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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서의 바둑은 왜 강한가?

by 중은우시 2024. 2. 26.

글: 리저(李喆) 중국바둑7단

신진서는 농심배에서 여러 기에 걸쳐 16연승을 거두어, 예전 이창호가 14연승했던 전설적인 기록을 뛰어넘었다. 주장으로서 혼자 모든 중국팀의 참전기사들을 격패하면서, 연속 4기 한중일바둑연승전을 마무리지음으로써, 다시 한번 그가 논쟁의 여지없는 바둑계의 세계1인자라는 것을 증명했다.

여기에서 나는 신진서에 대한 인상을 얘기해보고 싶다. 그의 기예(棋藝)와 품성을 포함해서. 기예방면에서, 주로 소신(小申, 신진서를 가리킴)의 바둑은 도대체 어떤 점에서 앞서가는지, 특히 AI훈련방법 및 바둑기술분야의 이론층면에서 간략히 분석해 보고자 한다. 이 부분은 지식이론에 기한 분석이니 아마도 우리의 일류시가 내지 젊은 신진기사들에게 조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예외에 품성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바둑은 그 사람의 인품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절정고수의 인품이나 풍도는 반드시 기예와 같을 것이고, 양자는 서로 떼어낼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신념은 최근 들어 실제로 심각하게 도전을 받고 있다. 사회로부터의 의문뿐아니라(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바둑을 잘 두는 것과 온라인게임시합을 잘 하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그리고 많은 기수들 자신도 이에 대하여 의문을 품고 있다(바둑을 배우는 아이들과 부모를 포함해서), 그러나 운이 좋게도 신진서는 최소한 일시적일지라도 이런 신념을 만회하게 해주고 있다.

많은 기사들은 오청원(吳淸源) 선생의 부채를 쓰기를 좋아한다. 가장 자주 보이는 글은 "암연이일장(闇然而日章)"(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지만 날이갈수록 빛이 난다)이다. 사람들은 아마도 오청원선생의 탁월한 성취에 탄복하고 있겠지만, 오청원 선생이 왜 이 다섯 글자를 부채에 쓰게 되었는지는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암연이일장"은 <중용>에 나오는 말이다: "군자의 도는 암연이일장하고, 소인의 도는 '적연이일망(的然而日亡, 뚜렷하지만 날이 갈수록 사라진다)'이다." '암(闇)'은 여기에서 '암(暗, 어둡다)'와 같은 의미이다. 이 말의 대체적인 뜻은 군자는 비단옷을 속에 가리고 있다. 처음에 언뜻 보기에는 어둡고 광채가 나지 않는 것같지만, 그의 덕은 날이 갈수록 빛이 난다. 소인은 반대이다. 항상 외형에만 신경을 쓰고, 드러나게 하려고 하지만 안을 가다듬는데것을 몰라서 물욕에 빠져서 본모습을 잊어버린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좋아보이지만, 그 속은 텅 비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날이 쇠망하는 것이다. 오청원 선생은 말년에 21세기의 바둑을 생각하면서 바둑은 "중화(中和)'의 도라고 말하면서 <중용>을 숭상했다. 그리하여 '암연이일장'이라는 글을 부채에 쓰고 세상에 남긴 것이다. 이는 그의 인생이념과 바둑관을 전달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신진서라는 21세기 첫해에 태어난 고수는 기예의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서 '암연이일장'의 군자지도를 펼쳐보이며, 점차 대기사로 성장하는 동시에 미래 많은 바둑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전체 바둑계에 이는 행운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신진서현상급의 통치력은 최소한 하나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둑AI가 보급된 후, 이런 논조가 있었다. AI는 기사들간의 수준차이를 좁혀서, 모두 AI를 배우게 되면, 수준이 비슷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 신진서는 매년 90%에 가까운 승률을 유지하면서 거의 예전 이창호의 통치력에 비견되는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바로 그런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확실히, 모두가 AI로 배우면 수준이 비슷해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 우리 중국국내의 기사들은 더 이상 이런 말에 속지 않아야 한다. AI는 확실히 거대한 평등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그 평등은 주로 훈련조건의 평등이고(모두 강한 AI를 이용하여 일상훈련을 하고 있다), 훈련효과의 평등은 아니다. AI의 출현은 실제로 기사들의 능력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이 점은 일류기사들과 시합에 매진하고 있는 어린 기사들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점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주로 얘기하고자 하는 부분이다.

거의 논쟁이 없는 것은 신진서는 현재 인류바둑의 최고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다(당연히, 인류바둑의 수준은 전체적으로 계속 제고되고 있어, 미래에 더욱 높은 수준의 기사가 출현할 것이라는데는 의문이 없다). 그렇다면, 신진서는 어떻게 그런 높은 수준에 도달하게 되었을까? 기예를 정상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그는 어떤 슬럼프와 곤경을 겪었을까? 그의 기술은 주로 어떤 점에서 남을 앞섰을까?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신진서가 최근 들어 예전의 전투형기풍을 바꾸어, '국면장악류'가 되었다는 것이다. 농심배에서 6연승을 거둘 때, 마지막 중국팀 주장 구쯔하오와의 일국에서 비교적 큰 파란이 일었던 것을 제외하면(이는 소신도 패국으로 이끄는 명백한 실수를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나머지 5판은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국면을 장악하고, 상대방에게 전혀 승리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여기에서 필자는 하나의 간단한 논점을 제기하고자 한다: 현대바둑의 프로경기에서 통치력이 가장 강한 기사는 큰 확률로 국면장악형의 기사이다. 이건 통속적인 견해이다. 이제 바둑기술분야의 이론으로 왜 이렇게 말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겠다.

당연히, 소신의 전투력 혹은 계산력도 아주 강하다. 옛날 그가 막 세계대회에 나오기 시작했을 때는 전형적인 전투형이었다. 그때 패배한 바둑은 많은 경우 우세한 상황하에서 지나치게 강하게 두다가 꺽인 경우이다(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신아오배 8강전에 나는 신진서와 같이 시합했다. 추첨식때 나는 그를 상대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는 당시 8강내의 유일한 외국기사였고, 젊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이미 여러 해동안 바둑훈련을 하지 않았고, 가끔 대회에 참가하면서 점차 일선에서 물러나고 있었는데, 소신은 이제 막 강호에 나왔다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둑AI이후(특히 카타고과 2019년 오픈된 후), 소신은 AI를 통해 공부하면서 점차 그의 약점을 보완한다. 스타일이 국면장악형으로 바뀌면서 승률도 놀라울 수준으로 올라갔다.

기실 바둑내의 각종 '스타일'이라는 말은 그저 재미로 하는 말이고 그다지 정확한 것은 아니다. 소위 "국면장악형"은 자주 그다지 격렬한 전투를 벌이지 않으면서 승리를 거두며, 상대방이 힘을 쓸 곳이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스타일은 복잡한 계산 속에서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겪는 파란을 회피할 수 있고, 국면을 평탄하게 이끌어 자잘한 실수도 문제없게 만든다. 그렇게 하여 높은 승률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국면장악형'기사들이 그런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전에 '국면장악형'의 최고봉은 당연히 이창호이다. 대리(大李, 이창호를 가리킴)의 전성기떄는 보기에 평범하고 기발한 것도 없었지만 상대방이 기회를 잡지 못하게 하는 수들을 두었다. 지금 AI로 다시 분석해보면, 이창호가 가장 강한 것은 끝내기가 아니었고, 형세판단이었다. 당시에는 이창호가 끝내기에서 역전했다고 생각했던 판들도 기실 역전이 아니라, 대리가 더욱 정확하게 자신이 실질적으로 우세하다고 형세판단했떤 결과였던 것이다. 그저 상대방과 관중들이 오판한 것이다(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는지는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다시 쓰겠다). 이창호의 프로생애의 후반에 그가 한때 스타일을 바꾸게 되어, '전투형'에 가깝게 된 것은 그의 영향하에 젊은 기사들의 판단력과 승부감각이 점차 강해지면서, 형세판단력에서 큰 차이가 아지 않으면 국면장악류는 쉽게 상대방을 이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투를 통해 해결하려 하는 것이다(쌍방 모두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여러 갈래의 계산을 해야 하는). 그 단계에 이르면 그의 승률과 국면장악력은 하강할 수밖에 없다((그때가 바로 내가 국가대표팀에서 대리,소리(이세돌)를 단체로 연구하던 시기이다)

즉, 국면장악의 관건은 '형세판단'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논점을 제기하겠다: 지금 신진서가 가장 많이 앞선 부분은 바로 '형세판단' 능력이다. 이건 확실히 AI훈련을 통해서 끌어올렸다.

프로기사들은 자주 이런 말을 한다: "형세판단이 바둑에서 가장 어렵다" 그렇다면 형세판단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왜 가장 어렵고, 또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을까? 여기에서는 그저 간단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좀더 상세히 얘기하도록 하겠다.

<중영바둑용어사전>을 편찬할 때, 나는 바둑의 많은 용어가 엄격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발견했다. 정확하지 않은 용어는 정확한 지식으로 이끌 수가 없다. 바둑기술분야를 얘기할 때, '중반능력'이라는 류의 용어가 가리키는 것은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형세판단'이라는 개념은 비교적 분명하다.

칠년전, 필자는 "AlphaGo-미래의 바둑"이라는 글에서 처음으로 바둑기술의 삼요소를 제기한 바 있다: 감각(棋感, 直覺), 계산과 판단(이 삼자는 바로 AlphaGo의 알고리즘구조에 대응된다). 인류가 바둑을 두는 능력과 기술은 전부 이 세 개의 개념의 틀 안에 포함될 수 있다. 작년에 필자는 "바둑의 지식구조분석"이라는 논문을 쓴 바 있다. 논문의 주제를 제외하고 글의 말미에 인류기사들이 AI를 사용하여 학습하는 것을 언급하면서, 이 세 분야가 어느 정도 발전했고, 어느 정도 발전할 여지가 있는지를 언급했다. 결론은 감각방면에서는 경험누적의 방식으로 계속 진보했고, 계산 방면에서 더 발전할 여지는 극히 적다. 다만 판단력방면에서는 앞으로 발전할 공간이 많다. 그리고 미래에 이론화될 가능성도 있다.

소위 정석의 기억은 모두 감각류에 속한다. 바둑에서 AI를 배우는 첫 단계는 바로 AI의 감각을 익히는 것이다. 즉 AI의 수법을 많이 보는 것이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국면하에서 더 좋은 국면에 대한 감각을 갖게 된다. 바둑의 포석단계에서 가장 쉽게 "동일하거나 유사한 국면"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감각부분에서 가장 쉽게 익히는 것은 속칭 "정석외우기"(그렇게 정확한 말은 아니다)이다. 이 단계에서 인류기사는 다시 새롭게 정석을 공부하여야 한다. 이것이 프로기사로서 반드시 갖추어야할 필수과목이다. 다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포석을 두는 방법외에 중반의 감각, 세부적인 호불호모양의 감각, 두터움과 엷음관계 및 언제 선수를 뽑을 것인지의 감각 등등도 모두 새롭게 익혀야할 여지가 있다. 이 부분의 훈련은 경헙누적을 위주로 하여야 한다. 많이 보면 알게된다. 당연히 많이 보는 것에서 진정으로 알려면, 알지 못하거나 잘 모르는 수법에 대하여 자세히 연구분석하여 이해하여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진정한 자신의 감각이 되는 것이다.

어떤 기사들이나 바둑팬들은 이것이 AI로 배우는 전부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리하여 AI가 나온 이후 바둑을 두는 것은 그저 기보를 외우면 된다고 여긴다. 이건 확실히 잘못된 것이고 쉽게 오도시키는 견해라 할 수 있다. 구정석이 도태되고, AI신정석을 배우는 것으로 포석의 새로운 감각을 익힌다. 이건 그저 기사들이 AI시대에 바둑실력을 제고시키는 첫걸음이다. 혹은 첫단계일 뿐이다.

계산방면에서, AI는 확실히 우리를 그다지 크게 돕지 못한다. 인류기사의 계산능력은 인류대뇌의 용량과 효능의 제한, 혹은 인간의 한계성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하여 인류의 계산능력은 전체적으로 크게 제고될 여지가 엾다. 개별적인 차이의 존재는 여전히 AI와는 무관하다.

문제의 관건은 바로 "판단"이다. 실제로 예전 인간-컴퓨터대결과정에서, 우리는 이미 완전히 인류기사와 AI간의 최대의 차이는 바로 '형세판단'분야라는 것을 알았다('계산'이 아니라). 왜 AI가 우리에게 "삼삼을 파라"고 가르키는가. 설마 인류는 삼삼의 기본변화를 파악해내지 못했다는 말인가? 당연히 아니다. 인류기사는 실리와 세력의 교환에 있어서 인류기사의 이전판단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즉 실리와 세력을 전환할 때, 인류가 사용한 두 가지 인식방법('논리'와 '경험')으로 내린 판단의 정확도는 차이가 비교적 컸다. 그리하여 판단착오를 일으킨 것이다(다만, 실리와 실리의 대결일 때의 판단은 그다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용하는 것이 같은 유형의 판단인지방법이기 때문이다)

바둑에서의 판단능력(AlphaGo의 Value Network부분)은 인류가 AI를 통해서 배워서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인류가 AI에 많이 못미친다. 그리고 인류능력의 극한에 도달하려면 멀었다. 그래서 제고시킬 여지가 크다고 말하는 것이다.

AI의 VN이 내놓은 승률은 인류가 당연히 AI처럼 직접 국면전화의 승률치로 전환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인류는 인류자신의 인식방법으로 이를 제고시켜야 한다. 인류의 인지방법은 바로 논리와 경험이다. 감각방면의 제고는 주로 경험의 누적이 필요하고, 판단방면의 제고는 양자가 모두 작용을 발휘해야하는 것이다.

인류기사는 지금 "판단"에 대하여 전문훈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AI라는 좋은 보조도구가 있으므로, 이런 류의 훈련은 가장 중요한 일상훈련방식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당연히, 일부 고수들의 AI훈련방법은 여전히 기밀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훈련하는지는 여기에서 너무 많이 얘기하지는 않겠다. 그저 먼저 바둑의 지식구조상 이론을 명확히 해야 한다: 왜 형세판단을역을 전문적으로 훈련하는 것이 가능하고 효과적인가.

AI로 자신의 형세판단능력을 훈련하는 가장 간단한 것은 경험누적의 방법이다. 즉 현재 가장 쉽게 만들어진 훈련방안이다. 앞으로 나타날 논리의 방법은 새로운 사고개념이 필요하다. 통속적인 말로 하자면, 더욱 뛰어나고 더욱 효과적인 기리(棋理, 예쩐의 일부 잘못되고 부정확한 기리개념을 제거하여야 함)를 찾아내는 것이다. 당연히 이건 단기간내에 실현될 수 없다. 즉, 이론적으로 말하면, 현재의 단계에서, 형세판단능력을 전문적으로 훈련할 훈련방안을제정하고, 형세판단의 정확한 경험을 누적하는 것을 주요목표로 한다. 일류기사를 꿈꾸는 기사에 있어서, 이건 매우 중요하고, 가능한 일이다. 이 분야에서, 아마도 신진서는 이미 앞서간 것같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아직 AI를 배우는 제1단계인 감각누적에 머물지만(그것마저도 배우기 싫어하는), 소신은 이미 고급반에 들어가 있는 것같다.

신진서는 매일 열심히 공부하는 고수들에 대하여 국면장악류의 우세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주로 그의 형세판단능력이 이미 한단계이상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복잡한 전투국면에 들어갔을 때, 그의 승률은 현저히 하락한다(최근 들어 소신에게 승리한 바 있는 기사들이 나에게 얘기해준 전략은 바로 온갖 방법을 강구해서 소신과 전투를 벌이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의 원리는 어떻게 AI의 승률변화를 이용하느냐에 있어서 소위 국면장악류는 바로 국면을 장악해서, 여러 추천수들 사이에서 실수를 크게 하지 않으면서, 승률이 앞서가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실수를 저질러도 바로 패국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한다. 소위 복잡한 전투(다른 이름으로 부르더라도)의 한가지 특징은 계산의 갈래가 비교적 많은 상황하에서, 거의 모든 수를 정확하게 두어야 하고, 한수를 실수하면 승률이 폭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대기사들은 어려서부터 계산을 열심히 공부한 사활문제의 대가들이다. 계산력분야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많이 뛰어넘기가 아주 어렵다. 그러므로, 전투형기사는 아주 높은 수준에 올라가 있다고 하더라도, 안정도 있어서는 국면장악형에 못미친다. 이는 기예원리와 인류의 능력한계로 인한 것이다. 당연히 각도를 바꾸어 보자면, 만일 기사들의 형세판단능력이 근접하게 되면, 복잡한 전투가 바로 승부를 가르는 중요한 방식이 될 것이다(AI대결을 참조하라). 이때 소위 국면장악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즉 통치력이 극강인 기사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종합해보면, 신진서의 아주 뛰어난 승률은 그의 국만장악식의 수법에 있다. 이런 수법이 거대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형세판단능력이 여러 고수들 중에서도 현저히 앞서가기 때문이다(옛날 이창호와 마찬가지로, 상대방은 형세의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이미 변화도를 미리 예상해볼 수 있다면 그가 앞서가게 되는 것이다). 형세판단능력이 대폭 제고됨에 따라 그는 초기의 장기간의 전투에서 쉽게 역전당하고 돌연 붕괴당하던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소신을 격패시키려면, 승률이 가장 높은 방식은 복잡한 전투로 이끄는 것이다. 그리고 기력에서 신진서를 따라잡으려면, 새로운 훈련방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형세판단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소신은 AI학습을 통하여 더욱 높은 수준으로 올라갔다. 아마도 이론적으로 완전히 자각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의 바둑AI에 대한 이해, 인식과 느낌은 아주 깊을 것이다.

내가 인상갚었던 것은 2021년 신진서가 인터뷰때 바둑AI에 대한 생각을 얘기한 것이다. 지금까지도 나는 이것이 AI시대를 대하는 인류기사의 가장 의미있는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신진서는 이렇게 말했다: "블루스팟은 AI가 인류에게 추천하는 것이다. 바둑을 이길 승률이 가장 높은 수이다. 그러나 그 위에 분명히 무언가가 있다."

"나는 최근 마침내 승부는 바둑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 나는 바둑 한판의 과정을 더욱 주목한다. 대국전에 나의 상태가 바둑 한판에 집중하는데 충분한가? 대국중 나는 경솔한 수를 두지 않을까? 국면이 유리할 때 자만하지 않을까? 국면이 불리할 때 미리 포기하지 않을까? 실수가 나왔을 때, 국면을 반전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나는 바둑에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신진서: AI는 인류를 울타리를 뛰어넘어, 더욱 심오한 바둑예술을 추구하게 해주었다)

나는 이 말을 우한대학 바둑수업 제2학기 첫번째 수업의 PPT에 올려놓았다. 이를 통해 인류의 AI를 대하는 진정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말하고자 한다(바둑만이 아니라)

AI가 보여주는 "국면의 진실"은 기사들로 하여금 새로운 이해와 언어를 계속하여 찾도록 만든다. 이렇게 찾아가는 것에는 겸허한 이지(理智)를 덕성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모순과 망연함에 빠져버릴 것이다. 여기에서 바둑과 사람의 관계가 드러난다.

신진서가 "암연이일장"의 군자지도를 체현했다고 말하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그가 일찌감치 정상에 올라서서 숭배를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오랫동안의 슬럼프를 거쳐 심지어 힘들게 오르고, 따라가는 길에서 상대방으로부터 조롱도 받았다. 운명의 신이 마우스미스를 하게 만들어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근거없는 모함으로 화가나서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종 기사로서의 품격과 기도를 유지했다. 부득이 반격해야했을 때도 불비불항(不卑不亢)의 태도를 유지했다. 순수한 시합의 공리라는 각도에서 말하자면, 소신의 최대약점은 아마도 책임감이 너무 강하다는 것일 것이다. 그는 확실히 승리를 거두어 우승해야 하고, 기록을 깨야 한다는 책임감을 두 어깨에 지고 있다. 그리고 기사의 이미지를 지켜, 업계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도 지고 있다. 이런 책임감이 어떤 때는 무거운 부담이 된다.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결승전에서 '무아'의 경지에서 모든 책임감을 버리고 오로지 승리하는 것만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다. 당연히 농심배에서의 전설적인 업적은 지금 신진서는 이미 이런 책임을 완전히 부담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책임을 버려야만 부담을 버리고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예전 소진이 아무런 근거없이 모함을 받을 때, 나는 너무 화가 나서, 그저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그를 모함하던 기우들을 비난한 바 있다. 그리고 한국의 친구를 통해서 소신에게 중국기사들중 근거없는 모함에 반대하고, 기사의 명예를 지키려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이렇게 한 것은 집단적인 침묵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전에 한국바둑계에 디아나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는 김승준 사범을 통하여 디아나여사에게 중국기사들이 지지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이것도 같은 생각에서이다. 여러가지 원인과 이유로 인하여, 우리는 공정을 위해서 하는 일이 너무 적다. 이는 억울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나쁜 일이다. 최소한 우리도 내심을 따라 지지를 표시해야 한다. 설사 그들이 당한 상처가 비교하기에 그다지 크지 않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2020년 신종코로나가 발발했을 때, 가족이 병원의 일선에서 일했다. 나는 우한에 남아서 도시봉쇄를 당했다. 그때 스스로 무력하고 쓸모없다는 것을 깊이 느꼈따. 그리하여 바둑계에 재난지역에 대한 기부를 제안했고, 의외로 금방 한국에서 기부하겠다는 요청을 받았다. 처음 우한지역에 기부하겠다고 한 한국기사는 당시 아직 스무살도 되지 않은 신진서였다. 나중에 이창호와 최정도 참여했다. 그들은 한 사람당 한화1000만원을 내서 우한의 방역을 도왔다(동시에 중국내바둑계에서도 많은 지지를 받았고, 이로 인하여 '도덕을 볼모'로 거절하지 못하게 한다는 언론도 있었다). 이는 나로 하여금 2008년의 원촨대지진을 떠올리게 했다. 이세돌과 조한승은 아주배 결승전이전에 공동으로 상금 전부를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그때 아주배에서 나는 조한승에게 반집을 졌었다. 당시 그들과 함께 그런 좋은 일을 함께 할 수 있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이런 시기와 사건에서, 나는 비로소 나는 같은 업종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좋은 모범은 더욱 젊은 기사들에게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기사라는 직업은 원래 여하한 사회경제생활에 필요한 필수품이 아니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물질적인 상금과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만일 기사들이 인류정신과 사유의 한계를 탐구하지 않는다면, 사회에 되돌려줄 줄 모르고 그저 무한히 가져갈 줄만 알것이다. 약자를 무시하고 그저 이기는게 최고라고 여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직업의 존재의 합법성은 근거가 흔들리게 될 것이다.

다행히 신진서라는 기사가 있다. 기예, 바둑과 AI에 대한 이해, 바둑에 대한 태도뿐 아니라, 기품 인품, 업계에 대한 인식과 책임감, 기도에 대한 전승까지도 모두 그는 모범이 될 만하다. 24살이 되지 않은 그는 이미 점점 '군자지도, 암연이일장'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창호와 신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