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 6

한혜제(漢惠帝) 유영(劉盈)은 6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왜 동생 유항(劉恒)에게 황위가 넘어갔을까?

글: 조문사(朝文社) 한혜제 유영이 재위하던 기간동안 비록 명목상으로 황제였지만, 사실상 권력자는 모친인 여후(呂后)였다. 유영이 사망한 후, 전소제(前少帝) 유공(劉恭), 후소제(後少帝) 유홍(劉弘)이 전후로 즉위한다. 비록 이들 둘은 허수아비라고 하기에도 부족하지만, 어쨌든 황제에 오르긴 한다. 사료에 따르면, "밤에, 각각 사람을 나누어 양왕(梁王), 회양왕(淮陽王), 상산왕(常山王)과 소제(少帝)를 자택에서 주살했다." 바꾸어 말하면, 유영의 6명 아들 중에서, 2명은 황제에 올랐다. 전소제 유공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모두 반여집단(反呂集團)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마지막에는 반여집단의 진평(陳平), 주발(周勃)등의 옹립하에, 한문제(漢文帝) 유항(劉恒)이 즉위한다. 그렇다면, 왜 유영의 남은 ..

서한(西漢)에는 왜 재혼한 황후가 많았을까?

글: 진사황(秦四晃) 열심히 고증해본 것은 아니고 개인의 유한한 학문으로 추측해보면, 우리의 진,한 심지어 그 이전시기에는 남녀 및 혼인관계가 비교적 개방적이었던 것같다. 예를 들어, 진시황 영정의 모친 조희(趙姬)는 여불위, 남편인 자초(子楚), 그리고 노애(嫪毐)와의 사이에 자식..

허부(許負): 한고조 유방이 19살의 그녀를 제후로 봉하다.

글: 효풍모우(曉風暮雨) 한나라5년(기원전202년), 유방이 황제를 칭한 후, 공신들에게 봉상을 내린다. 이때 나이 겨우19살의 여인이 명자정후(鳴雌亭侯)에 봉해진다. 이 여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왜 한나라의 개국공신들과 함께 제후로 봉해질 수 있었을까? 이 여자의 이름은 허부이다...

한문제(漢文帝): 고대 황실에서는 어떻게 귀복(龜卜)을 쳤는가?

글: 우좌(于左) 유항(劉恒)은 한고조 유방(劉邦)의 아들이다. 그는 대왕(代王)에 봉해졌다. 기원전180년 구월의 어느 날, 사자가 도성 장안에서 대국으로 온다. 그리고 대왕 유항에게 장안으로 가서 황제에 등극하라고 말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황위는 기쁘면서도 놀라웠다. 유항은 마음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