다. 그래야 이 개가 버리는 개인지 아끼는 개인지를 알 수 있다.

 

조정이 마신이를 발탁할 때, 언제든지 버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마신이는 정치를 몰랐다. 그래서 조정의 걸림돌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마신이가 회적(回賊)일 뿐아니라, 한간(漢奸)이라고 하였다. 당시 최대의 정치는 첫째, 서정이고, 둘째, "양교(洋敎)를 치는 것"이다. 전해지는 바로는 마신이는 일찌기 상해지구에서 태평군과 전투를 했는데, 그때 중상을 입었고, 신부 한 사람이 그를 구해주었다고 한다. 신부는 그에게 천주를 믿고 싶으냐고 물었고, 그는 믿겠다고 대답했다. 1869년, 남경천주교는 공소에 20여명이 거주할 수 있는 남경의 최초 서양식 신부사택과 성모대성당을 지어달라고 하자, 마신이는 허가해준다. 각지의 "타양교(打洋敎)" 운동이 속속 일어날 때 그는 여전히 천주교도를 보호했고, "타양교"의 군중을 진압한다. 이 모든 것은 조정을 실망시켰다.

 

이런 것들을 증국번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급하게 서두르지 않았다. 그러나 서태후는 급했다. 그래서 다시 그를 궁안으로 부른다. 그에게 언제 떠날 것인지를 묻는다. 그는 말했다: "내일 궁안에 들어와서 수행원들과 함께 예를 행하고, 예를 마친 후 2,3일이면 떠나겠습니다." 서태후는 불만이었다. 그래서 강하게 재촉하는 말을 한다: "강남의 일은 중요하다. 네가 하루빨리 가기를 바란다!" 그는 알고 있었다. 서태후가 급해지면 이 사건을 종결할 수 있다는 것을. 손을 써야할 때는 써야 하고, 끊어야 할 때는 끊어야 한다. 생각해보라. 만일 서태후가 계속 추궁하여 배후를 밝히라고 한다면, 그를 가게 하겠는가? 만일 서태후가 쿠데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조급하게 재촉했을까?

 

그에게 가라는 것은 하루빨리 끝내라는 것이다.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도록. 서태후는 자신이 없었다. 그녀가 어렵사리 상군의 속으로 집어넣은 바둑돌을 그들이 들어낸 것이다. 다음 번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녀는 마음 속으로 자신이 없었다. 마신이가 죽자, 그녀는 그 돌을 버리기로 한다. 그러나 조정의 위신은 유지해야 했다. 그래서 끝까지 수사하라고 강하게 말했고, 최고직급의 형부상서 정돈근(鄭敦謹)을 보내어 조사하게 했다.

 

정돈근은 "청천(靑天)"으로 명성이 있었고, 법에 따라 일처리를 하는 사람이다. 그의 손에 상군장군을 처리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법으로 처리할지, 정치적으로 처리할지에 대하여 그는 지시를 받지 못했다. 일단 강녕(남경)에 도착하자, 범인을 심문한다. 증국번은 듣기만 하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연속하여 십여일을 심문하다보니 갈수록 어지러워졌다. 증국번이 한 마디를 던진다: 보니까 원래 심문한 대로 끝내자고 올려야 겠군. 이때 정돈근은 알아차렸다. 원래 자신은 그저 장식이었고, 조정에서 그를 내보낸 것은 그의 명성을 빌어 사건을 마무리지으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돈근, 증국번은 연명으로 글을 올려 재판을 끝낸다. 증국번은 거기에 쪽지를 하나 붙인다. "따로 지시한 사람이 있다는 정황은 실로 없습니다." 그후, 자객은 능지처참당하고, 그의 심장을 떼어내어 마신이를 위하여 제사를 지낸다.

 

그 정돈근대인은 사건을 마무리지은 후 두문불출한다. 증국번의 모든 초청을 사양한다. 그에게 보낸 정의(程儀)도 한 푼도 받지 않는다. 그를 따라온 두 사람은 각각 오백냥은자를 받는다. 성지가 아직 하달되기ㅗ 전에 죄인은 법에 따라 처결된다. 그리고 그는 강녕을 떠난다. 증국번은 그를 배웅해주지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간다. 정돈근은 북경으로 가서 보고하지 않았다. 배가 회하의 가에 이르렀을 때, 그는 배를 멈추게 하고 수행원에게 그를 대신하여 북경으로 가서 보고를 하도록 시키며 그 자신은 병이 나서 북경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라고 한다. 흠차대신이 북경으로 돌아가서 보고하지 않는 것은 청나라법제에 따르면 치죄를 받아야 할 일이다. 증국번은 그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어서, 중간에서 알선해서 이 일은 추궁하지 않고 지나가게 해준다. 그러나 정돈근은 그래도 관직을 내놓고 평생 다시는 관직에 오르지 않는다. 두 조수는 북경으로 돌아간 후 조용히 사라진다. 그중 한 사람이 <남행일기>를 남겼는데, 사건조사과정을 기술했다. "자마안(마신이암살사건)은 상군과 관련이 있다." "자마안의 배후에는 대인물이 시켰다."

 

이 "대인물"은 당연히 증국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