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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심리

군자난과소인관(君子難過小人關)

by 중은우시 2007. 5. 24.

글: 적화(翟華)

 

해외화교사회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중국인이 해외에서 살려면 세가지 관문을 넘어야 하는데, 바로 언어관(言語關), 금전관(金錢關), 심리관(心理關)이다. 그러나, 필자가 해외에서 관찰하고 경험한 바에 의하면 내 생각에 중국인들은 또 하나 넘어야 할 관문이 있으니 바로 "소인관(小人關)"이다. 먼저 이야기 하나를 하겠다.

 

"하루는 두 명의 중국인과 두 명의 미국인이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 미국인들은 표를 두 장 샀는데, 중국인들은 1장만 샀다. 미국인들은 이상하게 생각해서, 중국인들이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검표원이 왔다. 미국인들이 보니 중국인들이 함께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검표원이 문을 두드리니, 그들은 표 1장을 검표원에게 내보였다. 미국인들은 이건 정말 뛰어난 방법이라고 느꼈다. 돌아올 때, 두명의 미국인들도 표를 1장만 샀다. 그런데, 그 두 명의 중국인은 아예 표도 사지 않았다. 두 미국인들은 도대체 어찌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또 어떤 고명한 수법을 쓰는지 알아보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표원이 표검사를 하러 왔다. 이때 미국인들을 재빨리 화장실로 숨어서, 검표원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때 한 중국인이 일어나서 미국인이 몸을 숨긴 곳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문에서 차표가 한 장 내밀어졌다. 그는 차표를 받아서 유유히 가버렸다..."

 

당연히 이것은 유머이다. 그리고 어느 나라 사람을 대상으로 해도 된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외국에서 언어관을 넘은 이후, 다른 나라의 제도나 관리상의 "헛점"에 대하여 아주 민감하다. 외국인들이 아주 질서를 잘 지키고 성실한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구동성으로 "만일 국내라면..아마..."라고 하게 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헛점이 있어도 활용하지 않는 것은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시험이다. 프랑스의 일부 유명한 박물관을 참관하려면 수백미터까지 줄을 서야 한다. 박물관의 프랑스직원은 우리 부부가 1살가량된 아이를 안고 줄을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손짓을 해서 우리보고 들어가 참관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래서 몇시간 줄서는 고통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 프랑스인들은 이 광경을 보고는 그저 우호스러운 미소를 보내주었다. 아마 중국인이 이것을 보았다면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이 아이를 '빌려서' 써먹으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왜 우리집 아이는 안고 오지 않았는지 후회할 것이다.

 

후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은 바로 행동에 들어갈 것이다. 가장 자주보는 잔재주는 외국인이 중국인의 성명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중국인의 나이와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약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일부 중국인들은 자주 서로 의료보험을 빌려서 쓰고, 버스통근표등 증명서류를 하나를 가지고 여러번 쓰곤 한다. 미국에서 네가 어디에 살고, 어디에 세금을 내느냐에 따라서, 바로 그 지역의 주민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중국인들은 자녀교육을 아주 중시하므로, 모두 아이를 좋은 학군지역에 보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일반적으로 좋은 학군의 집값과 땅값은 비싸다. 많은 중국인들은 좋은 학군에 거주할만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일부 중국인 가장들은 친척과 친구의 명의를 쓰거나 심지어 증명서를 위조하여 다른 학군으로 보내어 공부하게 한다. 이러한 것이 법에 위반되는 것임을 왜 모르겠는가? 뉴욕주의 어느 중국인부부는 이것때문에 1만달러의 벌금과 15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받았다. 이것은 우스개가 아니다.

 

필자가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친구가 있었다. 시내버스, 지하철, 기차를 탈 때 표를 산 적이 없다. 이런 공공교통수단에는 모두 자동차표판매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승객은 스스로 표를 사고 차에 타기전에 표를 찍고 올라간다(표를 넣으면 차를 탄 시간과 장소가 찍혀 나온다).  당연히 각 교통회사는 모두 차표검사원이 있다. 가끔 차에 타서 표검사를 한다. 그리하여 승객들이 모두 차표를 샀는지 확인한다. 만일 어떤 사람(일반적으로 남자)이 차표없이 타거나 기간이 지난 표를 가지고 탔으면, 검표원은 "선생, 표를 사는 것을 잊었나 봅니다. 저는 규정에 따라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벌금통지서를 끊는다. 일반적으로 승객도 전혀 우기지 않고 조용하게 벌금을 납부한다. 그리고는 서로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나의 그 친구는 수학을 하는 친구이다. 직감인지 아니면 계산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차표를 사서 차를 타는 것이 '비경제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검표원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기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바에 의하면, 그의 방식으로 하면 매달 적지 않은 교통비를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저 저번달에 그는 나를 보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저번 달은 운이 좋지 않았어. 겨우 그들과 비겼어."

 

나의 이 친구와 같이, 적극적으로 차표를 사지 않고, 스스로 벌금을 내는 승객은 대체로 허가되는 것과 허가되지 않는 것 사이의 책략문제이다. 이와 비교하면 또 다른 일부 사람들은 위법의 혐의가 있다. 그들은 시내버스의 표에 살짝 투명한 막을 입히고, 차를 타기 전에 차표검인기를 지난다. 글자는 표에 바로 찍힌 것이 아니므로, 다음번에 가볍게 그 막을 걷어내면 된다. 이렇게 해서 차표를 반복해서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한 중국학생은 잔재주를 벌여 전화회사의 헛점을 노렸다. 어떤 방법은 정말 심해서 잘못 말하면 중국인의 이미지와 전화회사의 장사에까지 영향이 있을 정도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프랑스의 작은 도시의 공공전화부스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 공용전화의 번호는 xxxxxxxx입니다" 대체로 충분한 잔돈이 없거나 잔화카드의 잔액이 많이 남지 않은 고객을 위하여 상대방에게 번호를 불러주어 전화를 걸게해서 계속 얘기하게 할 수 있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이 친구는, 공공전화부스의 번호를 기록한 후, 국내의 친구에게 시간을 약속한 후, "컬렉트콜"로 전화를 하게 한다. 국내교환기의 아가씨가 전화를 받을지 말지를 물어보면 일찌감치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 친구는 바로 'ok'라고 말하고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끊고는 그냥 떠나버린다. 이렇게 한두번, 두세번 하면서 결국은 전화회사에서 눈치채게 되었고, 결국 그는 붙잡혔다. 이 젊은이의 장래에는 그림자가 드리우게 된 것이다.

 

왜 중국인들은 한눈에 바로 헛점을 알아차리는 것일까? 왜 외국인들은 보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인가? 중국인들은 하나의 개념을 가진 것같다: 명백하게 금지하지 않은 일은 해도 되는 일이다. 필자는 '사건을 저지른' 동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 몰랐어요." 심지어 이렇게 묻기도 한다. "어디에 하지 말라고 쓰여 있었나요?" 맞다 국내의 많은 곳, 많은 경우에 모두 "엄금XX"라고 쓰여 있다. 일반적으로 "위반하면 벌금을 매김"이라고도 쓰여 있다. 이런 규정을 만드는 관련부서는 머리가 아프다, 그러다보니 왕왕 아주 상세하게 적어야 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약법삼장" "오개불준" "칠부규범" "복무기어오십구"와 같은 표어가 나타나는 것이다. 당연히 누구도 이것은 그저 분위기를 잡는 것이고 군자들이나 막지 소인은 막지 못하는 것이다. 비록 군자라고 하더라도 하루종일 다른 사람에게 구속되고, 제약당하면, 반역심리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이 미처 대비하지 못한 틈을 타서 침을 뱉는 것이다. 어떤 돈있는 사람은 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내면서 "벌금아니냐. 가져가라"라고 하게 된다. 북경으로 돌아오면 북경지하철역에서 차를 기다리면서 부지불식간에 건너편의 광고판사이에 "플랫폼을 뛰어내리는 것을 엄금함"이라는 글을 보게 된다. 사실 이 표어를 이 곳에 써놓은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내가 당시 북경에서 지하철에 끼어다닐 때에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왜 그런지 아무런 인상이 남아 있지 않다. 이번에 옛날에 다니던 곳을 다시 가니, 제3의 눈으로 이 표어를 다시 바라보게 되니 느끼는 바가 적지 않다. 원래는 좋은 뜻이고, 승객이 뛰어내려 사고가 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인데, 그런데도 왜 이렇게 "뛰어내리는 것 엄금"이라는 살벌한 문구로 써야 하는 것일까? 이것은 마치 승객이 뛰어내리는 것이 이기적인 행동이고 공공에 위해를 가하는 것처럼 적지 않았는가?

 

외국에 가면, 공공장소의 표어는 모두 사람들에게 일깨워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청소중입니다. 미끄러우니 조심하세요" "계단조심하세요" 등의 부드러운 말이다. "엄금XX"와 같은 살벌한 말도 없고, 위반하면 벌금매긴다는 말도 없다. 만일 잘 적응하지 못하면 위에서 언급한 젊은이의 예에서와 같은 것도 적지 않게 발생하게 된다. 최근들어 중국의 일부도시의 공공표지판이 약간은 유머스럽고 부드럽게 변했다. "빨간신호등에 건너는 것은 금지"라는 것에서, "교통규칙을 지키는 분을 존경합니다"라고 바뀌었다. 이것은 진보의 표시이다. 필자의 생각에 최근에 유학오는 사라미라면 아마도 우리 세대의 사람들에 비하여는 이 "소인관"을 넘어서기 편할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