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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항우)

항우는 영웅인가, 악마인가?

by 중은우시 2008. 7. 26.

글: 손호휘(孫皓暉)

 

역사적인 인물이 악마에서 영웅으로 바뀌는 것은 사람들이 눈치채기어려운 경로 즉, 역사의 침식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초패왕 항우는 진나라말기의 인물이고, 현대인들이 잘 알고 있는 대영웅이다. 이 '대영웅'의 진면목이 사실은 천하인들이 모두 벌벌 떨던 최대의 악마였다.

 

필자의 <<대진제국>>에서, 항우는 그저 마지막 부에 출현할 뿐이고, 조역이다. 그러나, 항우의 출현은 천지를 뒤집어버리고, 사고를 교란시킨다. 역사매몰의 위세는 항우에게서 가장 잘 드러난다. 이런 위세는 깊이 생각해봐야 할 독특한 역사적 변이를 일으킨다. 이는 '항우현상'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역사변이의 본질은 역사의식의 왜곡이다. 역사의식의 왜곡은 사회역사토양의 변화에서 기인한다. 이처럼 고민해야할 이슈는 일단 논하지 않기로 한다. 먼저 항우의 진면목이 도대체 어떤 악마였는지를 살펴보자.

 

먼저 기본사실을 나열해본다.

 

<<사기. 항우본기>>에는 항우집단의 6차례에 걸친 대도살을 기록하고 있다.

 

제1차양성(襄城)대도살, 성의 모든 평민을 갱살(坑殺)

제2차성양(城陽)대도살, 진나라군을 도와서 저항한 성의 모든 평민을 죽여버림.

제3차신안(新安)대도살, 진나라의 항복한 군인 20만을 갱살

제4차함양(咸陽)대도살, 관중의 평민을 무수히 살륙, 방화, 약탈, 도굴

제5차파제(破齊)대도살, 전영(田榮)의 투항한 병사수량미상을 갱살. 방화약탈

제6차외황(外黃)대도살, 한 소년이 이해관계를 얘기해주어서 뒤에 포기.

 

이상의 살륙은 모두 전쟁에 승리한 후의 도성(屠城, 성의 백성을 죽여버림)과 살항(殺降, 항복한 자를 죽임)이다. 그것도 6번이다.

 

항우의 사회정치적인 행위를 보면 대체로 6가지 측면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복벽광(復狂): 일거에 제후분봉제를 회복하여, 당시 중국을 다시 전쟁의 포화로 몰아넣었다.

둘째, 혹형광(酷刑狂): 전국시대의 살아있는 사람을 삶아죽이는등 혹형을 부활시킴. 진실을 말하는 자는 바로 솥에 넣고 삶아버림.

셋째, 살해광(殺害狂): 군수를 죽이고, 송의를 죽이고, 초회왕을 죽이고, 자영을 죽였으며, 진나라 영씨황족을 모두 죽여버림.

넷째, 훼멸광(毁滅狂): 함양과 관중을 불태워버림. 불길이 3개월이 지나서 꺼짐.

다섯째, 도묘광(盜墓狂): 진시황릉을 파헤침. 지상건축물을 모조리 파괴하고 지하묘실도 훼손됨.

여섯째, 겁략광(劫掠狂): 전형적인 것은 두번임. 관중 재물대약탈, 제나라 재물인구대약탈

 

이상의 기본사실만으로도 항우라는 인물은 완전히 변태적인 사회학대광이고 문명훼멸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항우집단의 대규모폭력은 대도살의 잔혹한 기풍을 진나라말기의 난세에 성행하게 만들었다.

 

"관대한 어른(寬大長者)"을 불리고, 상대적으로 온건했던 유방집단도 두번의 대도살을 벌인다. 하나는 영양(潁陽)이고 다른 하나는 무관(武關)이다. 스스로 백성을 안정시키는 전략을 썼다는 유방집단마저도 이러했으니, 다른 집단의 방화약탈과 살인이 어떠했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중원과 하북에 진군한 복벽집단은 모두 대살륙과 대약탈을 장기로 삼았다. 항우집단의 폭력에 자극받아, 복벽의 악마들은 서로 앞다투어 천하를 노략했다. 중원에서 3천년동안 집적된 물질문명성과는 거의 훼멸되고, 인구는 격감하며, 민생은 피폐해지고 천하는 쇠퇴한다.

 

항우집단을 주축으로 한 진나라말기의 복벽세력은 미친 악마가 되고, 전체 사회에 대하여 변태적인 보복을 감행한다. 이들의 잔혹한 정도는 진나라의 문명건설정신과 비교하자면 천지차이가 있다. 이처럼 비교할 것이 없을 정도의 대규모 파괴와 폭력은 '초한전쟁'의 짧은 몇년동안 중국역사상 유례없는 대훼멸시기를 맞이한다. 그 직접적인 결과는 번영했던 진나라의 통일문명은 5,6년만에 돌연,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고, 죽은 자가 절반이 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리하여 서한이 건국된 후 50년이 지나서까지도 여전히 경제는 회복하지 못하였다.

 

이와 비교해보면, 전국시대에는 전투가 계속되었지만, 한번도 도성의 폭행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진시황은 6국과 전투를 벌였지만, 진나라군대는 한번도 평민을 도살하는 폭행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항우의 악마적인 폭력은 당시의 복벽진영내에서도 이미 비판을 받고 있었다.

 

초회왕은 항우의 여러가지 악마적인 행동에 대하여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하여 초회왕은 일찌기 대신장군에게 이를 갈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항우는 사람됨이 표한활적(剽悍猾賊)이다. 항우가 일찌기 양성을 공격할 때 양성에 사람을 남기지 않았고, 모두 갱살했다. 모든 지나간 곳에는 모조리 죽이지 않는 곳이 없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항우가 지나간 모든 곳에는 하나도 예외없이 잔혹하게 도살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얼마나 욕먹어 마땅한 짓인가? 그러므로, 이 초회왕은 항우가 함양으로 진군하는데 동의하지 않고, '관대장자'인 유방으로 하여금 함양에 진군하게 한 것이다.

 

초회황이 말한 "표한활적"이 무슨 뜻인가? "표(剽)"라는 것은 재물을 강탈하는 강도라는 뜻이다. "한(悍)"이라는 것은 흉포하고 야만적이라는 뜻이다. "활(猾)"이라는 것은 교활하여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뜻이다. "적(賊)"이라는 것은 사악하고 잔학하다는 말이다. 초회왕은 이 네 글자로서 가장 축약해서 항우의 나쁜 품성, 악행, 악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총명한 초회왕은 항우에 대하여 명확히 인식했지만, 이 악마의 살륙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는 당시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이 평가에 대하여 항우가 그에게 원한을 갖게 될 줄을. 이후 2,3년간, 초회왕은 항우에 의하여 '의제(義帝)'라는 헛된 명목만 부여하였고, 이후 아무런 여지도 남기지 않고 죽여버렸다.

 

초회왕의 이런 평가로 우리는 당시 항우는 잔혹한 대도살로 세상에 악명이 높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마천은 일찌기 <<사기. 항우본기>>에서 그의 흉포함에 놀라서, 이렇게 적었다: "(항)우가 어찌 순임금의 후손일 것인가? 어떻게 이렇게 폭력적이었는가?" 항우의 흉악함에 대하여 서한에서는 명확한 인식이 있었던 것같다.

 

누가 알았으랴, 세상은 변하는 것을, 역사의 매몰을 통하여, 이름만 들어도 놀라던 악마가 영웅으로 변모할 줄을.

 

송나라 명나라때부터 시작하여, 사람들중에서 항우를 영웅으로 숭배하는 자들이 나타났다.

 

발단이 된 것은 역사학자가 아니다. 지금까지, 역사학의 주류는 항우에 대하여 비교적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비록 비판의 강도는 많이 약해졌지만. 그리고, 얼굴 두껍게 항우를 정면으로 찬양하는 자는 없다. 극수소의 비주류역사학자만이 '조류'를 따라 헛소리를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정의 근원은 불가사이한 것은 아니다. 항우를 숭배한 발단능 한 유명한 여인의 무지에서 비롯된 감성의 발산이었다. 이 발산은 황당하면서도 편협되고 유치하다.

 

생당작인걸(生當作人傑)

사역위귀웅(死亦爲鬼雄)

지금사항우(至今思項羽)

불긍과강동(不肯過江東)

 

살아서는 인걸이었고,

죽어서도 귀웅이다.

지금 생각해본다. 항우가

강동을 건너려 하지 않았던 것을.

 

이는 송나라의 여사인(女詞人) 이청조가 유일하게 남긴 시, 무제절구(無題絶句)이다.

 

이 이청조는 부귀한 집안에서 자라서 아주 재주가 있었다. 그녀는 북송이 금나라에 대한 항거를 포기하고 강남에서 구차하게 편안한을 추구하는 것에 슬픔을 느꼈고, 변경에서 남으로 도망치는 고생을 한 것에 슬픔을 느꼈다. 그리하여 비분강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감정적인 경험은 누구에도 뒤지지 않을 이 여인은 역사지식은 놀랄 정도로 박약하다. 그녀는 일생동안 시를 거의 쓰지 않았는데, 이 작은 시를 지으면서 드물게 보는 악마를 선택해서, 그녀의 저항적인 심정을 발산하는 대상으로 삼았다. 실로 황당하고 유치하기가 불가사의할 정도이다.

 

이청조는 여인의 감성으로 상상하여 본능적으로 이렇게 단정해버렸을 것이다: 긴 창을 들고 말을 타고 힘은 산을 뽑을 정도로 세고, 나중에 강을 건너기를 거부한 남자라면 분명히 대영웅일 것이다라고. 그리하여, 노곤한 오후에 낮잠에서 깨어나서, 거울을 보고 화장을 마친 이청조 여사는 정원의 오동나무에 불어오는 비바람을 바라보며 우울해하다가 이 스무 글자의 작은 시를 지은 것이다.

 

이 작은 시는 이 유명한 여인이 감성적이고 마음대로 단정하는 버릇을 잘 드러내준다. 이청조 여사가 몰랐던 것은, 바로 그녀의 이 작은 시는, '역사의 매몰'을 불러온 악성 약방문이 되어버린다. 금나라에 대한 항전에서 소극적인 남송사회에서 이 시는 자기의 유약한 영혼을 자위하기 위하여 '양강'한 역사에 의탁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리하여, 항우를 그리워하는 정서가 나타나게 된다. 그후, 원명청의 사회에서도 어떻게 저항운동을 대할 것이냐는 역사문제에 대하여, 민간 시정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저항을 그리워하는 시정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진실을 밝히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역사의식이 크게 왜곡되고, 시정에서는 희극 평서등과 합쳐서 서로 항우를 그리워하는 대상으로 삼으려 했다. 사실, 이를 통하여 자신의 영웅적인 정회를 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후 시대에 항우에 대하여 아쉬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쉬워하는 자가 있으면 찬송하는 자도 있게 된다. 그리하여 그의 '영웅적인 기개'를 찬양하는 각종 작품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지금, 패왕별희(覇王別姬)의 이야기는 중국에서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이 되었다. 희극에서건 드라마에서건 음악당에서건, 사학자의 강당에서건, 시사문인의 붓아래에서건, 보는자, 듣는자, 작자는 모두 '역발산기개세'의 이 영웅에 대하여 동정의 눈물을 흘리고, 감개무량해마지 않는다.

 

항우는 역사의 치욕의 기둥에 못박히지 않았다.

 

반대로, 항우의 머리에는 영웅의 광환이 빛난다.

 

관우의 이미지가 바뀐 것은, 항우의 악마에서 영웅으로의 대전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이처럼 황당한 역사지식, 이처럼 황당한 인식이라니, 우리 민족(한족)의 양심은 남아 있는가? 이성은 남아있는가?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 미녀, 스스로 잘난 줄아는 미치광이의 마지막 비가, 한 필의 잡털 말, 하나의 길다란 창, '강동의 부로를 뵐 면목이 없다'는 한마디 애탄은, 외환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반현실회피주의의 사회역사토양을 만나, '역사침식' 과정에서 유머스러운 조합을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구제할길없는 악마는 불굴의 영웅으로 되살아난다.

 

이것이 바로 악마가 영웅이 된 과정이다.

 

영웅이 되고 싶은 사람이 오히려 악마를 우상으로 삼았다.

 

역사의 유머는 배를 잡고 웃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웃음 끝에는 눈물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