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강각지(江覺遲)
다른 곳은 모르겠고, 내가 일하는 티벳족지역에서 일처다부(一妻多夫)와 사분(私奔, 애인과 도망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다. 이상할 것도 없다. 하루는 누군가가 나에게 물어왔다. 당신의 소설에서 일처다부에 대하여 썼는데, 사진으로 보면 사실이 그러한 것같기는 하다 그렇지만 글을 쓰면서 혹시 독자들이 엽기적인 심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할까 걱정하지는 않았는가?
나는 그런 것은 전혀 아니었다.
나는 그저 평소에 있던 일을 쓴 것이다. 평상심으로 써나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곳의 생활이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무슨 엽기인가. 아마도 내지에서는 일부 일처다부라는 단어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혹은 여러가지 망상을 하여 엽기로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은 일처다부에 대하여 개략적으로 얘기해볼까 한다. 이 글을 읽으면 여러분들은 이해가 될 것이다. 그건 뭐 신기한 것도 아니다.
사실 반농반목(半農半牧)의 지역에서 일처다부라고 하지만, 남편과 부인은 명절같은 때를 제외하면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3명의 부인의 남자를 예로 들자. 내 소설의 바상여인처럼. 그녀는 3명의 남편이 있었다. 한 명은 농사를 짓고, 한 명은 초원에 있고, 한 명은 외지로 나가서 장사를 했다.
이런 방식은 전체 가정의 생활상, 경제상의 필요에 의한 것이다. '섹스'를 놓고 본다면 분명히 나뉘어져 있다.
만일 명절이 되어 모두가 함께 모여야 하는 때가 되면, 그때는 그 나름의 방법이 있다. 일반적으로 여자는 자신의 침대가 있다. 형제중 누군가 여인과 함께 있을 때면 문옆에 물건을 걸어둔다. 예를 들어,자신의 허리띠를 걸어두어 표시하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형제들이 자리를 피해준다.
현지에는 기본적으로 부모, 남자, 아이들과 함께 큰 대청에서 함께 잠을 잔다. 그리하여, 일종의 묵계는 어떤 형제가 잠을 잘 때 대청을 떠나게 되면 다른 형제들은 무슨 뜻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런 측면에서 특별한 규정이나 약속은 없다. 묵계는 왕왕 평소생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일처다부의 가정은 둘 내지 3명의 형제가 한 명의 처를 공유한다. 4,5명이 처를 공유하는 경우는 적다. 그러나 결혼할 때는 두 세명이 공동으로 부인을 맞이하지는 않는다. 큰형이 대표하여 맞이한다. 다른 형제들도 마음 속으로는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지역마다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다르다. 어떤 지방에서는 일처다부의 결혼방식도 다를 수 있다.
결혼하면 여자도 생활이 쉽지는 않다. 내지의 어떤 인사들은 여러 남자들이 그녀를 떠받들어주므로 그녀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티벳지역의 부인들은 일처다부이건, 일처일부이건, 모두 아주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필자의 소설에서의 앙종여인처럼 여인들은 가정노동과 농업노동의 거의 대부분을 떠맡아 하고 있다.
처의 지위를 말하자면 대부분 젊은 부녀의 지위는 아주 낮은 편이다. 노동기계와 같다. 농번기에는 하루종일 땅에서 일을 한다.
필자가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매년 수확의 계절에 친구의 집을 가보면, 낮에는 여자를 볼 수가 없다. 새벽부터 농기구를 들고 밭으로 나가서 일을 한다. 저녁 깜깜해져서여 돌아온다. 큰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어지간한 비에는 나가서 일을 한다. 돌아오고나서도 남자들은 그저 앉아서 그녀가 밀크티를 끓여주기를 기다린다. 당연히 남자들도 일은 한다. 그러나, 그건 그저 힘을 많이 써야하는 일일때 뿐이다. 그 일이 끝나면 그냥 논다. 번잡한 집안일이나 밭일은 모두 여자들의 몫이다.
일처다부의 가정에서 여자들도 잘해야 한다. 치우쳐서는 안된다.
형제가 처를 공유하는 기본목적은 가정의 단결과 재산의 분산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가 어떻게 하느냐가 형제간의 단결에 아주 중요하다. 여자가 어느 한 형제에게 마음을 치우쳐서 쏟거나, 아니면 말이 많거나, 일하기를 싫어하거나, 고부관계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거나 하면, 형제간에 갈등이 생긴다. 이렇게 하면 어떤 형제는 가정과 처에 흥미를 잃게 되고, 떠나게 되는 것이다. 혹은 다른 여인을 찾아서 도망치고, 분가하게 된다.
여인이 시어머니를 잘 모시고, 남편의 말을 따르고, 말이 적고, 일은 열심히 해야 남자들을 남겨둘 수 있다. 시부모도 그녀의 편을 들게 된다. 만일 아들이 다른 마음을 먹더라도 시부모가 나서서 며느리를 편들어줄 것이다. 일처다부의 혼인이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하느냐는 많은 경우 여인의 고상한 덕성에 의존한다.
금방 말했듯이, 일처다부의 탄생은 첫째는 가정과 재산을 온전하게 지키기 위함이다. 그외에 과거로부터 흘러내려온 이유도 있다.
농노제도시대에, 오랍차역(烏拉差役)을 피하려는 것도 있다. 오랍차역은 호(戶)를 기준으로 계산했다. 형제 여러명이 처 1명을 공유하면 하나의 호이다. 그래서 오랍차역으로 장정을 차출하더라도 가정에서 남자 1명만 차출된다. 만일 각각 부인을 두게 되고, 분가해서 별도의 호를 만들면 한 집안의 아들들이 모조리 잡혀갈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자식들은 어떻게 구분하고 대우하고 호칭하는가?
이것은 현지사람들의 혈친에 대한 이해와 가족관념에 대한 태도를 보아야 한다.
한족들은 '혈친(血親)'과 '전종접대(傳宗接代)'에 대하여 뿌리깊은 인습이 있다. 누군가가 제사를 지내줄 후손이 없고, 친아들이 없다면 그것은 아주 슬픈 일이다. 티벳지역의 어떤 지역사람들은 이 점에 있어서 한족만큼 그렇게 중시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전체가족을 기준으로 이것을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자시의 여동생에게 아이가 있다면, 사생아라고 하더라도 이는 자시의 아들이다. 즉 하나의 가족이고, 자신의 것이다. 자신의 아들과 마찬가지로 그를 사랑하고 이를 통해서 만족을 얻는다.
내지의 어떤 사람들처럼, 자신이 자식을 낳을 수 없다고 하여, 시험관아기까지 하지는 않는다. 내가 느끼기로 이곳에서 그들의 사랑과 가족애는 공향성(共享性)을 지니고 있다. 기본적으로 사촌여동생이나 친여동생이나 차이가 없다. 우리 도시에서처럼 재산을 갖기 위하여 가족들간에 피터지게 싸우는 일은 거의 볼 수가 없다.
호칭에 있어서, 일처다부의 가정에서도 어느 정도 편하게 처리한다. 일반적으로 형제를 대표하여 결혼한 큰형을 아빠라고 부르고, 그 다음 형제는 아저씨로 부른다.
일처다부의 존재는 교통이 불편한 원시지역, 자연재해가 빈발하는 지역에서 나타나는 것은 이해가 된다. 생각해보라. 아주 빈곤한 지역에서, 토지는 척박하고, 생활은 낙후되어 있는데, 서로 힘을 도와가켠서 살아가야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그래야 생활도 안정되고, 더 공고해진다. 가정이 크면 클수록, 생활은 더욱 안전감을 느낀다. 소가족은 이런 곳에서 아주 취약하다. 생각해보라 여자를 따로 취하면 가정을 새로 꾸미고, 집을 새로 만들고, 노동도구도 더 만들어야 할 것이다. 빈곤한 곳에서, 이렇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연히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티벳지역도 갈수록 개방되고 발전되고 있다. 사람들은 외부의 새로운 문명,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였다. 현재 티벳지역의 일처다부는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필자가 접촉한 일처다부는 대부분 80년대 90년대에 결혼한 경우이다. 90년대이후에 결혼한 가정에서는 이미 일처다부가 드물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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