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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문혁후)

천진시정협주석 송평순(宋平順) 자살사건

by 중은우시 2007. 7. 16.

글: 이락(李樂). 중국경영보 2007년 7월 16일자

 

2007년 6월 3일, 62세이 천진시 정협주석 송평순이 자신의 사무실안에서 자살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1개월후, 신화사는 뉴스를 통해서, 송평순이 엄중하게 당규율을 위반하였으므로, <<중국공산당기율처분조례>>의 관련규정에 근거하여, 중공중앙기율검사위는 중공중앙의 비준을 받아, 송평순의 당적을 제명한다고 발표했다. 송평순은 이런 결말을 맞이한 것은 11년전의 홍콩부동산업자 양지빈(梁志彬)이 벌였던 "영기집단불법자금모집(永基集團亂集資)"사건과 관련이 있다. 당시 천진의 공안검찰법원을 장악하고 있던 송평순은 이 홍콩상인과 너무 가깝게 지냈다.

 

1996년, 장뢰(張磊)는 <<천진일보>>에서 "천진영기상성(天津永基商城)" 프로젝트광고를 보았었다. 이미 11년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도 당시의 광고내용을 명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천진영기상성은 천진시가 외자유치하는 중요 프로젝트이고, 개발상인 "천진영기공사"는 천진시 남개구건설위원회 및 홍콩상인의 합자기업이며, 프로젝트는 이미 5개 증명을 모두 발급받았다.

 

남개구의 황금위치에 자리잡은 상가이므로 장뢰는 당연히 투자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분양현장에서 영기상성과 관련된 심사허가서류를 살펴본 후, "분양계약"을 체결했다. 그의 상가는 20여만위안짜리였는데, 이 돈을 마련하는 것이 당시 천진에서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장뢰가 중시한 것은 상성이 개업하면 분명히 괜찮은 수익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영기상성의 분양은 2년여간 지속되었다. 1996년에 시작해서 1998년에 분양이 완료되었다. 천명이상의 투자자들이 영기상성의 점포를 인수했다. 1998년, 천진시방옥토지관리국은 그들에게 방산증(건물부동산증)을 처리해주었다. 이때까지는, 모든 것이 순서에 따라 처리되었고, 투자자들은 미래에 상성이 그들에게 가져다줄 이익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투자자들의 꿈은 결국 물거품이 되었다.

 

"1998년 국경절(10월 1일)이 막 지나고나서, 영기공사는 통지를 해왔습니다. 영기상성이 '불법자금모집'으로 불법프로젝트가 되었으니, 원래 체결한 분양계약은 전부 취소되고, 법률의 보호도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장뢰의 말이다. 이후 장뢰는 다른 투자자들과 함께, 여러번 영기공사를 찾아갔지만, 아무런 합지럭인 배상에 관한 얘기를 들을 수 없었다. 그들은 바로 남개시정부와 천진시정부에 이 사건에 대한 합당한 처리를 요청했다.

 

이우 3년이 지나도록 해결이 되지 않자, 2001년 장뢰와 다른 투자자들은 천진시국토방산토지관리국과 천진시영기공사로부터 통지서를 받았다. 이 통지서에는 "영기상성은 불법자금모집을 했으므로, 1998년에 처리해준 방산증을 취소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때, 투자자들은 사안이 심각하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천진시의 관련법원에 행정재심신청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천진영기공사의 대표인 홍콩상인 양지빈을 찾았다. 그러나 이때 그들이 발견한 것은 이미 양지빈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천진시의 모든 공안, 검찰, 법원계통은 영기상성과 관련된 신청에 대하여 모두 접수를 거부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국면을 맞이하여, 장뢰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랐다.

 

장뢰와 다른 투자자들은 "소송을 할 수 없는 기간"동안 천진의 공안,경찰,법원을 장악하고 있던 사람이 바로 송평순이었다. 당시 그는 천진시 정법위원회 서기였고, 공안/검찰/법원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때의 송평순은 이미 천진영기집단의 법인대표인 홍콩상인 양지빈과 여러 해의 교분이 있었고, 영기상성이 남개구에서 순조롭게 상버을 진행하고 분양할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중점프로젝트'라는 신분을 갖게 된 것도 모두 송평순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었다.

 

1996년, 양지빈이 천진에 왔다. 당시 양지빈의 아래에서 일했던 사람에 의하면, 당시 양지빈의 홍콩상인이라는 신분 자체는 가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게 그리 많은 자금은 없었다. 그는 관계를 동원해서 송평순을 알게 된 후에 민간에서 자금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송평순과 잘 통했으므로, 양지빈의 불법자금모집에 대하여 어느 부서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때, 양지빈이 자금모집한 명분은 나중의 천진영기상성이 아니라, "호화부동산프로젝트"였다. 골프장을 비롯한 대량의 별장을 짓는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천진시정부의 비준을 받았었고, 이것도 양지빈이 자금모집을 순조롭게 할 수 있던 이유중의 하나였다.

 

양지빈의 자금모집총액에 관하여, 당시 내부인사에 의하면 아마도 43억위안정도였을 것으로 본다. 자금모집이 완성되자, 양지빈은 원래 하겠다고 하던 "호화부동산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고, 방향을 돌려, "천진영기상성" 및 주변의 2동의 사무실과 주택사업을 시작했다. 대다수의 투자자들이 1996년부터 천진영기상성을 분양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천진영기상성은 개업후 경영이 참담했다. 양지빈은 자금모집때의 회수율을 도저히 보장해줄 수 없게 된 것이다. 심지어 원금까지도 내놓을 수 없게 되었다. 나중에 중국인민은행은 이 사실을 알고, 즉시 조사를 시작했고, 최종적으로 양지빈의 자금모집이 '불법'이라고 확정했다. 이 때가 1999년이다.

 

양지빈은 이후에 행방이 묘연하다. 양의 행방에 대하여, 떠도는 말이 서로 다르다. 하나 확실한 것은 양지빈이 출국할 때 가져간 돈 중에서, 절대다수의 돈은 바로 당시 불법모집한 것이라는 점이다. 양지빈이 출국하는 과정에서도 전혀 저지받거나 조사받지 않았다.

 

양지빈이 실종된 후, "천진영기상성"의 재무블랙홀을 처리하는 업무는 천진시 재정과 남개구 재정에서 부담하게 되었다. 남개구정부는 양지빈과 천진영기공사를 합자설립했으므로, 주요한 재무처리업무는 실제로 천진시 남개구가 떠안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하여, 남개구의 재정은 여러 방면에서 돈을 모았고, 심지어 구의 소속기관들에게 자금을 분담시키는 방법까지 썼다. 교육국에 있던 한 인사에 의하면, 구정부의 분담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남개구 교육국에 속해 있던 소학교 교사들의 월급까지도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천진영기상성의 재무블랙홀을 메우는데 썼다.

 

물건자체는 1998년 발급된 방산증이 취소된 후, "천진영기상성"은 천진태달집단(天津泰達集團)이 인수해서 관리했다. 천진태달집단은 천진시 직속의 대형기업이다. 분양자들이 자주 정부에 요청을 하게 되자, 천진시정부는 최종적으로 분양자들이 구매할 때 지급한 원금을 돌려주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이후에도 상당한 수의 분양자들은 여전히 원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영기상성의 분양자들에 의하면, 중국인민은행은 홍콩상인 양지빈의 행위가 '불법자금모집'이라고 확정하고, 은행감독위원회가 은감회, 천진시정부와 일부 분양자들이 참가한 협의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협의회에서 은감회는 중국인민은행의 문서는 합법적인 매매계약 이나 이미 취득한 재산권리증을 취득한 계약에는 영향이 없으므로, 이 문제는 천진시정부의 실무문제이고 천진시정부가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소송수단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여전히 접수해주지 않았습니다" 장뢰의 말이다.

 

2006년이 되어, 천진영기상성을 매입한 분양계약자들은 이 일을 처리하기 위하여 사방을 뛰어다녔다. 지금까지, 이 일이 완전히 처리가 끝났는지에 대하여 천진시정부는 명확히 답변하지 않고 있다. 그저 영기상성이 천진에 나타난지 11년이 된 후에, 이미 천진시 정협주석으로 옮겨갔던 송평순이 자살했다는 소식만 들려온 것이다. 1달후 송평순의 당적이 제명된 소식도 전해졌다.

 

송평순이 천진영기상성에 도대체 얼마나 관여했는지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천진시위원회에서 현재까지 파악하고 있는 송평순의 문제점은 직무를 이용해서 홍콩상인에게 이익을 취하게 해준 점, 축첩 및 첩과의 사이에 아들을 낳은 것등이라고 한다.

 

[참고1] 송평순

 

하남 심택사람이다. 전문대학학력.

1963. 7월 천진시공안학교 외국어반 졸업후, 천진시 공안국 1처에서 업무를 시작. 과원, 부처장까지 승진.

1983년, 천진시 공안국 부국장, 상임위원회 상임위원이 됨.

1988년부터 천진시 정법위원회 부서기, 시공안국국장, 당위서기, 무경 천진시총대 제1정위가 됨.

1993년, 천진시정법위 서기, 천진시 부시장, 시위원회 상임위원이 됨

2003년 1월, 천진시 정협주석 겸 천진시 정법위서기.

2006년 3월, 천진시 정협주석

 

[참고2] 송평순의 정부

 

송평순의 정부(情婦)는 2007년 현재, 북방신식산업(천진)유한공사, 순풍(천진)소방설비유지보수검사유한공사, 순안기업(천진)유한공사등 3개의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 3개의 기업은 주로 천진시 공안, 검찰, 법원계통의 제품주문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업무범위는 의류, 하드웨어설비까지 포함된다. 이외에 정부는 두 가지 자금원이 있다고 하는데, 2000년 8월에 개업한 순풍(천진)소방설비유지보수검사용역회사와 1998년 5월에 설립한 천진시기동차운전적응성검사센터가 있다. 후자는 원래 천진시공안국 교통관리국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2004년부터 그녀가 도급받아 경영하고 있다. 송평순 자살사건이후 회사는 문을 닫고 영업이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