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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장11

야율대석(耶律大石): 서요(西遼)의 개국황제 글: 청림지청(靑林知靑) 요나라는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것은 주로 등 일련의 희극때문일 것이고, 이들 희극의 결론은 당연히 마지막에는 항상 중화왕조의 승리로 끝난다. 그러나 실제상 요태후(遼太后) 소연연(蕭燕燕)을 우두머리로 하는 요나라는 송나라를 마구 두들겨 팼다. 송태종 조광의가 엉덩이에 화살을 맞고서 나귀수레를 훔쳐타고 낭패해서 도망치게 만들었을 뿐아니라, 양가장중의 주인공인 양노령공을 생포한다. "전연지맹(澶淵之盟)"이후 송나라는 매년 요나라에 공물을 바쳤고, 그제서야 쌍방은 전쟁을 멈춘다. 이때가 요나라의 전성기이고, 영토는 '폭원말리(幅員萬里)"라 칭했다. 아쉽게도 그 이후의 요나라황제는 계속 그 전보다 못하게 되어 요흥종(遼興宗)이 즉위한 후 요나라의 국세는 날이갈수록.. 2021. 12. 27.
역사상 진실한 양가장(楊家將) 글: 야도(野渡) 제1대 양업(楊業)의 본명은 양중귀(楊重貴)이고, 그의 부친 양신(楊信)은 인주(麟州)이 토호(土豪)였다. 오대의 혼란을 틈타 인주를 검거하고 스스로 인주자사(麟州刺史)를 칭한다. 그후 시국의 변화에 따라 차례로 북한(北漢), 후주(後周)에 귀순한다. 젊고 용맹했던 양중귀.. 2019. 6. 7.
절가장(折家將): 북송에서 유일하게 세습된 무장세가(武將世家) 글: 종횡오십년(縱橫五十年) 북송의 무장세가를 얘기하자면, 사람들은 양가장(楊家將), 조가장(曹家將), 종가장(種家將)을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주 잊어버리고 있는 무장세가가 있다. 바로 절가장이다. 이들은 양가장보다 대단하고, 북송에서 유일하게 세습권력을 가진 무장세가.. 2019. 1. 10.
국요(國妖) 쉬차이허우(徐才厚)의 죽음 글: 당영(唐潁) 홍콩 매체가 2016년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장쩌민의 군대내 심복인 쉬차이허우가 체포될 때 이미 말기암을 앓고 있었다. 그는 죽기 전에 시진핑에게 "마지막 요청"을 했는데, 죽기 전에 처를 한번 보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시진핑은 이를 허라했다. 그러나 생각지 못한 일이.. 2018. 7. 14.
중국역사상 존재하지 않았으나, 소설, 영화,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 글: 지역사(知歷史) 역사를 소재로 한 많은 소설, 영화, 드라마 중에서, 스토리를 더욱 알차게 하거나 재미있게 하기 위하여 왕왕 한 역사인물의 원형을 참조하여, 허구적인 인물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곤 한다. 이를 통하여 스토리의 발전을 이끄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이미지는 아주 성공.. 2018. 1. 13.
제갈량의 팔진도는 얼마나 대단했을까? 글: 복녕객(福寧客) 팔진도전설은 삼국시대때 제갈량이 만들었다는 하나의 진법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제갈량은 적을 맞이할 때 돌맹이로 석진을 쌓아서, 둥갑으로 생(生), 상(傷), 휴(休), 두(杜), 경(景), 사(死), 경(驚), 개(開)의 8개 문(門)을 만들어 변화가 많아서, 10만정병을 막아.. 2015. 6. 16.
링지화, 쩡칭홍, 자팅안: 위험한 '대내총관' 글: 왕해천(王海天) 링지화의 낙마는 여론의 강렬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국내외의 촛점은 모두 그가 이전에 가졌던 신분에 집중되고 있다: 링지화는 오랫동안 중공중앙 전총서기 후진타오의 비서를 지냈다. 속칭 '대내총관'을 지냈다. '대내총관'은 중공최고권력에 가장 가깝게 있는 .. 2014. 12. 27.
절가장(折家將): 북송 최고의 명장세가 글: 황작비비(黃雀飛飛) 조광윤은 무장출신으로 후주(後周)의 시가(柴家)로부터 천하를 빼앗았다. 그는 당왕조, 오대시기 번진작란(藩鎭作亂)이 역사교훈을 얻어, 무인세력을 극력 억제했다. 그래서 송나라때 무장은 시종 문인의 억압하에 있었다. 정치권력의 최고봉에 오른 사람은 아주 .. 2013. 12. 6.
소태후는 어떻게 국내외를 다스렸는가? 글: 장계합(張繼合) 어떤 여자가 대시인 볼테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인이 연약함으로 자신을 무장할 때 가장 강하다." 이 말은 요나라의 '여황'과 같은 인물로 대권을 장악했던 소태후, 소작의 생각과 일치한다. 여성의 아름다운 눈물은 쉽게 남자들로 하여금 눈앞의 상황을 제.. 2012. 6. 3.
무림의 4대창법 작자: 미상 명나라 가정36년(1557), 일대명장 유대유(兪大猷)의 절세작품으로 무술경전이라 불리우는 <<검경(劍經)>>을 정식으로 간행했다. 청나라 강희17년(1678), 저명한 무술가 오수(吳殳)가 쓰고 후세에 창법을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받는 <<수비록(手譬錄)>>을 세상에 .. 2009. 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