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연의를 읽으면, 당시의 사람들은 절대다수가 외자이름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조, 유비, 손권, 관우, 장비, 방통, 조운, 맹획, 마초, 황개, 주유, 순욱, 곽가, 제갈량(제갈이 성이므로 이름은 외자이다), 하후돈(역시 하후가 성이므로 이름은 돈이다), 사마의(사마가 성이므로 이름은 외자이다) 등등...역사책을 뒤져보아도 동한(東漢)시대와 삼국시대의 300여년간의 인명을 뒤져보면 거의 모두 1글자이다. 2글자이름은 극히 적다. 후한서, 삼국지에 오는 사람들 중에서 2글자 이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한 부류는 은사(隱士)로서, 방덕공(龐德公), 등노서(鄧盧敍)와 같은 인물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이름(名)이 아니라 자(字)로서 행세한 사함들이 있다. 황승언(黃承彦), 순거백(荀巨伯)등이다. 지식인이나 관리중에서는 2글자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근원은 왕망(王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왕망은 서한을 멸망시키고 신(新)을 세운 인물이다. 단명에 그치고 곧 동한이 들어서게 되지만..
<<한서. 왕망전>>에 보면 이런 기록이 나온다. 왕망의 장손(長孫)으로 왕종(王宗)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가만히 있으면 조부, 부친을 거쳐 자기에게도 황제의 자리가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기다리지 못하고, 모반을 꾀한다. 그러나, 수준이 되지 못하여 발각이 되고 만다. 왕망은 비록 친손자이지만 모반한 것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왕종은 상황을 보고서는 그냥 자살하고 만다. 사람은 죽었지만, 모반에 대한 조치는 취하여야 했다. 왕망은 이런 명을 내린다. "종(왕종)의 본명은 회종(會宗)이었다. 제작(制作)으로서 두글자 이름을 없애게 했었는데, 이제 원래의 이름으로 회복시켜 회종이라 한다" 이 명령은 아무렇지도 않게 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왕종은 원래 본명이 왕회종이었는데, 왕망이 법령으로 두글자를 쓰지 못하게 하여 왕종으로 개명하였고, 이제 죄인이 되었으므로 두 글자인 원 이름 왕회종으로 되돌린다는 내용인 것이다.
이것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왕망이전에는 이름의 글자수에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 심지어 왕망의 손자도 두 글자인 이름을 썼었다.
둘째, 왕망이 정권을 잡은 후에 일찌기 "두 글자 이름을 쓰지 못하도록" 명을 내린 바 있다. 즉, 법령의 형식으로 두 글자 이름을 짓지 못하게 한 것이다.
셋째, 사람이 죄를 지으면 두 글자 이름으로 회복시키는데, 이것은 하나의 처벌이다.
왕망의 법령이 나온 이후로, 사람들은 점점 외자이름을 쓰게 된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왕망의 신이 망하고, 동한이 들어섰지만, 이 전통은 변하지 않고 풍습으로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즉, 두 글자 이름을 쓰는 것은 자랑스럽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동한시대와 삼국시대까지 그대로 이어졌던 것이고, 그래서 삼국연의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도 거의 모두 외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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