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년진상(百年眞相)

"저는 동쪽으로 가서 우물을 찾겠습니다. 팽. 6월 17일 10시 30분."
1980년 5월초, 중국의 저명한 생물화학자이며 중국과학원신장분원 부원장 팽가목은 11명의 과학고찰단을 이끌고 신장의 로프누르(Lop Nur, 중문 羅布泊)로 갔다. 원래 예정한 고찰임무를 완성한 후, 그는 이 쪽지를 남기고 기이하게 실종된다.
당국에서는 비행기, 지상부대, 수색견을 동원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대규모의 그물망식 수색을 벌였지만, 여전히 사람도 시신도 찾아내지 못했다.
팽가목의 실종은 여러가지 추측과 전설을 만들어냈다. 어떤 사람은 그가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다고 의심하고, 어떤 사람은 그가 과학데이타를 가지고 소련으로 망명했다고 말하며, 또 어떤 사람은 모종의 유독식물을 잘못 먹어서 시신이 되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여러가지 의문들 속에서, 1981년 10월, 중국당국은 팽가목이 "로프누르과학고찰때 장렬하게 희생했다"고 말하면서, 그를 위해 시신없는 추도회를 개최한다.
설마 팽가목은 인간증발한 것일까?
쪽지의 수수께끼
1980년 6월 23일 저녁, 신화사 신장분사는 중공중앙의 비준을 받아, 기자 자오췐장(趙全章)의 이름으로 보도를 낸다. 팽가목은 이미 7일째 아무런 소식이 없다. 다음 날, 각 매체는 속속 그 뉴스를 보도하고, 전국이 들썩인다.
보도에 따르면, 고찰대의 마지막 본영은 신장 농간총국(農墾總局) 미란농장(米蘭農場)에 설치했다. 얼마전에 팽가목은 4명의 고찰대원을 이끌고 2명의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두 대의 자동차를 타고 미란을 떠난다. 그들의 원래 계획은 로프누르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미란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다만 6월 17일 새벽, 본영을 지키던 사람은 돌연 무선전화로 그들이 보내온 구조신호를 받는다. 그들은 방향을 잃었고, 자동차는 기름이 떨어졌으며, 마실 물도 없다는 것이었다.
본영을 지키던 사람은 그 상황을 중공 우루무치부대에 보고하고 구조를 요청한다. 18일 오전, 부대는 2대의 비행기를 로프누르지구로 파견하여 수색했고, 그중 1대는 쿠무쿠두커(庫木庫都克) 부근에서 6명을 찾아내고, 그들에게 음료수와 음식물, 그리고 기름등 물자를 투하한다. 이 6명은 팽가목이 데리고 간 4명의 고찰대원과 2명의 기사였다.
과학고찰인원들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17일 오전, 팽가목은 그들에게 쪽지 1장을 남기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쪽지를 보면 쓴 시간이 6월 16일에서 17일로 고쳐져 있다. 이것은 팽가목이 고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고친 것일까?
두 구의 건시(乾屍)
팽가목의 실종후, 당국은 여러 대의 비행기와 지상부대를 보내어, 과학고찰단의 당시 숙영지를 중심으로 1,011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구역을 수색했다. 그리고 일설에 따르면, 수색면적이 4,000평방킬로미터를 초과했다고 한다. 1980년 11월 10일부터, 12월 20일의 제4차수색까지만 해도 69명의 인원, 18대의 SUV차량을 동원하여 41일간 수색했다. 민간의 수색활동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팽가목실종사건은 점점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그런데, 2005년 사건에 새로운 진전이 생긴다.
당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2005년 4월, 돈황시(敦煌市) 칠리진(七里鎭) 남대보촌(南臺堡村)의 촌민 유학인(劉學仁)이 쿰타그(庫姆塔格)사막 사사구(梭梭溝) 남쪽의 한 사구(沙丘)에서 건시 한 구를 발견한다. 몇달 후, 중국과학원 한구한구(寒區旱區)환경과공정연구소의 연구원인 둥즈바오(董治寶)는 로프누르를 고찰하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
직업적인 습관과 팽가목실종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둥즈바오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이 혹시 팽가목의 시신일까?
2006년 4월, 베이징에서 돈황으로 온 전문가가 건시를 검시한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이건 팽가목이 아니다.
여러분들은 이 사건을 잘 기억해놓아야 한다. 아래에서 한번 더 언급하게 될 것이다.
시간은 2007년 6월 25일로 넘어간다. <신장도시보>에 다시 보도가 나온다. 그해 6월 2일, 한 탐험애호가가 하미(哈密) 대남호(大南湖) 고비사막과 로프누르가 접하는 곳인 야단(雅丹)지형을 사진찍고 있을 때, 건시 1구를 발견하게 된다. 시신의 여러가지 특징은 팽가목에 기본적으로 부합했다.
다만, 7월 9일, 팽가목의 생전에 가까운 친구이며, 이 사건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던 중국과학원 신장분원의 전문가 얜홍젠(閻鴻建)은 로프누르에서 가져온 6건의 건시유물을 살펴본 후 매체에 이렇게 말한다: "나는 팽가목의 것으로 보이는 물건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이것이 팽가목의 유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판안일기(辦案日記)"가 말하다.
그 이후, 팽가목사건은 다시 조용해진다. 2016년 1월 29일, 주밍촨(朱明川)이라는 법의관이 인터넷에 10년간 묵혀있던 "판안일기"를 공개한다.
주밍촨은 스스로 광시(廣西) 마산현(馬山縣) 공안국(公安局) 형정대대(刑偵大隊) 부대대장이고, 법의학감정과 수사기술업무를 책임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그가 출판한 <법의연구소(法醫硏究所>등의 책을 찾아볼 수 있다. 거기에는 그가 28년간 경찰법의관으로 있으면서 처리한 여러 진실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주밍촨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일찌기 베이징에서 연수할 때, 여러 큰 사건을 처리한 바 있고, 적지 않은 기밀을 접촉한 바 있는 등(鄧)씨성의 나이든 법의관을 알게 되었다. '판안일기'를 쓴 사람은 바로 등법의관이고, 등법의관은 당시 로프누르건시사건을 담당했다. 그리고 일기에서 팽가목의 진정한 사인을 공개하였는데, 사람들이 깜짝 놀랄 이야기였다.
주밍촨은 어떻게 그 일기를 갖게 되었을까?
2012년 11월, 주밍촨은 다시 베이징으로 연수를 간다. 그리고 등법의관이 반년전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의 미망인은 주밍촨에게 남편이 남긴 자료와 서적을 주었다.
주밍촨은 돌아온 후 자료를 살펴보다가 무의식중에 발견하게 된다. 한장의 종이에 이메일주소와 숫자와 알파벳으로 조합된 패스워드가 쓰여 있었다. 그는 이메일을 열어본 후에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거기에 있던 것은 등법의관의 판안일기였던 것이다.
등법의관은 일기에서 이렇게 썼다: "많은 사건은 모두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 법의관으로서, 그런 일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나는 진상을 공표할 용기와 능력이 없다. 그저 이런 문자를 남길 수 있을 뿐이다. 다만 언젠가 수수께끼사건의 진상이 세상에 밝혀지기를 바란다."
주밍촨은 말한다: "나는 단지 1건의 사건만 보았는데, 머리가 텅 비어 버리는 것같았다." 그것은 바로 로프누르건시사건이다. 등법의관은 이렇게 말했다. 이 사건에 대하여는 아주 많은 괴이한 소문들이 있는데, 그러나 어느 하나도 진상에 접근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등법의관이 알고 있는 진상은 무엇이었을까?
"판안일기"에 따르면, 2006년 4월 16일, 등법의관은 관련부서의 전화를 받았다. 2005년 4월 11일 누군가 쿰타그사막의 한 곳에서 두 구의 건시를 발견했다고. 초보적인 감정을 거쳐, 그들은 그 중 한 유해가 팽가목일 것이라는 의심을 품었다. 그리하여 대외적으로는 단지 1구의 건시만 발견했다고 발표한다. 그후 두 구의 건시는 감숙성 돈황박물관으로 옮겨온다.
당국은 왜 숨겨야 했을까? 등법의관은 이렇게 말한다. 팽가목은 일부 과학기술과 관련이 있고, 소위 기밀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련기관에서는 등법의관과 또 다른 법의관에게 돈황으로 가달라고 요청한다. 그들이 도착한 후, 건시에서 두발, 뼈와 피부를 채취해서 베이징의 실험실로 돌아왔고, 샘플에 대해 분석을 진행한다; 분석이 끝난 후, 관련채널을 통해 팽가목의 자녀들 DNA샘플도 받는다; 비교해보니 팽가목 본인이 맞았다.
등법의관은 말한다. 결과가 나온 후 누구도 안도의 숨을 내쉬지 못했다. 사람들은 오히려 긴장했다. 왜 그랬을까? 두 가지 놀라운 발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가지 놀라운 발견
첫째, 등법의관은 건시에서 시랍(屍蠟)을 발견한다. 건시에 시랍이 있는 것은 아주 희귀한 일이고, 그것이 가장 이상한 점이었다.
등법의관은 이렇게 해석했다. 법의학상, 시랍은 많은 경우 물 속에 빠진 시체, 혹은 습기가 많고 칼슘과 마그네슘이 많은 진흙속의 시체에서 발견된다. 그런 환경하에서, 시체의 피부 아래의 지방이 분해되면서 지방산과 글리세롤을 분해하여, 지방산과 단백질의 분해물질에서 암모니아와 결합한 후 암모늄염을 형성한다. 암모늄염에 다시 물속의 칼슘, 마그네슘과 결합하면 회백색의 납상(蠟狀)물질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랍이다.
그러나, 만일 팽가목이 물을 찾으러 밖으로 나갔고, 길을 잃은 후에 물과 음식물을 보충받지 못했다면, 결국은 기아로 죽었을 것이다. 로프누르는 극도로 건조한 곳이어서 그의 지방은 완전히 소실되었을 것이다. 특히 시신은 뜨거운 바람, 뜨거운 빛, 높은 온도의 사막에서 25년간이나 있었지 않은가.
설마, 팽가목은 기아로 죽은 것과 같은 자연적 사망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사망이었단 말인가?
등법의관은 매우 신중했다. 그리하여 감히 그런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그는 이렇게 언급한다. 비록 시랍은 건시에서 드물게 보이는 것이지만, 형성될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다. 해외에 몇 건의 사례가 있다.
그러나, 건시의 형성과정은 개인의 특징과 폭력작용의 흔적을 효과적으로 남겼다. 이것은 등법의관의 두번째 발견이다. 동시에 그의 팽가목이 비정상사망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방증하는 것이다. 시신에는 명백한 폭력작용흔적이 있었다. 머리에는 3곳의 둔기에 의한 상처가 있었고, 사지에는 11곳에 예기(銳器)에 의한 상처가 있었으며, 가슴, 복부, 등에는 27곳에 이르는 예기에 의한 상처가 있었다.
등법의관은 말한다. 당시의 사건현장은 분명 극히 피비린내나는 공포스러운 것이었을 것이라고.
진정한 사인이 드러났는가?
그렇다면 흉수는 누구일까? 당시 로프누르는 군사금지구역이고, 군대의 특수통행증이 없으면, 외부인은 아예 들어갈 수가 없다. 그래서 등법의관은 이렇게 추단한다. 가해자는 분명 과학고찰대 대원이었을 것이라고.
관련기관은 빠르게 등법의관을 살아남은 과학고찰대대원들과 면담하도록 조치한다. 등법의관은 직접적으로 건시의 시신검시결과와 사건내용에 대한 분석을 얘기한다. 그들은 듣자마자 깜짝 놀란다. 오랫동안 변명을 지속하다가 결국 더 이상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진상을 얘기했다:
팽가목은 생전에 두 가지 암을 앓고 있었고, 몸이 매우 허약했으며, 성격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고집이 세서 대원들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때 과학고찰대의 보급은 이미 부족했는데, 팽가목은 원래 정한 프로젝트를 완성했는데도, 굳이 로프노르로 더 깊이 들어가자고 고집했다. 이건 모든 사람을 죽음으로 끌고가는 짓이었다. 과학고찰대원들은 생각한다: 그는 불치의 암을 앓고 있어서 더 살 수 없겠지만, 우리는 살아야 한다. 너를 따라 함께 죽을 수는 없다.
당시 대원들은 군대에 구조를 요청하자고 했다. 그러나 팽가목은 이렇게 말한다: 헬기로 물을 운송하려면 너무 비싸다. 우리는 스스로 가까운 곳에서 물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로프누르에는 물이 계속 움직인다. 오늘은 이곳 우물에 물이 있지만, 내일은 없다. 그들은 지도를 가지고 찾아보았지만, 시종 찾아내지 못했다. 그중 수문지질(水文地質)을 전공한 대원이 분석했다. 그 곳에는 물이 있을 수 없다. 과학고찰대는 이렇게 막다른 골목에 몰린다.
그런 환경 속에서, 인간성은 종종 시험받는다. 성격이 좋지 않은 팽가목은 대원들과 원한이 쌓였다. 1980년 6월 16일, 즉 당국이 팽가목의 실종을 보도하기 하루 전날, 과학고찰대는 숙영지의 서쪽 백미터 지점에서 팽가목을 발견했다. 당시 그는 온몸이 피투성이였고, 이미 죽어 있었다.
등법의관은 말한다. 과학고찰대는 알고 있었다. 팽가목을 죽인 사람은 그들 중의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이라는 것을. 그러나 아무도 자기가 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대원들은 저녁내내 어떻게 해야할지를 고민했고, 최종적으로 거짓말을 지어내 진상을 감추어버리기로 결정한다. 그 쪽지는 확실히 팽가목이 쓴 것이다. 외부에서는 날짜가 16일에서 17일로 고쳐진 것에 주목하지 않았는데, 기실 과학고찰대가 시간을 지연시켜 거짓말을 원만하게 만들기 위해 고친 것이다.
등법의관은 말했다. 진술을 다 듣고난 후에 심정이 매우 복잡했다고. 누가 진정한 흉수일까? 대원들이 모두 흉수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를 감싸주었으니까. 그러나, 살인이 잘못된 것이기는 하지만, 전체 대원의 생사를 도외시한다면 그것도 살인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로프누르와 같은 절망적인 환경속에서, 보급도 불충분하니, 분명 사람이 죽을 것이다. 만일 실종사건이 발생한 후, 과학고찰대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전보를 보내지 않았다면, 그들은 나중의 물자보급을 전혀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팽가목실종사건은 더 이상 조사되지 않는다. 당국의 말에 따르면, 여전히 실종사건이다. 2009년, 팽가목은 중공의 "중국을 감동시킨 100인"에 선정된다. 진상이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중국당국이 영웅을 만드는 장기적인 세뇌운동은 비밀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