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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민족

강족(羌族): 유일하게 소멸되지 않은 고대소수민족

by 중은우시 2009. 7. 20.

글: 노위병(路衛兵)

 

오호난화(五胡亂華, 다섯 오랑캐 흉노, 선비, 저, 갈, 강이 중원을 어지럽히다)는 중국북방민족을 도탄에 빠지게 만들고 비바람이 몰아치게 만들었던 재난의 시기이다. 또한 각 민족들간에 대융합, 대발전이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오호(五胡)는 대거 중원으로 몰려들었고, 한족들과 잡거하며 통혼했다. 그리고 한족의 문화와 문명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야만종족의 특성은 점차 소멸한다. 민족의 동화는 서서히 변화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살륙을 통하지 않고 하나의 민족을 소멸시키는 방법이다. 사실상 오호 가운데, 흉노, 선비, 저, 갈은 확실히 이미 역사의 긴 강물에서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단지 "강"족이라는 고대의 민족만이 완강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강족은 지금도 여전히 독립민족으로 생존을 유지하고 있다.

 

강족의 기원 및 연혁

 

강족의 역사는 아주 유구하다. 강족은 은상(殷商)시대에는 귀방(鬼方)이라고 불리웠다. <<죽서기년>>에는 "왕(상의 국군 무정)이 병사를 이끌고 귀방을 물리쳤다. 저(), 강(羌)이 손님으로 왔다" 그리고 <<주역>>에도 이런 기록이 있다: "고종(무정이 귀방을 정벌하는데 3년만에 물리쳤다." 그리고, "3년만에 물리치니 피로하다" 3년간의 전쟁으로 나라의 힘이 피폐해졌다는 것을 보면 당시의 귀방 즉 강족은 아주 강대한 부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싸우기 힘들기는 하더라도 강족은 그래도 정복되었다. 당시 상나라의 정부는 송시를 지어서 후세에 남겼다: "그 이후로 저, 강이 감히 왕으로 모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즉, 상나라에 신하가 된 것이다. 강족은 <<국어>>에서는 "강씨지융(姜氏之戎)"이라고 적고 있다. 극 서융(西戎)의 강(姜)씨부족이라는 것이다. 강(姜), 강(羌)은 고대에 서로 음이 통했다. <<후한서>>에도 "서강의 근본은 삼묘(三苗)에서 나오니, 강성(姜姓)의 별종이다." 이 족은 나중에 대융과 함께 서주를 멸망시킨다. 전국후기에 강족은 진(秦)나라와 이웃하며 전투를 전개하기도 한다. 결국은 진나라에 복속한다.

 

강과 흉노는 중국 서북과 북부에서 중원을 적으로 둔 두 개의 강력한 부족이었다. 그러나 흉노가 강족보다 먼저 굴기했다. 흉노는 모돈때 강성해지는데, "위세가 백만(百蠻)에 떨쳤고, 여러 강족들이 신하로 들어왔다" 강족은 흉노에 귀부한 것이다. 한무제때, 흉노와 강이 연합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하서사군을 설치하고, "강과 오랑캐를 분리해서 남북으로 서로 연결되지 못하게 하였다" 나중에 "병력 10만을 보내어 평정하였다" 그리고는 호강교위(護羌校尉)를 두어, 강족의 옛땅을 다스린다. 그리하여 "강족은 황중(湟中, 지금의 서녕시 서부)으로 가고, 서해, 염지의 좌우에 살았다" 오늘날 청해호 서남의 광활한 지역으로 이주한 것이다.

 

강은 전형적인 유목민족이다. <<후한서>>에서는 "거주지가 일정하지 않으며, 물풀을 따라다닌다." 강족들은 "추위와 고통을 잘 참으니 금수와 같았다" 오랫동안 춥고 힘든 곳에 살다보니, 문명수준은 아주 낮았다. 그렇지만 체격은 아주 강인하여 야수와 같았다. 이런 환경하에서 그들은 용감하고 강인한 품성을 길렀다. 소위 "성격이 견강용맹(堅剛勇猛)하다"는 것은 바로 부녀자들이 자식을 낳을 때도 찬바람과 혹독한 추위를 피하지 않았다는데서도 이 민족의 강인함을 알 수 있다. "부인이 자식을 낳을 때도 풍설을 피하지 않는다"

 

강족의 첫번째 중원침략

 

왕망의 말년에 중원이 크게 어지러울 때, 강족은 빈틈을 타서 감숙, 영하, 섬서의 일부군현을 점거한다. 이때부터 한족들과 혼거하기 시작한다. 나중에 동한의 변방의 우환거리가 된다. 한화제때 그들을 정복한다. 다만 항복한 강족들은 한족관리와 호족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여 한족과 강족의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관계도 긴장된다. "모두 관리와 호족들의 요역에 동원되니, 원한이 깊이 쌓여 있었다" 이러한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는 없다. 결국 107년에 집중적으로 폭발한다. 당시 한황실은 강족을 데리고 서역을 정벌하려 했는데, 강족은 한번 떠나면 다시 되돌아올 수 없을까 우려했다. 그리하여 강족들은 "흩어지고 반란에 가담하는 자가 많았다" 각처의 군현에서는 강족을 포위하고 추격하니, 강족들은 놀라서 반란에 가담한다. 그리하여 감숙으로 가는 길이 막히고, 많은 마을이 약탈을 당한다. 강족은 원래 흉맹하고 전투를 잘한다. 이번에는 핍박을 받아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군현에서는 두려워서 이들을 통제하지 못했다. 국면은 금방 수습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동한을 60여년간 괴롭혔던 변방의 우환이 이때부터 시작된다. 강족은 결국 대거 살륙당하면서 평정된다. 그래도 강족은 족속이 많았고, 번식능력도 강했다. 오호난화의 때에 이르러 드디어 중원을 침입하게 된다.

 

진나라말기 팔왕의 난때, 오호는 기회를 틈타 중원으로 들어온다. 강족의 한 갈래로 수령 요과중(姚戈仲)이 이끄는 무리가 농서(감숙서부)에서 지금의 섬서 천양일대로 이주한다. 이들은 흉노의 전조와 갈족의 후조를 복속시킨다. 나중에 요과중은 다시 강족무리 수만을 이끌고 청하(산동 임청의 동쪽)로 이주한다. 후조가 멸망한 후 진나라에 투항하여 동진의 작위를 받는다. 요과중이 병사한 후에 그의 아들 요양(姚襄)이 군대를 이끌고 관중으로 되돌아가면서 전진(前秦)의 군대와 전투를 벌이나 전투에서 패하여 피살당한다. 그의 동생인 요장(姚)은 부대를 이끌고 전진에 투항한다. 비수지전때 전진이 동진에 패배하고, 선비족의 모용수가 기회를 틈타 자립하자, 요장도 마침내 병력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전진에 항거한다. 386년 장안에서 황제에 오르고 국호를 대진(大秦)이라고 한다. 역사에서는 후진(後秦)으로 부르는 나라이다. 요장은 모략에 뛰어나고, 용병술을 잘 썼다. 국세가 금방 발전하여 그의 아들 요흥(姚興)의 때에 이르러서는 다시 근검절약을 제창하고, 교육을 중시하며 일련의 개혁을 시도한다. 그리하여 국력이 전성기에 도달한다. 전진, 후량, 서진이 모두 그들에 의해 멸망당한다. 모용수의 후연과 더불어 나란히 북방대국으로 불리운다. 417년, 동진의 유유가 북벌하여 장안으로 공격해 들어오니, 후진이 멸망한다.

 

후진은 멸망하면서, 이 갈래의 강족은 점차 다른 민족과 융합하여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강족은 다른 네 오랑캐족과는 달리 역사에서 소멸하지 않았다. 그들은 독립된 민족으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데, 강족의 생명력은 필자가 보기에는 네가지 정도의 원인이 있는 것같다.

 

첫째, 강족은 종족이 아주 많고, 분포가 광범위하다. <<후한서>>에서는 "강족은 154종이 있다"고 하였는데, 거기에는 영강(零羌), 종강(種羌), 백마강(白馬羌), 소당강(燒當羌), 삼랑강(參狼羌), 건인강(虔人羌)등이 있다. 후진을 건립한 것은 소당강이다. 그들은 내지에 들어온 후에 한족과 잡거하면서, 점차 한족에 융합되었다. 멀리 떨어져 거주하던 일부는 한족과 티벳족에 동화되고, 나머지 일부분은 그대로 보전되었다. 이들이 지금의 강족이다.

 

둘째, 강족은 풍속이 특이하고, 종족번성이 창성했다. <<후한서>>의 기록에 따르면, "그들의 습속은....부친이 없어지면 계모를 처로 삼는다. 형이 죽으면 형수를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국가에 과부가 없다. 종족이 아주 번성했다" 계모를 취하고 형수를 취하는 풍습을 가진 부족이라면 당연히 종족이 아주 빨리 번성할 것이다.

 

셋째, 강족의 무리는 아주 넒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고, 분산해서 거주했다. <<후한서>>에서는 그들 무리가 "천리에 걸쳐 퍼져 있다"고 한다. 아주 광범위하게 분포되어서 남으로는 촉, 서북으로는 선선, 차사등 여러 나라와 인접해있었다. 이를 보면 전체 중국서부, 티벳, 사천티벳경계, 청해, 감숙등지를 모두 포괄한다.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대부분이 산지여서, 부족은 분산해서 거주했고, 부족들간의 연계도 적었다. 그리하여 통일되기 힘들었다.

 

넷째, 강족은 춥고 힘든 곳에 살아서 상대적으로 폐쇄적이었다. 춥고 힘들고 멀리 떨어진 곳이어서 한족통치지역과 비교적 멀었다. 한족과 다른 부족의 문화가 영향을 미치기 힘들었다. 특수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독립성을 지니게 된다. 자연히 다른 민족에 융합될 기회가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