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주(維舟)
청화대학(淸華大學) 지질학과(地學係) 포스닥 허자오샹루이(何趙祥睿)가 2025년 4월 7일 새벽 주소의 15층에서 투신하여 31살의 인생을 마감했다. 이때는 그의 귀국에서 8개월도 되지 않은 때였다.
그는 항상 학업성적이 상당히 우수한 학생이었다; 2016년 청두정보공정대학(成都信息工程大學) 대기과학학원을 졸업했는데, "학교급 우수졸업생", "특등장학금"을 받은 바 있다; 이어서 순조롭게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2023년 뉴욕대학 알바니캠퍼스(SUNY-Albany)를 졸업하며 대기과학및기상학 박사학위를 받고, 1년간 포스닥을 한 후 2024년 9월 청화대학에 포스닥과정으로 귀국했다.
실제로 그의 이력을 보면, 청화대학에 제시한 조건은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에게 어떤 교직을 주지는 않았고, 여전히 포스닥과정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가 귀국한 것은 무슨 우대조건을 좋게 보고 온 것이 아니라, 조국에 보답하겠다는 열정때문이었다. 확실히 그는 청화대학으로 돌아온 후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저작을 많이 읽고 입당을 신청하기도 했다.
이런 사람이 왜 자살했을까?
4월 4일 그가 부우가(府右街)에서 놀 때, 경찰에 의해 상방민중(上訪民衆, 중앙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올라온 백성)으로 취급당한다. 누군가의 추측에 따르면, 아마도 이 좌익열혈청년이 무언가를 목도하고 하층 상방민중을 위해 나섰다고 한 무리로 취급당한 것같다고 한다. 어쨌든 조사를 거쳐 그는 사천주경공작조(四川駐京工作組)로 넘겨졌고, 다시 청화대학보위처(保衛處)로 넘겨진다. 다음 날 그는 고슴도치같은 인물로 취급되어, 지도교수가 그에게 퇴학절차를 진행하겠다고 통보한다.
이런 심각한 결과는 그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4월 6일, 그는 인사자료를 이전하고 청화대학을 떠나라는 통지를 받은 후 절망적인 처지에 놓인다. 그날 저녁 심장박동이 빨라져서 120(응급구조전화)에 전화해서 지쉐이탄의원(積水潭醫院)에서 응급치료를 받는다. 그는 학과의 지도교수들에게 열심히 자신은 "경외세력"이 아니고, "사상에 변화가 발생한 것"이 아니며, "나의 의지는 굳건하다"라고 해명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후 그는 혼자 병원을 나와 택시를 타고 주소지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유서를 남기고 투신자살한 것이다.
이건 당연히 비극이다. 그리고 논의하기 어려운 비극이며, 공개적으로 보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최근에 들어서야 겨우 비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이를 보면 이런 뉴스는 일반인들이 듣기 어려운 것이다. 걸출한 청년인재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다니.
얼마 전에 이 일을 언급하자, 어떤 사람은 왜 이런 "샤오펀홍(小粉紅)"을 동정하느냐고 이상하게 여겼다. 다만 필자의 생각에 입장이 어떠하든지간에 이렇게 죽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심지어 "어렵게 박사 한명을 배양"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는 그가 살아갈 가치가 있고, 더욱 좋은 삶을 살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제는 왜 그의 인생이 이렇게 절망적이 되었느냐는 것이다.
의문의 여지없이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청화대학의 처리방식이다. 4월 4일 그날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를 따져보지도 않았다. 경찰은 그를 상방한 "골치거리"로 여겼지만, 그래도 그를 구금하지 않고, 사천주경공작조로 넘겼다. 즉, 성격상 그다지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 내부에서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청화대학은 즉시 그를 제적시켜 버렸다.
청화대학은 왜 이렇게 처리했을까? 내부사정은 알 수가 없다. 가능한 상황은 이러할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마르크스레닌주의 저작의 원서를 읽었고, 일찌감치 보위과에 의해 블랙리스트에 들어있었을 것이다. 지금 사건이 생기니 그들의 원래 의심이 확인된 셈이다. 그를 심문했을 때, 아마도 그에게 조금 강하게 말했을 것이고, 문제를 심각하게 본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측도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자신에게 골치거리가 닥칠까봐 걱정한 것이다. 그래서 그를 겁이나 주고 그로 인한 골치에서 벗어나고자 했을 뿐이다.
그가 심장박동이 빨라져서 병원응급실까지 간 것을 보면, 분명 심한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은 이 비극을 그의 "취약함"과 "천진함"에서 비롯되었다고 결론짓는다; 그는 비록 이미 31살이 되었지만, 상아탑을 떠난 적이 없었고, 현실사회가 돌아가는 것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했다. 갑자기 이런 일을 당하니, 돌연한 타격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학력은 청화대학에서 퇴학당했다고 하여,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것은 아니다. 심지어 다시 미국으로 가서 공부를 계속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는 속수무책이었고, 죽음을 선택하는 외에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필자의 생각에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이처럼 오랫동안 붉은 마음을 품어온 좌익청년에 있어서 이런 타격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조국에 보답할 생각이었으나, 조국은 그를 이해하거나 받아주지 않았다. 그런 환멸감은 아마도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사후에 그를 아는 사람이 토로한 바에 따르면, 그가 성장한 가정배경도 모두 붉었다. 어려서부터 받은 교육은 애국애당교육이고, 근정묘홍(根正苗紅)하다고 할 수 있다. 그가 공부한 본과는 청두정보공정대학 대기과학학원인데, 최초의 이력은 해방군 주천기상부대(駐川氣象部隊)에서 전업(轉業)한 것이다. 그 대학은 해방군 제2포병, 성도군구 대기과학전공의 "국방생(國防生)"배양기관이다.
그의 이런 교육배경을 보면 그가 왜 미국에서 8년간 석박사를 마치고 나서, 그의 이력과 배경을 보면 북미에서 계속 일하는 것이 더욱 전망이 좋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귀국하여 조국에 보답"하고자 했다. 그는 조국에 보답하는 것에 진지했다.
그렇지만 그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의 정치성향은 그를 부지불식간에 "이류(異類)"로 취급되게 만들었다는 것을. 나중에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일반적으로 "좌"성향의 사람은 경찰에서 조사받을 때 비교적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그런데, 그날 그는 왜 경찰과 충돌했는가? 필자의 생각에 사회적으로 소위 "좌"는 기실 서방정치적인 프리즘으로 보면 "우"에 해당한다. 그 대표적인 특징은 현존질서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상을 가지고 하층민중에 동조했고, 현존질서의 "격좌(激左)"에 의문을 표시했다. 실제로 이는 혁명가같은 행동인데, 그 스스로는 모르고 있었다.
학교측의 심문을 받은 후, 짧은 이틀만에 그의 내심은 큰 변화가 발생한다. 그는 스스로 "큰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고, 단지 가정주부가 되겠다.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고, 사람들과 연락하지도 않겠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의 원래 정치적 열정이 이미 파멸했다는 것이고, 정치에서 멀리 떨어질 생각만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늦었지만 이 점을 의식했다. 그가 원래 생각했던 그 '보답'은 기실 일방적인 짝사랑이었다. 왜냐하면 조직의 입장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너의 '보답'은 네가 그저 나사못 역할을 하는 것이고, 필요한 것은 너의 기술적인 재능일 뿐이며, 네가 스스로 생각을 가지고 주장하는 정치적 열정은 아니라는 것을. 그건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닌 것이다.
일단, "사상에 문제있는 동지"라고 취급당하게 되면, 너를 기다리는 것은 조직에서 제명당하는것이다. 이건 우리가 이 사회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통상적으로 보게 되는 논리이다. 마치 너에게 무슨 오점이 있는 것처럼, 공동체의 순결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반드시 너를 제거해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중 오상(誤傷)을 입히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관료체계에서 우선적으로 확보해야하는 것은 자신의 면책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가족에게 보낸 위문서신의 문구도 의미를 곰씹어 볼 만하다. 그의 부친은 "유감"을 표시하는 외에, "당신 가정의 거대한 손실일 뿐아니라, 더더욱 우리 학교의 막대한 아픔이다", "잔혹한 현실은 우리가 부득이 이 잔혹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고, 이는 우리로 하여금 무한한 유감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든다."는 문구를 추가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학교에서는 이 일을 처리하는데 부적절했다는 것도 인정하고 싶지 않고, 그가 "좋은 동지"였다는 것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원래의 성격규정을 견지하는 것이다. 즉 그는 "불량사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의 눈에 자살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죄를 짓고 겁이 나서 자살한 것(畏罪自殺)"에 불과하다.
이런 죽음이 가치있을까? 필자의 생각에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경고를 준다: 만일 네가 국가에 보답하고자 한다면, 그저 착실하게 도구로 살아라. 네가 스스로 생각하고 주장하는 사상은 필요하지 않다. 당연히 만일 네가 독립적으로 사고하게 되면 이류로 취급받는 댓가를 각오해야 한다.
'중국과 사회 > 중국의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의 4대 특수집단 (4) : 신삼계(新三屆) (1) | 2025.05.21 |
---|---|
중국의 4대 특수집단 (3): 공농병학원(工農兵學員) (2) | 2025.05.21 |
중국의 4대 특수집단 (2): 노삼계(老三屆) (1) | 2025.05.21 |
중국의 4대 특수집단 (1): 노오계(老五屆) (3) | 2025.05.21 |
농경문명에서 해양문명으로 전환하는데 있어서의 양대장애 (1) | 2025.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