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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지리

북경, 천진의 수원지(水源地)를 위하여

by 중은우시 2006. 11. 30.

 

 

중국 최대의 맹지(중국어로는 飛地, 타인의 땅으로 둘러싸여 출구가 없는 땅)는 바로 중국에서 직할시가 가장 밀집되어 있는 지역인 북경과 천진의 사이에 있다. 이 맹지는 바로 하북성 랑방시(廊坊市)의 북쪽에 있는 세개의 현인 삼하(三河), 향하(香河), 대창(大廠)이 그것이다. 북경과 천진이 공동으로 하북성이 속하는 이 땅들을 둘러싸고 있다. 여기에 속해 있는 연교진(燕郊鎭)이라는 마을에서 천안문까지는 30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이 거리는 밀운, 회유, 연경등 북경 북부의 교외지역보다 훨씬 가깝고, 경제도 그 지역들보다 훨씬 발달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승방(勝芳)이라는 마을에서 천진까지의 거리도 30킬로미터가량이어서 계현에서 천진까지 가는 거리보다 훨씬 가깝다. 그렇다면, 왜 신중국의 행정지도에서 이 두개의 직할시는 맹지를 만들 수밖에 없었는가? 왜 가까운 곳은 놔두고 먼 곳을 취했는가? 주요한 원인은 물때문이다.

 

물을 위하여 성을 옮기다.

 

북경성을 짓는데 영향을 주는 주요한 두 개의 수계(水係)가 있다. 바로 서남지역의 영정하(永定河)와 동북지역의 조백하(潮白河)의 두 수계이다. 오늘날의 북경은 기본적으로 이 두개의 강물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삼천년동안, 서주의 연나라 수도에서 명청의 북경성까지, 북경의 성은 여러번 위치를 옮겨다녔다. 북경의 고대 성의 위치가 이렇게 이전한 것은, 바로 당시의 수원의 배치 및 변화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주나라 초의 연나라수도의 물은 방산(房山) 이북의 산에 있는 성수방, 오늘날의 대석하(大石河), 유리하(琉璃河)에 있다. 그러나, 성수는 산속에서 발원하므로, 물이 흐르는 낙폭이 격렬하여, 도시의 안전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동주시대에는 계로 옮겼는데, 지금의 북경시 선무문의 남쪽일대이며, 동한때까지 이 곳에 자리잡았다. 이것은 동한이전에는 영정하의 옛 물길이 지금의 적수담, 북해, 중남해, 용담호의 선을 따라서 흘렀고 나중에 고량하(高梁河)의 물길로 들어갔었다. 그런데, 영정하의 물길이 바뀌면서 동한말년에 계성이 파괴되었다. 동한이후에는, 북경성이 광안문(廣安門) 내외의 일대로 이전되었다. 성의 서쪽에 있는 서호(지금의 광안문밖의 연화지)에 의지했다. 당시 서호의 물 및 그 하류는 비록 영정하의 물보다는 적었으나, 영정하보다 안전했었다. 이것은 북경의 선주민들이 성의 위치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하나의 실험이었다. 그들은 계속하여 도시에 충분한 용수를 제공하면서도 도시의 안전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안전하고 합리적인 수원(水源)을 계속 찾았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서호에 의탁한 것은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동한 이후 금나라가 망할 때까지, 거의 1000년간 다시 성의 위치를 옮기지 않았다. 원나라가 대도성(大都城)을 건축한 이후에도 이 곳은 구남성(舊南城)으로 여전히 존속했다.

 

원나라가 대도성으로 이전한 것은 주로 서호의 수량이 적어서, 충분히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북의 고량하 수계를 이용하였다. 이외에 원대도는 북으로 창평 백부신산천, 북사하, 동사하에서 물을 끌어오고, 서쪽으로는 옥천산, 서산의 여러 수원을 끌어왔다. 명청시기에 북경성은 주로 옥천산, 서산의 여러 수원을 활용했는데, 수원문제는 이미 곤란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다시 성을 옮길 필요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청나라때에 서부지역에 황실원림을 건설하면서 황제가 자주 원명원, 이화원에 머물게 되면서 북경의 정치중심이 서쪽으로 이전하였다. 이것은, 북경의 정치중심이 수자원의 영향을 받아 서쪽으로 이전하게 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으로 물을 끌어오다.

 

1949년이후, 북경성의 수원은 계속하여 해결해야할 문제였다. 이를 위하여 1950, 1960년대에 영정하인수거(永定河引水渠)와 경밀인수거(京密引水渠)를 건설하였다. 이로써 북경서부에서 영정하의 물을, 북경동북부에서 조백하의 물을 끌어들였다.

 

영정하인수거의 입구는 석경산 삼가점에 있다. 여기에 강물을 막는 둑을 건설했다. 물은 동쪽으로 북경의 서편문까지 끌어왔다. 그러나, 영정하의 수량은 변화가 커서, 불필요할 때는 물이 많이 흘러들어오고, 필요할 때는 물이 마르곤 하였다. 게다가 최근들어 영정하의 상류지역의 기후가 건조하게 바뀌면서, 실제가치가 이미 문제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현재 북경이 실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북동부의 조백하 수계이다.

 

경밀인수거는 밀운댐에서 물을 끌어온다. 중간에 회유댐을 지나, 창평아래로 내려오고, 곤명호를 거쳐, 영정하인수거와 만난다. 그리고는 옥연담과 호성하로 들어간다. 대체로 원나라때 곽수경(郭守敬)이 만든 백부옹산인수거의 옛 선을 따랐다. 이것을 완공한 것은, 북경성이 의지하는 주요 수계가 실질적으로 이미 서부의 고량하 수계가 아니라, 동부의 조백하 수계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의 위치는 비록 이전하지 않았지만, 의지하는 수계는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간에, 북경천진지구의 취약한 수원은 이미 이 곳의 인구와 경제성장을 만족시키기 힘들게 되었다. 현재 북경천진하북지역은 약 1억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1950년대부터 남수북조(南水北調, 남쪽의 물을 북부로 끌어오는 것)를 기획한 것이다.

 

이러한 것은 역사상 전레가 없다. 세계에서도 드물게 보는 물이동공사가 이미 시행되었다. 남수북조의 중간선 공사는 단강구댐에서 물을 끌어와 북쪽으로 회하, 황하를 뚫고, 하북의 방산마하를 거쳐 북경에 들어온다. 이 과정에서 대석하, 소청하, 영정하를 거처 시내로 들어온 후, 악각장환도에서 서삼환을 따라 북상하고 최후로 이화원의 단성호에 들어간다. 이 공사는 중국역사상의 경항대운하에 못지 않다.

 

하북에 수원지를 요구하다.

 

1958년, "대약진"이 시작되었다. 이 해에 북경, 천진, 하북의 북부지역에 생활하는 보통백성들은 단순한 하나의 정치운동이 시작된 정도가 아니라, 구획조정과 호적제도의 변혁으로 그들의 미래 수십년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 해에, 천진은 직할시의 지위가 폐지되고, 하북성정부는 보정에서 천진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또 이해에, 3월, 하북성의 통현, 순의, 대흥, 양향, 방산의 5개 현과 통주시는 북경으로 귀속되었다. 이 땅들은 현재 북경의 6환변의 첫번째 위성도시들이다. 10월, 하북성의 회유, 밀운, 평곡, 연경의 4개현이 다시 북경에 귀속되었다. 이 북부의 장성아래에 있는 현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커다란 댐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북경이 건국한후에 역사상 최대규모의 경계확장이었고, 기본적으로 현재의 행정구역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 역사과정에서, 북경과 하북의 이익다툼을 더 이상 조사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한가지 찾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주은래 총리의 관심하에, 1958년 밀운댐이 건설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회유댐도 완공되었다.

 

역사는 참으로 교묘한 점이 있다. 밀운댐과 동시에 착공한 댐에는 멀리 호북성에 있는 단강구(丹江口)댐이 있었는데, 50년후에 남수북조의 시작지점이 되었다.

 

건국후에 하북성은 계속 북경, 천진에 대한 호성하의 역할을 해왔다. 무상으로 북경, 천진에 물을 공급하는 등 여러가지 의무를 이행하였다. 북경, 천진의 용수수요량은 갈수록 커졌고, 하북은 부득이하게 허리띠를 졸라매고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 1952년, 관청(官廳)댐이 완공될 때, 마침 명나라 홍무제때부터 있어온 회래현의 현성(縣城)이 댐의 중심지역이 되어서, 할 수없이 현성을 옮겨갔다. 관청댐과 밀운댐은 하북성과 북경이 공동으로 건설하였다. 완공초기에는 북경과 하북이 물을 나누어 썼었다. 그러나 1980년대이후부터는 북경에 용수가 부족하게 됨에 따라, 하북성은 매년 9억입방미터의 용수공급권을 포기하였다.

 

마찬가지로 하북에 물을 달라고 요구하는 곳은 천진도 있다.

 

1967년 천진은 직할시의 지위를 회복하였다. 1973년에는 계현을 천진시로 귀속시켰다. 왜냐하면, 이 곳에 우교(于橋)댐이 있기 때문이다. 우교댐의 천진에서의 역할은 밀운댐의 북경에서의 역할과 비슷하다. 1983년, 난하를 천진으로 끌어오는 수리공사를 시작했다. 하북은 매년 물부족에 시달리는 천진에 10억입방미터의 물을 공급해주고 있다.

 

평곡, 밀운을 북경에 주고, 계현은 천진에 주면서, 삼하, 향하, 대창은 하북에 남겨주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북경과 천진 사이의 바로 그 맹지가 형성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