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10 중국바둑역사(3): 바둑이 크게 발전한 양한삼국(兩漢三國)시대 글: 설극교(薛克翹) 천하제일명수 한나라때 바둑의 발전은 비교적 완만했다. 현재 사적에 나타나는 고수는 모두 서한시기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서한시대에 사람들이 두릉인(杜陵人)이라고 부르는 두부자(杜夫子)는 "천하제일명수(天下第一名手)"였다. 그는 바둑실력이 아주 뛰어나고, 바둑을 목숨처럼 좋아했다. 어떤 사람은 그가 바둑을 두느라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조롱했는데, 그는 예상외로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바둑의 도리에 정통하다. 이것으로 공자의 부족함을 보완할 수 있다." 봉건시대의 사대부가 이런 말을 하다니, 그는 확실히 바둑을 하나의 예술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유가경전에서 배울 수 있는 학문으로 연구할 수 없는. 이를 보면, 그는 담량이 있는 사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한때, 바둑.. 2022. 3. 4. 조조(曹操)의 후계자다툼(III): 조비 vs 조식 글: 의사리(衣賜履) 조식의 곁에는 주로 3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의 정의(丁儀), 한명은 정이(丁廙)로 둘은 형제간이다; 그리고 또 한명은 총명하기 그지없는 양수(楊修)이다. 정씨형제의 부친은 정충(丁冲)으로, 패군(沛郡, 안휘성 회북시) 사람이다. 일찌감치 조조와의 관계가 아주 좋았다. 정충은 조조가 한헌제 유협을 맞이하여 '천자를 끼고 제후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계획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아주 적극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조조는 정의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정의가 재능과 학문이 뛰어나다는 것은 들었다. 그래서 자신이 사랑하는 딸을 그에게 시집보낼 생각을 하고, 조비에게 의견을 묻는다. 그때 조비는 이렇게 대답한다: "부친! 제 생각에 비록 남재여모(男才女貌), 즉 남자는 재주가 뛰어나야 하고, 여자.. 2021. 10. 20. 조조(曹操)의 후계자다툼(1): 조조의 아들들! 글: 의사리(衣賜履) 조조는 영웅이다. 자식을 낳는 것도 남달랐다. 앞뒤로 25명의 아들을 낳았다. 딸도 적지 않게 낳았을 것이다. 최소한 3명은 한헌제 유협에게 시집보냈고, 그중 한명은 한나라의 마지막 황후가 된다. 여기에서는 그의 아들들중 몇몇을 골라서 소개해 보기로 한다. 조앙(曹昻): 조조가 가장 미안해 한 아들 조앙의 자는 자수(子修)이고, 조조의 장남이다. 만일 일찌감치 죽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황제가 된 것은 조비가 아니라 조앙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조앙은 조비보다도 근정묘홍(根正苗紅)하기 때문이다. 바로 적장자(嫡長子)이다. 조조의 첫부인은 정(丁)씨이다. 그러나 정부인은 아들을 낳지 못한다. 조조의 작은 부인 유부인(劉夫人)은 아들 조앙과 딸 청하장공주(淸河長公主)를 낳는다. 유부인은.. 2021. 5. 19. 조위(曹魏)의 효기장군(驍騎將軍) 3명은 누구일까? 글: 정회역사(情懷歷史) 효기장군은 고대의 무장 관직이다. 한무제때 이광(李廣)이 효기장군에 봉해진 바 있다. 이에 대하여, 사마천은 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한(漢)은 마읍성(馬邑城)으로 선우(單于)를 유인했다. 대군을 마읍의 옆 골짜기에 매복시켰고, 이광이 효기장군으로 호군장령을 이끌었다. 그때 선우가 눈치를 채고 가버린다. 한나라군대는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한다. 그후 4년이 지나, 이광은 위위(衛尉)로 장군이 되어, 안문관(雁門關)을 나가 흉노를 친다." 삼국시대에 이르러, 비록 촉한과 동오에는 모두 효기장군이라는 관직을 설치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위의 역사에는 3명의 효기장군이 있다. 그리고 이 3명은 모두 조위의 종실(宗室)이다. 그렇다면, 조위의 세 명의 효기장군은 도대체 누구일까. 첫번.. 2021. 5. 11. 여포가 죽은 후 방천화극(方天畵戟)은 어디로 갔을까? 글: 계설필담(溪說筆談) 여포가 조조에게 죽임을 당한 후, 적토마는 조조에 의해 관우에게 하사된다. 그렇다면, 그의 병기인 방천화극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런 무기는 사용하는 사람이 원래 많지 않다. 방천화극을 주병기로 사용할 수 있는 무장은 더욱 적다. 대장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손에 익은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무명소졸은 여포의 병기를 쓸만한 자격이 없다. 그래서 조조가 누구에게 하사하고 싶어도 줄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방천화극은 여포의 상징이 되었고, 아마도 전리품으로 조조가 소장했을 것이다. 기실 이 문제는 소설의 후반부에 언급되어 있다. 조비(曹丕)가 칭제하기 전에, 그의 동생인 황수아(黃鬚兒) 조창(曹彰)이 불복하여 병력을 이.. 2020. 12. 10. [황자쟁위술] 양장피단술(揚長避短術) – 홍인시효패(弘仁示孝牌) : 조비편 황위후보자가 효자인지여부는 “효치천하(孝治天下)”의 중국고대에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었다. 그리하여, 후보자들인 황자들 간에는 자신의 효성을 드러내어 점수를 따려는 활동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하여 황제에 오를 수 있었던 사람으로는 조조(曹操)의 아들 조비(曹丕), 수문제 양견.. 2015. 7. 27.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