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선진)

진문공(晋文公) : 중국역사상 가장 여복(女福)이 많았던 사람

중은우시 2007. 9. 7. 18:32

글: 정계진(丁啓陣)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누가 중국에서 가장 도화운(桃花運)이 좋은 남자인가라고 물으면 누구라고 말하겠는가"라는 문제였다. 만일 여론조사를 한다면 누가 선정될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아마도 어떤 사람은 당현종(唐玄宗)을 들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반안(潘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가보옥(賈寶玉)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궁녀가 8천명이라던 당현종은 아마도 고금역사상 가장 많은 마누라를 둔 남자일 수 있다. 그러나, 그 팔천의 여인들 중에서 단 한명 양귀비를 뺀다면 아마도 거의 모두 단지 명분상의 관계에 불과했을 것이다. 반안은 중국역사상 가장 미남이라고 칭송되고 있고, 여인들의 사랑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문헌의 기재에 의하면 그와 여인들간의 관계는 마치 그가 마차를 타고 나갈 때 부녀자들이 그의 마차에 과일을 던져넣었다는 내용만 있다. 가보옥은 여인국인 대관원에 살았고 매일 누이, 누나, 시녀들의 무리 속에서 생활했고, 설보채와 임대옥을 좌우에 끼고 있었지만 어쨌든 그는 소설속의 허구의 인물일 뿐아니라, 결말도 좋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이 사람들은 모두 결점이 있다.

 

그래서 필자는 여기에서 한 사람을 후보자로 추천하고자 한다. 그는 바로 지금으로부터 2600여년전에 생활했던 진(晋)나라 사람이다. 나중에 진나라의 국왕이 된 진문공이고, 이름은 기괴하여 중이(重耳)이다.

 

기록상 그의 도화운은 그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왜냐하면 그의 부친인 진헌공(晋獻公)은 자신이 총애하던 애첩이 나은 자식을 후계자로 삼고자 하여, 다른 자식들이 모두 액운을 벗어나지 못했다. 중이의 두 형은 모두 살해되었다. 그래서 중이는 형들처럼 해를 입지 않으며고 몇몇의 수하를 데리고 진나라에서 도망쳐서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망명생활을 시작하자마자 그에게는 도화운(여복)이 터지기 시작한다. 정치적으로 실패하면서 애정상에서는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 중이가 망명을 시작한 것이 그의 나이 43세때였다. 이전까지 그가 어떻게 지냈는지는 기록상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그의 이후 생활에서는 좋은 일만 연속되었으니 대기만성이라고 할 수 있다.

 

망명의 첫번째로는 인근에 있는 작은 나라인 적국(狄國)이었다. 마침 적국에서 구여(咎如) 가족을 토벌하였는데, 여기서 구여의 두 딸을 얻었다. 적국의 국왕은 그중 큰 딸을 중이에게 주어 처로 삼도록 해준다. 이 처는 중이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낳아주고, 12년간을 생활한다. 중이와 그 일행은 적국이 작은 나라라고 생각하여 좀 더 큰 나라로 망명하고자 결정한다. 그가 떠날 때, 중이는 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를 25년만 기다려 달라. 만일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그 때 개가해도 좋다" 그러자 그의 처는 웃으면서 말했다고 한다: "25년후면 내 무덤에 나무가 이미 다 자랐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다"

 

두번째로 간 곳은 제(齊)나라였다. 어찌된 일인지 제나라의 일대패자 제환공(齊桓公)이 그를 잘 봤다. 그리하여, 후하게 대점하면서 자기 집안의 여자 한 명을 그에게 시집보낸다. 그러면서 20개의 마차도 함께 보내준다. 제나라에서는 5년을 살았다. 생활도 풍족했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제나라여자와 함께 지내다보니 중이는 제나라를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중이의 수하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제나라를 떠나서 나라를 되찾을 계책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중이의 처인 제나라여인은 이를 듣고는 중이에게 길을 떠나도록 권한다. 그래도 중이가 떠나려고 하지 않자, 그의 수하들과 함께 중이에게 술을 잔뜩 먹여서 취하게 한 후 마차에 싣고 수하들로 하여금 떠나라고 한다.

 

조나라, 송나라, 초나라를 거쳐 마침내 진(秦)나라까지 갔다. 당시 이미 대국이 되었던 진나라의 군주인 진무공은 손이 커서 한꺼번에 자기 집안의 여자 5명을 모두 중이에게 시집보낸다. 진나라의 다섯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한 후, 다시 진나라의 도움을 받아, 중이는 마침내 진나라로 되돌아오게 되고, 진나라의 국왕이 된다. 그가 바로 진문왕(晋文王)이다.

 

망명길에 3개 나라를 거치면서 모두 7명의 여인을 얻었다. 생각해보라. 망명길에 오른 사람이라면 어떤 때는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가 언제 빛을 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게다가 중이가 진나라를 떠날 때 나이가 이미 43세였다. 옛사람들은 오래 살지 못했으므로 40여세이면 이미 적은 나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적국의 여인은 그에게 시집왔을 뿐아니라 그를 위하여 25년이상을 기다려주겠다고 했다. 제나라에 갔을 때는 중이가 이미 55세인데, 재물과 미인을 함께 얻었다. 진나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60세인데도, 한꺼번에 5명의 부인을 얻었다.

 

거의 거지에 가까운 사람이 나이도 적지 않은데, 망명길에서 중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적국의 여인을 얻고, 정리에 달통한 제나라 여인도 얻고, 진나라로부터는 5명의 여인과 나라를 얻었다. 이 정도의 여복이면 누가 비교할 만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