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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심리

중국인들은 왜 선택할 줄 모르는가?

by 중은우시 2007. 5. 28.

글: 위가기(魏嘉琪)

 

최근 몇년동안 자주 중국의 대표단들이 내방을 하면, 미국친구들은 놀라서 나에게 이렇게 묻곤 한다: 왜 중국인들은 선택할 줄 모르는가?

 

미국친구가 중국에서 찾아온 친구들을 접대할 때, 모든 서비스에는 대부분 3가지 이상의 선택권을 부여한다, 그들은 자주 이렇게 묻는다: "오늘 저녁에 너희는 양식으로 하고 싶으냐, 아니면 중국식으로 하고 싶으냐" 중국대표단의 단장은 거의 이렇게 말한다: "뭐든지 괜찮습니다. 그쪽에서 알아서 어레인지해주세요" 미국친구가 방법을 약간 바꾸어 묻기도 한다: "너희는 익숙한 요리로 하고 싶으냐, 아니면 지금까지 먹어보지 못한 요리를 먹고 싶으나?" 이렇게 물어도 대답은 역시 "뭐든지 괜찮습니다. 그쪽에서 알아서 어레인지해주세요."

 

중국에서 오래 일했던 미국의 컴퓨터전문가가 북경에서 필자에게 서신을 보내왔다. 그는 아주 이상하다고 말했다. 중국친구들이 자기를 초청하면, 문을 들어서자마자 차를 따라서 준다는 것이다. 그들이 왜 자기에게 차를 마시고 싶은지 아닌지를 묻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만일 무엇을 마시고 싶으냐고 물으려면, 커피, 차 또는 음료중 무엇을 드시겠느냐고 왜 묻지 않느냐는 것이다. 차를 마시는 경우에도 손님에게 마땅히 물어봐야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무슨 차를 마시고 싶으냐, 홍차냐 아니면 녹차냐... 중국에서 오래 생활한 사람이 미국인들이 이렇게 자꾸 묻는 것을 보면, 분명히 머리가 이상한 사람이거나, 일부러 꼬투리잡기 좋아하고, 따지는 사람이어서 함께 지내기 힘들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1997년 하얼빈의 태양도에 한 기관에서 100여명이상이 소풍을 간 적이 있다. 노동조합에서는 1인당 빵 2개, 사이다 1병, 소세지 1개씩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즐겁게 받아서 먹었다. 한 대학의 외국인교수는 이런 광경을 보고 놀라서 필자에게 물었다. 왜 그들은 모두 소세지를 먹는 것을 좋아하고, 빵먹는 것을 좋아하고, 모두 동일한 회사제품인 사이다를 먹는 것을 좋아하냐고. 이 외국인교수는 중국에 대하여 아주 호기심을 나타냈다. 그때 나는 그의 질문에 대하여 어찌 대답해야 할 지를 몰랐다. 순식간에 필자가 미국에서 생활한지 10년이 되다보니, 나는 외국인들이 왜 그런 의문을 갖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인들이 소세지와 빵을 받았을 때 왜 기뻐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1989년 여름, 막 미국의 켄터키대학에 도착했다. 당일로 과목을 고르는데, 가득찬 과목중 선택해야 할 것이 많았고, 매 수업마다 학점이 달라다. 중국에서 대학을 다니면, 반마다 모든 학생이 같은 과목을 듣는다. 동일한 책을 받고, 이런 과목선택문제로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과목을 골라야 하는지를 몰랐다. 왜냐하면 어려서부터 선택의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진정으로 선택할 수 있는 때가 되어도 그것을 이용할 줄 몰랐다. 미국대학은 12개 학점(매학기)이고, 전일제 학생이라면, 기뵤적 중요한 전공과목은 모두 5학점 정도이다. 즉, 매주 5번 강의를 하는 것이다. 어떤 보조전공과목은 통상적으로 3개학점이나 2개학점이다. 대학에는 반이 없고, 무슨 과목을 선택하면 그 과목을 듣는 것이다. 학점을 충분히 따면 졸업장을 받는다. 선택한 과목은 1주내에 취소할 수 있다. 만일 그 교수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들어보니 재미없으면, 학적관리상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은대 그 과목의 학비를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학기말 1개월전이 되면, 학생과에서는 학생들에게 알려준다. 만일 현재 배우는 과목이 순조롭지 않거나, 합격할 자신이 없거나 원하는 점수를 받을 수 없다고 생각되면 취소할 수 있고, 성적표에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을 수 있다고. 다만 학비는 돌려주지 않는다. 만일 기말고사 1주일전에 시험에 자신이 없으면 취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적표에는 W로 표시하게 된다. 이는 이 과목의 수업을 들은 바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F(Fair) 불합격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불합격은 평균점수를 깍아먹지만 W는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안되겠으면, 교수에게 이유(병)를 설명하고 다음 학기에 학비를 내지 않고 다시 한번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다. 전체 학습과정은 이처럼 선택의 연속이다. 수백개의 과목에서 선택할 수 있고, 그저 학점만 채우면 되는 것이다.

 

대학에서도 전과할 수도 있다. 대학의 매학기 시작할 때면, 학교내의 여러 유명한 대학들이 탁자를 놓고, 탁자위에는 학생모집신청표와 학교소개가 있다. 다음 학기에는 자기 학교로 오라고 광고하는 것이다. 그날 나는 진짜 울어 버렸다. 어떤 일이 인생을 다시 시작해보는 것만큼 흥분되는 일이 있겠는가? 학생도 역시 처연이다. 그가 노력만 하면, 그의 목표를 실현할 수 있다. 열심히 노력하고 분투하는 자로서 이것은 얼마나 고무적인 일인가? 이전의 중국에서야 어찌 세상에 이렇게 좋은 교육제도가 있고 계속하여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중국청화대학, 북경대학과 같은 명문대학도 미국명문대학들과 마찬가지로, 매 학기 보통대학에서 우수한 학생을 전입학시켜주고, 동시에 명문대학안의 열등학생을 도태시킨다면, 중국은 분명히 더 많은 우수한 인재를 보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국가가 부강한 정도는 제도, 문화, 사람을 보아야 한다. 만일 우리의 제도가 인력자원을 최대한 개발할 수 있고, 잠재능력을 끌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우수한 제도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뛰어난 점을 배우고, 그들의 뛰어난 점을 아무런 왜곡없이 받아들어야 한다.

 

사람에게 창조력이 없다면, 사람의 잠재능력이 개발되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들은 하나의 벽돌과 같고, 하나의 나사못과 같다. 그저 어느 곳으로 옮겨가서 놓여 지거나, 박혀지는 것에 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라가 부강하고 창성하려면, 그저 놓여지고 박혀지는 것만으로 가능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