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飛揚山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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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공, 이 어부는 아마도 중국역사상 문자로 기록된 첫번째 기업가일 것이다. 그는 3000년이전의 상(商)나라때 살았다. 우리가 뒤져본 고대의 문헌에서는 자주 "아랑(牙郞)"이라는 글을 보게 되는데, 아랑은 치과의사의 이름이 아니라, '상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기업가의 이름이 바로 강자아(姜子牙)였다는 것이다.
혹시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이 그랬다. 중국의 상업문화는 상나라때부터 시작한다. 상나라때의 농업과 목축업은 매우 발달하였고, 수공업도 어느 정도의 규모를 이루었다. 그래서, 상품거래와 장거리운송에 종사하는 상인들도 나타나게 되었고, 이미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기업가도 나타나게 되었다. 식육업을 예로 들면, 황소의 양식, 운송, 도살, 가공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이미 어느 정도 성숙한 사업으로 성장하였다. 강자아, 즉 강태공은 당시에 조가(朝歌)에서 소고기식품회사를 설립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조가에는 약 10여개의 식품회사가 있었는데, 그의 회사가 가장 유명했고, 그는 모든 도시의 소고기식품시장의 절반의 시장점유율을 자랑했다. 상나라의 왕실, 귀족의 집에서 필요한 소고기제품은 그가 모두 공급했다. 전해지는 바로는 그가 말린 소고기는 육질이 부드럽고, 맑은 향기가 코를 찔렀으며, 매우 맛이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조가소고기는 지방특산물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는 또한 조리라고 부르는 대나무로 만든 식사도구를 제조, 판매한 바 있고, 밀가루가게를 연 적도 있고, 음식점을 경영한 적도 있다. 나중에 그는 술도 팔아보았고, 물고기도 팔아보았다. 그의 일생은 우리들이 오늘날 말하는 기업가와 매우 유사한 점이 많다. 어떤 때 그의 장사는 매우 잘되었고, 어떤 때는 손해가 막심하기도 하였다. 몇번은 좌절을 겪기도 하고, 몇번은 다시 일어섰으며, 만년에 이르러서도 다시 한번 참담한 실패를 맛보기도 하였다. 부인은 그와 이혼하자고 하였고, 집안에는 벽만 남았고, 처자식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 때 그의 나이가 72세였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80세라고 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가 노년에 접어들었을 때였는데, 또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백발이 창창한 강자아는 위수의 가에 가서 멀리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아마도 오랫동안 가라앉히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일찌기 그렇게 노력하고, 그렇게 힘들여서 경영하였는데, 그의 운명은 왜 이렇게 가혹한 것인가?
그는 강물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를 보았고, 그가 왔다갔다 하면서 고기를 잡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자기의 일생을 되돌아보고는, 어부가 되어 보는 것도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다. 이 때 그의 눈앞에는 돌연 영감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특별한 낚시도구를 만들었다. 사립을 입고 위수에서 낚시를 한 것이다. 주의할 것은 그의 낚시바늘은 곧았다는 것이다. 곧은 '낚시바늘'이 무슨 낚시바늘인가? 곧은 낚시바늘에 미끼는 어떻게 끼울 것인가? 곧은 낚시바늘로 물고기는 어떻게 낚을 것인가? 도대체 그는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속담에 "강태공의 낚시는 낚이기를 원하는 사람은 낚는 낚시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누가 낚이기를 원할 것인가? 아마도 바보가 아니라면 스스로 낚시에 걸려들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나중에 주문왕(周文王)의 고문이 되지 않았는가? 그래서 주문왕이 바로 그에게 낚인 큰 물고기라고 볼 수 있다고.
이런 식으로 말하자면, 강태공은 그의 낚시바늘로 미디어에서 크게 떠들만한 뉴스거리를 하나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전설을 만들어내기를 좋아한다. 이 미치광이 늙은이가 곧은 낚시바늘을 가지고 물고기를 낚고 있다고, 이것은 천고의 괴담이다. 그래서 미디어들이 서로 앞다투어 보도하고, 결국은 주문왕까지 알게 되었다. 이로써 볼 때, 강태공이 곧은 낚시바늘을 사용하여 낚시를 한 것은 아주 창의적인 방식의 구직활동이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볼 수 있는가? 생각해봐라. 강태공은 평생을 실패했는데, 그가 무슨 장점이 있어서 주문왕이 그를 모셔가겠는가? 더우기, 그는 이미 이렇게 늙어버렸고, 어느 오너가 이렇게 나이들고 실패한 노인을 모셔가려고 하겠는가? 더더군다나, 평생의 실패자인 노인네가 이렇게 여러 사람의 눈길을 끄는 짓거리를 하였다면 그것은 웃음거리밖에 더 되겠는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주문왕은 매우 똑똑한 왕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어찌 이런 엉터리같은 수법에 속아넘어가겠는가? 이런 점에서 보면 강태공이 주문왕을 낚았다는 설명은 도저히 성립되기 힘들다고 보인다.
"강태공의 낚시는 낚이기를 원하는 사람은 낚는 낚시이다"라는 옛이야기는 그저 나중에 한 추측일 뿐이고, 아마도 그랬을 것이라는 추정일 뿐이다.
그러나, 강태공은 나중에 분명히 주문왕의 고문이 된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본인의 의견은 주문왕이 오기 전에 분명히 강태공에게는 어떤 커다란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잘만든 낚시바늘과 맛있는 미끼는 낚시의 두 가지 필수조건이다. 그러므로, 백발이 창창한 강태공이 위수의 가에서 낚시를 할 때 그가 곧은 낚시바늘로 물고기를 낚았을 리는 없다.
그러나, 잘만든 낚시바늘이 없다면, 맛있는 미끼가 없다면, 음모나 궤계도 없는 것이다. 깨끗한 강물을 들여다 보면서, 강태공은 거기에서 놀고 있는 물고기를 분명히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즐겁고 그렇게 걱정이 없다. 돌연 그는 마음 속에서 웃음이 흘러나왔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인생의 답안을 찾았기 때문이다.
어부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깨달았을 때, 그는 이미 단순한 어부가 아니다. 그는 깨달은 자이다. 전쟁이 없어지고, 권모술수도 없어지고, 악몽도 없어지고, 생명에 대한 사랑이 한 줄기 아침햇살처럼 어두운 심령에 비쳐든 것이다.
물고기들은 그저 따라서 움직일 뿐이나. 그들의 생활은 하나의 신비한 암시를 준 것이다. 위수의 가에서 낚시하던 강태공은 마침내 이 암시를 깨달았다. 마침내 마음 속으로 생명의 원래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여전히 사립을 입고, 여전히 백발이며, 여전히 강태공이었지만, 그러나, 그는 크게 깨달음을 얻은 후에 이미 득도한 고인이 되어 있었다.
이것은 역사상의 위대한 전환점이다. 한 어부에 불과한 기업가가 마침내 무엇이 사랑인지 깨달은 것이다. 비록 그는 지금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스스로 즐겁게 생활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의 사랑으로 신변의 모든 사람들을 도와주게 된 것이다. 그는 돌연 많은 것을 깨달았고, 그러한 지혜를 가지고, 많은 다른 사람들의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점점 그는 전설중의 성인이 되어갔다. 어느 날, 주문왕도 그에게 어려운 문제를 물으러 찾아왔고, 그에게 가르침을 구했으며, 스승이 되어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강태공은 중국역사상 첫번째의 전문적인 고문이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강태공의 낚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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