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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영5

이예(李銳): 3차례나 숙정당한 모택동의 비서 글; 왕우군(王友群) 일찌기 모택동의 비서를 지냈던 이예는 일생동안 3번에 걸쳐 숙정을 당하고,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나 수명은 길어서, 102살까지 살았다. 이예, 1917년 4월 13일생, 베이징 출생. 조적은 호남(湖南) 평강(平江)이며, 무한대학을 졸업했다. 일찌기 중공중앙위원, 중앙조직부 상무부부장, 수전부 부부장, 모택옹의 겸임비서를 지낸다. 이예는 삼협공정을 반대한 대표적 인물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의 의견은 당시 중공지도자 장쩌민에 의해 묵살된다. 이예의 제1차 숙정 1943년 4월에서 1944년 9월까지, 중공의 연안정풍(延安整風) 후기의 '창구운동(搶救運動)'중 이예는 1년2개월간 구금된다. 당시는 항일전쟁이 가장 힘든 시기였는데, 중화민국 임시수도 중경은 자주 일본군 비행기의 공습을.. 2020. 11. 2.
시진핑의 브레인들이 시진핑을 뒤로 해치고 있는가? 글; 왕혁(王赫) 10월 12일, 중공은 를 내놓았다. 이는 다시 한번 사람들의 상식을 뒤집어 버렸다. 왜냐하면, 이 조례는 9월 28일 중공중앙정치국회의에서 심의 비준된 것이기 때문이다. 중공 자신도 이렇게 말한다: 중앙위원회는 당의 최고영도기구이다(당의 전국대표대회가 폐회한 기간동안, 다만 당의 전국대표대회는 5년에 한번씩 개최된다). 중앙정치국은 중앙위원회에서 선거로 선출한다. 현재 중앙정치국이 중앙위원회의 규정을 만들다니, 이는 상하가 뒤집힌 꼴이 아닌가? 더욱 웃기는 것은 "본 조례는 중앙판공청이 해석을 책임진다"는 조항이다. 중앙판공청은 또 무엇인가? 그저 실무기관일 뿐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시진핑 당국의 방식은 이런 것이나 같다: '엄마'가 '자식'을 낳는다. 그런데, '자식'이 '엄.. 2020. 10. 15.
모택동비서 전가영(田家英)의 사망진상 글: 양성만보 2010. 10. 9. 전가영은 1966년 5월 23일에 사망한다. "문혁"이 시작된 후, 등탁(鄧拓)에 이어 두번째 희생자이다. 전가영은 한을 품고 죽었다. 이 점은 의문이 없다; 그리고, 전가영이 자살한 것인가에 대하여도 의문이 없다 -- 관방이건 가족이건. 다만, 최근 들어 해외의 잡지에서.. 2013. 12. 21.
모택동의 비서들 모택동의 몇몇 주요한 비서는 모두 그가 발견하거나 뽑은 사람들이다. 모택동의 비서를 뽑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학문"이 있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호교목(胡喬木)의 선발은 모택동이 호교목이 <<중국청년>>잡지에 발표한 54운동20주년기념글을 보고서 "교목은 인재다"라고 하며, 직접 이름.. 2006. 5. 30.
장개석의 진포뢰(陳布雷)와 모택동의 전가영(田家英) 진포뢰는 장개석의 막료이다. 1935년부터 장개석의 시종실 제2실 주임, 국민당 중앙정치회의 부비서장, 국민정부 군사위원회 부비서장, 최고국방위원회 부비서장등의 직위를 역임했고, 오랫동안 장개석을 위하여 원고를 초안해왔다. 그래서 장개석의 "문담(文膽)"이라고 불리웠다. 전가영은 모택동의 .. 2006.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