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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당(唐)에는 대소 "이두(李杜)"가 있었고, 한(漢)에는 대중소 "이두(李杜)"가 있었다.

by 중은우시 2019. 1. 30.

글: 이대취(李大嘴)


당나라는 중국시가창작의 전성기이다.

시가를 얘기하자면 대소 "이두"가 있다. 대 "이두"는 바로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이다. 소 "이두"는 이상은(李商隱)과 두목(杜牧)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한나라에도 "이두"가 있었다. 그것도 3쌍이다. 대중소 "이두"로 나눌 수 있다.

그렇지만, 한나라의 이두는 시를 쓴 사람들이 아니라, 모두 관리였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한나라의 양대 암적인 존재, 외척과 환관의 손에 죽었다는 것이다.


대 "이두": 이고(李固), 두교(杜喬)


이고, 두교는 관료자제들이다. 두교의 가족은 더욱 오랫동안 장관급의 관리를 지냈다.

가족세력이 적지 않은데다가, 이고, 두교는 그 자신들도 능력이 있어서 두각을 나타낸다. 관료로서의 길이 순탄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일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이 두 사람은 절대로 국가를 위해 적지 않은 공헌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고, 두교가 살았던 시대는 외척과 태감이 번갈아가며 권력을 농단하며, 기승을 부리던 암흑의 시대였다. 그리하여 이 두사람에게는 비극이 된다.

이고가 관료로서 처음 맡은 일은 대장군 양상(梁商)의 참모였다. 양상이 누구인가? 딸이 황후이고, 여동생은 비(妃)이다. 그는 황제의 장인이며 외삼촌이다. 그는 표준적인 외척이다.

그러나, 양상은 권력을 농단하지 않았고, 쓸데없는 일에 관여하지도 않았다. 그렇기 때무에, 이고는 재능을 발휘할 공간을 갖지 못한다.

어렵사리 호북에 관직을 얻어서 일을 해보려다가 양상의 아들인 양기(梁冀)에게 밉보이게 된다. 그리하여 산동으로 쫓겨간다.

한 해는 두교가 중앙이 지방감찰을 맡아 산동지역을 감찰한다. 감찰보고서에서 이고의 정치업적이 최고라고 쓴다. 한나라의 대 '이두'가 이렇게 연결된다.

이고가 중앙으로 들어오자, 두교와 같은 입장을 취하여 정의를 부르짖는다. 양기는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었는데, 두교와 이고가 결사반대한다. 권력욕이 강한 양기는 두 사람을 뼛속까지 미워한다.

마침내 양기에게 기회가 왔다.

지방에서 누군가 청하왕 유산을 황제로 옹립하려고 밀모를 꾸미다가 들통이 났다. 이 유산은 바로 한환제와 황제의 자리를 두고 경쟁했던 인물이다. 당시 두교와 이고는 유산을 지지했었다.

그리하여 두교, 이고는 모두 밀모사건의 '막후조종자'로 몰려 감옥에 갇힌다.

<후한서> '이두열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양기가 두교에게 사람을 보내서 말한다. "네가 자살하면, 가족들은 살려주겠다." 두교는 자신이 억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만일 자살한다면 그것은 죄를 인정하는 셈이 된다. 그리하여 따르지 않는다.

양기는 사람을 보내어 옥에 갇혀 있는 이고와 두교를 모조리 제거한다. 그리고 시신을 성북에 버려둔다.

장지미수신선사(壯志未酬身先死)


중 "이두": 이운(李雲), 두중(杜衆)


여러 해가 지난 후, 대장군 양기는 어른이 된 한환제가 태감과 손을 잡고 제거한다. 조정의 상하는 새로운 분위기가 되고, 사대부들이 힘을 쓰기 시작한다. 이제는 치국평천하를 할 수 있겠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제 태감들이 득세하기 시작한다.

태감들이 대규모로 후의 작위를 받고, 조정을 좌지우지한다. 그러면서 관직을 자기들 마음대로 임명한다. 황후를 뽑는 것도 법도를 어겨가며 자기들 마음대로 처리했다. 마침 이때는 소빙하기여서, 천재가 계속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하늘의 경고라고 생각한다.

당시에 백마현령이라는 보잘것없는 관직에 있던 이운이 상소를 올려 공개적으로 황제에게 얘기한다.

이운은 당시에 유행하던 천인감응설에서 출발하여, 황후도 제대로 앉히지 않고, 태감들이 분수에 맞지 않게 행동하고, 조상들이 정한 법도에 어긋나게 공이 없는데도 후의 작위를 내리고, 유씨가 아닌데도 왕에 봉했다. 이렇게 마음대로 관직과 작위를 내리고 상을 주니 '고조께서 듣는다면 뭐라고 할 것인가?"

더욱 심한 말도 한다. 황제는 천도에 부합되어야 하는데, 지금 이렇게 엉터리로 하고 있으니, 어찌 황제라 할 수 있겠느냐는 식의 말이었다.

황제는 대노하여, 이운을 체포하고, 그를 참하려 한다. 이때 정의진영의 관리들이 속속 이운의 편을 들어 목숨을 구하고자 애를 쓰나, 모두 실패한다.

그러자, 또 한명의 하급관리가 들고 일어난다. 홍농오관연 두중이다. 그가 상소를 올려서 이운은 충신이니, 자신도 이운과 함께 죽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황제의 대답은, "네가 원한다면..." 그리하여 '이운, 두중은 모두 옥중에서 죽는다."

장지미수신선사, 시즌2였다.


소 "이두": 이응(李膺), 두밀(杜密)


황제도 마구잡이로 나오고, 태감도 마구잡이이고, 외척도 마구잡이였다. 그래도 좋은 사람은 계속 나타난다.

두교의 아들 두밀도 좋은 사람이다. 그가 관리가 된다. 그리고 이응이라는 좋은 사람도 잇었다. 이들 둘은 나란히 동한 "팔준(八俊)"에 들어간다.

당시, 사대부들의 세력이 적지 않았다. "삼군(三君)", "팔준", "팔고(八顧)", "팔급(八及)", "팔주(八廚)"등 인재들이 많았다. 이들은 집단적으로 행동했다. 집단으로 공격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했다.

그리하여, 역사상 유명한 당고지화(黨錮之禍)"가 발생한다. 그냥 발생한 것이 아니라 2번이나 발생했다. 

제1차 당고지화의 원인은 특이하다. 황제가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리려고 계획했다.

대사면령은 계획부터 공표까지 일련의 절차와 시간을 거쳐야 한다. 사전에 소식을 들은 태감들과 그들의 일당들은 시간차를 두고, 대사면령이 나토기 전에 미친 듯이 사건을 저지른다.

적지 않은 사대부 지방관들은 손에 대사면령이 문서를 들고, 눈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화가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이들 범죄자들을 처벌해버린다.

대사면령이 백지취급을 당한 것이다.

정의를 실현한 관리들은 면직되거나 감옥에 갇힌다. 다행히 태감들도 이 사건을 크게 벌일 생각은 없었다. 이들 관리들은 대부분 처벌을 면하고, 그저 관직만 박탈당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응, 두밀은 모두 이때 면직당한다.

1년여가 지나서, 황제가 바뀐다. 한환제에서 한영제로 바뀐 것이다. '영(靈)'자에서 보듯이 그는 좋은 황제가 아니다.

새 황제는 새로운 분위기를 원했다. 이응, 두밀은 모두 다시 기용된다. 사대부들도 권토중래하여 계속 투쟁한다.

이번에, 그들은 비록 태감과 외척이 모두 좋은 자들이 아니지만, 둘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것은 어렵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통일전선을 이루어 하나와 손잡고 다른 하나를 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승리할 희망이 있었다.

사대부들은 명성이 괜찮은 외척이자 황후의 부친인 대장군 두무(竇武)를 끌어들여서, 소형 쿠데타를 계획한다. 직접 나쁜 짓을 하는 태감들을 제거해버리려 한 것이다.

그러나, 사전에 누설되어 버린다. 그래서 황급히 거사를 하다가 두무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피살당한다.

이응, 두밀은 결국 앞의 '이두'들과 마찬가지로 옥에서 죽는다.

장지미수신선사, 시즌3이다.