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방주자(方舟子)
최근 하남대학 문학원 교수인 왕리췬(王立群)은 CCTV의 백가강단 프로그램에서 "신의화타(神醫華佗)"를 강연했으며, 화타는 "병을 치료하는데 신과 같았고, 생사를 미리 알았으며; 치료가 신기하고, 수술로 병의 근원을 제거했으며; 외과수술이 신기하여 칼로 배를 갈랐고; 의학의 각 유파들이 그를 중시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세계의 화인들은 화타를 신의의 대명사로 쓰고 있다고 했다. 그는 주로 <<삼국지>>와 <<후한서>>라는 소위 "정사(正史)"의 기록을 근거로, '이들 전설은 모두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며, 허구나 신화가 아니다"라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왕교수의 선배이며, 진정한 국학대가인 진인각(陳寅恪)은 일찌감치 1930년대에 <<삼국지 조충화타전과 불교고사>>라는 논문에서 화타이야기는 신화이야기이며, 이야기의 원형은 인도의 불교전설에서 유래한다고 고증했다. 진인각의 주요 근거는 두 가지이다. 첫째, 화타라는 기괴한 이름은 사실 인도의 약신(藥神) 아가타(阿伽佗)에서 온 것이며, 화(華)와 가(伽)의 고음(古音)은 같다는 것이다. 둘째, 화타의 신기한 의술과 후한때 안세고(安世高)가 번역한 <<내녀기역인연전(來女耆域因緣傳)>>에 기재된 신의(神醫) 기역(耆域)의 의술이 일치해서, 분명히 베낀 것으로 볼 수 있다. '외래신화가 본국의 사실에 덧붙여진 것이다'
사실, 국학대가의 고증이 없더라도, 현대의학의 각도에서만 보더라도, 화타의 사적은 완전히 믿을 수가 없다. 정사에 기록된 화타의 신기한 의술은 대체로 황당하다. 약간이라도 과학적인 두뇌가 있는 자라면 이를 진실로 믿지 아니할 것이다. 오늘날에는 이를 역사적 사실로 소개하는 사람이 아주 적다. 그저 화타가 "마비산(麻沸散)"이라는 것을 사용하여 병자의 개복(開腹)수술을 하였다는 이야기가 사람들에 의하여 그럴듯하게 전해져 오고, 심지어 중국과학사, 의학사에도 게재되었다.
서방보다 1000년이나 앞섰다는 이 장거는 <<삼국지>>와 <<후한서>>에 대동소이하게 기록되어 있다. <<후한서>>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왕리췬 교수의 번역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화타는 수술을 하여야 하는 환자에 대하여, 먼저 그에게 술에 타서 '마비산'을 먹인다. '마비산'을 먹은 병자는 술에 취해서 지각을 잃어버린다. 그 후에 환자의 배를 갈라 결직물을 끄집어낸다. 만일 병이 장에 있으면 장을 끄접어내고, 병이있는 장을 자르며, 깨끗하게 씻은 후에 다시 봉합하고 약을 바른다. 4,5일이면 붙고, 1개월이면 낫는다. 아프지 않기 때문에 병자는 아무런 감각이 없다. 1개월내에 환자는 건강을 회복한다"
진인각이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이처럼 배를 가르고 창자를 자르는 기록은 인도신화의 내용을 베낀 것이다. 중국오리지날이라고 하더라도, 그 진실성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신기한 마취약인 '마비산'은 그저 이름뿐이고, 구체적인 성분은 없다. 후인들이 추측하기로는 그 주요성분이 아마도 만다라화(曼陀羅花, 일명 洋金花라고 함)라는 것이다. 만다라화는 범어(산스크리트어)이다. 인고고서적에서 만다라화를 마취제로 사용한 기록이 있다. 화타이야기는 여기서 다시 인도와 관계를 맺게 된다. 중국고서적에서는 송나라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만다라화를 마취제로 사용한 기록이 있다. 나중에 중의도 이를 진통제로 삼아 약간의 작은 수술을 했다. 예를 들면 이시진의 <<본초강목>>에는 "할창구화(割瘡灸火, 부스럼을 잘라내거나 뜸을 뜨는 것)에 먼저 이것을 먹으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적고 있다.
만다라화에서 마취작용을 하는 주요 성분은 Scopolamine이다. 다만, 마취강도는 크지 않고, 진통강도도 크지 않고, 근육이완작용도 크지 않다. 근본적으로 개복수술에는 부적합한 것이다. 문화대혁명기간동안(1970년대초)에, '마비산'의 주요성분이 만다라화라는 추측하에, '중약마취(中藥麻醉)'를 자랑하기 위하여, 중국의 많은 병원에서 시험적으로 양금화에서 뽑은 성분인 Scopolamine를 주사하여 전신마취를 한 바 있는데, 동시에 Chlorpromazine, Phethidine등 현대마취약을 결합해야만 수술을 할 수 있었다. 결국은 효과가 좋지 않아 포기했다. 만일 단독으로 만다라화만 먹는다면, 당연히 효과가 더욱 나쁠 것이다. 분명히 만다라화를 먹은 것은 그저, "할창구화(割瘡灸火)"와 같은 작은 수술에는 쓸 수 있을지 몰라도, 배를 가르는 대수술에는 쓸 수가 없다. 사실상 전신마취수술은 반드시 마취약을 흡입하거나 정맥주사를 하여야 하고, 먹는 것으로는 안된다.
'마비산'은 당연히 만다라화가 아닐 수도 있다. 아마도 화타가 발견한 것은 오늘날 여러 과학연구인원들이 과학적인 방법으로도 발견해내지 못한 어떤 신기한 구복마취약일 수도 있다. 이것이 개복수술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을 보장할 수 있는가? 아니다. 마취의 성공은 개복수술성공의 그저 하나의 중요한 조건일 뿐이지, 유일한 조건은 아니다. 수술을 하는 의사에게 시스템적인 해부지식이 있어야 한다. 복부의 구조, 장기해부에 대한 자세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질병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있어야 하며, 상처감염을 어떻게 소독하고 방지할 것인지, 수술도중에 어떻게 지혈할 것인도 알아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화타시대에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비록 화타가 정말 마취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가 성공적으로 수술할 수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 시스템적인 해부학지식도 없고, 소독, 지혈이 모두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하에서 배를 가르고 장을 자르는 수술을 한다면 환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물며 우리는 아직도 배를 가르고 창자를 깨끗이 씻어서 낫는 병을 알고 있지 못하다.
화타묘에는 하나의 대련(對聯)이 있다: "증의관비일군경, 미벽조로천고한(曾醫關譬一軍驚, 未劈曹顱千古恨, 일찌기 관우의 팔을 고쳐 군대를 놀라게 하였네, 조조의 머리를 가르지 못한 것은 천고의 한이다)" 여기에서 얘기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화타의 두 가지 외과수술에 관한 것이다. 즉 관우의 뼈를 긁어 독을 치료했다는 것이고, 조조에게 날카로운 도끼로 머리를 갈라 두풍병을 치료하자고 했다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는 원래 <<삼국연의>>의 소설가가 한 말이고, '정사'에는 기록도 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화타의 주요한 행적이 되어 버렸다. 만일 화타가 정말 조조의 머리를 갈라서 죽여버리고자 했다면,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이다. 머리를 가르는 수술을 한다고 하더라도 두풍을 치료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당시의 의료조건으로 보면, 머리를 가르는 수술을 한다는 것은 자살행위에 다름없다.
전통의학은 왕왕 명의(名醫), 신의(神醫)의 신기한 의술을 표방하며 몸값을 높이는 경향이 있다. 신기하면 할수록 더욱 사람의 관심을 끈다. 일반 사람들은 믿지 않기보다는 믿는 편을 택하는 것이다. 현대의학은 정반대이다. 소문이나 신기한 이야기는 차라리 믿지 않는 것이다. 신기하면 할수록 믿지 않는 것이다. 이런 회의정신은 바로 과학정신의 일부분이다. 과학자뿐아니라 의사도 과학정신이 필요하다. 역사학자도 과학정신을 가져야 한다. 절대로 '정사'의 기록을 맹신해서는 안된다. 상식과 과학지식에 위배되는 기록은 더더구나 믿을 수가 없다. 과학정신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국학대가인지 통속적인 역사학자인지를 구별하는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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