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옥미수(玉米穗)
모택동은 30년대말이후 당의 이데올로기부문을 통제하기 위해 분투해왔고, 신문잡지는 중공의 이데올로기선전계통에서 특수한 지위를 점거하는데 비추어, 모택동은 중공의 신문잡지를 크게 주목했다. 1941년 5월 15일, 모택동은 <신중화보(新中華報)>와 신화사(新華社) 내부간행물 <금일신문(今日新聞)>을 합병한다고 선언하고, 다음 날 정식으로 중공중앙기관보 <해방일보(解放日報)>를 창간했다. 모택동은 전당에 이후 중공의 "일체 당의 정책은 <해방일보>와 신화사를 통하여 전국에 발표된다"고 통지한다.
<해방일보> 창간초기, 박고(博古)가 사장이 되고, 양송(楊松)이 주편(主編)을 맡는다. 이 두 사람은 당내 소위 국제파인물에 속한다. 그들은 <해방일보>를 소련 <프라우다>의 중국판으로 만들었다. 신문에서 당시 소련-독일전쟁의 전황을 대거 보도했다. 국제문제와 관련된 뉴스, 사론과 문장이 가득했으며, 중공 및 그 군대 그리고 섬감녕변구(陝甘寧邊區, 섬서, 감숙, 영하 변경구역)에 대한 보도는 극히 적었다. 모택동은 이에 대해 화를 낸다. 이는 다른 사람을 위해 '무료선전원'역할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외에, 모택동은 <해방일보>에 자주 실리는 장문천(張聞天)등이 쓴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소련에 관련한 글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우취우장(又臭又長, 악취나면서 길다)"의 "양팔고(洋八股, 팔고는 과거 시험때 요구하는 격식에 맞춘 글)", "빈핍무미(貧乏無味, 아무런 맛도 없다)" , "면목가증(面目可憎, 가증스럽다)"고 말한다. 모택동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중국에서 신문을 발간하는 것은 근거지에서 발간해야 한다. 마땅히 우리 당의 정책을 선전해야 한다. 팔로군, 신사군과 변방지구, 근거지를 위주로 해야 한다. 1942년 2월, 모택동은 육정일(陸定一)을 <해방일보>로 보내 실질적 최고책임자로 만든다. 그후 중앙선전부는 <당보를 개선하기 위한 통지>를 발표하며, 중공각지조직이 "모택동 동지의 삼풍(三風, 당풍, 학풍, 문풍) 정돈에 관한 호소에 근거하여, 신문을 점검하고 개조하라"고 요구한다. 3월 31일, 모택동은 직접 <해방일보>개판(改版)좌담회에 참가하여, 참석인원들에게 이전 <해방일보>의 결점에 대하여 비판을 전개하도록 격려한다. 4월 1일, <해방일보>는 글을 싣고 "오늘부터 신문의 지면을 철저히 개혁한다" "<해방일보>가 진정으로 전투하는 당의 기관지로 만들겠다"라고 한다. 그후 <해방일보>는 완전히 모택동이 직접 장악하게 된다.
개판(改版)후의 <해방일보>실권은 주편 육정일과 중앙선전부 대리부장 호교목(胡喬木)이 장악하게 된다. 육정일과 호교목은 적극적으로 모택동의 관련지시를 관철한다. 보도내용과 판면설계에서부터 원래의 <해방일보>에 대하여 탈태환골식의 개조를 진행하여, 점진적으로 약간의 원칙을 확립한다. 이렇게 모택동 "신문학(新聞學)"의 틀이 마련된다.
모택동 "신문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정치공리성으로 신문학의 본질을 본 것이다. 신문이 초계급적인 속성을 지닌다는 점은 완전히 부인한다. 비록 모택동 자신은 정치적인 경향이 두드러지지 않고, 비교적 객관적인 <대공보(大公報)>, <신보(申報)>등의 신문을 즐겨 읽었지만, 그는 자신의 구독취향과 중공신문선전의 요구를 명확히 구분했다. 모택동 자신은 공개된 내용과 내막의 뉴스를 모두 보고 싶어했지만, 중공의 일반간부와 보통백성은 단지 당이 그들이 알게 하려는 일부뉴스만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택동의 이런 신문관은 육정일과 호교목의 해석에 의해 가장 먼저 연안 <해방일보>에서 체현된다. 그것은 아래와 같은 5가지 핵심원칙을 가지고 있다.
- "당성제일(黨姓第一)"의 원칙
여하한 신문도 모두 일정한 계급의 정치투쟁의 도구이다. 세계에서 절대로 계급을 초월한 객관적인 보도는 없다. 그러므로, 중공의 신문은 논쟁의 여지없이 당의 정치노선을 반영하는 당보이다. 공산당은 역사발전의 정확한 방향과 인민의 근본이익을 대표하기 때문에, 당보는 마땅히 '당의 교과서"가 되어야할 뿐아니라, "인민의 교과서"가 되어야 한다. "인민의 희망은 교과스를 읽는 것이다." 당보는 마땅히 인민들이 '평생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당보는 "자신의 모든 면에 모든 글에 모든 통신에 모든 소식에서 당의 관점, 당의 견해를 관철해야 한다." 일체의 평론, 소식, 사진은 모두 반드시 다으이 이익에 부합하느냐의 기준으로 취사선택과 편집배치를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당의 임무와 목표를 실현하는 선전도구가 되기 위하여, 당보의 성질을 위하여, 반드시 당보는 당의 영도기관의 절대영도하에 두어야 한다.
2. "허가진실성(虛假眞實性)"반대원칙
육정일이 제출한 하나의 구호는 "사실존중과 혁명입장을 결합해야 한다" 소위 "사실"은 반드시 '혁명입장'의 지휘하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육정일은 레닌주의의 "양종진실성(兩種眞實性)"의 관점을 인용하여, "본질진실성(本質眞實性)"은 역사발전방향을 대표하는 사실이다. 바록 아직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본질적으로 말하자면 진실이다. 이와 상반되게 "허가진실성(虛假眞實性)"은 단지 사물의 "표상(表象)"과 "가상(假象)"을 반영하는 것이고 사물의 본질을 반영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하지 않은 것이 된다. 만일 이미 발생한 것이 사실이라면 "개별적인 현상을 과장하여 전체현상이 되도록" 보도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객관주의'와 '자연주의'에 반하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그리고 무산계급의 '진실성'과 '객관주의' '자유주의'는 물과 기름처럼 서로 용납될 수 없다.
3. "뉴스의 빠르고 늦음은 반드시 당의 이익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뉴스를 빨리 내보내는 것"은 자산계급신문학의 열악한 표현이다. 정확한 '무산계급신문관'은 뉴스를 발표하는 빠르고 늦음은 완전히 당의 필요에 따라야 한다. '빨리 보도해야할 것은 빨리 보도하고' '늦게 보도해야 할 것은 늦게 보도한다' '어떤 것은 한동안 누르고 있다가 발표해야 한다' '어떤 것은 누르고 발표하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은 다으이 영도기관과 최고지도자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고, 절대적으로 신문과 기자는 조그만치의 '독립성'이나 '자유주의'를 가져서는 안된다.
4. 신문으로 운동을 지도하는 원칙
당의 영도기관은 반드시 신문을 잘 '이용'해야 한다. 특히 신문을 이용하여 정치운동을 지도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운동이 처음 일어날 때와 최고조에 달했던 일정한 시기동안,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분위기를 띄우며, 선전의 규모와 기세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간부와 군중을 교육하고, 적을 위협하고 타격한다.
5. 신문의 기밀유지와 층차(層次)를 나누어 구독하는 원칙
<해방일보>가 개간된 후, <참고소식(參考消息)>을 출간한다. 이는 지도자간부들에게만 구독하게 하는 것이다. <참고소식>을 출간한 지도사상은 명확하게 신문의 기밀유지와 층차를 나누어 구독하는 원칙이다. '알' 권력에서는 '절대평균주의'를 취할 수 없다. 중하급당원간부는 정치적 각성이나 이론수준이 부족하기 때문에 국내외신문뉴스에서 살포하는 '독소'에 침습(侵襲)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오랜 시험을 거친 소수의 고위급지도자간부들만이 특정한 중요신문뉴스를 볼 자격이 생긴다. 간부의 직급이 높을수록, 알 권리도 더욱 커진다. 구독제한은 갈수록 적다. 이를 통해 급이 내려갈수록 알권리가 체감하고, 구독제한이 체증한다. 일반백성들은 그들의 사상상 및 정치상의 순결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그들에게는 당보이외의 다른 소식을 알려줄 필요가 없다.
개판후의 <해방일보>는 육정일, 호교목의 영도하에, 면모를 일신했고, 말그대로 명실상부한 "당보"가 되었다. 판면의 배치는 이전의 "1국제, 2국내, 3변구, 4본시"의 방침에서 "1변구, 2해방구, 3전국, 4국제"의 순서로 바꾸어버렸다. 그리고 모택동의 지시에 따라, 여러번 모택동의 수정한 강연과 원고를 발표했고, 충실하게 모택동이 이 신문을 이용하여 연안정풍을 진행하는 의도를 집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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