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망정(忘情)
1. 들어가는 말
현재 인기리에 방영중인 <대군사 사마의의 군사연맹>은 다시 한번 사마의와 제갈량중 누가 더 대단한지에 관한 논쟁에 불을 붙였다. 본인은 과거에 졸문 <제갈량, '지성'이라는 허명만 가지고 있다>는 제목의 글을 쓴 바 있다. 이제 핫이슈를 놓고 논쟁하는 것을 보니, 본인의 졸견을 다시 한번 평쳐보고 싶어졌다. 비판과 지적을 해주기 바란다.
<삼국연의>에는 두 명의 수퍼맨이 있다. 한 명은 제갈량이고, 다른 한 명은 사마의이다. 두 수퍼맨이 맞부닥치면 도대체 누가 더 대단할까? 사람들은 이 문제를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그에 관해서 줄줄이 말을 늘어놓으면서, 얼굴을 붉히고 목에 힘을 주기까지 한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제갈량은 "다지이근신(多智而近神)"즉 지혜가 많고 거의 신격인 존재인 비범한 인물이다. 민간에서는 그를 "지성(智聖)"이라고 부른다. 그는 한실(漢室)을 부흥시키기 위하여, 재능을 발휘하여, 삼분천하를 이룬다. 가히 공고개세(功高蓋世)라 할 만하고, 이름을 천고에 남길 만하다. 교묘하게 동남풍을 불러오고, 불길로 적벽을 불태운다. 팔괘진을 발명하고, 육손의 추격병을 막아낸다. 맹획을 칠종칠금하면서 남방의 난을 평정한다. 목우유마를 발명하여 양초를 끊이지않게 조달한다. 공성계를 펼쳐서 사마의의 체면이 바닥에 떨어지게 만든다...... 이것만 해도 대단하지 않은가? 사마의가 이런 것들을 해낼 수 있단 말인가?
잠깐, 서두르지 말라. 필자도 제갈량이 대단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첫째, 인재전략이 부족했다. 자주 사람을 잘 못썼다. 예를 들어 관우를 잘못 기용해서 화용도를 지키게 만드는 바람에, 조조가 구사일생할 수 있게 해준다. 관우로 하여금 형주를 지키게 하여 결국 형주를 잃는다. 맹달로 하여금 한중을 지키게 하여, 결국 맹달이 배신한다. 마속을 잘못 기용해서, 가정을 지켜내지 못한다. 그리고 일생동안 독당일면할만한 인재를 배양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각각의 이익집단간의 갈등을 제대로 해소하지도 못했다. 둘째, 대세를 장악하지 못했고, 자주 역행했다. 그는 천시,지리와 인화에 불리한 데도 불구하고, 힘들게 병력을 모아서 전쟁을 벌였고, 백성들을 힘들게 하고, 재물을 낭비했다. 그래서 결국 실패하고 만다. 셋째, 감정적으로 일처리를 했으며 자주 감정에 휘말렸다. '선제의 촉탁'을 완성하기 위하여, 그의 두뇌는 냉정을 잃어버리고,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그래서 일련의 잘못된 정벌전쟁을 일으킨다. 이 세가지 방면을 보면, 제갈량은 고도의 전략적인 안목을 가진 것이라라거나 초강력적인 전략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다.
우리는 다시 사마의를 보자. 그는 하남 온현에서 태어났고, 제갈량보다 2살이 많다. 역사기록에 따르면,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목이 길고, 두 눈이 넓고, 길을 걸을 때 몸을 도릴 필요가 없이 머리를 180도 돌려서 후방까지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그를 "낭고지상(狼顧之相)"이라고 불렀다. 사마의는 두뇌가 맑았고, 목표가 명확했다: 가슴에는 전체국면을 생각했고, 대세를 파악했다. 자신의 힘을 고려하여 움직였고, 대세를 따랐다. 전략을 중시하고 소소한 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도광양회할 줄 알고, 역량을 축적할 줄 알았다. 은인자중하면서 기회를 보아서 움직였다. 적시에 나서고, 적시에 물러났다. 나서면 위세가 천하를 떨쳤고, 물러나면 아무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지냈다. 사마의는 진정한 지자(智者)이다; 그는 예민한 관찰력과 통찰력이 있었다.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난세에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먼저 자신을 보전해야 한다는 것을. 자신의 목숨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무슨 이상을 얘기할 것인가. 사마의는 공명을 이루면서 자신을 지켰다. 이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보통사람이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사마의는 해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가? 첫째는 은인(隱忍)이고 둘째는 실력이다. 한 사람의 경쟁력은 네가 얼마나 총명한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네가 얼마나 뛰어난 지혜를 가졌느냐에 있다.
TV드라마 <대군사 사마의의 군사연맹>의 제1편에서 배경소개를 하면서 이런 말이 있다: "삼국의 난세에 군웅이 축록했다. 이 권력의 게임에서 마지막으로 웃는 사람이 비로소 천하를 얻을 수 있다.... 사마의와 제갈량은 서로 떨어져 있었지만, 육출기산의 힘겨루기에서 서로를 알았고 서로를 아꼈다. 필생의 최강적을 철저히 이긴 후에, 실성통곡한다. 조정의 권모술수, 제왕의 심리술, 군사의 지략대결, 궁중의 음모....일대군사 사마의가 어떻게 호걸이 배출되는 시대에 혈로를 뚤고 나와 '사상최강두뇌'대결을 펼치는지를 보라." 이 선전문구는 기실 이미 네티즌들의 논쟁에 대한 대답을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사마의가 최후에 웃었고, 최후의 승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갈량보다 더 대단하다는 것이다!
2. 사마의는 제갈량보다 대세를 잘 장악했다.
소위 "대세"라는 것은 큰 추세, 전체적인 국면의 흐름을 의미한다. 그것은 천시, 지리, 인화의 종합적인 추세이다. 진정한 전략가라면 반드시 대세를 잘 봐야 한다. 방향을 잘 알고, 시야가 넓으며, 가슴으로 전체국면을 품고서, 기세를 따라 올라가고, 기세에 맞추어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정확한 전략방침을 세우고, 계속 성공을 향하여 전진해야 한다. 제갈량은 절대로 대세를 잘 장악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다.
첫째, 역량대비를 고려하지 않고, 병사들이 피곤한 상태에서 원정을 벌인다. 당시 천하형세는 조위가 가장 강하고, 손오가 그 다음이며, 촉한이 가장 약했다. 조위가 중원을 점령하고 있었으므로, 지대물박하다고 할 수 있고, 영웅이 배출되었다; 손오는 칭웅한지 이미 오래 되었고, 지리, 인화의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촉한은 원래 전도가 양양했지만 먼저 관우가 실수로 형주를 잃고, 이이서 이릉에서 참패하면서, 선제가 '붕어'하고, 남방에서는 '반란'이 일어난다. 더더구나 후주는 혼용무능하여, 촉한은 이미 '위급존망지추'였다. 이때 제갈량은 오히려 북벌을 결정한다. 기실 이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다름이 없고, 나방이 불로 뛰어드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후의 사실이 증명한다. 제갈량의 육출기산은 스스로를 '출사미첩신선사'에 빠지게 만들었을 뿐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이로 인하여 대량의 인력, 재력을 소모하게 되어, 촉한멸망의 속도를 가속화시켰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위촉 양국의 실력을 비교해보기로 하자. 인구방면에서, 위나라는 537만이고, 촉국은 겨우 90만이다. 영토방면에서 동한은 모두 14개주를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에 서역도호부가 하나 추가된다. 삼국정립이후, 위나라는 그중 11개주와 1개도호부를 차지한다. 그것은 바로 청주, 연주, 예주, 서주, 사주, 옹주, 양주, 병주, 유주, 기주, 형주북부와 서역도호부이다. 그러나 촉국은 익주만 가지고 있었다. 병력방면에서 위나라의 병력은 70만-80만에 달했다. 그러나 촉국은 겨우 10만이었다. 촉국은 인구가 백만을 넘지 못했으므로, 10만군인을 기르는 것도 이미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제갈량이 최대로 활용할수 있는 병력은 6만을 넘지 못했다. 위나라의 서부전선 방어병력은 20만가량이었다. 인재방면에서 촉국에는 대장이 없었다. 요화가 선봉을 섰다. 위연만이 상장이라 칭할 만했고, 마속만이 겨우 참모라 할 만했다. 그러나 위나라는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다. 상장이 구름처럼 많았고, 모신도 연이어 배출되었다. 생산력방면에서 당시의 중원옥토는 농경이 선진적이고 수공업이 발달하였고 서촉에 비하여 약간 나은 수준이 아니었다. 양초방면에서 위나라는 후고지우가 없었다. 촉국의 양초운송은 항상 문제였다. 지리방면에서 위나라는 편안하게 쉬면서 기다렸고, 촉국은 피곤하게 멀리 행군해 가야 했다. 인화방면에서, 제갈량은 시종 형주, 익주 양대집단간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했다. 중요한 순간에 항상 누군가 방해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비교해보면, 실력의 차이가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갈량은 대세를 제대로 보지 못했고, 스스로의 힘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 그래서 계랸으로 바위를 친 것이다. 어찌 패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둘째, 감정적으로 일처리를 하고, 충동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고인은 일찌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출사표>를 읽고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충신이 아니다" 출사표의 문구인 "국궁진췌(鞠躬盡瘁), 사이후이(死而後已)"는 실로 사람의 폐부를 찌른다. 다만, 국가사무를 총괄하는 승상으로서 제갈량은 절대 감정적으로 일처리를 해서는 안된다. 당시 국력이 쇠약하고, 후주 유선은 혼용무능했으며, 간사한 무리를 가까이 하고 현명한 신하름 멀리했다. 그것은 "부불기적아두(扶不起的阿斗)"이다. 제갈량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출사표>에서 용심양고하여 완곡하게 간언한 것이다. 심지어 눈물을 흘리면서 후주가 선제를 본받아 분발할 것을 희망했다. 그러나 후주는 여전히 충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가 하고싶은대로 했다. 이런 국가상황을 감안하면, 제갈량은 마땅히 정무를 돌보는 것을 위주로 해야 했고, 토벌하는 것은 그 다음이었다. 설사 살아있는 동안에 통일대업을 완수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촉한을 민부국강하게 만들고, 실력을 증강시켰어야 했다. 다만, 제갈량은 '감정적으로 일처리했다' 선제 유비의 '삼고초려'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그리고 유비의 '탁고'의 중임을 완성하기 위하여 그는 북벌을 주장하고, 계속 출병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촉한을 '기울게' 만들어, 삼국중 가장 먼저 멸망의 심연에 빠지게 만든다.
셋째, 제갈량은 천시, 지리, 인화를 몰랐다. 전략적으로 보면 제갈량이 일으킨 북벌은 '북도중원(北圖中原), 흥복한실(興復漢室)"의 대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실로 사소하게 볼 수 없는 멸국의 조치이다. 그러므로 '천시', '지리', '인화' 세 가지 방면의 조건을 모두 갖추었을 때 시행해야 한다. 소위 '천시'라는 것은 적국에 이미 토폐의 추세가 나타났거나, 혹은 내란으로 국세가 흔들려야 한다. 다만 위나라는 당시에 정권이 안정되고, 사마의는 '충성'스럽게 조위를 보좌하고 잇었다. 소위 '지리'는 병력과 물력이 웅후하고, 적국을 공격하는 것을 지탱해줄 수 있었다(예를 들어 나중에 위나라가 촉나라를 멸망시킬 때처럼), 다만 당시 제갈량은 그저 피곤하게 병사들을 멀리 원정보내는 것이고, 고립된 부대로 적국의 깊이 침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러번 양식이 떨어져서 퇴각해야 했다. 소위 '인화'는 약간의 전투를 잘하는 맹장과 모신이 서로 잘 화합해야 한다. 다만 당시에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무장은 위연 한 사람 뿐이고, 모신은 없었다. 이 몇 가지 조건이 모두 갖추어져 있지 않았으므로, 제갈량의 북벌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비교해서 말하자면, 사마의는 천하의 전체적인 국면을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추세를 따라서 행동할 줄 알았고, 절대로 역행하지 않았다. 더더구나 맹목적으로 행동하지는 않았다. 천하에 분쟁이 끊이지 않고, 국면이 불명확한 때 그는 가볍게 어느 편에 서지를 않았고, 여러번 조조의 요청을 거절한다. 나중에 조조가 점차 세력을 얻고,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자, 사마의는 적시에 나선다. 그는 심계에 뛰어나고, 조조가 자신을 불신한다는 것도 잘 알았다. 그래서 더욱 일을 열심히 한다. 마침내 조조의 의심을 피할 수 있었다. 사마의는 아주 분명하게 자신이 뭘 하려고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았다. 그는 제갈량과 대치할 때, 촉도난으로 물자운송이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시간끌기'의 전략을 쓴다. 천천히 제갈량을 말려죽인 것이다.
삼국후반부를 읽으면, 발견할 것이다. 한 영웅이 물러나는 동시에 사마의는 계속 무대의 전면에 나선다는 것을. 그의 광망은 계속 커지고, 심지어 나중에는 모든 사람을 초월한다. 기실 한 사람의 수준이 높은지 낮은지를 보려면, 세 가지 중요한 참고요소가 있다: 하나는 심시도세(審時度勢)이다. 소위 시무를 아는 자가 준걸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지피지기이다. 소위 남을 잘 아는 자가 지혜로운 자이고 자신을 잘 아는 자가 총명한 자이다. 스스로 몇 그릇의 밥을 먹을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하고, 상대방이 몇 그릇의 밥을 먹을 수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셋째는 수기응변(隨機應變)이다. 소위 기회를 봐서 일을 행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문제를 구체적으로 분석한 후 일체는 시간과 장소를 조건으로 바꾼다. 이 세 가지 방면으로 보자면, 사마의는 삼국시대의 절대다수의 영옹호걸들보다 뛰어나다. 그래서, 삼국시대 그렇게 많은 인물들이 나타나지만, 그들은 모두 임무를 완성하지 못하고, 사마의가 완성할 수 있었다. 만일 '이기면 왕이요 지면 도적이다'는 논리에 따른다면, 사마의는 승리자이다. 절대적인 승리자이다. 부끄럽지 않은 영웅이다. 그의 승리는 간단하게 운이라는 요소로 분석할 수 없다. 그는 확실히 천하통일의 재능과 모략을 가졌다. 확실히 남보다 뛰어난 점이 많았다. 확실히 우리가 배우고 본받아야할 가치가 있는 것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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