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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원)

기황후(奇皇后): 원나라 마지막 황후의 미려(美麗)와 애수(哀愁)

by 중은우시 2010. 12. 27.

 

: 노위병(路衛兵)

 

아마도 원래 아름답지 않았더라면 완저후두(完者, 기황후의 몽골식 이름)는 나중의 질긴 애수도 없었을 것이다. 보통 사람이 보기에, 완저후두는 행운녀이다. 지위가 낮은 궁녀에서, 황제의 관심과 총애를 받아, 부귀영화를 누렸으니, 이것만 해도 이미 선망해마지 않을 일이다. 하물며, 그녀는 나중에 후궁의 윗자리에 앉아,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일국의 황후가 된다. 그러나, 완저후두는 슬펐다. 지위의 변화는 그녀의 인생목표를 바꾸어버렸고, 이로 인하여 많은 번뇌와 우수가 발생한다.

 

완저후두는 원순제의 세번째 황후이며, 고려사람이다. 원순제의 이름은 보르지친 토환테무르이다. 원나라의 11번째 황제이며,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이기도 하다. 완저후두 이전에 원순제는 다나시리(答納失里)와 바얀후두(伯顔忽都)를 황후로 삼았었다. 다나시리가 황후였을 때, 완저후두는 황궁의 일개 궁녀였고, 임무는 주로 차를 따르는 것(主供茗飮)’이었다. 즉 그녀는 원순제에게 차를 따라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었더라면, 완저후두는 즐겁게 살아갔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나 궁내에서 이렇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잡을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힘들게 일하지도 않고, 땀을 흘리거나, 땡볕에 일하지도 않고, 비바람을 맞지도 않아도 된다. 그러나, 완저후두는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그녀는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고 싶어했다.

 

지위는 비록 낮았지만, 완저후두에게는 발전의 여지가 많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근거리에서 황상과 접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느 왕공대신, 국가동량들도 감히 꿈꿀 수 없는 이점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것은 사장이 운전기사, 비서와 비슷하다. 혹은 사장의 집안청소를 하고 이부자리를 개어주는 업무를 하는 사람과 비슷하다. 그들은 사장의 사적공간에 접근할 수 있고, 쉽게 사장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이 승진하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없다.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왜 나보다 높은 직위에 앉는가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태도이다. 그들이 일할 때, 너는 일찌감치 퇴근하여 커피나 마시지 않았는가? 그들은 네가 커피를 마실 시간까지 업무에 종사했다. 그들을 발탁하지 않으면 누구를 발탁하겠는가? 우리가 간부를 임용하는 일관된 원칙은 아는 사람을 쓴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쉽게 알 수 있다그렇기 때문에 사장이 쓰는것이다.

 

완저후두는 운전기사, 비서의 장점을 갖추고 있을 뿐아니라, 그들이 갖추지 못한 것까지도 갖추었다. 그녀는 여인이었다. 그것도 아주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완저후두의 아름다움은 꽃병 같은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오래 보면 싫증을 느끼게 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영동(靈動)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아름다우면서도 총명한 그런 것이다. 그녀가 여러 차를 따르는 궁녀들 중에서도 돋보일 수 있었던 것만 보더라도 이는 알 수가 있다. 완저후두의 일은 아주 간단하다. 아무나 불러서 시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도 기교가 필요하다. 아무나 다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속담에 임금을 모시는 것은 호랑이를 모시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는가. 그저 황제의 위풍이나 황제의 온화함만을 보고서 행동해서는 안된다. 위험도 생각해야 하다. 이 호랑이가 언제 온순하고 언제 성깔을 부리는지를 알아야 한다. 만일 조금만 부주의하여 찻잔을 깨트리거나 찻물을 황제의 옷에 흘렸다가는 그 결과를 상상하기 힘들다.

 

기술을 숙련되게 익히는 것은 기본이다. 완저후두의 재능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눈치가 빨랐다. 원순제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숨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가급적 차를 따르는 시간을 줄였다. 그리고 물온도를 마시기 적합한 정도로 낮추었다(입으로 맛볼 수는 없다. 그저 손의 감으로 느껴서 해야 한다). 그리고 황제가 화를 낼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에 넣고 있어야 한다. 원순제가 기뻐할 때도, 완저후두는 마음을 놓지 않았다. 은근한 눈빛과 발그레한 뺨으로 여인의 매력을 발산했다. 이것도 지나쳐서는 안된다. 기교가 필요하다. 원순제가 편안하게 차를 마시다가 여유시간에 사방을 둘러볼 수도 있다. 완저후두는 원순제로 하여금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녀의 이런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가장 좋은 것은 뺨이 발그레해지고, 눈빛이 그윽해지는 것이 원순제가 둘러보는 시간과 맞추면 더욱 좋다). 이런 상황은 많을 필요도 없다. 한번이면 족하다.

 

생각해보라. 원순제가 세상은 정말 아름답구나 생각하면서 둘러보고 있을 때, 우연히 봄기운이 만연한 완저후두의 눈과 마주치게 되면, 불꽃이 튀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곧이어 완저후두는 부끄러운듯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는 것이다. 서지마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가장 좋은 것은 고개를 숙이는 온유함이다. 한송이 수련화가 차가운 바람에 못이겨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이처럼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붉히는 것은 중국여성의 전통미이다. 중국남성들이 추구하고 좋아하던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이런 아름다움은 원순제가 보기에 별다른 광경이었을 것이다. 여인을 많이 보아온 그에게도 마음의 동요를 일으켰을 것이다. 마음이 흔들리는 횟수가 늘어나게 되면 결국 끌어안게 되고, 또 한단계 나아가게 될 것이다. 친밀한 접촉이 늘어나게 되면 점점 사랑은 연민으로 바뀌고, 더 이상 완저후두에게 차를 따르는 것과 같은 천한 일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완저후두는 이렇게 하여 인생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룬다. 하급공무원에서 후궁의 예비간부로 승급한 것이다.

 

그러나, 황제가 좋아한다고 하여, 황후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이는 오히려 반비례한다. 황제가 좋아하면 할수록, 황후는 더욱 싫어하게 된다. 그래서 원순제와 완저후두가 서로 찰떡처럼 달라붙어 있을 때, 다나시리는 이를 악물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온갖 방법을 써서 완저후두의 잘못을 끄집어내려고 한다. 완저후두는 여러 번 황후로부터 모욕을 당한다. 채찍으로 맞기도 하고 욕을 얻어먹기도 했다. 이는 완저후두로 하여금 궁녀로 있을 때의 걱정없이 즐거웠던 나날을 그리워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때는 아무도 그녀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아무도 그녀를 미워하지 않았었다.

 

완저후두에게 다행스러운 점은 다나시리가 황후에 겨우1년밖에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나시리는 궁에서 쫓겨난다. 다나시리의 오빠는 어사대부인 탕치스(唐其勢)인데 모반을 일으켰다가 피살된다. 오빠와 함께 거사에 참가했던 남동생인 타라하이(塔剌海)가 도망칠 곳이 없자, 누나가 있는 후궁으로 숨어들었다. 다나시리는 동생을 숨겨주기 위하여 옷으로 그를 가려준다. 다나시리는 범인은닉죄로 황후의 직위를 박탈당하고, 얼마후 독살된다.

 

다나시리가 죽자, 황후의 자리가 비게 된다. 원순제는 완저후두를 올리려고 하나, 승상인 바얀(伯顔)의 반대에 부닥친다. 바얀은 당시 조정을 좌지우지했고, 세력이 아주 커서, 원순제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결국 바얀후두를 황후로 올린다. 완저후두를 달래주기 위하여, 원순제는 그녀를 제2황후로 봉해준다. 대우에 있어서는 정궁황후와 마찬가지였고, 후궁중 2인자였다. 완저후두에 있어서, 약간은 유감스럽지만, 이것만해도 고속승진이었다. 부귀영화는 이미 옛날의 그녀가 아니었다. 완저후두의 성격도 이와 더불어 변화한다.

 

변화는 서서히 이루어지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처음에 완저후두의 변화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심지어 한동안은 옛날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완저후두는 출신이 미천하고, 가정환경이 빈한했다. 이렇게 세력을 얻는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는 현재의 위치를 아주 고마워했다. 그녀는 자신의 자질을 끌어올리는데 애를 썼고, 새로운 환경에 급속히 적응해간다. 일이 없을 때면, 완저후두는 <<효녀경>>을 보거나, 사서에서 역대황후들의 덕행을 찾아서 그를 본받으려 했다. 이런 노력을 통하여 모의천하(母儀天下)’의 실력갖춘 황후가 되고자 하였다. 그녀에게 남다른 점이라면, 그녀는 빈한한 출신의 선량한 본성을 유지하고 가난한 백성들을 도와주곤 했다. 지정18(1359), 경성에 기근이 들어서 굶어죽은 시신이 온 천지에 널려 있었는데, 왕저후두는 죽을 끓여서 기아에 허덕이는 백성들에게 제공했다. 그리고 사적인 돈을 내서, 자정원으로 하여금 굶어죽은 백성의 시신을 거두어주도록 했는데, 시신의 수만 십만구가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편안한 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계속하여 예전의 힘든 시절을 느끼기가 힘들다. 완저후두의 이런 선행과 마음씨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변해간다. 그녀는 금방 부귀영화와 권력의 맛을 느끼고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한 사람의 지위의 변화는 성격의 변화도 가져온다. 생활이 점점 풍요로워지면서, 완저후두는 역할의 전환도 이루게 된다. 점점더 현실적이 된다. 원순제의 둘째황후인 바얀후두는 아주 근검절약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죽은 후, 완저후두는 그녀가 남긴 낡은 의복을 보고는 이렇게 비꼬아 말한다: “정궁황후가 어찌 옷을 이렇게 입었는가?” 정궁의 제1황후가 나보다도 못한 옷을 입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완저후두에게 권력에 대한 욕망이 강하게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오늘날이 있게 된 것은, 모두 그녀가 권세를 지녔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녀는 권세가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원했다. 이 생각은 그녀의 아들인 아유시리다라가 황태자에 오른 후에 더욱 강해졌다. 원순제는 조정에 싫증을 느끼고 있었다. 완저후두는 아유시리다라와 모의를 꾸며 원순제를 물러나게 하려고 했다. 그녀는 당시 승상으로 있던 타이핑(太平)에게 이런 뜻을 전달하나, 타이핑은 동의하지 않는다. 원순제가 나중에 이 일을 알고는 깜짝 놀라고, 분노하여, 점점 완저후두를 멀리한다. 2개월동안 그녀를 보지도 않는다. 원순제는 완저후두가 옛날의 그 어린 궁녀가 이미 아니고, 권력욕이 충만한 무서운 여인으로 변신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완저후두의 애수는 그녀의 가정불행에서 온다. 완저후두의 가정은 원래 고려국에서 보통의 백성이었다. 매일 해가 뜨면 나가서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와서 자는 간단한 생활이었다. 비록 힘들었지만, 즐겁게 지냈다. 그런데, 딸이 원나라의 황후가 되자, 가족들은 모조리 지위가 상승했다. 날로 부귀영화는 더 해지고, 점점 더 교만해진다. 그들은 누구든지 무시했다. 심지어 원나라의 속국이 된 고려의 왕도 그들이 보기에는 별 게 아니었다. 고려왕은 참다참다 결국은 화가나서 기씨 일가를 모조리 죽여버린다.

 

가족을 잃은 완저후두는 졸지에 많이 초췌해진다. 그녀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행복한 생활을 위해서 노력했는데, 졸지에 이 같은 지경에 처해지게 된 것이다. 그녀는 고뇌하고 원한을 품는다. 완저후두는 태자로 하여금 복수를 하도록 충동질했고, 아유시리다라는 1만의 병력을 이끌고 기세등등하게 압록강을 넘는다. 그러나, 아유시리다라는 고려의 매복에 당해서 대패하고, 1만명중 겨우 17기만이 살아서 돌아오고, 완저후두는 더욱 우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