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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광20

김일제(金日磾): 한무제는 임종때 왜 흉노왕자인 그를 보정대신(輔政大臣)으로 삼았을까? 글: 사설신어(史說新語) 김일제(金日磾)는 흉노왕자로서 한나라에서 아주 잘 지냈다. 심지어 보정대신까지 지냈는데, 그 근본원인은 한무제(漢武帝)의 신임때문이라 할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가 비록 흉노왕자이긴 하지만, 어려서부터 한무제의 곁에서 함께 자랐다. 흉노인이라는 신분외에 한무제에 있어서는 총신(寵臣)으로 믿을만한 인물이었다. 게다다 한무제의 임종전에 한나라에는 복잡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래서 결국, 김일제가 보정대신이 되어, 한무제가 죽은 후, 한소제(漢昭帝)시대의 '사대천왕(四大天王)'중 한명이 된다. 당연히 이 일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주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한무제시대와 관련된 여러가지 역사적 원인이 있다. 이 사건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간단하게 김일제가 어떻게 하여.. 2023. 7. 4.
상관씨(上官氏): 6살에 황후, 15살에 태후, 40살에 태황태후가 된 여인 글: 역사상적괴점(歷史上的拐點) 상관씨는 명문집안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상관걸(上官桀)이고, 외할아버지는 대장군 겸 대사마 곽광(霍光)이다. 곽광은 곽거병(霍去病)의 동생으로 조정의 대권을 완전히 장악했던 인물이다. 그와 상관걸은 모두 한무제때의 중신으로, 한무제의 탁고를 받아 나이어린 한소제(漢昭帝)를 보좌했다. 이런 할아버지를 두었으니 상관씨의 일생은 당연히 평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딸을 궁으로 보내기 위해, 상관씨의 부친인 상관안(上官安)은 한소제를 어릴 때부터 길러준 한소제의 유일한 누나인 악읍장공주(鄂邑長公主)를 찾아가서, 과부로 지내는 장공주의 애인 "정외인(丁外人)"의 관직과 작위를 올려주는 것을 조건으로 악읍장공주를 설득하는데 성공하여, 상관씨를 한소제의 후궁으로 들어가게 하는데 성공한다. .. 2023. 1. 10.
한무제는 왜 유불릉(劉弗陵)을 후계자로 삼았을까? 글: 구어정(九魚亭) 유불릉의 생모는 조첩여(趙婕妤)이다. 구익부인(鉤弋夫人)이라고도 불리고, 권부인(拳夫人)이라고도 불린다. 한번은 한무제가 사냥을 갔는데, 하간국(河澗國)을 지나게 되었다. 그때 한무제의 곁에 있던 방사가 현지에 기녀자(奇女子)가 있다고 말한다. 한무제는 미신을 믿어, 사람을 보내어 찾게 했더니, 금방 한 여자를 찾아낸다. 그 여자가 바로 구익부인이다. 여자는 아주 기괴했다. 두 손을 꽉 쥐고 있는데, 곁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펴고자 해도 펴지지 않았다. 한무제는 호기심이 발작하여, 직접 말에서 내려, 그 여자의 주먹을 폈다. 이 이야기는 마치 의 자하선자가 자청보검을 뽑는 사람은 하늘이 골라준 사람이라 생각하는데, 마침 지존보가 자청보검을 뽑아서, 그 후에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가 .. 2020. 10. 8.
곽광 vs 상홍양: 한무제의 두 탁고대신은 왜 서로 반목하게 되었는가? 글: 정호청천(鼎湖聽泉) 그때는 염철회의 대변론 후의 다음 해였다. 즉 한소제 원봉원년(기원전80년) 구월, 잘나가던 상홍양(桑弘羊)은 시종 자신의 경력과 공로가 모두 곽광(霍光)보다 위라고 여긴다. 그런데, 정치적인 지위는 곽광보다 낮은 점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 2019. 10. 10.
누란(樓蘭): 한나라에 맞섰던 실크로드의 소국(小國) 글: 풍장안량(風長眼量) 청해장운암설산(靑海長雲暗雪山) 고성요망옥문관(孤城遙望玉門關) 황사백전천금갑(黃沙百戰穿金甲) 불파누란종불환(不破樓蘭終不還) 이것은 당나라초기 왕창령의 저명한 변새시(邊塞詩)이다. 어떤 사람은 기이하게 여길 것이다. 당나라때 누란이 아직 남아 있.. 2018. 12. 28.
곽현(霍顯): 곽거병, 곽광집안을 망친 여인 글: 취역사(趣歷史) 곽거병, 곽광형제는 중국역사상 보기 드물게 나란히 언급되는 형제들이다. 곽거병은 비록 24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여섯번 흉노를 친 영웅적인 사적은 그를 중국의 '전신(戰神)'으로 불러도 아깝지 않게 만들었다. 곽광은 한무제의 탁고대신으로 조정.. 2018. 8. 29.
상관황후(上官皇后): 중국역사상 유일한 민며느리 황후 글: 역사변연(歷史邊緣) 민며느리(童養媳)는 가난한 집안의 계집아이를 어린나이로 장래 남편이 될 사람의 집에 보내는 것이다. 거기서 장래의 시집에서 일하며 갖은 고생을 다하게 되는 불행한 여인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한나라황실에 민며느리가 있었다. 그녀는 바로 한소제(漢昭帝) .. 2018. 7. 19.
진시황릉의 허실(3): "황장제주(黃腸題湊)"는 7개월이면 완성할 수 있다. 글: 진경원(陳景元) 기실 원고(遠古) 시기의 묘장은 원래 아주 간단했다. <역.계사하>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상고혈거이야처(上古穴居而野處)" 원시인들은 모두 동굴안에 살고, 황야에서 생활했다. 사람이 죽은 후에는 그냥 들판에 버렸다. <맹자.등문공상>에는 "예전에는 그 가.. 2018. 2. 6.
한무제는 왜 구익부인을 죽여야 했을까? 글: 동호소주(東湖少主) 무릇 업적을 세운 제왕들은 큰 재주도 지녔지만 큰 재앙도 만들어낸다. 이런 인물이 역사상 드물지 않다. 그 걸출한 대표인물은 바로 진시황과 한무제이다. 이 두 사람은 정치적 풍격이 아주 비슷할 뿐아니라, 개인적인 취향도 거의 비슷했다. 일생동안 장생불로.. 2018. 1. 9.
해혼후(海昏侯) 유하(劉賀): 권신이 괴뢰황제를 고르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다. 글: 악치(岳峙) 한(漢)나라 400년 역사상, 겨우 27일간 황제를 지낸 해혼후 유하의 존재감은 아주 낮다. 그를 얘기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우연히 그의 이름을 꺼낸다고 하더라도, 그저 조롱의 대상으로 삼을 뿐이었다. 그러나, 해혼후묘가 발굴되면서, 유하는 돌연 함어변신(鹹魚變身)한다. .. 2016. 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