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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명)

역사의 아이러니: 명나라 첩보기관은 왜 악비를 모셨는가?

by 중은우시 2009. 9. 9.

글: 중천비홍(中天飛鴻)

 

모두 알다시피, 명나라때는 특무기관이 아주 많았다. 먼저 금의위(錦衣衛)가 있고, 이어서 동창(東廠), 서창(西廠)이 있다. 그리고 가장 단명했던 내행창(內行廠)이 있다. 말하자면, 명나라의 이 4대특무기관의 직책과 임무는 대체로 비슷했다. 대명왕조의 국영첩보기관일뿐아니라, 체포, 심문, 기소, 판결 및 처형까지 하는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간첩, 경찰, 검찰, 판사, 사형집행인까지 겸임하는 특수조직인 것이다. 정상적인 사법부서는 꿈도 꿀 수 없는 특권을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이 4대특무조직은 모두 흉악하고 잔혹했으며, 모두 아무런 거리낌없이 일을 저질렀고, 모두 하고 싶은 일은 다 했으며, 모두 백성의 고혈을 짜냈다. 다만, 그들 상호간에 업무처리의 풍격은 서로 다른 점이 있었다. 가장 다른 점이라면 동창이라는 특무기관은 사무실의 곁에 붙어 있는 작은 방안에 악비의 조상(雕像)을 모시고 있으며, 사무실의 앞에는 "백세유방(百世流芳, 아름다운 이름이 백대에 전해진다)"이라는패방(牌坊)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창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사람들이 전율하는 특무기관에서 왜 이백년전 송나라의 항금영웅 악비의 조상을 모셨을까? 그들은 정말 악비를 추앙했던가? 정말로 '백세유방'하였는가? 이것은 동창의 유래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명나라때, 동창의 건립시기는 금의위보다 늦을 뿐, 규모에 있어서는 최대의 특무조직이었다. 명나라의 개국황제 명태조 주원장은 첫번째 특무조직을 만든다. 그것이 금의위이다. 이 금의위는 세상에 나타난 날로부터 음모, 죄악과 결부되어 있었다. 비록 주원장이 조정신하들로부터의 반발에 부닥쳐 한때 폐지한 적도 있었지만, '정난지역'으로 황제위에 오른 영락제 명성조 주체는 등극후 얼마되지 않아 이 특무기관의 조직을 부활시킨다. 원인은 아주 간단했다. 주체는 반란으로 정권을 잡았으므로, 간첩이 필요했고, 특무가 필요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주체는 금의위는 쓰기에 불편하고 불충분하다고 깨닫는다. 그리하여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특무기관이 필요하였다. 그는 자신이 반란을 통하여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자신의 앞뒤를 따르던 환관과 화상들을 생각한다. 예를 들어, 환관 정화(鄭和), 화상 도연(道衍)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충성심이 강할 뿐아니라, 큰 공로도 세웠다. 다시 말해서 환관은 오랫동안 궁중에 머물렀고, 화상은 청심과욕한 생활을 해왔다. 그래서 자신이 장악하고 지휘하기가 좋았다. 명성조는 북경으로 천도한 후, 영락18년, 즉 1420년에 환관이 장악하는 첩보기구를 창설한다. 그 위치가 동안문의 북쪽이어서, 이름을 동집사창(東緝事廠)이라고 붙인다. 약칭하여 '동창'이라고 한다.

 

동창의 출현은 명나라 최대규모의 특무기구가 역사의 무대에 나타난 것이며, 권력의 크기, 악행의 수, 명성의 추악함등에서 고금에 보기 드물 정도이고, 대적할만한 것이 없다. 악명을 떨치던 금의위도 비견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환관의 정치관여의 물꼬를 트게 된다. 나중에 환관집단이 강화되고 정치를 어지럽혀서 나라를 망하게 하는 화근도 이때 심어진다.

 

이 특무기관은 건립초기부터 기세등등했다. 도장부터도 남달랐다. 다른 기관의 인장은 그저 부서의 명칭을 간단히 적을 뿐이었는데, 동창의 인감은 달랐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14개의 큰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흠차총독동창관교판사태감관방(欽差總督東廠官校辦事太監關防)" 비록 이 명청은 읽기에는 좀 이상하지만, 어쨌든 '흠차'라는 두 글자는 이 기관의 내력이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동창은 시작할때 직능이 "모역 요언 대간악등을 방지하고 금의위와 권세를 나누는 것'이었다. 당시, 동창은 정부소집, 체포를 담당했지만, 범인을 심문할 권리는 없었다. 동창에서 붙잡은 범인은 금의위 북진무사(北鎭撫司)로 보내어 심문받게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동창도 자신의 감옥을 만든다. 동창의 우두머리는 동창장인태감(東廠掌印太監)인데, 창주(廠主), 창독(廠督)이라고도 불렀다. 환관중에서는 사례감장인태감(司禮監掌印太監)에 이은 두번째 높은 자리였다. 이외에 동창에는 천호(千戶) 1명, 백호(百戶) 1명, 장반(掌班), 영반(領班), 사방(司房) 약간명을 두었다. 구체적으로 첩보수집을 담당하는 것은 역장(役長)과 번장(番長)인데, 역장은 소대장에 해당하고, 당두(頭)라고도 불렀다. 번장은 보통 번자(番子)라고도 하는데, 사실 번자는 이 특무조직에서 가장 하급의 특무였다.

 

동창의 최전성기에 그들의 직책은 아주 광범위했다. 뭐든지 관장했고, 뭐든지 살폈다. 조정에서 심리하는 사건에도 동창이 사람을 파견하여 들었다. 조정의 각 아문에도 동창에서 파견한 인원이 앉아 있었다. 이, 호, 예, 병, 형 공의 육부에의 모든 문건도 동창에서 파견한 인원이 검사했다. 이것뿐아니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이들이 시장조사도 책임졌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채소시장의 배추, 무우가 1근에 얼마하는지도 모조리 기록으로 남겼다. 이들 특무는 관여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백관을 감시할 뿐아니라, 그들의 동료인 금의위도 감시했다. 이를 보면 그들의 권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창의 대소 특무는 매일 경성의 크고 작은 길거리와 골목에서 활동한다. 조정을 위해서만 일하는 것은 아니었다. 더 많은 것은 개인적인 사리사욕을 챙기는 일이었다. 그들은 자주 죄명을 얽어서, 양민을 무고하고, 그 다음에 이들로부터 돈을 뜯어냈다. 명나라 중후기에 동창의 첩보조사범위는 전국으로 확대된다. 머나먼 변경의 주에서부터 궁벽진 시골까지 '화려한 옷을 입고 말을 타고 다니며 북경말을 하는 자'들이 나타났다. 전국의 모든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금의위와의 관계에서도, 동창은 오히려 밟고 올라섰다. 동창의 우두머리는 황제와 관계가 좋았고, 대내에 살고 있으므로, 황제의 신임을 더 많이 받았다. 동창과 금의위의 관계는 점차 상하관계로 바뀌게 되고, 환관의 권력이 전체 조정을 장악하게 된다. 금의위 지휘사는 동창의 우두머리를 만나면 공손하게 대했고, 심지어 무릎을 꿇고 절을 하기도 하였다.

 

당연히 이들 동창의 특무는 정보를 얻어내고, 백관을 모함하며,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과정에서, 점차 자신들이 존경하는 우상과 신조를 만들어간다. 동창의 아문대청 곁에는 작은 방을 만들어 악비의 조상을 모시고, 역대 동창의 우두머리의 패위는 서쪽의 사장에 모셔둔다. 아문의 앞에는 패방을 세워서 거기에 글을 써놓는데, "백세유방"이다. 악비의 영혼이 있어 자신의 조상이 명나라의 특무기관에서 신명으로 모셔진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떤 느낌이었을지 모르겠다. 아마도 금나라 사람들이 이름만 들어도 전율했다는 항금영웅도 잠잘때 악몽에 잠을 깨지나 않았을까?

 

사실 동창의 특무들이 악비를 모신 것은 자신들이 악비처럼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외에,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조정의 백관과 천하 백성을 미혹시키기 위함이다. 그들로 하여금 동창의 사람들은 나라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충신효자라고 인식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천하백성들이 동창의 특무들에 대한 미움을 완화시켜보고자 한 것이다. 그외에 바깥에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목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수하의 크고 작은 특무들에게, 조정과 동창에 충성을 다하는 동시에, 생사의 순간에, 설사 무고하게 피살되더라도, 악비처럼 충성을 다하면서 죽으라는 것이다. 절대로 다른 마음을 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창의 특무들이 한 행위는 악비의 이미지와는 실로 거리가 멀다. '백세유방'은 불가능하다. 악명을 만년간 떨친다는 것이 필연적인 결말이다. 지금까지, 동창, 심지어 그들과 비슷한 금의위, 서창, 내행위는 모조리 역사의 치욕의 기둥에 못박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