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명)

해진(解縉): 지나친 총명함으로 목숨을 잃다.

by 중은우시 2008. 12. 29.

 

 

 

글: 진웅(陳雄)

 

명나라때의 재자(才子) 해진(解縉)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다. 스무살에 진사가 되고, 그는 명나라의 세 황제를 모셨다. 명태조 주원장(朱元璋) 명성조 영락제 주체(朱棣)는 처음에는 모두 그를 아주 총애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돌연 그와 소원해진다. 영락제는 그를 감옥에 가두라고 명령하고, 눈속에 얼어죽도록 한다. 해진의 나이 47세때의 일이다.

 

영락제는 원래 해진의 재주를 아주 높이 평가했다. 영락제가 해진을 아주 높이 대우해준 것은 한편으로는 그가 천하 독서인들의 마음을 얻고 싶었는데, 해진은 의심할 여지없이 독서인들 중에서 가장 우수한 대표자였다; 또 한편으로는 그는 특색있는 책을 편찬하여 그의 문치무공을 드러내고자 했는데, 해진은 바로 이 일을 맡아서 해낼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인물이었다. 해진은 147명의 문인을 모아서, 임무를 분담시켜 이 방대한 책을 편찬한다. 영락6년, 이 책이 마침내 완성되는데, 영락제는 친히 서언을 쓰고, <<영락대전(永樂大典)>>이라 명명한다. 책이 완성되기 전에, 영락제는 해진에 대하여 큰 은총을 내렸다. 일찌기 사람들에게 : "나라에 내가 하루 없는 것은 괜찮지만, 나는 하루도 해진이 없이는 안된다."고 하였다. 해진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이 당시, 영락제는 후계자의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영락제 본인과 일부 대신들은 영락제의 둘째아들인 주고후(朱高煦)를 태자로 삼기를 원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주고후는 말타기와 활쏘기에 모두 능하고, 전공도 혁혁하게 세웠으며, 영락제의 목숨을 구해준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성격이 포악했다. 이에 비하여 영락제의 맏아들인 주고치(朱高熾)는 성격이 온화하고, 몸이 뚱뚱했다. 그리하여 말을 타고 활을 쏠 수가 없었다. 영락제는 먹을 것을 적게 내리는 방법으로 그의 다이어트를 강제했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영락제는 주고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계자는 "입장불립유(立長不立幼, 큰아들을 태자로 삼고 작은아들을 태자로 삼지 않는다)"의 전통이 있다. 그리하여 주고치는 우선적인 후보가 되는 것이다. 망설이며 결심하지 못하고 있던 영락제는 해진에게 의견을 구한다. 해진은 명확하게 의견을 제시한다: "황장자(皇長子)는 인효(仁孝)하니 천하의 마음이 그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영락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무언중에 부정하는 것이었다. 해진은 이때 다시한번 자신의 총명을 드러낸다. 그의 입에서 세 마디가 나왔다: "호성손(好聖孫, 좋은 손자가 있습니다)". 영락제는 웃었다. "호성손"이라는 것은 주고치의 장남인 주첨기(朱瞻基)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즉, 나중의 명선종이다. 영락제는 이 손자를 아주 좋아했고, 특별히 신경을 써서 배양하고 있었다.

 

결국, 주고치가 태자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들의 덕을 보았다. 당연히, 해진이 "호성손"이라고 거들지 않았더라면, 운은 아마도 그렇게 빨리 그에게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주고치는 해진에게 아주 감격해 했다. 그러나, 주고후는 해진을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해진을 손보는 피바람이 곧 불어닥칠 상황이었는데, 해진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와 반대로 그는 적극적으로 주고후의 반대편에 섰다. 주고후는 태자가 되지 못해서 마음 속에 불만을 가지고있을 뿐아니라, 세력을 날로 키웠고, 행동이 날로 오만방자해졌다. 해진은 이에 대하여 영락제에게 밀고한다. 주고후가 쓰는 예의규범이 이미 태자와 같아졌다고 말했다.

 

원래 영락제로부터 충성스럽다고 칭찬을 들을 줄 알았는데, 영락제의 태도는 상당히 냉막했다. 해진은 아마도 양수(楊修)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잊었던 것같다. 양수는 조식(曹植)을 지지하였으나, 조조(曹操)는 조비(曹丕)에게 기울어 있었다. 양수는 황실권력다툼에는 끼어들지 말아야 하는 금기를 범했고, 그 다툼 속에서 죽었다. 이것은 살아있는 생생한 교훈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여기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 군왕의 가족내무갈등에 부하가 끼어들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이후, 영락제는 해진에 대한 태도를 완전히 바꿔버린다. 해진이 <<영락대전>>의 대공정을 마무리짓기도 전에, 그를 광서로 좌천시켜버린다.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해진은 여전히 자신을 반성하지 않았다. 몇년후, 그는 아주 멍청한 일을 또 벌인다. 그것은 바로 북경에 올라와서 업무보고하는 기회를 타서, 영락제가 북경성을 비우고 있었는데(당시 영락제는 달단을 원정갔었다), 사사로이 태자 주고치를 만났다. 더욱 잘못한 것은, 해진이 태자를 만난 후에, 영락제가 돌아와서 그의 보고를 받기도 전에, 지방으로 되돌아가버린 것이다. 영락제가 돌아온 후, 주고후는 해진의 의심스러운 행적을 보고한다. 원래, 영락제는 주고치를 그다지 믿지 않고 있었고, 자주 주고치가 무슨 딴마음을 품지 않았을까 의심했다. 이번에는 더욱 화가났다: "뭐라고? 내가 아직 살아있는데, 너희가 권력을 빼앗으려고 하는가?" 그는 해진이 태자와 무슨 불미스러운 음모를 꾸몄다고 생각해서 해진을 감옥에 가두도록 한다.

 

몇년후, 영락제는 금의위(錦衣衛)에 갇혀 있는 죄인의 명단을 보다가, 해진의 이름을 보게 된다. 그러자 그는 차갑게 한마디를 던진다: "해진이 아직 살아있는가?" 금의위의 두목은 그의 뜻을 받들어, 해진에게 술을 마시자고 청한 후에 그를 술에 취하게 만든 다음, 깊은 눈 속에 묻어서 얼어죽게 한다.

 

해진이 죽은 후, 영락제는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그의 가족을 모조리 노비로 삼고, 그이 처의 종족들은 요동으로 보내버린다. 해진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몰랐을 것이다. 자기가 온 힘을 다하여 모셔온 통치자가 왜 안면을 바꾸었는지? 이것은 아마도 그가 한 가장 멍청한 짓일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목숨만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