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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한국/조선족

조선족의 역사

by 중은우시 2007. 1. 15.

출처: 중국 국가디지탈문화망

 

1910년 일본이 조선을 강제합병한 후, 대량의 조선인들은 중국동북의 각지역으로 이주했다. 1918년에는 이미 36만여명에 이르게 되었다. 1906년 일본이 조선족거주지구를 침입한 이후, 항일지식인들은 각지에서 조선족사립학교를 만들어 이를 거점으로 삼아 항일사상을 부단히 고취시켰다.

 

1919년 3월 13일, 소년의 10월사회주의혁명과 조선의 "삼일운동"의 영향하에, 조선족으 대규모항일운동으 마침내 연길현(延吉縣, 지금의 龍井縣)에서 폭발했다. 이후 각지에는 항일무장조직이 건립되었고, 1920년부터 연합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동시에, 연길도립중학, 길림성립1중, 육문중학등의 학교에 있는 조선족학생들은 한족이나 다른 민족학생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5.4운동의 영향을 받아 수업거부를 하고 시위를 하였다.

 

1920년대초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일부 저작과 사회주의를 소개하는 책자가 상해, 북경과 소련, 조선등징서 중국조선족지구로 유입되었다. 선진적인 지식인들은 비밀리에 '독서회'등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조를 구성하였고, 조선족 중에서 초기의 공산주의자들이 탄새아였다. 그들의 지도하에 '연길운수조합', '용정건설자동맹'등 노동자단체와 '농민회' '청년회'등 농촌군중조직이 탄생하였다.

 

1927년 10월, 중국공산당 만주성 임시위원회가 성립된 후, 조선족지구에도 중국공산당조직이 건립되었다. 1930년 5월 1일, 연길현 용정노동자들은 총동맹파업을 진행하였고, 수천명의 초등학교 교사와 학생은 수업거부를 시행하였다. 같은 해 5월 26일, 화룡현 약수동에서는 소비에트정권이 수립되었다. 같은 해 8월, 규모와 영향이 더욱 컸던 돈화, 액목의 두 현을 중심으로 한 '팔일길돈폭동'을 일으켰다. 1931년 가을에서 1932년 봄까지 동만조선족들은 추수, 춘황투쟁을 벌였다.

 

1932년-1933년, 왕청, 연길, 화룡, 훈춘, 요하, 주하, 밀산등지에는 항일유격대가 결성되었다. 1932년 4월, 중공의 반석 중심현위의 지도하에, 이홍광(李紅光, 조선족)등이 조선족 한족등의 인민을 조직하여, 하마하자폭동을 일으키고, 동북공농의용군을 결성한다.

 

1935년 봄, 동북의 각지방의 항일무장조직은 통일하여 항일연군으로 개편된 후, 1937년까지 11개의 군이 건립된다. 제2군에는 조선족 전사들이 절대다수를 점하였고, 제1, 제7군에도 조선족 전사들이 약 절반을 점하였다. 다른 군에도 조선족 전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항일전쟁중에서 조선족들은 항일연군에 물자를 지원할 뿐아니라, 10만여명이 전투에 참가하였다. 수만명의 조선족 전사들은 항일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1945년 11월, 중공연변지위가 성립되었다. 노동동맹, 농민동맹, 청년동맹, 부녀동맹등 군중조직도 각각 "민주대동맹(연변지구)", "민주동맹(목단강지구)", "민주연맹(요녕,하얼빈,통화등지구)"로 대통합되었다. 1946년, 조선족 들은 해방전쟁에 적극 참가하고 지원하였다.

 

1950년 6.25전쟁이 폭발하였다. 대량의 조선족들을 "항미원조, 보가위국'의 구호하에 중국인민지원군에 동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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