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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비54

제갈량은 제1차북벌에서 얼마나 참담하게 패배했을까? 글: 사설신어(史說新語) 삼국때 제갈량은 유비의 군사로서 유비가 전투, 치국, 평천하에서 가장 신임했던 사람이다. 제갈량을 얻은 후, 유비는 보물을 얻은 듯 기뻐했고, 속이 좁은 관우의 불만을 초래하게 된다. 유비는 임종때 탁고(托孤)할 때, 제갈량은 여전히 그를 위해 촉국을 지켜줄 유일한 후보자였다. 비록 그는 제갈량에 대하여 마음을 높지 못하는 점이 있기는 했지만, 조정과 아들을 제갈량에게 맡겨야 했고, 여기에 이엄과 조운으로 하여금 제갈량을 감시하여 유선과 촉한강산을 보호하게 했다. 다행히 제갈량은 확실히 그가 유비에게 약속한대로 일을 했다. 충성을 다하면서, 유비가 실현하지 못한 이상을 자신의 임무로 여기고, 그가 살아있는 동안 유선을 위해 천하를 얻으려 했다. 자신이 죽은 후 능력이 부족한 유선.. 2022. 8. 18.
조조(曹操)의 후계자다툼(III): 조비 vs 조식 글: 의사리(衣賜履) 조식의 곁에는 주로 3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의 정의(丁儀), 한명은 정이(丁廙)로 둘은 형제간이다; 그리고 또 한명은 총명하기 그지없는 양수(楊修)이다. 정씨형제의 부친은 정충(丁冲)으로, 패군(沛郡, 안휘성 회북시) 사람이다. 일찌감치 조조와의 관계가 아주 좋았다. 정충은 조조가 한헌제 유협을 맞이하여 '천자를 끼고 제후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계획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아주 적극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조조는 정의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정의가 재능과 학문이 뛰어나다는 것은 들었다. 그래서 자신이 사랑하는 딸을 그에게 시집보낼 생각을 하고, 조비에게 의견을 묻는다. 그때 조비는 이렇게 대답한다: "부친! 제 생각에 비록 남재여모(男才女貌), 즉 남자는 재주가 뛰어나야 하고, 여자.. 2021. 10. 20.
조조(曹操)의 후계자다툼(II): 조비 vs 조식 글: 의사리(衣賜履) ​ 211년 정월, 한헌제 유협이 조서를 내려, 조조의 세자 조비를 오관중랑장(五官中郞將)에 임명하고, 관속(官屬)을 둘 수 있게 해서, 승상 조조의 부수(副手)로서의 역할을 하게 한다. 부승상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 (이 일을 통하여, 필자는 이전에 판단한 바 있다. 조조는 이미 조비를 자신의 후계자로 확정한 것이다) ​ 부승상으로서, 개부(開府)도 할 수 있으니, 이론적으로는 태자의 지위는 조비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조식이 급속히 부상하여, 조비에게 큰 위협이 된다. 사서에 따르면 조조는 성격이 기민하고, 능력이 뛰어나며, 재능이 특출났고, 민첩하며 지혜가 많아, 조조가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 우리는 여기서 조식의 재능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 당시.. 2021. 10. 19.
위,촉,오 삼국의 승상제도는 어떻게 달랐을까?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삼국이 정립된 후, 가장 먼저 건국하여 황제를 칭한 위(魏)는 승상을 두지 않는다. 그후에 건립된 촉(蜀)과 오(吳)는 처음부터 승상을 둔다. 더욱 재미있는 점은 오나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승상을 두었지만, 촉한은 제갈량이후에 더 이상 승상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위나라. 건안13년 조조가 승상에 오른다. 건안18년에 이르러 조조는 위공(魏公)이 되고, 기주(冀州)내의 10군은 그의 봉지가 된다. 두달 후, 조조는 위나라의 종묘사직을 건립하고, 십일월에 이르러, 상서(尙書), 시중(侍中)과 육경(六卿)을 설치한다. 원래 건안연간에, 조정백관은 모두 조조의 말을 들었고, 승상이 되었으며, 승상부를 두며, 모든 정령은 승상부에서 나왔다. 조조.. 2021. 10. 19.
중국고대 3대신동(神童): 누구도 18살까지 살지 못했다. 글: 천애간점(天涯看點) 장강의 물은 동쪽으로 흘러가고, 천고의 풍류인물들은 그 역사의 물줄기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중국역사에서 수많은 빛나는 영웅인물들이 나타난 바 있다. 그들중에서 일부 인물은 어린 나이에 명성을 떨친다. 다른 사람들은 같은 나이에 진흙을 가지고 놀고 있을때, 그들은 천하에 이름을 떨쳤던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주 짧은 시간만에 다른 사람은 평생을 쏟아부어도 얻기 힘든 성취를 거두었으나, 하늘이 재주를 질투하였는지, 한창 나이에 요절해버리고 말아,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예를 들면 아래의 세 사람이다. 이들은 중국고대에 공인된 신동들이다. 지혜가 남들보다 뛰어났지만, 모두 단명했다. 누구도 18살까지 살아남지 못했다. 항탁(項橐) 에 이런 말이 있다: 석중니(.. 2021. 5. 31.
조위(曹魏)의 도호장군(都護將軍) 2명은 누구일까? 글: 정회역사(情懷歷史) 한말 삼국시대에 무장의 관직은 주로 잡호장군(雜號將軍)과 중호장군(重號將軍)의 두 유형이다. 그중 중호장군은 비록 지위가 비교적 높지만 수량이 많지 않다. 주로 대장군(大將軍), 표기장군(驃騎將軍), 거기장군(車騎將軍), 위장군(衛將軍), 전후좌우사방장군(四方將軍)등이다. 그러므로, 서한때부터 조정은 대량의 잡호장군을 책봉했다. 전공을 세운 무장들에게 잡호장군을 내린다. 한말 삼국시기에 이르러 잡호장군은 더욱 널리 응용된다. 예를 들면 관우의 탕구장군(蕩寇將軍), 여포의 분무장군(奮武將軍)은 모두 통상적으로 볼 수 있는 잡호장군이다. 그중,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도호장군(都護將軍)'도 자연히 하나의 잡호장군이다. 그러나 도호장군은 여러 장수들을 감독하는 직권을 지니고 있기 때.. 2021. 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